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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전 수행비서가 정치에 나선 까닭

애정클
애정클
- 14분 걸림 -

신용우

안희정 전 수행비서
세이프티 코리아 본부장

“저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비서로 8년간 일했습니다. 그리고 피해자 김지은 씨의 직전 수행비서로서 인수인계를 해준 사람입니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신용우 씨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2018년 3월 5일, 김지은 씨가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발한 다음 날, 신 씨는 JTBC 인터뷰를 통해 지지 의사를 밝혔습니다. 김지은 씨가 자신에게 SOS를 요청했으나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해 죄책감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안희정 조직의 폐쇄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는 법정에서 김지은 씨 편에 서서 증언했습니다.

사건 이후 정치권을 떠났던 신 씨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권력형 성폭력이라는 의제를 붙잡고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려는 그를 지난 6월 2일 세종의 한 카페에서 애증의 정치클럽이 만나봤습니다.

사건 당시 어떤 역할을 하셨나요?

제가 안희정 지사를 존경했던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이 사건에 대해서는 명백한 범죄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재판이 시작되니 대부분이 안희정 편에 붙고, 피해자 편에 서 있는 사람은 몇 명 안 되더라고요.

1심에서 무죄가 나왔어요. 1심은 안희정 측이 짜놓은 프레임 안에서 진행됐어요. ‘기획 미투’라는 프레임으로요. 제가 정확하지 않은 기억으로 무리하게 피해자 편을 든다는 식이었어요.

그래서 2심에선 제 이야기를 했어요. 저는 학창 시절 운동부 소속이었는데요. 아시겠지만 운동부에서 감독의 권력은 절대적이에요. 폐쇄적인 조직 문화가 성폭력으로 이어졌고, 몇 년간 수십 명에 달하는 피해자가 나왔어요.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가해자 처벌을 위해 여러 노력을 해왔거든요. 그때도 법적으로 피해를 증명하는 데 여러 어려움이 있었어요.

판사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어요. “운동부 내 성폭력과 안희정의 성폭력은 구조적으로 너무나 닮아있다. 저는 20년 전 친구들의 구조 신호를 받지 못했고, 그 결과 피해가 지속됐다. 안희정 사건에서도 똑같은 상황에 놓였다. 세상이 변하지 않은 거다. 이번에도 같은 결과가 나온다면, 전 제 딸의 성폭력 피해 현장에 증인으로 출석하게 될까 봐 겁난다.” 그렇게 권력형 성폭력 문제 해결에 대한 제 진심을 인정받아서, 1심의 ‘기획 미투’ 프레임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죄책감이 들어 실명 인터뷰에 나서셨다고 들었어요.

돌이켜보니 피해의 순간들에 제가 있었던 것 같아요. 이후 수사 과정을 보니까 제가 근거리에서 수행할 때부터 그런 일들이 있어 왔더라고요.

수행비서로 일하면서 안 지사가 평소에 여성 문제가 많은 건 알았어요. 수행비서 인수인계 부분에도 그런 부분이 항상 들어갔죠. 여성 문제는 모른 척하고, 주변에는 항상 함구해야 한다는 내용으로요. 하지만 그런 일들이 제 주변에서 일어났고, 그 피해자들 중 저의 선후배도 있다는 걸 알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김지은 씨를 조력하며 개인적인 어려움은 없었나요?

생활의 고초를 겪었어요. 정치권에서는 능력보다 평판이 중요해요. 소위 ‘평판조회’라고 하죠. 권위 있는 사람의 평가에 채용 여부가 달려 있어요. 저는 안희정 지사와 척졌다는 이유로 정치권 복귀가 불가능한 상태였어요. 그러면 경력직으로 어디든 가야 할 텐데, 안희정 수행비서라는 이력을 어디에 쓰겠습니까?

그래서 그때 조그만 트럭을 한 대 사서 아파트 단지를 돌며 닭꼬치를 팔았어요. 새로운 일도 해보고 나름대로 재미도 있었죠. 정말 견디기 힘들었던 건 ‘안희정 지사 편 안 들어서 숨어 사는구나’라는 사람들의 시선이었어요.

신변의 위협도 받았어요. 전화와 문자 폭탄은 기본이었고요. 한번은 모르는 사람이 제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으로 전화해 아이를 데리러 가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경찰에 신고하고 가족들을 피신시켰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어요. 내가 괜한 짓을 하고 있나 싶고.

저 외에도 김지은 씨를 도운 분들 중 어려움을 겪은 사람은 더 있어요. 취업을 못하는 사람도 있었고, 민주당 대표로 나선 이낙연 대표의 캠프에서 며칠 만에 잘린 선배 이야기가 보도된 적도 있었죠.

안희정 지사 편에 선 사람들은 어떻게 됐나요?

권력에 부역한 자들은 아직도 승승장구하며 잘 먹고 잘살고 있어요. 지금 민주당에서 활동하는 성모 씨는 김지은 씨가 일하면서 믿고 의지하던 사람이에요. 수행비서가 고된 직업이거든요. 그래서 힘든 이야기들을 성모 씨에게 털어놓기도 하고, 의지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성모 씨가 그런 대화 내용을 악의적으로 캡처해서 '피해자답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법정에 제출했어요. 그 문자가 온라인에서는 '안희정과 피해자의 문자'로 둔갑해 돌아다니기도 했죠. 어떻게 자기를 믿고 따랐던 후배를 한순간에 배신하고, 권력 앞에 줄 설 수 있을까 화가 났어요. 성모 씨는 김종민 의원실에서 인턴에 준하는 입법보조원을 하다 단숨에 다섯 단계를 뛰어 넘어 5급 선임비서관으로 초고속 승진했어요.

