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보수] (3) 그럼 진보는 뭐해?
이쯤 되면 진보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궁금해졌을 거다. 근데 이 자연스러운 의문에 답해보려니 이것도 썩 만만치 않다. 어떤 정당, 혹은 정권을 ‘진보’라고 부를 것인지조차도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진보의 의미가 안정적으로 형성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제도권 정치에 ‘진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게 2002년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의 일이다. 그 전까지는 정치권에서든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든 보수와 진보 간 대립이나 이념 갈등이 그리 뚜렷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스스로를 진보라고 칭한 정치인이 나타난 지 30년도 채 되지 않았다니. 그럼 그 전까지 한국 정치의 지형은 어땠던 걸까?
보수vs진보가 아닌, 보수 여당vs보수 야당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 정당들은 오랫동안 보수 쪽에 쏠려 있었다.
학교에서 배운 한 줌 근현대사 상식을 떠올려보자.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권위주의 정부의 역사와 이에 맞서 싸운 시민들의 민주화 투쟁을 기억할 거다. 정당 정치에서도 마찬가지의 상황이 벌어졌다. 1987년 민주화 전까지 정당 정치는 독재로 집권을 유지하는 보수 여당 vs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보수 야당의 양상을 띠었다.
한국 정당사를 간단히 살펴보자. 1955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사사오입 개헌 시도 이후 분열돼 있던 야당이 결합해 민주당을 창당했다. 당시의 민주당 인사들은 이승만의 장기집권, 부정선거 시도에 대한 불만으로 모인 ‘반이승만계’라는 점 외에는 우파 세력 중심으로 구성되어 반공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이승만의 자유당과 이념적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영구 집권을 위해 대통령 3선 제한 조항을 없앤 개헌. 개정안 통과를 위해선 재적 의원(203명)의 3분의 2 이상, 즉 136명의 표가 필요했으나 실제 투표 결과는 한 표가 모자란 135표가 나왔다. 그러자 자유당은 ‘사사오입’ 즉 반올림(135.3333...)을 적용하면 필요한 찬성표는 135표이므로 가결이라는 억지 논리를 펼쳐 개헌안을 통과 시켰다.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게 된다. 쿠데타 이후 박정희 정부는 모든 정당 활동을 금지시켰고, 정당들은 사실상 소멸했다. 당시 박정희는 군부 통치로 사회 혼란을 바로잡은 후 민주적으로 정권을 넘겨줄 것을 약속했다.
1963년, 박정희는 약속한 대로 군복을 벗고 민간인으로서 정당을 만들어 제 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이때 생겨난 정당이 민주공화당이다. 다른 정당들도 63년 이후 다시 등장한다. 하지만 야당 세력은 한동안 분열된 상태였다.
1967년, 혼란했던 야당 세력이 마침내 모아진다. 제6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공화당에 맞서기 위해 신민당을 창당한 것이다. 신민당이 창당 당시 내건 강령은 “자유와 인권 존중, 독재 배격과 제도와 기구의 쇄신을 통해 민주국가의 완성” 이었다. 신민당은 1980년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키며 해산된다.
민주당-신민당에서 지금의 더불어민주당까지 이어지는 정당의 계보를 민주당계라고 부른다. 연이은 독재 정권 하에서 민주당계는 사실상 유일한 대중적 야당이었다. 이름과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민주화 이전까지 민주당계의 핵심 의제는 민주화였다. 하지만 경제와 외교 정책에서 보수 여당과 이념적 차이는 크지 않았다.
민주화 이후에는 이러한 보수양당 체제에서 벗어나 다양한 정당이 출현했으나, 그들 사이에서도 두드러진 이념적 차이가 없었다. 드디어 민주적 선거를 할 수 있게 된 우리나라 국민들도 이념에 따라 투표하기보다는 후보의 출신 지역에 따라 투표하는 경향을 보였다.
한국 정치판에 등장한 진보
한국 사회에서 이념적 분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건 김대중 정부(1998-2003)와 노무현 정부(2003-2008) 시기라고 볼 수 있다. 두 정부는 이전 정권과 차별화되는 정책들을 선보이며 ‘진보 정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두 정부를 거치면서 한국의 진보는 평화를 지향하는 대북 정책과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 추구를 특징으로 한다.
