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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미국 대사가 곱씹는 '김대중 정신’

적어도 국내 정치권에서 '김대중 정신'은 정치공학적 수사가 되어버린 듯합니다.

벨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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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분 걸림 -

안녕하세요, 여러분. 🔔벨빅 클럽장입니다.

모처럼 긴 연휴동안 잘 쉬셨나요? 다들 고향을 방문하고 서울로 돌아와서 본업에 매진하는 시기, 저는 짐을 싸서 지방으로 내려왔습니다. 꿀이죠🍯. 에디터 노트를 작성하고 있는 지금, 파도 소리를 들으며 나름의 힐링을 하고 있습니다.

자은도의 해변 (feat. 벨빅 주니어)
자은도의 해변 (feat. 벨빅 주니어)

사실 힐링하러 온 건 아니고 일하러 왔습니다(...). 현재 전남 신안의 자은도에서는 김대중 평화회의'가 한창 열리고 있는데요. '지구적 평화와 지구적 책임'이라는 주제로, 전 세계의 석학들이 한데 모여 당면한 위기의 대안으로 '김대중 정신'을 고민하는 자리입니다. 저도 이 행사에서 한 세션의 진행을 맡게 되어 참가자들과 열심히 준비하고 오는 길입니다.

열일 중인 클럽장. 꿀만 빨고 있지 않음.
열일 중인 클럽장. 꿀만 빨고 있지 않음.

'김대중 정신'은 국내 정치권에서 민주당뿐 아니라 국민의힘에서도 많이 꺼내 드는 단어입니다. 주로 '통합', '화합', '용서' 등의 단어로 표현되긴 하지만, 사용되는 문맥을 살펴보면 그와는 거리가 느껴지고 오히려 더 뜻을 모를 상황이 대부분입니다.

적어도 국내 정치권에서 '김대중 정신'은 정치공학적 수사가 되어버린 듯합니다. 그동안 남발되어 왔기에, 국내 정치인이 '김대중 정신'을 얘기하면 으레 한 귀로 들어와 다른 귀로 빠져나가 버립니다. 물론 김대중이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가 여전히 논쟁적이기도 하고요.

행사가 시작되고, 형식적인 축사들이 이어졌습니다.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지는 뭐... 뻔합니다. 사실 저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더랬죠.

그래서였을까요? 축사 순서가 빨리 넘어가기만을 기다리며 건성으로 앉아있던 와중, 국내 정치와 무관하다고 볼 수 있는, 한 은퇴한 외국인 공무원이 진솔하게 전하는 '김대중 정신' 이야기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습니다. 오늘의 에디터노트에서는 그 경험을 전하려 합니다.

지난 2주간의 애정클 콘텐츠

추석 연휴로 9/29, 10/3 콘텐츠는 쉬어갔습니다. 10/9 한글날에는 정상 발행 예정입니다!

구독자분들께선 이런 의견을 보내주셨습니다.

  • 도덕적 비난은 수치심이 있어야 유효한데 이 정권에 그게 있기를 바라는 게 온당할까요? (김민성 님)
  • ’구원자 미국’만 강조할 때 놓치는 것(9/19 발행)이 평소 긍정적인 부분만 다뤄지던 한미관계를 부정적인 면모도 비춰줘 양면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기지촌 당시보다는 나아졌지만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미국의 눈치를 어느 정도 봐야 합니다. 그렇기에 현실적으로 정부 간에 한미관계에 있었던 부정적 이슈들을 논의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너무 암울하게만 보는 걸 수도 있습니다. 이것 또한 시민단체들에게 넘겨질 과제가 아닐지 의문입니다. (석진환 님)

애정클 콘텐츠에 대한 다양한 의견 제시는 늘 환영입니다! 오늘 소개드린 의견에 대해서도 피드백창을 통해 의견을 남겨주시면, 다음 에디터 노트에서 논의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편하게 찾아주세요!

*보내주신 의견은 에디터의 편집을 거쳐 소개됩니다. 내용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가독성을 위한 편집만 진행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의견은 합쳐서 제시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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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덕적 비난은 수치심이 있어야 유효한데 이 정권에 그게 있기를 바라는 게 온당할까요? (김민성 님)
  • ’구원자 미국’만 강조할 때 놓치는 것(9/19 발행)이 평소 긍정적인 부분만 다뤄지던 한미관계를 부정적인 면모도 비춰줘 양면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기지촌 당시보다는 나아졌지만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미국의 눈치를 어느 정도 봐야 합니다. 그렇기에 현실적으로 정부 간에 한미관계에 있었던 부정적 이슈들을 논의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너무 암울하게만 보는 걸 수도 있습니다. 이것 또한 시민단체들에게 넘겨질 과제가 아닐지 의문입니다. (석진환 님)

애정클 콘텐츠에 대한 다양한 의견 제시는 늘 환영입니다! 오늘 소개드린 의견에 대해서도 피드백창을 통해 의견을 남겨주시면, 다음 에디터 노트에서 논의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편하게 찾아주세요!

