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삼촌의 반전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애증의 정치클럽 🍂건조 에디터입니다.

1월 첫째 주에 일주일의 휴가를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긴 휴가였지만 특별히 여행을 가거나 하진 않았고, 경남 거창군의 본가에 내려가 느긋하게 쉬었어요.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아빠가 모는 차를 타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주변에 별다른 여가 거리가 없는 곳이지만 반려동물과 놀기만 해도 시간이 잘 갔습니다.

오늘의 에디터노트에선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하며 든 생각을 나눠보려 합니다.

귀여운 저희 집 강아지입니다.

지난 3주간의 애정클 콘텐츠

이외에도 이런 활동이 있었습니다.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 출연

구독자분들께선 이런 의견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산안_최종_보스_기재부 (11/14)

기획재정부에 대하여 어렴풋이 알았지만 더 잘 알게 되어서 고맙습니다. 기획재정부는 T4부서입니다. (박경석 님)

은퇴한 미국 대사가 곱씹는 '김대중 정신’ (10/6)

‘김대중 정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평소 정치적 화합이 얼마나 평화에 작용하는지, 오직 평화에만 맞추어 정치적 각색을 생각했었는데 별개로 오히려 ‘묵인’에서 오는 힘이 얼마나 강한 지를 알게 된 글이었던 것 같습니다. 글을 읽어보며 실제로 ‘김대중 정신’이라는 문장 자체도 하나의 명사로 성립될 수 있다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중 제가 꼽은 건 ‘묵인에서 오는 평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 정치가 얼마나 복잡한지 얼마나 정신없는지 그쪽 세계에 대한 실마리는 풀 수가 없겠지만 저절로 김대중 정신에 대한 타이틀을 알 수 있던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Emma 님)

좌충좌돌, 진보정당의 역사 (12/20)

진보당의 맥락까지는 모르고 있었는데 정리 정말 감사합니다.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다 보니 의문이 들었던 부분이 다소 해소되기도 했습니다.

본문에서 언급된 내용이지만 진보 성향 정당들의 주 문제는 기존 거대 양당과의 차별화가 안된다는 점입니다. 조금만 과거로 돌아가면 중대재해처벌법, 차별금지법 등 노동자와 페미니즘, 성평등을 주 논의로 가지고 갈 때는 차별성이 분명했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거대양당은 굉장히 소극적으로 나오고 있는 주제였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 영입 당시 민주당의 스탠스를 제외하고는 현재도 그런 모습이 안 보인다고 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제3지대가 우려됩니다. 이전 인터뷰 게시글에 굉장히 비판적인 댓글을 달았던 적이 있는데, 그 차별성이 굉장히 부족하다는 점이 최근에 더 강하게 부각되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지금 흐름으로는 더 안 좋게 흘러가고 있다고 봅니다. (천인혁 님)

‘서울의 봄’ 이후, 전두환에게 겨울이 왔을까 (12/12)

실패한 국민통합이라는 점에 저도 무게를 싣고 싶네요. 당시 언급한 국민통합의 기대효과는 있지만 그 효과가 실질적으로 있었는지는 좀 회의적입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사면의 논리에 늘 등장하는 '국민통합'이라는 뻔하고 의미 없는 메아리의 시작이 되지 않았나 싶을 정도거든요.

마지막에 군사정권에 희생된 피해자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표할 수 있냐는 비판에 대해 동의하기도 하고요. 전두환이 상징하는 건 군사정권, 독재 뿐만 아니라 쿠데타, 군 내 사조직 등 어떤 집단 내의 권력 문제 등 여러 문제가 같이 있다고 보는 편이기도 하고요. 설령 대표성이 주어진다고 한 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표할 수 없는 문제들이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천인혁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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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스토리

반려동물처럼 애정을 쏟아낼 수 있는 대상이 일상에 존재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자신에 대한 향상심만으로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한계점에 도달하죠. 그때의 허무함에 무너지지 않는 방법 중 하나로, 삶에 의미를 부여하게 하는 존재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제가 미래에 자녀를 원하게 된다면 이런 이유 때문일 것 같아요.

