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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를 보살피는 정치인

조연우 더불어민주당 전국장애인위원장 별세

건조
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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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애증의 정치클럽 🍂건조 에디터입니다.

오늘의 에디터노트는 특별합니다. 애정하는 정치인을 저희 구독자 분들께 소개하고 싶다는 분을 모셨어요. 계단뿌셔클럽 공동대표이자 정치인인 이대호 씨입니다. 계단뿌셔클럽은 도시의 계단 정보를 모아 장애인, 임산부, 고령자, 어린이의 이동권 문제를 해결하는 비영리단체입니다. 관련해 애정클의 인터뷰이로도 모신 적 있지요.

지난 8일, 대호 씨가 더없이 존경했던 동료 정치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조연우 더불어민주당 전국장애인위원장입니다. 조연우 위원장은 누구보다 열정적인 청년이자, 명확한 문제의식을 가진 정치인이었고, 혁신을 만들어낸 당원이었습니다. 대호 씨와 함께 정치인 조연우가 남긴 궤적을 따라가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조연우 더불어민주당 전국장애인위원장 ⓒ조연우 페이스북

지난 2주간의 애정클 콘텐츠

정정합니다.

윤석열 VS 한동훈, 냉전?(1/25)의 레터 내용을 정정합니다. 김건희 여사가 최재영 목사로부터 명품백을 수수한 2022년 9월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입니다. 레터에서 '취임 이전'으로 오타가 있었습니다. 애정클 홈페이지에서는 본문이 수정됐습니다. 앞으로 더욱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도록 꼼꼼히 확인하겠습니다. 지적해주신 구독자님께 감사드립니다.

2016년 박근혜 정부는 인공호흡기 임대료 지원 대상을 확대하기로 결정한다. 호흡이 어려워 일상에서 인공호흡기를 쓰는 환자들을 위한 정책이다. 바람직한 방향 같지만, 큰 문제가 있었다. 예산을 충분히 늘리지 않았다. 정부는 임대료 100% 지원 대상이었던 난치성 질환자들에게 ‘자부담금’을 걷어 비용을 맞췄다. 이 결정으로 근육병 환자는 ‘숨 쉬려면 매년 100만원을 내야 하는 나라’에서 살게 됐다.

2017년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당선됐다. 이어서 치러진 지방선거와 총선에서도 민주당이 압승해 큰 권력을 갖게 됐다. 근육병 장애인들은 문재인 정부가 인공호흡기 임대료 문제를 해결할 거라고 생각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문재인 정부 임기가 끝났고 상황은 그대로였다. 근육장애인 조연우는 이 현실이 의아했다. 장애인 문제에 관심이 많던 김대중, 노무현의 정당이 큰 힘을 가지게 됐는데 문제가 왜 해결되지 않는지 알고싶었다.

기나긴 고민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최중증 장애인을 대변하는 정치인이 없어서’였다. 그리고 연쇄반응처럼 자신의 운명을 알게됐다.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들의 부당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정치인’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돈 내야 숨 쉴 수 있는 나라’가 되고 6년이 지난 2022년, 조연우는 민주당 전국장애인위원장에 당선됐다. 선출직 전국위원장에 당선된 첫 최중증 근육장애인 정치인이었다.


장애인 앵커를 꿈꾸던 대학생

조연우는 희귀난치성 질환인 근이영양증을 가지고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남들보다 성장이 조금 느린가보다 했다. 7살 무렵 온몸의 근육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에는 침대형 휠체어를 사용해야 했고, 결국 학업을 이어갈 수 없어 초등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다. 초, 중, 고를 검정고시로 졸업하고 2014년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다. 전공을 정치외교학으로 정한 건 정치로 세상을 바꿔보고 싶어서였다.

이십대 초반에는 뉴스 앵커를 꿈꾸기도 했다. 2011년 KBS가 시각장애인 이창훈 씨를 장애인 앵커로 선발했다는소식을 접하고 앵커의 꿈을 갖게 됐다. 앵커가 되기 위해 아나운서 아카데미를 다녔다. 인공호흡기를 착용해 발성에 어려움이 있어 더 열심히 발음 연습을 했다. 2017년에는 KBS 장애인 앵커 선발에 응시해 최종면접까지 치렀지만 아쉽게도 고배를 들어야 했다.

이 여정에 늘 가족이 함께했다. 대학, 학원, 취업 준비, 비장애인은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이다. 눈과 입 외에 거의 움직일 수 없는 조연우에게는 가족의 헌신이 필요했다. 부모님이 교대로 학교에 가서 수업을 같이 들었고, 누나는 일이 없는 날 함께 학교에 가서 필기를 했다.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그의 곁에 가족 누군가는 늘 깨어있었다. 조연우는 장애인위원장 출마선언문에 “저로 인해 가족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는 건 죽을 만큼 가슴이 아프고 괴롭고 미안한 일”이라고 썼다.