김대중 정부의 경우 북한과의 적대적 관계를 개선하려는 정책을 펼친 것이 대표적인 진보 정책으로 꼽힌다.
“남북관계는 화해와 협력, 그리고 평화 정착에 토대를 두고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남북문제 해결의 길은 이미 열려 있습니다. 1991년 12월13일에 채택된 남북기본합의서의 실천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선 남북기본합의서의 이행을 위한 특사의 교환을 제의합니다. 북한이 원한다면 정상회담에도 응할 용의가 있습니다.”
- 1998.2.25 김대중 대통령 취임사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은 1)북한의 무력도발을 용납하지 않되 2) 북한을 흡수통일하지 않으며 3) 가능한 부분부터 남북 간 교류 협력을 활성화해 평화공존으로 나아가자는 원칙에 기초한다. 구체적으로는 금강산 관광 등 경제협력, 사회문화 교류가 늘어났으며, 한국 전쟁 이후 첫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돼 남북의 자주적 통일 원칙을 밝힌 6·15공동선언이 발표됐다.
앞서 살펴봤듯이 반공 이데올로기는 보수 정당의 핵심 가치 중 하나였다. 김대중 정부가 내세운 평화 협력의 기조와 ‘햇볕정책’은 대북 정책에 있어서의 중대한 방향 전환으로, 냉전적 대결주의를 토대로 하는 반공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진보적 가치는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도 이어져 평화를 강조하는 대북 정책이 추진됐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는 스스로를 ‘진보’라고 표명하기를 꺼려했다. 여전히 반공 이데올로기가 위세를 떨치던 상황에서 ‘진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좌파’ 정권으로 규정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최초로 대통령 선거에서 ‘나는 진보’라고 공개적으로 얘기한 대통령이다. 2002년 대선 당시 언론에서도 ‘진보’와 ‘보수’라는 용어가 자주 언급되고 후보자와 유권자들의 이념적 위치를 가늠하는 여론 조사들이 이뤄졌다고 한다. 진보, 보수의 대립이 일반 대중들에게도 인식되기 시작한 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는 것으로 국가의 역할을 꼽으며, 시장 경제를 인정하되 시장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선 국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봤다. 시장 경제에 모든 것을 맡기면 불평등이 심화되고, 시장에 참여하기 어려운 장애인, 노인 등 다양한 소수자들의 삶이 취약해지므로 국가가 일정 부분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기 이뤄진 진보 정책 중 하나는 적극적인 복지 정책이다. 노무현 정부는 복지예산을 대폭 늘렸고, 국민기초생활보장, 사회보험, 의료복지 등의 제도를 정비해 복지 정책을 확대했다.
이러한 복지 정책은 노무현 정부의 경제관과도 관련된다. 보수 정권 하에서는 국가의 성장이 곧 개인의 삶의 질 개선으로 이어지므로 복지·분배보다 경제·성장이 우선이라고 여겼다. 반면 노무현 정부는 복지와 경제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며, 복지를 통한 소득재분배를 바탕으로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추구해야 한다고 봤다.
한편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진정한 진보 정치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경제 정책이다. 김대중 정부 당시는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가 확장되던 때였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규제 완화, 국제무역과 금융의 자유화를 통해 국제 시장에서의 자유를 추구해야 한다는 자본주의 이념이다.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개혁은 보수, 우파 정권이 실시해왔다.
한국도 이 흐름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한국은 외화가 매우 부족해 IMF(국제통화기금)로부터 돈을 빌리려 했다. IMF는 일정 수준 이상의 신자유주의적 제도 개혁을 하지 않으면 돈을 빌려주지 않겠다고 내세웠다. 이에 김대중 정부는 시장개방, 노동 시장 유연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실행했다.
시장개방이란 한국 은행과 기업의 주식을 해외에서 사고팔 수 있게 만든 것을 말한다. 한국은 김대중 정부에 들어서서야 국제 금융 시장에 들어갔고, 시장의 자유도 역시 파격적으로 높아졌다.
노동 시장 유연화란 노동력이 경제·사회적 상황에 따라 쉽게 변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말한다. 즉, 고용과 해고를 쉽게 만드는 것이다. 김대중 정권은 기업의 구조조정을 수용해 부실한 기업과 은행을 정리하고, 정리해고제를 실시해 기업의 부담을 줄였다.
