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노동자' 조정훈
조정훈
시대전환 대표·국회의원시대전환 대표 조정훈 의원은 현재 정치권의 주목을 한 몫에 받고 있는 ‘이슈메이커’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캐스팅보트로서 주요 안건들의 행방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조 의원은 지난 몇 달 간 거대양당 어느 쪽과의 연합도 거부하며 제3지대의 새로운 길을 떠왔다. 그 길의 키워드는 ‘소신과 타협’이다. 이 역설적인 조합의 정치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대안은 무엇일까. 조정훈 의원에게 새로운 한국 정치의 길과 다당제 정치의 가능성을 들어봤다.
조정훈이 정치를 보며 느끼는 감정
❤️ 애(愛) : “나는 정치가 우리 생활을 바꿀 수 있어 좋다.”
"탁상공론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어서 좋습니다."
💔 증(憎) : “나는 정치가 우리 생활과 자꾸 동떨어지고 있어 아쉽다.”
"이념이 아닌 생활 정치 합시다."
💪 각오 : “나는 우리 생활을 바꾸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
"생활을 바꾸는 정치, 부엌을 만드는 정치, 살갗에 와닿는 정치를 하고 싶습니다."
공인회계사, 세계은행 우즈베키스탄 대표, 통일연구소 소장… 다양한 경력을 거쳐 정치인이 되셨는데요. 정치인이 되기 전엔 정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셨는지 궁금해요. 정치판에 직접 뛰어들어보니 그 생각이 또 어떻게 달라졌는지도요.
정치가 대충 이럴 줄 알았어요. 제가 정치학을 전공하지 않아서요. 대학 졸업하고 바로 정치에 뛰어든 것도 아니고 20여년 이상의 거친 국제 생활을 하고 왔어요. 학문으로서의 정치에 접근한 게 아니라 직업으로서의, 현장에서의 정치에 접근하게 됐죠. 국제기구에 있으면서 소위 국제 개발이라는 것이 정치를 빼놓고 얘기하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거기서도 매우 정치적인 경제 활동을 했기 때문에 크게 다르게 느껴지진 않는데요. 그래도 제가 정치를 하기 위해 준비됐다고 생각한 부분이 준비되지 않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요. 준비가 안 됐다고 느낀 부분이 생각보다 괜찮을 때도 있고요.
제가 정치인을 꽤 많이 알아요. 국제 활동을 할 때도 미국, 유럽 국회를 많이 다녔으니까요. 그런데도 완전히 간과한 게 있어요. 정치인하고 연예인이 결이 비슷하다는 거예요. 정치를 하려면 인지도가 있어야 해요. 제가 정치인으로서 발언을 해서 ‘조정훈, 뭐라고 했다’고 뉴스가 나가면 이제 댓글에서 ‘조정훈 누구? 듣보잡’ 이런 댓글이 달려요. 그러면 마상(마음의 상처)을 심하게 입는 거죠. 제가 이 부분을 잘 몰랐어요. 저희 보좌진들이 맨날 끙끙 앓던 게 인지도 높이기에요. 그래서 ‘염색을 하세요’, ‘안경을 바꾸세요’, ‘개그프로에 나가야 됩니다’, ‘망가지셔야 됩니다’ 여러 의견이 나와요.
제가 생각보다 잘 버티는 건 욕받이 기능을 하는 거예요. 정치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욕을 먹는 거예요. 국민 욕받이죠. 세계은행은 욕 먹는 직장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태어나서 참 많은 욕을, 자랄 때도 먹지 않았던 욕을 정치인이 되고 나서 굉장히 많이 들었어요. 생각보다 잘 버티고 있네요.
정치에 진출하시기 이전에 커리어를 잘 쌓아오고 계셨는데, 왜 같은 분야 안에서 커리어를 지속하시지 않고 정치에 뛰어드셨나요?
보이지 않는 손의 인도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제가 굉장히 공부를 안 하고 못하는 학생이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반에서 40등 정도를 했었어요. 저희 때는 한 반이 60, 70명이었거든요. 공부를 참 안 좋아하고, 야구 경기 보러 다니고 라디오에서 야구 중계 듣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 옆에는 항상 헌법 책이 있었어요. 헌법을 참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나요.