정치외교학을 배우며 그는 부당하고 암울한 현실을 정치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제대로 된 복지국가를 만들면 장애인을 가족의 짐으로 만드는 현실을 바꿀 수 있다고 배웠다. 2020년 민주당에 입당했고, 대학생위원회에서 정당 활동을 시작했다. 정당 안팎에서 목소리를 냈다. 값이 비싸 수입하지 않던 근육병 치료제를 수입하라는 국민청원으로 수천 명의 지지를 얻기도 했고, 여러 선거에 참여하며 자신과 가족의 경험을 바탕으로 장애인 정책을 냈다.

조연우의 민주당 전국장애인위원장 출마 선언 기자회견 ⓒ조연우 페이스북

이변, 파란, 전국장애인위원장 당선

조연우의 첫 선거 도전은 2022년 지방선거였다. 비례대표 서울시의원에 출마했다. 민주당 후보로 공천을 받기 위해 공개경쟁에 지원했다. 장애인 정책을 중심으로 13쪽 계획서를 냈고, 면접을 치렀다. 결과는 탈락이었다. 탈락 후 소회를 밝힌 글에서 조연우는 면접이 만족스럽지 못했다고 아쉬워했지만, 다시 도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장애인이 편안한 세상을 위해! 모두가 편안한 세상을 위해! 장애인들의 삶을 개선하는데 저의 한 평생을 다 바치겠습니다.”

2022년에는 선거가 많았다. 지방선거가 끝나자 민주당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가 다가왔다. 조연우는 ‘이례적으로’ 전국장애인위원장 선거 출마를 결심한다. 전국장애인위원장은 민주당 장애인 당원의 대표이자 지도부의 일원이다. 오랜 기간 활동해 온 중년 당원, 혹은 현직 장애인 국회의원이 출마하는 것이 보통이다. 선출직 경험도 없고, 당에서 활동한 지 오래되지 않은 젊은 신인이 도전하는 일은 거의 없다. 주로 경증 장애인이 맡아오기도 했다.

조연우에게는 출마해야 할 확고한 이유가 있었다. 최중증 장애인의 입장을 대변해야 했다. 그러려면 권력에 도전해야 했다. 출마를 위해 ‘혁신민주 캠프’를 꾸렸다. 처음에는 세 명이, 나중에는 십여 명이 모였다. 다들 조연우의 또래 친구들이었다. 사심 없이 조연우의 정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건 좋았다. 그러나 장애인위원장 선거가 어떻게 치러지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은 나조차도 어떻게 선거를 치러야 하는지 도무지 감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기본에 충실하기로 했다. 당원들의 마음을 움직일 출마선언문과 짜임새 있는 공약을 만드는 일부터 했다. 조연우는 자신이 누구이고, 왜 정치를 하고,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지를 수천자 원고로 써냈다. 캠프는 이 원고를 두고 몇 주간 토론하며 출마선언문을 만들어갔다. 공약은 조연우 담당이었다. 오래 고민해 온 그가 뼈대를 잡고 같이 다듬었다.

토대가 쌓이는 느낌이 들었다. 시야를 밖으로 돌려 동향 파악을 시작했다. 캠프원들은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장애인위원회 선거 경험자를 수소문하고 조언을 구했다. 그중에는 상대 후보 캠프 관계자들도 있었다. 들어보니 구도는 정해져 있었다. 당시 현직이었던 장애인위원장이 재선에 도전했고, 신망 높은 중년 여성 정치인 두 명이 도전장을 던졌다. 두 여성 정치인은 단일화 협상을 하고 있었고, 그 결과에 승패가 달렸다고들 보고 있었다. 조연우에게는 다들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졌다. 최초에 4명이 후보로 등록했는데, 단일화 협상을 하던 두 후보가 동시에 사퇴한 것이다. 소통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고, 두 후보 모두 ‘내가 양보해야겠다’고 결심해 벌어진 일이었다. 1강, 2중, 1약 구도에서 1약을 담당하던 조연우는 갑자기 ‘유일한 대항마’가 됐다. 이 상황에 캠프가 할 일은 명확했다. ‘사후 단일화’, 어떻게든 사퇴한 두 후보의 지지선언을 끌어내는 것이었다.

예상보다 사후 단일화는 순조로웠다. 조연우가 보여온 진정성 있는 모습에 호감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고, 금기로 여겨져 온 현직 위원장의 재출마에 대한 반감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현직 위원장이 임명한 대의원 표의 힘이 막강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막판까지 부지런히 전화를 돌렸다 .그러던 중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투표 하루 전날 상대 후보가 비리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상대가 구속되어도 자동 당선되는 건 아니다. 옥중 후보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캠프에는 마지막 판단만이 남았다. 상대 후보의 구속을 널리 알리는 네거티브 선거운동을 할지 말지 정해야 했다. 당원 중 구속 소식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널리 알리면 승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조연우 후보의 원칙은 유지됐다. 정책과 비전을 알려서 승리하자는 것이었다.

