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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를 채우기 위해선 어디로 나아가 무엇을 물어야 할지 알아내는 게, 이번 총선이 저에게 남긴 과제입니다.

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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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분 걸림 -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애증의 정치클럽 🍂건조 에디터입니다.

오랜만에 에디터노트로 찾아뵙습니다. 정신없는 총선 기간을 보내고 막 숨을 골랐는데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마음은 복잡하기만 합니다. 선거 결과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앞으로 정치를 어떻게 봐야 할지 날이 갈수록 혼란스러워요. 제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거나, 나오지 않아서는 아닙니다. 사실 어떤 결과를 바랐는지도 잘 모르겠네요.

이상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이 ‘알 수 없음’이 이번 선거에서 제가 알게 된 것입니다. 지난 한 달이 저에게 남긴 것들을 정리해봅니다. 오랜만에 돌아왔다는 핑계로 부연을 잔뜩 달아 길게 썼어요. 넓은 아량으로 완독해주시길 바랍니다.

ⓒUnsplash

구독자분들께선 이런 의견을 보내주셨습니다.

[주간 애증 담소] 🌪️조국혁신당 돌풍의 이유 총정리 (3/28)

  • 주변의 조국신당 열풍에 어리둥절하고 있었는데 맥락을 잘 짚어주셔서 아하~했네요. 참고로 저는 40대 후반인데요. 살짝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젊어서 딱히 진보라 말하기 힘들었던 성향의 지인들까지 반정부로 기울고 있고요. 제 연령대의 특징인 것 같습니다. 이들의 이번 총선 선택이 궁금해지네요. (춘춘 님)
  • 글 잘 읽었습니다. 이렇게 여당도 야당도 갈기갈기 찢어지네요.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했나봐요. (라무 님)
  • 야당이나 여당이나 갈기갈기 찢어졌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야당의 경우 조국신당이 이준석처럼 불화로 인해 떨어져 나간 것도 아니기에 더욱 그렇지요. 개혁신당으로 보수권이 갈라진건 맞지만 아직 개혁신당의 세력이 미약하기에 큰 변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GON 님)
  • 최근 조국혁신당 지지율이 왜 높은지 궁금했어요. 제가 이해하고 싶지 않은 태도를 유지하는 것인지, 미디어에 나오는 조국혁신당 돌풍의 이유가 핵심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인지, 이외에 다양한 이유로 저는 아직도 조국혁신당 지지율이 왜 높은지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궁금합니다. 정유라, 최순실, 박근혜와 같은 인물이 나와도 유사한 수준의 지지율이 나오게 될까요?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네요) 박근혜 씨가 대통령에 당선되던 시절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은 "아이구, 박근혜 불쌍해서 어떡해" 였습니다. 지금 조국혁신당의 지지는 노무현 대통령께서 돌아가시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분들의 분노와 마음의 빚 같은 감정들이 이런 저런 굴곡을 거쳐 조국에게 이어진 결과 일까요?

    그래서 제가 정말 하고 싶은 말, 그리고 애증의 정치클럽 구독자로서 요청사항은요. 요즘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런저런 사항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기사를 읽고 팟캐스트를 듣고 영상을 보고 하는데, 가장 맥락을 알기 어려운 부분이 지지자들의 감정 상태더라구요.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다수의 지지자들이 공동의 감정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이고, 그 결과 어떤 정치적 결과가 발생했는지 맥락으로 가끔 알려주신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초딩 님)

[주간 애증 담소] 🗳️ 22대 총선 결과 정리 (4/12)

  • 깔끔한 정리 좋아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르니에 님)

[근본적 정치 탐구] 세월호 10년, 정치가 한 일 (4/16)

  • 좋은 정치 =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정치"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by Abraham Lincoln. (익명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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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의 정치클럽을 시작할 때 저는 참 순진했다고 쓴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정치 콘텐츠를 만드는 태도도, 공론장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지요.

정치인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총선을 지나며 제가 정치인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치인의 이름과 그들의 족적에 대한 무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검색 몇 번이면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제가 알지 못해 곤란해진 것은 정치라는 업계의 작동방식입니다.

그들의 직업 세계에서 진정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정치인이 실제로 마주하는 요구의 형태, 내려야 할 결정의 양식, 이를 실현하는 실무진의 고충 따위는 눈에 보이지도 않았고 흥미도 없었죠. 지금도 모릅니다. 다만 그것이 진짜 정치가 이뤄지는 과정임을, 후보자 하나하나를 뜯어보고 공약집을 들여다보며, 저보다 오래 정치라는 업계를 살펴온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가늠하게 됐을 따름입니다.

비유하자면 저는 요즘 고3의 일상을 알지도 못하면서 열심히 하면 명문대 가는 거 아니냐며 엉덩이 힘이 없는 탓이라고 아이를 혼내는 친척 어른이었던 겁니다.

정치인은 무력하게 제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이가 아니고, 유권자에겐 업계의 사정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이해해줘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치를 소재로 글을 쓰고, 그것을 직업으로 하려는 사람으로서, 저에겐 어느 정도 그럴 의무가 있지 않을까요. 독자가 몇 명이든 간에요. 현장의 사람들이 흘리는 땀에 말 몇 마디를 얹어 이익을 취하는데,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정도의 이해도 없이 써낸 글이 유효한 비판이 될 리도 없고요.

