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노인과 청년의 공통점
내 몫을 주장하려는 욕구는 많은 이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인 듯 합니다.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애증의 정치클럽 🍂건조 에디터입니다.
최근 지인들과 작은 독서모임을 만들었습니다. 모임명은 ‘재고소진’입니다. 새로 구매한 책은 제외하는 게 규칙이에요. 읽지 않고 집에 쌓아두기만 한 책들을 해치우려고 만들었습니다. 지갑도 닫고, 책장도 관리할 수 있어요. 제법 실용적이지 않나요?😚
오늘의 에디터노트에서는 이번달 해치운 재고에 대해 써보려 합니다. 2022년 경향신문 젠더기획팀에서 펴낸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인데요. 세상이 노동의 관점으로 바라보지 않았던 고령 여성들의 삶을 담은 인터뷰집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의 삶을 정치로 바라보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짧은 상념을 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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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삶의 굴곡을 의연하게 헤쳐온 인생 선배들의 이야기에는 숭고함이 있었습니다. 부도, 가정의 붕괴, 병마와의 싸움에도 무너지지 않은 언니들은 "나쁜 일이 파도처럼 밀려와도 도망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세상이 그들에게 내어준 작은 틈에서 단단히 뿌리를 내렸습니다. 사회 곳곳에 얽혀있는 그들의 뿌리가 없으면 세상은 무너질 거예요. 어느날 60대 이상 여성들이 모두 사라진다면, 가정도 사회도 멈출 겁니다. 이들은 필수노동이라 불리는 업종에서 4분의 1을차지합니다. 우리 일상을 떠받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정치는 이들의 노동을 노동으로 보길 거부해왔습니다. 이들이 겪은 고난과 노동의 가치는 철저히 개인과 가정의 영역에서만 해석되었습니다. 인터뷰에 참여한 여성 노인들은 괴로울 때면 하염없이 걷거나, 무조건 들에 나가 일을 하거나, 나무에 말을 걸며 삶의 애환을 감내했다고 증언합니다. 자기 몫을 요구할 방법이 없었기에 고통을 그저 삼켰습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지만 아내와 어머니라는 역할 안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적었습니다.
그러면서 몇십년의 세월을 견뎠고, 지금도 견디고 잇습니다. 이들의 의연함에 가슴이 먹먹해지던 중, 감상의 끝이 여기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에서 소개된 개인들의 능력을 인정하고 존경을 보내야 하지만, 그 행위가 '감동'에서 그친다면 개인의 인내를 당연시하게 되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 문득 ‘이런 삶도 이겨내는데 나는 왜 이렇게 약한 걸까'라고 생각해버리는 스스로를 발견했거든요.
이 감상을 우리 세대의 관점에서 다룬 글이 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역시 경향신문의 기획인데요. ‘2030 내탓 설명서'입니다. 사회를 바꾸기보다 나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믿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자기계발서 <세이노의 가르침>에 열광하고, 감사일기를 쓰는 청년들을 소개했어요.
"희망적이지만은 않은 삶에서 할 수 있는 건 태도를 바꾸는 것뿐"이라며 "스스로에 대한 세뇌란 생각도 들지만 불평불만이 확실히 조금은 줄어들었다"는 청년들의 말은, 숨을 돌리기 위해 들과 바다를 바라보기만 하던 여성 노인들과 맞닿는 면이 있었습니다. 저 역시 윗 세대만큼 강하지 못한 스스로를 탓하다가도 그렇다면 나도 견뎌보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정치란 자원의 권위적 분배이며, 그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정치 참여입니다. 하지만 내 몫을 주장하려는 욕구는 많은 이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인 듯 합니다.
그 욕구를 실현하려면 자원이 필요하고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감당할 수 없는 욕구는 나를 파괴할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서인지, 우리는 그 싹을 잘라버립니다. 그것이 현명한 태도로 보입니다.
진정으로 정치적인 인간이 되려면 이 욕구의 싹을 키우는 것이 투표에 참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내가 속한 아주 작은 공동체에서부터 나의 몫을 말하고, 이를 위해 구조를 바꿀 것을 요구해보는 경험이요. 법, 구조, 사회를 바꾼다는 말은 거창하고 두려워서, 내 주변부터 하나씩 바꿔나가는 경험이 절실합니다. 그래서 가장 손쉽게 여겨지는 나의 마음을 수단 삼아보려 하는 것이겠죠.
그렇게 문제를 비정치화하는 것, 그 이상의 수단을 상상할 수 없도록 우리의 선택지를 제한하는 것 역시 아이러니하게도 정치입니다. 비정치화의 정치 안에서 새로운 선택지를 발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최근 동네, 마을 단위의 시민활동에 관심이 가는데요. 힌트를 얻는다면 여러분에게도 소개드리고 싶습니다. 애정클이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갈수록 넓어지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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