이후에 상과대학을 가고 공인회계사를 하면서도 정치학 수업은 하나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세계은행에서 일하며 이제 국가라는 단위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그러다 제가 경영학을 참 재미없어 하고 힘겨워한 이유를 뒤늦게 깨달았어요. 돌이켜보니 저의 사고의 단위는 개인, 회사가 아닌 국가였어요. 중고등학교 때는 이런 성향을 잘 모르잖아요. 근데 경영학과를 다니면서도 경영학의 기본 가정에 동의가 안 되더라고요. ‘모든 회사가 이윤을 극대화하면 사회가 제일 좋아진다’ 이런 거요. 그게 말이 되나요, 우리나라에서?
세계은행은 그래서 저한테 아주 좋은 직장이었어요. 30대 초반에 여러 나라에 파견돼서 그 나라 최고 정책을 하는 장관들 총리들과 그야말로 맞장 뜨면서 배우고 토론할 수 있었거든요. 세계은행 돈이 없으면 IMF 같은 위기 상황에서 나라가 부도가 나요. 그래도 돈을 그냥 줄 수는 없으니까 인플레이션, 교육을 어떻게 하라고 나라들에 온갖 오지랖을 다 떨었죠. 그러면서 국가가 어떻게 운영되는가에 대한 경험치도 쌓고, 여러 실험을 해봤어요. 그래서 정치가 원래 하던 일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처음부터 정치를 통해서 뭔가 이루고 싶다는 생각이 있으셨던 건 전혀 아니고, 세계은행에서 일을 하다 보니까 정치에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정치에 뛰어들길 결심하신 걸까요?
솔직히 그것도 아니에요. 저는 영웅 서사를 되게 싫어해서요. 사람들이 저한테 다음 리더라고도 하는데, 사람 믿지 마세요. 정치에서 아주 유명한 격언이 있어요. ‘사람을 믿지 말고 상황을 믿으라’. 사람 속마음을 어떻게 알겠어요, 나도 모르는데.
세계를 돌아다니며 살다 보니 제 아내가 향수병에 걸렸어요. 그래서 무조건 한국을 가기로 했어요. 제가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건 행정 공무원 아니면 정책 관련된 일이었는데요. 우연히 정치권에서 연락이 와서 정치해 볼 생각이 없냐고 물어봤어요. 정말 우연히 하게 됐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요. 이전부터 정치를 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 있었으니까 그 콜에 제가 응답했죠. 그렇게 정치를 시작했고, 딱 15년 할 생각이에요. 지금 한 4년 해왔는데, 11년 뒤에 뒤도 안 돌아보고 돌아갈 예정이에요.
그렇다면 다음 총선에도 출마할 계획이신 건가요?
그렇죠. 조정훈의 정치는 이제 시작한 거니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해요. 제가 11년 동안 국회의원을 하겠다는 건 아니고요. 정치라는 업을 제 직업으로 정했으니까, 누가 저를 정치인이라고 부르든 안 부르든 그 일을 계속 하겠다는 거예요.
2016년에 제가 아주대에서 3년 반 정도 통일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는데요. 저는 한국에서 정치하려면 기본적으로 두 가지는 머릿속에 정리된 사람이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답과 한반도 문제에 대한 답. 제가 먹고 사는 문제는 그래도 한두 마디 할 수 있을 텐데, 한반도 문제에 대한 답이 없어서 그렇게 일했는데요. 버릇은 못 속인다고, 소장으로 있으면서도 북한 미사일 문제보다 저출산 문제, 양극화 문제와 관련된 교수들만 찾아다녔어요. 그랬더니 저한테 ‘소장님 관심이 되게 넓으시네요’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게 불편했어요. 제가 관심 가질 필요도 없는데 왜 이런 데 관심을 가지냐고 하시는 게요. 국회의원이 되고 좋은 점 하나는 이런 거 질문한다고 욕하는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정치인이니까 당연히 관심을 갖고 있어야죠.
시대전환이라는 당을 창당해 이끌어오셨는데요. 시대전환이라는 당이 어떤 점에서 특별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저희 독자들한테 한번 자랑을 해주신다면?
크게 자랑할 건 없는데요. 그래도 하루에 50명에서 100명씩,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스스로 입당하고 있는 당이라는 거? 한국에서 당을 만들고 이어나가려면 돈이 많거나 슈퍼스타가 있어야 해요. 정몽준 전 현대그룹 회장이 당을 만들 때 80억 정도를 썼고, 안철수도 한 50~60억을 기본으로 썼어요. 저는 총 재산이 그렇게 안 돼요. 슈퍼스타도 아니고요. 그런데도 당이 만들어졌어요.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시대의 흐름에 맞는 방향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시대전환은 3040이 80% 정도 되는 정당, 도시의 젊은이들, 직업인들이 모이는 정당이에요. 20대도 포함하고 싶은데 반응을 잘 안해주시더라고요. (웃음) 빌라촌, 연립 주택가에 어떻게 하면 주차장을 만들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을 얘기하는 곳이에요. 정치를 싸움이 아닌 문제 풀이로 보고 싶게 하는 정당.