‘그것은 알기 싫다’의 <국회의원 선거 데이터센트럴>에서 업계의 플레이어들을 들여다보는 법을 속성으로 배우며 이 문제를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이번에 제가 살펴본 정치인의 ‘실적’은 수치 중심이었습니다. 상임위와 본회의 출석률, 입법 건수 등이었죠. 하지만 숫자는 모든 것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이를 보완하고자 정치적 행보와 발의 내용 등 질적 평가가 가능한 내용도 다뤘지만, 정보의 행간을 읽어내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현장에 대한 무지는 기존의 프레임에 대한 의존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무지를 채우기 위해선 어디로 나아가 무엇을 물어야 할지 알아내는 게, 이번 총선이 저에게 남긴 과제입니다.

질문의 한 꼭지로는 정치인과 지역구의 관계가 있습니다. 지역구 공약들을 들여다보니, 정치와 지역의 문제가 연결되면서 정치의 기본 토양이 형성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정치인은 지역의 지지를 받아야 당선될 수 있잖아요. 지역에서 인지도를 얻고,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역민의 요구를 따라가기만 하는 건 포퓰리즘이겠죠. 본인의 신념을 기반으로 문제해결 방안을 내놓아야 하고, 사람들이 그것에 동의하도록 설득하는 능력도 필요할 겁니다. 두 능력을 모두 갖추고 지역과 소통하는 사람이 좋은 국회의원 후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그 능력을 어떻게 평가할지 알아내는 거겠죠.

총선 당일, CBS <오뜨밀> 총선 특집에 출연해 <데이터센트럴> 방송 후기를 나눴습니다. ⓒCBS

이렇듯 정치라는 업계를 움직이는 동력은 ‘민심’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엘리트주의와 포퓰리즘 사이 줄타기를 하며 민심과 공명하는 것이 민주주의에서 가장 까다롭고 중요한 작업이라고 믿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 다수의 선택은 정당성을 갖고, 존중 받아 마땅합니다. 그래서 선거 전후로 모든 미디어는 민심과 심판이라는 단어를 엮어왔습니다.

여기서 두 번째 고민이 뻗어 나왔습니다. 민심이란 뭘까요? 선거 직후 한 친구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숫자를 경유해 탄생한 민심이 정치를 지배하고 있는 게 아닐까.” 민주주의 체제에서 당연한 사실을 말한 것 같지만, 민심에 대한 해석을 누가, 어떻게 전유하는지 생각해보면 곱씹을 만합니다. 특정한 내러티브를 세워두고 결론에 민심을 붙이면 편리하죠. 민심에 고개를 숙이는 척 하면서, 입맛에 맞는 얘기를 치켜세우면 됩니다.

숫자로 표현된 민심은 긍정과 부정, 둘 중 하나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현실 유권자의 마음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죠. 개인의 정치적 입장은 사안별로 다릅니다. 노동에 대해선 매우 진보적인 사람이 부동산에 대해선 보수적일 수도 있습니다. 같은 성향으로 분류되는 집단 안에서도 경험에 따라 의견이 갈립니다. 한 세대가 경험하는 정치적 사건은 상이하고, 그것은 정치를 바라보는 관점을 만듭니다. 여기서 관점은 정치에 대한 실망의 역치와 기대의 한도, 그리고 감정의 온도를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질문은 초딩 님이 언급하신 감정에 대한 이야기와 맞닿습니다. ‘머리가 아닌 감정’으로 이뤄지는 정치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감정을 안전하게 다루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 역시 알고 싶습니다. 민심이란 어떤 모습이고, 현재 정치의 풍경과 어떻게 이어지는지요. 그걸 알아내려 분투하는 중이라는 답변밖에 드릴 수 없어 아쉽습니다. 직접 다가가 두드려보고 만져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과제로 마음 속에 담아두었어요.

(참고로 🌪️조국혁신당 돌풍의 이유 총정리를 쓴 청새 에디터🐦는 지지자들의 입장은 대변하는 과정에서 왜곡을 수반할 수밖에 없어 다루는 게 조심스럽다고 합니다. 다만 현재 정치를 움직이는 동력이 억울함과 복수심일 때가 많고, 모두가 거대한 피장파장의 오류에 빠져있는 게 아닌가 질문하고 있다네요. 그러한 경쟁이 곧 정치로 보이기도 한다고 합니다.)

쓰고 보니 의문사만 한껏 늘어놓았네요. 질문을 구체화하는 것이 최근 저의 화두이기 때문이겠죠. 손에 잡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욕심이 갈수록 커집니다. 어디로 갈 지 알았으니, 경로를 재탐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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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침착하게 바라볼 때 나오는 날카로운 분석을 좋아합니다. 동시에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다정함을 글 쓰는 동력으로 삼고 싶습니다.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변화의 출발점이라고 믿습니다. 애정클에서 애(愛)든 증(憎)이든, 정치를 대할 때면 쉽게 끓어오르는 마음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변화를 추구하는 마음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합니다. 최근엔 일상을 가꾸고 나를 돌보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