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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기다리며 떠올린 역사

정치는 그런 일을 해왔고, 또 해낼 수 있을 겁니다.

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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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분 걸림 -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애증의 정치클럽 🍂건조 에디터입니다.

에디터노트를 쓰고 있는 지금, 국회 본회의가 한창 진행 중입니다. 한덕수 총리의 해임 건의안이 통과됐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은 가결됐습니다. 총리 해임 건의안의 경우, 어디까지나 건의안으로 대통령이 수용하지 않으면 해임이 이뤄지지 않습니다. 체포동의안은 국회에서 가결될 경우 법원의 구속영장 실질 심사 결과에 따라 체포 여부가 결정됩니다.

특히 체포동의안 가결이 의외의 결과로 큰 이슈입니다. 이재명 대표는 투표 전날 부결을 호소하는 내용의 SNS 게시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가결 결과가 나오면서 민주당은 어수선한 분위기입니다.

찬성에 투표한 민주당 의원을 찾아 퇴출해야 한다는 이들도 있고, 야당 대표의 체포 선례를 만든 것 자체가 우려된다는 이들도 있고,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로 인한 리스크를 떨치는 결단을 내렸다며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체포동의안 결과를 계기로 민주당이 분열될 지를 두고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영장 실질 심사는 추석 이후 이뤄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런 만큼 추석 내내 정치권은 긴장을 내려놓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결과를 둘러싼 다양한 감정이 환멸로 이어지지 않는 연휴가 되길 바랍니다.

지난 2주간의 애정클 콘텐츠

이외에도 이런 활동이 있었습니다.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 523a. 523b. 출연 (9/21, 9/22)

523b.는 오늘 오후 5시 유튜브, 팟빵, 애플 팟캐스트 등을 통해 공개될 예정입니다!

구독자분들께선 이런 의견을 보내주셨습니다.

  • 사실 이동관 방통위원장 임명을 포함해서 윤석열 정권을 보면서 그동안 우리가 일궈왔다고 생각한 업적들이 사실 아무 실속이 없던 건 아니었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분명 그동안 끊임없이 필요한 정책을 만들기 위한 운동도, 한 정권을 탄핵하는 커다란 변화를 일으킨 시위도 있었고, 그렇게 만들어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진다는 게 어이없기도 해요.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운동 동력에 대한 점검, 공론장의 기능 등을 아예 점검해볼 필요성도 있지 않나 생각이 들 정도에요. 아니면 그냥 제가 정권이 가진 힘에 대해 너무 순진하게 생각하고 있는 걸 수도 있고요. 차라리 후자였으면 좋겠네요. (천인혁 님)

  • 언론장악은 상대적입니다. 그 시작과 원인을 짚어 주세요. (박정훈 님)

짚어주셨듯, 언론장악 논란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있어 왔습니다. 특히 공영방송 정책을 두고는 여당 때와 야당 때 각 정당의 입장이 바뀌는 일이 허다합니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권력교체만 되면 공수를 바꿔서 서로 공영방송 놓고 쟁탈전을 벌이는 아주 익숙한 풍경"이라고 양당 모두를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양당의 언론 정책이 완전히 같았던 것은 아닙니다. 언론개혁을 주장해도 방향성의 차이가 있어왔습니다. 박정훈 님의 피드백을 계기로,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콘텐츠를 준비 중이니 기대해주세요😉 관련 콘텐츠는 추석 이후 발행 예정입니다.

  • (👥 통계 조작 의혹 vs 감사 조작 의혹에서) “통계 방법을 바꾸려면 받아야 하는 통계청장의 승인도 받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이 팩트인지 주장인 것인지 판단이 어렵습니다. 팩트라면 근거법령 등을 같이 기재하는 것이 글을 이해하고 판단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폴리혁 님)

지적해주신 대로, 신뢰성 있는 근거를 언급하지 않아 혼란을 드렸습니다. 통계법 18조에 따르면 통계 방법을 바꾸려면 통계청장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앞으로 독자 분들이 팩트를 더욱 확실히 파악할 수 있도록 근거 서술에 더욱 유념하도록 하겠습니다. 짚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애정클 콘텐츠에 대한 다양한 의견 제시는 늘 환영입니다! 오늘 소개드린 의견에 대해서도 피드백창을 통해 의견을 남겨주시면, 다음 에디터 노트에서 논의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편하게 찾아주세요!