김지은 씨의 후임 수행비서인 어모 씨는 법정에서 ‘조직 내 위력은 없었다’고 진술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재판정에 있던 사람들이 다 같이 웃었다고 하더라고요. 어모 씨는 안희정계 의원실에 채용됐다가 이후 민주당 단체장이 있던 송파구청에 입성했어요. 이후에는 김지은 씨에 대해 악의적인 댓글을 달고 다니다가 적발돼서 처벌받았고, 온라인에 공개적으로 사과문을 쓰기도 했어요. 지금은 삭제했지만요.

안희정 팬클럽 회장 왕모 씨는 원래 냉면집을 운영하다가, 조승래 의원실 보좌관을 거쳐 대전시설관리공단 경영본부장을 역임했습니다. 정치권에서 안희정 이름 석 자의 힘은 아직도 견고해요.

안희정 사건에서 민주당의 책임은 무엇일까요?

성폭력 사건의 가장 확실한 재발 방지책은 신상필벌이에요. 잘못한 사람은 벌을 받는 게 상식이죠. 그런데 지금 민주당은 거꾸로 가고 있어요. 온정주의, 친소관계에 의해 정치가 움직여요. 가해자가 자신과 맨날 같이 술을 먹은 동료라는 이유로, 이 문제를 건드리면 우리 정당 지지자들이 떨어져 나갈 것 같다는 이유로 분명히 선을 긋지 않고 있죠.

정당은 사설 단체가 아닙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단체로서 국민의 이익을 도모해야 하는 조직이죠. 저는 민주당의 이념과 노선을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좋은 뜻으로 모인 정당이지만, 달콤한 소리 하는 사람만 남기고 듣기 싫은 소리 하는 사람은 내쫓는 행태는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떳떳하게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구조가 안 되는 거죠.

세종을 총선 출마를 결심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치와 행정을 두루 경험할 수 있는 충남도청 비서실에서 청춘을 보냈습니다. 자연히 지방분권 의제와 부당한 권력의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됐어요. 지금도 연구 중이고요. 지방분권의 상징이 세종시잖아요. 제가 쭉 세종시에서 살아오기도 했어요.

하지만 가장 큰 목적은 안희정 사건을 온전히 매듭지어 국민들에게 건강한 메시지를 주는 겁니다. 아무리 권력자더라도 나쁜 짓을 하면 반드시 벌을 받고 피해자는 지원을 받는 사회라는 것을 입증해 보이고 싶어요.

현 세종을 국회의원인 강준현 의원은 안희정 지사가 출소하는 날 마중을 나갔습니다. 안 지사의 아들을 채용해 주기도 했고요. 안희정이라는 이름 세 글자 마케팅으로 큰 도움을 받아 국회의원이 된 사람이, 미투 이후에도 아무 반성 없이 우리 동네에서 정치를 하는 것을 지켜볼 수 없어요.

제가 이런 의제를 가지고 국민의힘에 가면 공천을 주겠다고 농담하시는 분도 있어요. 강준현 의원을 공격할 카드라고요. 하지만 저는 이번 선거가 국회의원 자리를 두고 개인 대 개인으로 싸우는 것으로 비치지 않았으면 해요. 민주당의 이념과 노선을 지지하고요. 다만 권력에 대항해 소신껏 진실을 말한 사람이 인정받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제가 안희정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시각도 있는데요. 제가 선거를 앞두고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는 게 아니에요. 사건이 공론화된 이후 저는 일관되게 이런 사람들이 정치하면 안 된다고 말해왔어요. 오히려 안희정을 도왔던 사람들이 신분 세탁에 준하는 변신으로 총선을 준비하고 있죠.

시민들이 피해자와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피해자들이 원하는 건 특별한 게 아니에요. 그냥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생활로 돌아가는 겁니다. 적어도 아침에 일어나 회사에 가고, 퇴근해서 친구들을 만나는 일상으로만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는 겁니다. 지금은 상대가 권력자라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어요. 모자와 마스크가 없으면 외출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들었어요. 이런 상황을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 피해자와 연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안희정 지사의 사과가 무엇보다 중요해요. 이 모든 것은 안희정 지사가 사과하지 않고 본인의 참모들과 지지자들이 피해자를 공격하도록 방관했기 때문이에요. 가해자 본인이 인정하면 많은 부분이 풀린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일부에서는 제가 철 지난 이야기를 한다고 해요. 이제 그만하라고요. 가해자와 가해자를 도운 사람들은 승승장구하고, 피해자와 피해자를 조력한 사람들은 어려움을 겪는 게 과연 철 지난 이야기일까 되묻고 싶어요. 모두가 이런 이야기 그만하고 싶을 거에요. 하지만 잘 매듭지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할 수밖에 없어요. 부디 내년 총선 전에 이런 문제들이 잘 매듭지어지길 바랄 뿐이에요.

기사 발행 후, 성모 씨 측에서 본인이 언급된 부분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법정 증거로 제출한 피해자와의 대화 내용을 ‘악의적으로 캡처했다’는 주장에 대해선, 편집 없이 대화 전문을 제출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5급 비서관으로의 승진에 대해선, 김종민 의원실에서 입법보조원으로 일하던 당시, 6개월간 개헌특위 업무를 담당하며 이미 5급 상당의 급여를 합법적으로 받고 있었다고 알려왔습니다. 5급 승진은 이후 개헌특위 활동기한이 연장되며 후원회 자금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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