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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플하는 정치인' 이대호

애정클
애정클
- 29분 걸림 -

이대호

더불어민주당 전 성남시장 예비후보

이대호 씨는 지난 6월 성남시장 후보 민주당 경선에 출마한 새내기 정치인이다. 대호 씨는 피키캐스트, 타다, 그리고 서울시장 비서실에서 일했다. 그는 직장에서 정치가 동료들을 보호해주지 않는 것을 보고 출마 의지를 다졌다. ‘타다 금지법’이 통과되며 동료들이 일자리를 잃자 갈등을 중재하는 정치의 태도가 변화해야 함을 느꼈다. 서울시장 비서실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곁을 지키며 2차 가해를 방관하는 더불어민주당의 모습에 회의를 느꼈다.

경선에서 낙마했지만, 이대호 씨는 회사원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시민들의 곁에 남기를 선택해 ‘좋은 정치인’이 되기 위한 역량을 한창 쌓아가는 중이다. 현재 대호 씨는 휠체어 이용자 등 이동약자를 위한 지도를 만드는 ‘계단뿌셔클럽’, 시민 주도의 정책 캠페인을 지원하는 ‘아그니카’, 민주당 청년 정치인 연대 ‘그린벨트’를 운영하고 있다.

이제 막 정치에 발을 내딛은 이대호 씨에게 정치를 대하는 마음을 들어봤다.

이대호가 정치를 보며 느끼는 감정

❤️ 애(愛) : “나는 정치가 자유로워서 좋다.”

"회사에서는 돈 안 되는 일은 못하잖아요? 정치에서는 그런 제한이 없습니다. 오히려 돈이 안돼서 더 할 수 있는 일들도 있고요."

💔 증(憎) : “나는 정치가 하나도 안 아쉽다.”

"아쉬워해봤자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그래서 아쉬운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 각오 : “흥미진진한 제안을 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

"흥미로운 제안을 해서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그 사람들을 태워 더 좋은 세상으로 운전해서 가는 게 정치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 시작을 잘 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습니다."

❤️ LOVE

정치인이 되기 전에 정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셨나요?

저는 정치가 자신의 삶을 긍정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경제적 자원을 배분하는 일은 정치뿐만 아니라 기업도 할 수 있어요. 더 잘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스스로 인생을 긍정할 수 있게 해주는 건 정치만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저는 임대 아파트에서 자랐는데요. 제가 성남시장으로 당선됐다면 임대 아파트 출신에 대한 차별에 대해 메시지를 낼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불량한 청소년들이 자랄 것 같고, 지저분하고 범죄자들이 많이 살 것 같고… 그런 편견을 넘어설 수 있게요. (저의 출마를 통해) 임대 아파트에서 자라는 청소년들도 스스로에 대한 편견을 넘어서 ‘나도 93만 도시의 시민들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상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해요.

정치인들의 당사자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네.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절반은 된다고 생각해요. 임대 아파트 이야기를 더 해보자면, 제가 이제 20살 무렵에 아버지 사업이 망하고 집안이 어려워졌어요. 그래서 계속 이사를 다녔거든요. 너무 고통스러운 거예요. 저는 대학 가면 놀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사실 그것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 분들도 세상에 많지만 당시의 저는 너무 부당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아빠 사업이 망하는 데 있어서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엄마는 우울증에 걸리셨고, 엄마가 잘못되진 않을까 걱정하며 사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근데 엄마가 친구 분의 권유로 넣으신 임대 아파트 청약이 당첨된 거예요. 당장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자유로워지니까 한 1년 만에 가족들이 안정을 찾더라고요. 그때 알게 됐죠. 정치라는 게 사람들이 양복 입고 싸우는 일이 아니라는 걸요. 사람이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불행을 겪을 수 있잖아요. 그게 내 탓이 아닐 수도 있고, 내 잘못이라도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상황이 얼마든지 생길 수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무너지지 않도록 정책이라는 버팀목을 여기저기 놓아두는 멋진 일이 정치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군요. 피키캐스트, 타다 등 스타트업에서 일하셨는데요. 이러한 선택도 정치와 연관된 부분이 있었을까요?