노무현 정부도 구조조정, 시장개방 등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을 유지했다. 더불어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추진했다. FTA란 무역을 할 때 붙는 세금인 관세를 없애 무역을 더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하는 조약이다. 무역 규제를 완화해 시장을 더욱 개방한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정치 성향에 대한 평은 갈리지만, 이전과는 다른 정책 노선을 보여줬다는 것에는 많은 이들이 동의한다. 하지만 두 정부의 새로운 정치가 한국 정치의 진보화로 이어지진 못했다. ‘진보 정권’은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지 못했고,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며 다시 10년간 보수 정권이 유지됐다.
하지만 뇌물수수 및 횡령, 당시 나타난 많은 문제들로 두 대통령이 모두 감옥에 가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에 대한 반감은 ‘진보 세력’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불러일으켰고 그 결과로 문재인 정부가 집권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한국 정치에서도 진보 세력이 어느 정도 자리 잡은 것일까?
하지만 정치권에서도, 학계에서도 현재 한국의 ‘진보정당’은 진보라고 할 수 없다는 평이 나온다. 이유는 다양하다.
1) 노동자를 대변하지 못한다.
한국 진보정당의 정책이 노동자들을 제대로 대변하지 않을 뿐더러, 정당의 기반 자체가 운동권 출신 엘리트라는 비판이다. 서구의 진보정당은 소시민, 노동자를 지지기반으로 시작해 성장한 경우가 많다. 반면 한국의 ‘진보정당’은 시작부터 ‘노동자의 정당’이 되지 못했다. 이들의 출발점은 독재 정권에 대항한 민주화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반공주의와 지역주의가 지배하는 동안 소시민, 노동자의 실제 삶이 정치에서 다뤄지지 못해 계급을 기반으로 한 정당이 형성되기 어려웠다는 문제도 있다.
2)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대변하지 못한다
세계적 기준으로 볼 때 진보의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존중이다.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입장을 대변하며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진보정당’은 이 문제에 대해 보수정당과 큰 차이가 없는 소극적 태도를 취해왔다.
3) 권력 유지를 우선시한다
‘진보정당’이 이미 ‘기득권 세력’이 되면서 진보적인 가치의 추구보다 권력 유지를 중시한다는 비판도 있다. 정책을 위한 정책이 아닌, 집권을 위한 정책을 만든다는 것이다. 진보의 가치를 지키는 것보다 기득권의 표심을 우선시한다는 얘기다.
물론 진보보수는 상대적 개념인 만큼, 한국의 보수정당에 비해 ‘진보정당’이 진보적 성향을 보인다는 얘기도 있다. 상대적으로 노동자를 의식하고,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중시하니 한국의 정치지형에서는 어쨌든 진보라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한국 정부는 한 진영에서 연이어 두 정부가 집권하는 패턴을 그려왔다. 이 원칙은 문재인 정부 이후 민주당이 재집권에 실패하면서 깨졌다. 그만큼 진보 진영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20대 대선 이후 민주당은 지난 행보를 반성하고, 새로운 시대에 발맞춰 추구해야 할 진보의 핵심 가치를 모색하고 있다.
대표적인 변화가 환경과 인권에 대한 관심이다. 이전 한국의 진보 정치에서 이러한 탈물질적 가치에 대한 관심은 미비했지만, 기후위기에 대한 세계적 관심과 인권 의식의 개선으로 변화가 생긴 것이다.
앞으로 한국의 진보 정치는 ‘세계적 기준’의 진보가 될 수 있을까? 한국 진보의 역사는 이제 막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애정클과 함께 지켜보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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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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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수, 노무현의 진보는 '리버럴'에 가까웠다, 한겨레, 2020.08.11., 2022.05.01. 접속.
심상정, "노무현이 비판한 신자유주의, 그게 바로 한미FTA", 2008.11.27. 2022.05.03. 접속.
이종태, 신자유주의 혁명가 김대중의 성공 그리고 한계, 시사인, 2013.01.23, 2022.05.03. 접속.
이제훈, 김대중, '고난의 행군' 북에 손을 내밀다, 한겨레, 2022.02.08., 2022.05.01. 접속.
황보연, 김대중 정부 노동개혁 '지지부진', 매일노동뉴스, 2001.02.28., 2022.05.03.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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