*보내주신 의견은 에디터의 편집을 거쳐 소개됩니다. 내용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가독성을 위한 편집만 진행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의견은 합쳐서 제시되기도 합니다.

에디터 스토리

저는 명절마다 경남 거창으로 내려갑니다. 사과, 딸기, 송이버섯이 유명한 지역입니다. 덕분에 저는 한 번도 딸기를 사 먹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거창은 6.25 전쟁 당시 양민 학살 사건이 있었던 곳입니다. 제 가족이 살고 있는 거창군 신원면에서 3일간 민간인 700여명이 총살됐습니다. 그중 절반이 15세 이하의 어린이였습니다. 당시 국군에 의해 이뤄진 다른 민간인 학살과 같이, 빨치산 색출이 명분이었습니다.

거창사건추모공원 역사교육관에 전시된 ‘박산골 민간인 학살 현장’ 모형 ⓒ한겨레

거창 출신 신중목 의원은 사건 바로 다음 달인 3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학살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진상 규명을 위해 국회는 국방부 등 관련 부처의 장관들과 이승만 대통령의 출석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출석을 거부했고, 외려 사건이 해외에 보도되지 않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정부는 현지 조사 결과를 축소 보고하며 은폐를 시도했습니다.

그럼에도 신중목 의원의 노력으로, 거창 사건은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졌습니다. 국회는 양민 학살 관련 책임자 처벌에 대한 결의문을 채택했고, 사건을 지휘한 군 관계자들을 처벌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재판 결과, 일부 관계자에 대해선 사형과 무기징역이라는 강도 높은 처벌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1년 만에 처벌 대상 모두를 특별사면했습니다.

이후 쿠데타와 군사정권 집권이 반복되면서, 진상 규명과 관련자 처벌은 미뤄졌습니다. 도리어 5.16 쿠데타로 들어선 박정희 정부는 유족들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하고, 위령비와 묘지를 훼손했습니다. 위령비는 민주화 이후인 1988년에야 재건됐고, 1996년에는 국가 차원의 배상과 명예 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됐습니다.

그러나 유족에 대한 배상과 진상 규명은 아직까지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관련 입법이 계속해서 발의되고 있지만,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거창사건추모공원, 중앙에 위령비가 있다 ⓒ경남일보

거창에는 이 사건을 기리는 추모공원이 있습니다. 추석 전, 추모공원에서 마냥 즐겁게 자전거를 타던 어린 시절을 기억하며 이 사건에 대해 다시 알아보게 됐습니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것보다 더 참혹한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충격적이었던 건 아직까지 사건이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반공주의가 남긴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습니다.

역사를 살펴보며 주목하고 싶었던 부분은, 학살을 자행한 것도 정치, 학살을 공론화하고 진상 규명을 촉구한 것도 정치라는 겁니다. 거창 사건은 한국전쟁 기간 동안 사법부가 가해자의 잘못을 인정하고 처벌한 유일한 사건입니다. 언론에 사건을 알린 신중목 의원의 영향이 컸습니다. 특별법 통과의 배경에는 여야 의원들의 협치가 있었습니다.

어느 때보다 국회에 대한 불신은 높고 기대는 낮은 시기입니다. 매일 쏟아지는 부정적인 뉴스에 눈살을 찌푸리고, 천인혁 님처럼 모든 것이 무용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저 역시 ‘정치는 망했다’는 말을 한숨처럼 쉽게 뱉던 사람이었습니다.

미미한 위로겠으나 감히 제안해보자면, 그럴 때면 오늘처럼 역사를 들여다보면 어떨까요. 끝이 보이지 않는 35년의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도 독립운동을 지속해온 사람들, 은폐된 학살을 알리기 위해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온 사람들, 정당을 가리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손을 잡았던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했음을 생각합니다. 변화는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도 찾아와 지금을 만들었습니다. 정치는 그런 일을 해왔고, 또 해낼 수 있을 겁니다. 적어도 역사에 따르면 그러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멈추지만 않는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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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침착하게 바라볼 때 나오는 날카로운 분석을 좋아합니다. 동시에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다정함을 글 쓰는 동력으로 삼고 싶습니다.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변화의 출발점이라고 믿습니다. 애정클에서 애(愛)든 증(憎)이든, 정치를 대할 때면 쉽게 끓어오르는 마음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변화를 추구하는 마음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합니다. 최근엔 일상을 가꾸고 나를 돌보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