20대 초중반부터 언젠가 선출직 정치인이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어요. 다만 정당 활동을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하기보다, 필요한 기술을 기를 수 있는 영역에서 돈도 벌고 경력을 쌓으면서 빠르면 50대 초반쯤 선출직에 도전해볼 계획이었어요. 정치권 밖에서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당시의 관심사 중 하나는 정보를 사분면으로 나누는 것이었어요. 기준은 두 가지, 중요성과 재미입니다. 재미가 있고 중요한 정보, 재미가 없고 중요하지 않은 정보, 재미는 있는데 중요하지 않은 정보, 중요한데 재미가 없는 정보를 나눠봤는데요. 많은 문제들이 중요한데 재미가 없는 정보의 유통량이 적어서 생기는 것 같더라고요. 중요한데 재미없는 정보를 재미있고 중요한 정보의 사분면으로 옮기는 기술을 갖고 싶었어요. 그래서 피키캐스트에 간 거였어요.

선출직 정치인이 되는 게 목표긴 했지만 무서웠어요.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일이니까요. 당시 저는 국회 보좌진도 불안정한 일자리라고 생각했거든요. 제 대학 친구들은 주로 금융공기업 같이 안정적이고 돈도 많이 버는 진로에 관심이 있었어요. 저도 그랬고요. 그런 경력을 쌓다가 나중에 기회가 오면 정치를 하려고 생각했어요. 아무리 배가 고파도 무조건 정치를 해야 한다 이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안전한 진로 중에서도 내가 관심 있는 문제를 해결할 기술을 가질 수 있는 진로를 찾다 보니 방송 PD, 미디어 스타트업에 관심을 가지게 됐죠.

이후엔 서울시 박원순 전 시장 팀에서 일하셨어요. 어떤 일을 하셨고, 어떻게 합류하셨나요?

저는 서울시장 연설문 작성 팀에서 일했어요. 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메시지나 디지털 콘텐츠 기획을 담당했는데요. 일하게 된 계기는 우연이었어요. 신문사에서 인턴을 하면서 알게 된 정치인들이 있었는데 그중 한 분이 당시 서울시 정무부시장실 정무보좌관으로 계셨어요. 그분이 수행비서관 자리가 비었는데 두 달 정도 일할 생각이 있냐고 제안하셨어요. 두 달 후에 연설팀에서 인선을 하게 돼 면접을 봤고, 그 길로 2년 정도 일하게 됐어요.

지금은 민주당 소속으로 일하고 계신데요. 민주당에 입당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016년에는 당적은 없었지만  금태섭 전 의원님의 선거 캠프에 참여했어요. 2018년 4월 말에 서울시장 비서실을 그만두고 박원순 서울시장 선거 캠프로 가면서 입당했어요. 비서실 직원들이 대체로 선거운동을 함께하거든요. 그런데 공무원 신분으로는 정당 가입, 선거운동을 할 수 없어요. 그래서 사직을 하고 선거캠프로 가면서 바로 당원이 됐죠.

이후론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작년부터 지역위원회에서 이런저런 행사에 참여하고, 마음 맞는 동료들과 함께 민주당 그린벨트를 만들고, 성남시장 선거에 출마했죠. 제 또래의 활동가들이 해온 활동은 대체로 둘 중 하나에요. 첫 번째는 전국 대학생위원회 또는 전국 청년위원회 활동이고, 두 번째는 지역위원회 활동이에요. 저는 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경우죠.

정당이라는 조직보다 거기 소속돼 있는 인물들을 보고 들어가신 거네요. 주로 어떤 정치인들에게 끌리셨나요?

말을 바꾸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추구하면서도, 언제나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하고, 대화와 타협을 이끌어내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치인들을 존경합니다.

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해요.

저는 더불어민주당이 세금을 더 내게 되더라도 어려운 입장에 있는 이웃들의 삶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정당 활동을 활발하게 하기 전엔 민주당이라고 하면 국회의원, 대통령, 대선 후보 이런 사람들만 생각했어요. 그런 사람들 중에서는 멋진 모습보다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 많죠.

그런데 지난 대선 때 지역위원회에서 선거운동을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자기에게 보상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후보의 당선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분들이 지역위원회에 많이 있어요. 그런 분들은 평소에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세요. 독거 노인들에게 반찬을 배달한다든지요. 이 분들은 이걸 통해서 공천을 받고 싶은 게 아니에요. 그냥 이웃들과 어울리면서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은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민주당을 지키는 주인공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분들이 쌓아올린 자산을 함부로 낭비하는, 잘못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부각되고 더 큰 권한을 갖고 있어요.