경쟁 후보 네 명 중 두 명의 사퇴, 사후 단일화, 투표 직전 상대 후보의 구속, 정치 드라마를 이렇게 쓴다면 개연성이 없다고 할 것이다. 이 각본 같은 현실의 결말은 더불어민주당 장애인 당원들이 마무리했다. 그들은 조연우를 선택했다. 정치의 역할이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를 지키는 것이라고 말하는 신인 정치인이 제1야당 지도부, 장애인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조연우가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전국위원장선거 당선인 공고 ⓒ더불어민주당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장애인위원회

조연우는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당을 만들기 위해  인사 혁신을 시도했다. 전국장애인위원장의 가장 큰 권한은 부위원장과 운영위원을 임명하는 것이다. 관례상 위원장이 주변 사람들과 상의해 임명하고 통보해 왔다. 조연우는 부위원장, 운영위원을 공개모집하기로 한다. 장애인 당원 누구나 지원할 수 있고, 간단한 서류 전형과 온라인 면접 등을 거치도록 했다. 위원회 주류와 연이 없었던 새로운 당원들이 등장했고, 임명됐다.

조연우 위원장 선거캠프 해단식 ⓒ조연우 페이스북

성과도 있었지만 사실 난항이 더 컸다. 무엇보다도 위원회를 운영할 자원이 거의 없었다. 위원회가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최소 2명의 상근 직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위원장이 임명할 수 있는 상근 직원은 없다. 보수가 없으니 각자 생업이 있는 조연우의 동료들은 ‘가끔 돕는 봉사자’ 이상이 될 수 없었다.  위원장 본인도 약간의 활동비를 쓸 수 있을 뿐, 보수가 없다. 조연우는 그동안 일하면서 벌어둔 돈을 쓰면서 활동했다. 기름값 없이 차를 운전해 멀리 가야하는 셈이었다.

최중증 장애인이어서 생기는 제약도 많았다. 전국위원장은 전국을 다니며 당원들을 만나야 한다. 그러나 와상 휠체어를 쓰는 최중증 장애인이 전용 차량 없이 전국을 다니는 건 불가능하다. 당에 도움을 요청해 봤지만 난색을 표했다. 지도부 회의에서 발언하는 것에도 애로가 있었다. 순서가 주어지는 모두발언은 문제가 없었지만, 빠르게 오가는 대화에 끼어들고 싶을 때 타이밍을 잡기 어려웠다. 할 말은 많은데 충분히 하기가 어려웠다.

더불어민주당은 2023년 1분기에만 당비, 정부 보조금을 포함해 461억원의 수입을 거뒀다. 그러나 최중증 장애인 정치인의 제약을 해결하는 건 가족과 동료들의 몫이었다. 특히 가족들의 헌신적인 조력으로 조연우는 전국을 다니며 지역별 장애인위원회 발대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학교, 직장에 매인 동료들이 시간을 쪼개며 행사를 준비하고 도왔다.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민주당을 만드는 일은 강철같은 의지만으로 되지 않았다.

새로운 도전, 남겨진 도전

2023년 12월 조연우는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젊치인’을 돕는 에이전시 뉴웨이즈가 개최한 ‘2024 신인 젊치인 선발전 드래프트’에 등장하며 출마의 신호탄을 쐈다. 이번에  그의 슬로건은 ‘장애인 가족의 돌봄 문제를 해결할 근육병 장애인 정치인’이었다. 자신을 24시간 지켜주는, 사랑하는 가족의 삶을 정치로 지키기 위해서였다. 최중증 장애인과 그 가족이 정치에서 배제되는 부당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어느 월요일, 그 날도 조연우는 열심히 총선 공약과 선거운동 계획을 세웠다. 그러다 갑자기 기도에 출혈이 생겨 응급실에 갔다. 검사 잘 받고 퇴원할 줄로 알았지만, 검사 중에 원인 모를 다량의 출혈이 생겼고,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한채 세상을 떠났다. 본인도, 가족들도, 친구들도 예상하지 못한 준비 없는 이별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를 지키는 일’, 조연우처럼 강한 사람만 감당할 수 있는 이 소명은 남은 사람들의 임무가 됐다.

2024년 1월 8일, 정치인 조연우가 별세했다. 향년 32세.

ⓒ조연우 페이스북

“여러분, 여러분 중에는 최중증 장애인이 뭘 할 수 있겠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물론 계실 겁니다. 그러나 제가 할 수 없는 일 리스트에 정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치의 핵심은 아이디어를 짜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입니다. 저는 아이디어를 짜고 소통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저에게 마지막 남은 이 능력들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사람들을 지키는 데 쓰고 싶습니다.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받는 세상, 이것이 제가 꿈꾸는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 누가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 어떤 고난과 역경도 돌파해 온 후보, 그 어떤 시련과 고통도 강철같은 의지로 이겨내온 후보, 오직 저 조연우만이 할 수 있습니다.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지켜내는 정치, 제가 하겠습니다.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편안한 세상, 조연우가 반드시 만들겠습니다.” (전국장애인위원장 출마선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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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침착하게 바라볼 때 나오는 날카로운 분석을 좋아합니다. 동시에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다정함을 글 쓰는 동력으로 삼고 싶습니다.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변화의 출발점이라고 믿습니다. 애정클에서 애(愛)든 증(憎)이든, 정치를 대할 때면 쉽게 끓어오르는 마음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변화를 추구하는 마음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합니다. 최근엔 일상을 가꾸고 나를 돌보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