제가 진보도 보수도 아니라는 얘기를 많이 한 건 아실 거예요. 세계은행 다닐 때 저한테 그런 질문 한 사람이 없어요. 제가 우즈베키스탄 사무소 대표로 가겠다고 하면 면접을 보는데, 그런 걸 물어보지 않아요. 우즈베키스탄은 지금 물 문제가 심각한데 어떻게 풀겠느냐, 이런 걸 물어봐요. 그래서 제 안에는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DNA가 있어죠. 정치의 본질도 문제 풀이라고 생각해요. 일머리가 있는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해요.
근데 한국에 오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진보냐, 보수냐 이념을 따져요. 아까도 기자들을 만나고 왔는데, 누구랑 밥을 먹었냐고 해서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랑 먹고 왔다고 하니까 당이 다른데 그럴 수 있냐는 거예요. 저는 그렇게 먹어요. 같은 사람인데 못할 게 뭐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시대전환이 새로운 인물, 새로운 방식, 새로운 생각의 정치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나마 조금 기대해 볼 수 있는 작은 집이라고 생각해요.
말씀해주신 것처럼 아직까지 한국 정치는 이념 갈등이 중심이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시대전환이 새로운 정치를 하려면 결국 의석을 가져와야 하는데, 거대양당 구조에서 세를 늘리기 힘든 건 사실이고요. 그걸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재주를 부려봐야죠. 2024년 총선에서 많은 일들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해요. 합종연횡이라고 볼 수도 있고요. 양극단의 15%가 저를 좋아할 리는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민주당을 때리기도 하고, 국민의힘, 대통령을 때리기도 하거든요. 저는 침묵하는 다수를 대표하고 싶어요. 정치 기사, 뉴스 다 보는데 댓글 안 달고 퍼나르기 안 하는 사람들. 하지만 투표는 꼭 하는 사람들. 민주당과 국민의힘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과 같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적극적으로 판을 만들어보려고 해요. 시대전환이라는 정당을 배타적으로 운영하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시대전환의 발전적 해체를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더 큰 세력, 더 큰 배를 만들어보자. 정치는 세를 확산해가는 과정이니까요.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세계은행에 있을 때부터 가까우셨고, 제3지대를 형성하려는 움직임도 함께하셨어요. 그러다 김 지사의 새로운물결이 민주당과 합당하게 됐잖아요. 시대전환도 흐름상 뜻이 맞다면 합당을 고려할 수 있었나요?
아니었어요. 저는 김동연 지사가 제3지대로 끝까지 나왔으면 지금쯤 아마 정계 개편의 태풍이 됐을 거라 생각해요. 저 같은 사람한테도 한 번 해보라고 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김동연 지사가 그때 버텼으면 어땠겠어요. 아마 경기도지사는 되지 못했을 수도 있죠. 결국 나라를 바꿔보고 싶어서 대선에 나오신 분인데. 저는 개인적으로 제3지대에서 계속 걸어나가는 모습을 보이셨다면, 다음 총선에서 분명히 바람을 일으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거대 양당의 소모적인 갈등을 넘어서 제3지대 정당이 등장한다면 한국 정치에 어떤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엄청난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야구를 예로 들어볼게요. 1등은 파티를 하지만 2등 이하부터는 감독 경질이에요. 1등만 살아남죠. 하지만 이제는 우리 국민들이 1등이 아니어도 박수칠 만큼 성숙했다고 생각해요. 저 때만 해도 올림픽에서 동메달 따면 막 부끄러워서 울었어요. 금메달 못 따서 죄송하다고요. 요샌 그런 거 없잖아요. 많이 바뀌었어요. 즐기려고 하는 거지 죽고 사는 게임이 아니란 거죠. 근데 정치는 죽고 사는 게임이에요. 그걸 바꾸고 싶어요.