성남시장 출마 이야기로 넘어가 볼게요. 시장선거에 도전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너무 많은데요.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우선 정치인이 내 문제, 혹은 내 친구와 이웃의 문제가 아닌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건 엄청나게 힘들어요. 포기하지 않을 이유가 별로 없는데, 그게 자신의 문제거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문제라면 포기하지 않을 확률이 굉장히 높아집니다. 그러니 누군가를 대변하는 정치를 하고 싶다면 그 유권자 집단을 진심으로 사랑해야 하고, 잘 어울려야 되고, 자주 만나야 하고, 잘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혹은 내가 대변하려는 누군가가 나 자신이어야 해요.  선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분야의 공약들을 고민하지만, 막판으로 갈수록 나와 정말 가까운 문제가 아니면 우선순위에서 제외되더라고요. 모든 걸 해결할 수 없으니까요.

제가 지금까지도 많은 시간을 들여서 하고 있는 게 계단 정복 지도 프로젝트인데요. 선거와 직접적인 관련도 없는 거예요. 그걸 같이 시작했던 친구가 휠체어를 사용했어요. 그래서 이걸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었어요. 그 친구와 같이 다니면서 느꼈던 머쓱함이 너무 싫었어요. 어디가 맛있다고 해서 갔는데도 못 들어가면 이 친구가 되게 머쓱해해요. 근데 잘못한 게 아무것도 없거든요. 그게 너무 부당해서 짜증이 났어요. 프로젝트를 같이 시작한 친구들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런 공감대가 없었으면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제가 했던 일 중에 그것만큼 유의미한 일이 없어요. 실제로 성과를 내기도 했고요.

두 번째로 깨달은 건 정치를 하면 사람답게 살 수 없다는 거예요. 선거운동 기간에 친한 친구가 결혼을 했는데 결혼식을 못 갔어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 때 앞으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켜야 한다는 걸 느꼈어요. 나에게 잘해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보답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정치인은 관계맺는 사람이 일반인보다 10배, 100배 정도 많아요. 근데 내가 보답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그게 이 직업의 본질적인 환경이에요. 그만큼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삶을 살아야 되는 거죠. 특히 주변 사람들이 많이 상처받을 거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희생해야 할 가능성이 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분간은 정치인으로 살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금도 사실 계속 흔들리긴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게 마음이 더 편해요.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안 하면 마음이 불편하잖아요. 저는 제가 정치를 하기에 좀 더 유리한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건강하고, 젊고, 당장 제가 생계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가족들이 굶어 죽는 상황이 아니에요. 심지어 해보니까 조금 잘하는 면도 있고요. 그러면 당연히 해야죠. 정치를 하기 어려워서 자기 삶을 바꾸지 못하고, 폭력과 부조리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엄청 많잖아요.

그렇다면 정치를 하면서 어떨 때 재미나 뿌듯함을 느끼시나요?

제가 몰랐던 어떤 이야기들을 발견해낼 때 짜릿함을 느껴요. 내가 대변해야 되고, 대변하고 싶은 유권자를 찾았다. 이 중요한 문제를 공론화해서 해결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 때 짜릿해요. 실제로 성과를 낼 때도 즐겁습니다.

시장 후보로 출마하시면서 당근 마켓에서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등 직접 시민들과 접촉하는 기획을 많이 하셨어요. 이 활동들도 ‘대변해야 할 시민을 찾는다’는 목표를 가지고 실행하신 건가요?

당시에는 그런 맥락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설계한 건 아니었어요. 그냥 할 수 있는 일들을 한 거예요. 당근마켓에서 소통한 건 제가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신인 정치인이기 때문이었어요. 계단 정복 지도 프로젝트도 결과적으로 선거캠프 구성의 기반이 됐지만, 그걸 염두에 두고 한 건 아니었어요. 내 친구의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시장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서 한 거예요.

현역 정치인들은 저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을 만날 거예요. 하지만 만나는 사람의 종류가 다르죠. 현역 정치인들은 주로 이미 조직된 시민들을 만나요. 협의회, 단체, 대회, 연대 같은 조직이요. 이미 자기를 대변해 줄 조직이 있는 유권자들을 주로 만나면  편향이 생길 수밖에 없죠. 이런 조직은 저를 잘 만나주지 않았어요. 그 시간에 영향력 있는 국회의원을 만날 수 있는데 왜 그러겠어요.