하지만 가족은 무한한 애정만 주고받지 않습니다. 오히려 애증이라는 감정이 정치만큼 잘 어울리는 게 가족이죠. 가족과 정치를 함께 두면 많은 사람들이 진저리 칠 거예요.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가족과 정치적 의견 차이로 다퉈봤을 테죠.

귀여운 저희 집 고양이입니다.

여느 경상도 지역이 그렇듯 거창도 보수가 우세합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수정당을 찍는 어르신들이 많고 줄곧 보수정당 국회의원이 당선됐죠. 저희 집안 분위기도 마찬가지예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명절마다 어른들이 정치 이야기를 시작하면 저는 조용히 밥만 먹다 슬그머니 자리를 옮기곤 했어요.

애정클에서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그러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무슨 회사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정치’ 들어가는 일을 한다니, 제 생각은 어떠냐고 어른들이 물어보기 시작한 것이죠. 저희 할아버지는 저에게 전화해 “MBC가 다 빨갱이라는데 사실이냐”고 여쭤보기도 했어요. 그럴 때마다 어디까지 말을 해야 하나 곤란하지만 동시에 기쁩니다. 제 의견을 궁금해하고 들어보려 하신다는 것 자체가 고무적이죠.

그렇게 일가친척 정치토크의 멤버로 받아들여진(?) 후로, ‘보수적인 어른들’을 바라보는 제 시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그분들이 생각하는 정치지형이 어떤 지식을 토대로 구현된 것인지, 가치관 형성의 배경이 된 개인적 경험은 무엇인지 듣게 된 것이죠.

가족을 제외한 제 인간관계는 솔직히 진보 편향적이기 때문에, 이전까진 보수정당 지지자와 교류할 경험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 일을 하게 되고 나서야, 가장 가까이에 있던 샘플들을 들여다보게 됐어요. 그러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이번 휴가에서도 예상치 못한 일이 있었어요. 강경 보수인 줄 알았던 외삼촌이 알고보니 스윙보터였음을 알게 된 겁니다. 산불방지 활동에 대해 얘기하던 중 물꼬가 트였는데요. 산림 지역이 많은 지자체에서는 산불방지를 위한 인력을 따로 두고 대응 활동을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예산이 삭감돼 인력이 줄었다는 얘기였습니다.

이외에도 농촌에 필요한 다양한 예산이 깎였다고 합니다. 외삼촌은 윤석열 정부의 농민 정책에 분명히 문제가 있다며, 양곡관리법 거부권 행사와 여당의 협치 거부까지 거론했어요.

들어보니 외삼촌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지만, 사안에 따라 평가를 달리하고 입장을 선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농민 정책과 지역사회 현안에 민감하며, 지역 정치인들의 평판도 꿰고 있었습니다. 몇십 년 간 지역 커뮤니티에 적극 참여하고, 농민으로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면밀히 살폈기에 갖춘 통찰력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일상을 매우 정치적으로 인식하고 그에 따라 민주적 시민권을 행사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그 기반에는 지역과 공동체에 대한 애정이 있었습니다.


“보수는 맞는데, 잘 했으면 잘 했다고 하는 거고, 아니면 아니라고 하는 거지 보수 정답, 진보 정답이 따로 있겠어?”


‘완전 보수인 줄 알았다’는 저의 말에 외삼촌이 한 대답입니다. 제가 생각해온 ‘경상도 보수’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말이었어요. 그날의 대화 끝에 정말 많이 반성했습니다.

정치적 개인의 초상은 생각보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더라고요. 늘상 다원주의, 공존, 존중이라는 단어를 거창하게 써내면서도 정작 현실의 인간관계에서 제가 보이는 태도에는 여전히 편견과 몰이해가 담겨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도 외삼촌과 저의 의견은 같을 때보다 다를 때가 더 많겠죠. 하지만 이번 휴가에서의 깨달음 이후로 대화의 결은 많이 달라질 것 같아요. 외삼촌은 유독 가족에게 애정이 넘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능했던 대화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