사례를 하나만 들어볼게요, 손실보상법. 코로나19 시국에 집합금지로 인한 소상공인들 손해 보상해주는 법이요. 이걸 제가 제일 먼저 제안했어요. 민주당을 설득해서 추진하던 중에 소급 적용이 문제가 걸렸어요. 그러니까 법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집합금지로 인한 손해도 보상해야 된다는 거죠. 당연한 얘기인데 법적으로 쉽지 않아요. 당시 야당이었던 국민의힘은 소급 적용을 반대하면서 상임위를 그냥 뛰쳐나갔어요. 그래서 민주당에서 저한테 저만 동의하면 여야 합의로 가겠다고 했거든요. 고민을 하루만 하겠다고 했어요. 여기서 뛰쳐나가면 저도 선명성 경쟁에서는 좋을 거예요. 결국 소급 적용은 안 하되 그 금액을 실질적으로 더 얹어서 주기로 했는데요.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아요. 제 정치 행보 중 김건희 특검법 반대한 게 많이 알려져 있는데, 제가 하고 싶은 정치의 좋은 사례는 손실보상법 논의에요. 서로 타협하고 협력하고 양보하는 것.
그때 손실보상법을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최초로, 그리고 유일하게 정부가 가게 문 닫게 만들면 반드시 보상하는 법이 있는 나라가 됐어요. 이걸로 우리나라가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고 생각해요. 저는 대가 없는 국민의 희생은 더 이상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호국영령을 잘 대접하는 게 좋은 나라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 희생할 사람이 한 명도 필요 없는 나라가 좋은 나라죠. 그런 의미에서 공익을 위해 가게가 문 닫으면 넉넉하게 보상해줘야 돼요. 이건 시혜의 영역이 아니라 의무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국회의원이 돼서 이걸 만들었다는 게 저한테는 참 감사한 일이에요.
이런 것이 가능하려면 다당제가 필요해요. 한 당이 선명성 경쟁을 하면서 튀어나가도 나머지 당들이 남아 있는다면 그 당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돼요. 그렇게 나가봤자 소용이 없으니까요. 제가 법사위에서 캐스팅보트를 행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기자님들이 어떤 법안이 올라오면 다 저한테 물어봐요. 제가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를요. 상임위에서 통과돼 봤자 법사위에서 통과가 안 되면 안되거든요. 지금은 캐스팅보트가 저 하나 뿐이지만, 제가 의원 20~30명 있는 당에 소속되면 거의 모든 건이 그렇게 돼요. 그러면 무조건 반대만 하는 사람들이 반대해봤자 둘이 찬성한다면 법 통과시켜야 해요. 얘기가 달라지죠. ‘나도 그렇게 싫은 건 아닌데 말야, 이런 부분도 좀 봐야 되지 않겠어?’ 이렇게 나올 수 있는 거죠. 그게 좋은 대화라고 생각해죠. 다당제가 확립되면 정치의 역학이 달라질 거예요.
제3지대를 개척하고 다당제로 이행하려는 시도가 한국 정치에서 계속 있어왔잖아요.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는데요. 제3지대를 개척하려면 한국 정치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시대전환은 그 조건을 갖추고 있나요?
무엇이 필요한지는 분명한데요. 우선 유권자들이 원해야 돼요. 정치가 없는 길을 만드는 업이긴 하지만, 등산 갈 때 웬만하면 길로 가는 게 맞아요. 다만 필요하면 없는 길을 만들어야겠죠. 제3지대가 실패한 건 개혁을 시도한 사람들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고,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아서 일 수도 있어요. 어쩌면 후자가 더 클 거예요. 시대가 불러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선 시대부터 우리는 이황과 이이로 나눠져서 싸워왔잖아요. 정치는 원래 그런 거예요. 그래서 젊은 세대는 그럴 바에는 정치 뉴스를 안 보죠. 싸우는 게 뭐가 재밌어요. 싸우려면 WWE를 보든지 축구를 보든지 그러죠. 여당, 야당 너무 지긋지긋하잖아요.
그래서 여론조사를 보면 무당층이 35%나 있어요. 그중에 반, 15%만 우리가 당겨도 300석 중 45석이에요. 안철수가 국민의당 때 38석을 가져갔어요. 45석을 갖고 있는 제3당이 나오면 나머지 의석이 255석이잖아요. 그럼 제3지대로 힘을 실어줘야만 과반을 가져갈 수 있는 거예요. 완벽한 캐스팅 보트죠. 그래서 시대전환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거예요.