그나마 저를 만나주시는 분들은 정치에 호의적이거나 호기심이 많은 분들이에요. 그보다 더 비정치화된 사람들, 자기 목소리를 정치에 반영할 수 있다고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려면 노력이 더 필요하죠.  만나고 싶어 하는 의지가 중요해요. 저는 이미 조직된 시민들을 만나 설득하는 게 한계 효용이 낮은 일이라고 봐요. 그런 조직들은 정치적인 진정성보다는 권력을 중시하는 것 같아요. 그보다는 제가 아니면 대변해 줄 정치인이 없는 그런 이웃들과 친구들, 저와 정체성을 공유하는 분들을 조직해내려고 해요.

💔 HATE

정치에 가장 회의감을 느끼시는 순간이 문제인가요?

저는 정치에 별로 회의감을 느끼지 않아요. 이런 환경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어요.

왜 이런 모습일까 짜증났던 적도 없나요?

그런 것도 없어요.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 이후로는 회의감을 잘 느끼지 않습니다. 제가 좋아하던 정치인들은 대부분 감옥에 갔거나 죽었어요. 그래서 저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 기대하지 않아요.

하지만 시민들이 정치인에게 기대를 가지지 않는다면 정치가 앞으로 나아가기도 어렵지 않을까요?

저는 정치인보다는 제가 좋아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기대합니다. 이 친구들이 지금보다 더 역량이 있고 뛰어난 사람이 되어서 변화를 만들 거라고 기대해요.

지금 정치에서 가장 문제적이고 빨리 해결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무엇인가요?

큰 단위로는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다당제를 수반한 의회중심제로 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지금 우리 사회가 마주한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 국민연금 개혁, 기후위기 대응, 경제적 불평등, 노인 빈곤 등을 논의하고 합의할 수 있게 될 거라고 보거든요.

좀 더 작은 단위에서는, 정치인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돈을 벌면서 정치 활동을 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정당에 월 250만 원을 지급하는 펠로우십을 100명에게 주는 거예요. 그래야 문제의식이 있어도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어 정치 활동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정치를 할 수 있어요. 제 친구들 중에서도 중요한 문제의식과 그에 대한 해결책, 문제해결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주는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생계 문제가 해결이 안 돼서 적극적인 정치 활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이 국회 보좌진으로 활동할 수도 있지만 한계가 있어요. 보좌진은 보스의 정치적 성과를 위해 복무하기 때문에 자기 정치를 할 수 없거든요. 이런 사람들에게 사회 변화의 열쇠가 숨어있다고 생각해요. 비정치화된 시민들을 대변할 능력을 갖고 있지만 여건이 안 되는 사람들이 전업 정치인이 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지금 대호님께서 ‘비정치화된 시민들의 조직화’를 위해 하고 계신 여러 가지 프로젝트에 대해 정당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나요?

잘 모르겠어요. 그분들이 어떤 논의를 하고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언론을 통해서 보도되는 거 외에는 잘 몰라요. 소통 창구가 없어요. 도와주시면 너무 좋죠. 하지만 그게 가장 중요한 자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린벨트 활동을 예로 들어볼게요. 그린벨트가 하려는 일은 당 내의 민주적 공론장 형성이거든요. 어떤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2~3시간짜리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견을 존중하고 민주적 토론을 좋아하는 당원의 수를 늘리는 거예요. 여러 지역위원회, 시도당 조직들과 협업해서요. 이런 일을 하는 데 있어서 국회의원이나 지역위원장, 당 대표 같은 분들의 도움이 당연히 있으면 좋죠.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다른 것들을 포기하고서라도 이 일을 해보고 싶어하는 동료에요. 새로운 일이라는 건 대체로 기존 규칙에서 승리한 사람들한테 손해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저희가 민주적 공론장을 활성화시키면 아마 민주적 공론장이 없어서 권력을 유지하기 편했던 사람들 입장에서 불편함이 생길 수 있죠. 당원들의 모임이 활성화되면 기존 권력에 대한 견제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어요. 기존의 당내 권력자들은 이런 걸 좋아하지 않겠죠.

그린벨트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원래 당원들을 대상으로 어떤 활동을 제안하는 게 지역위원회의 역할인데, 사실 그동안 적극적으로 해오지 않았어요. 당원들의 요구가 높아지면 뭐라도 해야 되는데 여력이 없거나 굳이 하고 싶지 않아서 외주를 맡기고 싶어하는 기관들이 많거든요. 그러면 그린벨트가 그 지역에서 공론장을 여는 거죠. 그렇게 이견을 들어보려고 하는 사람의 비중이 높아지면 우리 당이 갖고 있는 팬덤 정치의 문제도 완화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팬덤 덩치를 비판하면서 해결 방안을 찾는데 저는 사람들이 이미 해결 방안을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번거로워서 하지 않을 뿐이죠. 민주적 토론을 좋아하는 당원의 수를 늘리려면 일대일로 설득해야 한다고 봐요.

