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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 마케팅의 시대

정치는 세계를 바라보는 특정한 관점에서 출발하기도 하지만, 가상의 세계를 만드는 데 열심이기도 합니다.

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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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분 걸림 -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애증의 정치클럽 🍂건조 에디터입니다.

오래간만에 여유로운 한 주를 보냈습니다.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는 지인들은 개강을 맞아 다시 바빠졌습니다. 졸업한 지 어느덧 1년인데 제 안의 달력은 여전히 학사일정에 맞춰 넘어가는 듯 합니다. 9월이 되면 지난 아홉 달의 게으름과 실수도 만회할 수 있을 것만 같아 의욕이 샘솟습니다. 달이 넘어가자마자 저는 새 다이어리를 샀습니다.

문득 정치인에게도 9월은 그런 달일까, 궁금해졌습니다. 9월은 정기국회가 열리는 달입니다. 이후 100일 간 국정감사와 예산안 심사 등 굵직한 일정이 이어지며 정신없이 한 해를 마무리하게 됩니다. 많은 것이 결정되고, 그만큼 많은 것을 놓치는 시기입니다.

그래도 9월 초입의 정치엔 새학기의 설렘이 넘실거리면 좋겠습니다. 매 학기 반복되는 다짐은 우리를 목표로 데려다주진 못하지만, 계속해서 그 쪽으로 움직이게 하니까요.

지난 2주간의 애정클 콘텐츠


이외에도 이런 활동이 있었습니다.

  •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 520a. 520b. 출연(8/31, 9/1)
  • [정치발전소 X 애증의 정치클럽]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위험한가 북토크

구독자분들께선 이런 의견을 보내주셨습니다.

  • ‘여성’안심귀갓길이라는 이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 뿐이라는 지적에 동의할 수 밖에 없네요. 사실 그 사업내용으로 저도 두려움을 덜 수 있었던 경험도 있었고 실질적인 범죄 예방효과도 있다고 연구도 있는데 반대를 한다는 건..... 다른 검토할 만한 이유를 제시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그저 본인의 세계관만을 투영한, 하지만 그 어떠한 검증도 되지 않은 정책만 내보낸다는 게 유감스러울 뿐입니다. (천인혁 님)

의견을 보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애정클 피드백 창홈페이지 댓글로 들어온 의견은 되도록 모두 소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참여 부탁드려요🥰

🍂에디터 스토리

여성안심귀갓길이 문제인 진짜 이유에 달아주신 천인혁 님의 댓글을 보고 ‘세계관’이라는 단어를 곱씹게 됐습니다. 그야말로 ‘세계관’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세계관 마케팅이라는 용어가 생겼을 정도입니다. 관련된 마케팅 콘텐츠들은 세계관 마케팅이 브랜드 가치를 더 쉽게 전달하고, 소비자를 팬으로 만들며, ‘과몰입’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유용하다고 소개합니다.

여기서 세계관이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아니라,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가상의 세계에 대한 설정을 말합니다. 현실에 없는 특정한 요소와 규칙들이 있고, 소비자는 이를 따라가며 세계관을 학습하는 것에 재미를 느낍니다. 창작물부터 케이팝, 최근에는 일반 상업 광고까지 세계관 설정에 열심입니다.

그러나 세계관 마케팅에도 단점이 있습니다. 설정이 복잡하거나 납득하기 어려운 세계관의 경우 소비자가 피로를 느껴 떠나간다는 겁니다.

ⓒUnsplash

이렇게 살펴보니, 세계관 마케팅의 원조는 정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정치는 세계를 바라보는 특정한 관점에서 출발하기도 하지만, 가상의 세계를 만드는 데 열심이기도 합니다. 그 세계관에 ‘과몰입’한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얻고 이들이 만족할 만한 콘텐츠를 제공합니다. 마케팅에서의 세계관과 차이가 있다면 정치는 가상의 세계를 현실이라 주장하고, 때로는 진짜 현실로 만들기도 한다는 겁니다.

여성안심귀갓길 폐지를 추진한 관악구 최인호 구의원의 세계관에선 그의 주장이 ‘검증된 사실’일 수도 있고, ‘검증된 사실’로서 그의 팬들에게 제공되는 콘텐츠일 수도 있겠습니다.

세계관이 명료한 정치일수록 팬덤은 강해집니다. 동시에 그 세계관에 납득할 수 없어 등을 돌리는 사람들도 많아집니다. 그럴 때 세계관 마케팅은 팬과 팬이 아닌 사람을 가르고 전자에 집중합니다. 100명의 팬을 10만원을 쓰는 1000명으로 늘리는 것보다, 100명의 팬이 각자 100만원씩을 쓰게 만드는 것이 더 쉽고 효과적이라고 여깁니다.

정치가 이런 선택을 하면 사회는 필연적으로 갈라질 겁니다. 과몰입 팬들을 위한 극단적인 발언, 포퓰리즘 정책이 쇄도할 겁니다. 슬프게도 지금 우리 정치는 이미 그런 모습인 듯 합니다.

정치는 세계관을 필요로 합니다. 신념과 관점이 없는 정치는 공허하고 무기력할 겁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정치는, 세계관에 입각한 정치가 아닌 세계관 마케팅의 정치입니다. 둘의 차이를 결정짓는 분기점은 어디일까요. 지금 내가 믿고 있는 것이 세계관 마케팅이 만든 가상의 세계인지, 현실 세계를 바라보는 틀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해묵은 세계관의 재부상에 새삼 흔들리는 정치권을 보니 고민이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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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노트

건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침착하게 바라볼 때 나오는 날카로운 분석을 좋아합니다. 동시에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다정함을 글 쓰는 동력으로 삼고 싶습니다.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변화의 출발점이라고 믿습니다. 애정클에서 애(愛)든 증(憎)이든, 정치를 대할 때면 쉽게 끓어오르는 마음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변화를 추구하는 마음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합니다. 최근엔 일상을 가꾸고 나를 돌보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