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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콘텐츠’를 만드는 일

정치라는 영역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은 마냥 ‘소비’하기 어렵습니다.

건조
건조
- 11분 걸림 -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애증의 정치클럽 🍂건조 에디터입니다.

최근 유독 마음에 남은 글을 소개하며 시작해 봅니다. 이나다 도요시의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입니다. 영상물을 ‘빨리 감기’로 보는 습관을 주제로 이 시대의 문화 트렌드를 분석한 책인데요.

저자는 영상 작품이 ‘작품’에서 ‘콘텐츠’로 변모했음을 짚어냅니다. ‘콘텐츠’는 양적으로 파악됩니다. ‘콘텐츠’를 ‘소비’할 때 중요한 것은 단시간에 대량으로 정보를 소비해 얻는 쾌감입니다. 반면 ‘작품’은 ‘감상’의 대상입니다. ‘감상’은 작품을 접하고 음미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는 행위로 ‘소비’와 구분됩니다.

이번 에디터노트에서는 ‘정치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이 대목을 곱씹어봤습니다.


지난 2주간의 애정클 콘텐츠

이외에도 이런 활동이 있었습니다.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 출연

구독자분들께선 이런 의견을 보내주셨습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맥락과 우려 (10/12)

  • 우연히 추천을 통해 사이트를 접하게 되었는데 피드백도 처음 써 봅니다. 항상 간결하면서도 족집게 맥락 정리로 국내와 글로벌 이슈를 쉽게 이해할 수 있어 지식이 짧은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오늘 내용 중 미국과 사우디 관계를 염려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빈 살만 사우디 왕자의 "전쟁으로 고통받는 팔레스타인 국민은 지지하지만 하마스의 공격은 비판한다"는 입장을 전한 기사를 봤습니다. 이 기사를 보고 사우디는 팔레스타인의 온건파 '파타'와 테러리즘 단체 '하마스'와의 선을 명확히 하여 미국 등 국제사회와 틀어지는 것을 염두에 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노마 님)
  • 여기에 더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서방 국가들의 움직임을 조금 더 분석해 보는 움직임도 많은 거 같습니다. 오랜 갈등 속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무력행사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점은 같지만, 서방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지지하며 팔레스타인이 당해 온 무력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는 불균형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생각보다 더 크게 살펴볼 필요가 있는 주제일 거 같은데 저는 세계사 공부부터 다시 해야 할 거 같더라고요. (천인혁 님)

철학자가 대선과 창당에 참여하는 이유 (10/13)

  • 할 말은 많지만 참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 내용이네요. 쓰다가 지웠습니다 결국.....ㅎㅎ (천인혁 님)

애정클 콘텐츠에 대한 다양한 의견 제시는 늘 환영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린 의견에 대해서도 피드백창을 통해 의견을 남겨주시면, 다음 에디터 노트에서 논의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편하게 찾아주세요!

*보내주신 의견은 에디터의 편집을 거쳐 소개됨을 알려드립니다. 내용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가독성을 위한 편집만 진행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의견은 합쳐서 제시되기도 합니다.

에디터 스토리

정치 기사는 매일 몇 백 개씩 쏟아집니다. 그 사이에서 분절된 맥락을 찾아 붙이고 중요한 쟁점을 뽑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이 애정클이 처음 목표한 ‘콘텐츠’의 형식이었습니다. 단시간에 대량의 정보를 효율적으로 소비하게 해, 이 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일의 흐름을 놓치지 않게 하는 것. 그 흐름에 탑승해 있다는 만족감을 주는 것입니다.

애정클을 만들었을 때의 저도 그런 욕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정치라는 영역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은 마냥 ‘소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기엔 나의 삶과 너무 가깝거나, 심각하거나, 참혹합니다. 그런 일은 ‘감상’하기에도 적절치 않습니다. ‘소비’와 ‘감상’의 공통점이 있다면, 대상과 나 사이 안전한 거리를 확보했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니까요.

정치에서 우리는 사안마다 다른 자리에 놓입니다. 그럴 때마다 다른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이 정치의 현실이라면, ‘정치 콘텐츠’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지 고민하게 됩니다. ‘소비’도, ‘감상’도 아닌 제3의 길을 발견해야 할까요? 오히려 스스로를 모든 사안을 ‘소비’할 수 있는 자리에 놓아야 할까요? 지난 2주간 전쟁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고민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일단 이번 에디터노트에서는, ‘콘텐츠’를 만드는 저울질에서 내려놓았던 얘기를 올려보려 합니다. 정치 콘텐츠가 갈 수 있는 다양한 길을 늘어놓고, 가능성을 모색해보려는 시도입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다룬 글 중 인상 깊게 읽었지만, 분량과 콘텐츠 방향의 문제로 미처 다루지 못한 참고 자료를 소개합니다. **노마 님과 천인혁 님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데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델타월딩] 팔레스타인 말고 ‘하마스’