이 기획이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타인이 선의를 갖고 있다고 믿어야 해요. 저는 당에서 검찰 개혁보다 중요한 의제들이 더 많이 다뤄져야 한다는 입장이거든요. 하지만 당에는 검찰 개혁 이슈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 사람들이 ‘멍청하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절대 설득할 수 없어요. 최소한 저 사람도 나라와 당을 위해서 자기 시간을 들여 저렇게 노력하고 있을 거라는 전제를 가지고 사람을 대해야 해요.

저는 온라인상의 논의를 통해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한계 효용은 0에 수렴하고 있다고 봐요. 지금 다른 입장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서 내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은 직접 만나는 것 밖에 없다고 봐요. 당근 마켓이든, 그린벨트든, 계단뿌셔클럽이든 간에 사람을 직접 만나는 자리가 필요하고,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을 걸어야 해요. 저는 이 방법의 가치와 성과가 있다고 확신해요. 사람들도 금방 느낄 거예요.

🍷 CLUB

정치인이 아닌 사람은 투표 말고 정치를 위해 뭘 할 수 있을까요?

계단뿌셔클럽에 참여하면 됩니다. 11월 중순부터 계단 뿌셔 클럽 시즌 4가 오픈하고요, 토요일 일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강남역과 홍대입구역에서 활동하실 수 있어요. 정당 차원에서 당원들의 수요에 맞는 활동 프로그램을 별로 만들지 않아요. 당원을 동원하는 정치인들의 목적에 맞게 만들어져 있어서 당원 개인이 성장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매우 적어요. 계단뿌셔클럽에서는 장애인 이동권 문제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활동을 통해서 동네 친구도 사귀고, 공적 가치가 있는 일에 시간을 쓰면서 뿌듯해 할 수 있었어요. 이런 활동을 정치인들이 많이 기획해서 당원들한테 제안해야 해요. 근데 차려놓은 건 없이 설거지만 쌓아놓고는 당원들을 초대해서 설거지 시키는 게 지금 당의 현실이거든요. 당원들을 정말 존중하고 사랑한다면 맛있는 식사를 준비해서 초대해야죠.

대호 님께서는 존경하던 정치인의 실망스러운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보게 되셨잖아요. 그럴 때마다 정치와 멀어지고 싶은 마음은 어떻게 토닥이면 좋을까요.

그 당시에는 사실 깊이 고민하지 않았어요. 피해자가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요. 박원순 시장을 좋아했던 분들 중에서 피해자의 신상을 유포하는 분도 있었어요. 그걸 막는 게 당시에는 제일 중요했어요. 그때 제가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피해자를 향한 잘못된 행동을 당의 권위 있는 인물이 지적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렇게 하지 않더라고요. 그런 걸 보니까 정치 권력을 가지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제가 당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권력이었던 성남시장에 도전했어요.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이 성남시장 출마의 계기라는 게 설득력이 있는가를 두고 캠프 내에서도 논쟁이 있었지만, 끝까지 뺄 수 없었어요.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제 목표였으니까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은 사람들을 실망하게 해요. 바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렇게까지 실망하지 않겠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해나가는 게 중요해요. 고루하고 꼰대 같은 이야기로 느끼실지 모르겠지만 의외로 재미있어요. 생각보다 결과를 보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도 길지 않다고 생각하고요.  당장 이걸 하는 게 뭐가 의미가 있을까 싶더라도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고 내가 시간을 들여서 해볼 수 있는 일이면  하시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그게 정당 활동이든 사회 운동이든 상관없어요.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서 공부해봐도 되고, 캠페인을 해도 되고, 당사자 이야기를 들어봐도 되고, 창업을 해봐도 돼요. 한나 아렌트라는 사람이 쓴 <인간의 조건>이라는 책을 보면, 다 할 수 있다고 해요. 세상에 동일한 사람이 없다면, 당신이 갖고 있는 가능성을 누구도 한정하거나 증명할 수 없다고 얘기해요. 그러니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당신일지도 모른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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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의 인터뷰

애정클

애증의 정치클럽 팀이 함께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