*보내주신 의견은 에디터의 편집을 거쳐 소개됩니다. 내용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가독성을 위한 편집만 진행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의견은 합쳐서 제시되기도 합니다.

에디터 스토리🔔

석진환 님께서 마침 위와 같은 코멘트를 남겨주셨는데요, 조셉 전 감독은 기고문에서 한미관계의 어두운 면을 언급하며 전 주한 미국대사 캐슬린 스티븐스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스티븐스 전 대사는 제주 4.3사건에 대해 미국이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봐야 한다며, “과거는 항상 반성해야 끝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행사의 축사에서 '김대중 정신'을 논한 이 또한 캐슬린 스티븐스 전 대사입니다.

2008년 10월, 서울 동교동 자택에서 만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스티븐스 당시 주한미국대사 ©뉴시스
2008년 10월, 서울 동교동 자택에서 만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스티븐스 당시 주한미국대사 ©뉴시스

스티븐스 전 대사는 198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고 언급했는데, 김 전 대통령이 미국 망명을 끝내고 귀국했을 당시였습니다. 스티븐스는 주한 미국 대사관에 근무하던 젊은 외교관이었고, 한국의 정치 상황을 파악해 보고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김대중에 대한 흑색선전이 난무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는 정적들에 의해 '반미주의자', '친북주의자'로 몰렸습니다. 미국으로 망명하게 된 것도 이러한 탄압으로 신군부 시절 사형선고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젊은 스티븐스를 의아하게 만들었던 것은 김대중의 태도였습니다. 실제로 알게 된 김대중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본인에게 누명을 씌우고, 탄압하고, 심지어 수차례 죽이려고까지 했던 이들에 대해 증오심을 갖는 것이 자연스러울 텐데, 스티븐스는 김대중에게서 그의 정적을 향한 분노나 복수심을 전혀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염려, 그리고 민주주의가 결국 승리할 것이라는 터무니 없는 낙관만 읽혔습니다.

시간이 흘러 스티븐스는 북아일랜드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벨파스트에 파견됐습니다. 서로를 향한 증오와 폭력이 낭자한 그 자리에서, 그는 화해와 통합을 추구한 김대중을 떠올렸습니다. 같은 시기 김대중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1998년 2월, 대통령 취임식에서 김대중은 그를 죽이려고 했던 정적들과 군사 정권인사들이 함께하는 자리에서 그들의 축하를 받으며 대통령 선서를 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자리에 함께한 노태우, 전두환, 최규하 전 대통령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자리에 함께한 노태우, 전두환, 최규하 전 대통령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

스티븐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논하는 화해, 그리고 그가 대통령 임기 내내, 그리고 평생 동안 한국의 사회, 지역, 정치 구조의 분열을 치유하기 위해 한 행동은 제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의 경험과 사례를 북아일랜드와 제가 일했던 모든 곳에서 공유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몇 달 후인 1998년 4월, 북아일랜드에서는 마침내 온갖 역경을 닫고 북아일랜드 평화의 토대를 마련하는 '성금요일 협정'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고, 이는 제게 한국의 사례를 다시금 상기시켰습니다."

정치를 보며 느끼는 피로감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어 시작한 애증의 정치클럽인데, 끊임없이 올라오는 소식을 보면 마음 다잡기가 쉽지 않음을 매일 느낍니다. 정치판에 정치는 실종되고 서로를 향한 감정적인 적대만 남아있는 듯한 모습을 볼 때 특히 더 힘이 빠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난 에디터 노트에서 건조 에디터가 이야기 했듯, 우리에게는 생각보다 괜찮은 역사가 있습니다. 보복의 정치가 아닌, 화합의 정치가 작동했던 때가 있습니다. 작동을 넘어 성황을 이뤘죠.

저희는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오히려 해외에서 이를 대신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수많은 해외 석학들이 전남 신안의 한 섬에 모여 그때를 기억하고 논의하며, 이를 토대로 세계가 당면한 위기를 극복해 나갈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 정치가 '김대중 정신'의 의미를 다시 찾아야 할 때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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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노트

벨빅

지금 내가 서있는 곳에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평화적 공존과 환대의 공동체를 만드는 일을 위해 활동해왔습니다. 미국에서는 난민과 이민자 출신 청소년들과 주로 함께했는데, 한국에 와보니 정치와 시민 사이에 쌓인 게 많아보였습니다. 둘 사이가 좀 더 친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애정클을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