  • 중동 국가들의 국내 정치 상황과 이번 전쟁을 둘러싼 주요 국가 간 이해관계를 다뤘습니다. 애정클 콘텐츠에서도 짧게 다뤘습니다만, 해당 글에선 각 국가가 취하는 입장의 역사·문화적 배경까지 세세하게 다뤘습니다.
  • “누구도 팔레스타인 독립 그 자체를 제1 목적으로 두지 않는다”는 냉철한 분석이 와 닿았습니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과 사우디에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쓰는 장기 말과 다름없고, 하마스에겐 자신의 존립을 위한 행동에 붙이는 명분일 뿐이란 겁니다.

[델타월딩] 중동을 이해하는 기초 문법, “바다”

  • 위의 글과 이어집니다. 지정학적 해석을 기반으로 중동 분쟁을 바라봤습니다. 중동 분쟁 하면 흔히 가장 먼저 떠올리는 ‘수니파 vs 시아파’ 종교 갈등이 아닌, 중동 생활권 형성의 역사에서 발생한 정체성 갈등에 주목했습니다.
  • 중동을 걸프만-아라비아해 생활권(사우디, 이라크, 이란)과 지중해 생활권(시리아, 요르단, 이집트)으로 구분하고, 권역에 따라 분쟁의 양상과 배경에 차이가 있음을 설명했습니다. 이를 통해 두 지역을 잇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 겪는 문제의 복합성을 다뤘습니다. (중동 역사의 문외한인 저도 쉽게 따라가며 읽었습니다!)

[이코노미스트] 살람 파이야드(Salam Fayyad) 논평: 팔레스타인의 대의명분은 파벌주의로 훼손됐다. (얼룩소 번역)

  • 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총리 살람 파이야드의 논평입니다. 팔레스타인이 처한 정치적 딜레마를 논했습니다.
  • 파이야드는 현재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정책결정기관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정치적 실패를 지적했습니다. PLO는 이스라엘과의 평화적 협상을 통한 국가 지위 획득을 주장해 왔고, 그 과정에서 하마스 등 PLO의 방향을 지지하지 않는 정치 세력을 배제했습니다. 파이야드는 이러한 팔레스타인 정파 간 분열을 봉합해야 진정한 평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한국일보] 하마스, '테러리스트'인가 '자유의 투사'인가...서구의 이중적 시선

  • 전쟁 전후, 하마스에 대한 서구의 인식 변화를 다뤘습니다. 본래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서구 진보 진영에게 탄압에 맞서는 세력으로 비춰졌습니다.  그러나 이번 민간인 테러로 하마스는 ‘완전한 악’으로 규정됐고, 하마스를 정치세력으로 인정하기 어려워졌습니다.
  •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민간인 피해가 속출하던 시기엔 서방 국가들이 침묵했다”는 비판도 소개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민간인 대상 공격은 (사실상) 지지하고, 팔레스타인을 비난하는 건 이중 잣대”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뉴스앤조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아주 특별한 관계

  • 미국의 일방적인 이스라엘 지원을 지적했습니다. 친이스라엘 정책에 대한 미국 내 비판을 소개하고, 미국이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원인을 짚었습니다.
  • ‘미국에서 유대인이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봤지만 구체적 사례는 알지 못한다면, 이 글에서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주간 애증 담소>를 쓸 때마다, 이슈를 접하고 독자들이 가장 먼저 떠올린 감정이 무엇일지 생각합니다. 감정이란 논리보다 앞서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내가 궁금한 건 뭔지, 알면 좋을 맥락은 무엇인지 생각해내는 것도 감정이 추동한 직관에 기댈 터입니다. 사람마다 느끼는 것은 다르겠지만, 제 마음속 애정클 구독자를 두고 그가 그린 물음표를 상상해 보곤 합니다.

정치를 ‘소비’하지도, ‘감상’하지도 않는 길이 어디에 놓여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의 마음이 어디로 움직였을지 고려해 보는 일은, 안전한 거리를 확보해 그저 관망하려는 태도와는 다를 것이라 믿습니다. 이런 고민이 전해지는 글을 쓰고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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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침착하게 바라볼 때 나오는 날카로운 분석을 좋아합니다. 동시에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다정함을 글 쓰는 동력으로 삼고 싶습니다.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변화의 출발점이라고 믿습니다. 애정클에서 애(愛)든 증(憎)이든, 정치를 대할 때면 쉽게 끓어오르는 마음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변화를 추구하는 마음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합니다. 최근엔 일상을 가꾸고 나를 돌보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