시대전환이 조금씩 알려지니까 지금 양쪽에서 막 당기고 있어요. 지금 시대전환이 다른 건 없지만 신선하다는 상징자본을 가지고 있잖아요. 원래 정치는 신상을 당해낼 수 없어요. 오래된 건 의미가 없죠. ‘얼굴 마담 시키기에 좋으니 여기로 와라, 몇 자리 보장해 줄게’ 그런 유혹을 이기는 게 제일 어렵고 중요한 문제일 것 같아요. 스타트업을 키우면 상장을 해야 되는데 대부분 엑시트를 하잖아요. 그게 당초 목적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엑시트 하려고 만든 정당이 아니라 상장하려고 만든 정당이에요.
정의당도 제3지대를 구축하기 위해 애써왔는데요. 시대전환과 정의당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전 정의당이 제3지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원내 3당이라고 제3지대는 아니에요. 제3지대는 제1세력과 2세력을 견인할 수 있어야 되는데, 그러려면 그들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야 돼요. 정의당은 지금 정체성에 혼돈이 왔지만 결국은 ‘찐’진보로 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해요. 그러면 이분들의 파트너는 민주당일 수밖에 없어요. 저희 당이 어떤 부문에 있어서는 국민의힘과 협력하기도 하는데요. 그에 대해 저희 당원들이 아무 거리낌이 없어요. 민주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요. 정의당원들은 그런다고 하면 아마 난리가 날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제3지대가 아니라는 거예요. 다양한 정당 사이에서 특수한 자리를 잡을 순 있겠죠. 노동, 진보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잖아요. 하지만 제가 말하는 정치 3분지계의 한 축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국민의당은 왜 실패했을까요?
첫 번째는 안철수와 함께 들어온 38명 중 새로운 얼굴은 극소수였다는 거예요. 그때 호남 중심으로 당선됐는데, 기존 정치인들에게 공천을 다 줬어요. 보시면 초선이 거의 없고 다 재선, 3선들이에요. 그때 38명의 진짜 신진들이 들어왔다면 지금 굉장히 재밌었을 거예요. 국민의당 출신 새로운 사람, 지금까지도 들어본 적 없죠. 애초에 그룹을 잘못 만들었어요. 두 번째는 위치를 잘못 잡았어요. 바른미래당 등등과 결합하는 과정에서요.
중도가 되게 어려워요. 양극은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무조건 찬성하고 무조건 반대하면 돼요. 중도는 건마다 생각해야 돼요. 그리고 화끈하고 시원하지 못해요. 찬성은 하는데 조건부다, 이런 식이에요. 밋밋한 게 미숫가루 같은 집안이에요. 사이다를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미숫가루가 건강하다고 매일 먹으라 그래도 안 먹잖아요. 집집마다 어머니가 보내주시는데 잘 안 없어지는 그런 거 있죠. 중도 정치도 그래요. 그걸 극복할 수 있을 정도의 신선함과 새로움을 장착해야 해요. 앤드류 양이 뉴욕 시장 선거에 나왔을 때 ‘Not left, Not Right, Forward’ 라는 슬로건을 내세웠어요. 좌우가 아닌 앞으로 가자. 우리도 이런 의제를 잡아야 해요.
의제 얘기가 나온 김에 더 여쭤볼게요. 기본소득을 국내 정치에서는 최초로 제안해주셨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기본소득과 관련해 이런 인식이 더 흔한 것 같아요. ‘열심히 일하지도 않는 사람들한테 돈을 준다는 건 세금을 낭비하는 거 아니냐. 왜 일하지도 않는데 돈을 주냐’. 정훈 님께서 기본소득으로의 전환, 즉 선별 복지에서 보편 복지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헌법에 보장된 행복권 실현이에요. 헌법에 의하면 열심히 일하는 국민이 아닌 국민도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어요. 근데 까놓고 말해서 통장 잔고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졌을 때 행복권의 의미가 있을까요? 시장을 운영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국민이 적정한 통장 잔고를 갖게 해주는 게 행복권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만으로 행복권을 실현할 순 없겠죠. 건강해야 하고, 무시 당하지 않아야 할 것 아닙니까. 하지만 저는 카페에 가서 메뉴도 보지 않고 아메리카노만 시키는 사람과 가끔은 복잡한 이름의 커피도 시켜볼 수 있는 사람의 삶에 굉장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두 번째로 ‘일하지 않은 사람은 먹지도 말라’ 이런 정신이 통하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해요. 일하는 것과 노는 것의 구분이 이제 거의 없어졌어요. 주말에 맛집 찾아서 친구랑 예약하고, 가서 먹고, 신용카드 결제하는 행위가 일일까요, 노는 걸까요? 노는 거죠. 하지만 놀면서 엄청난 데이터를 만든 거예요. 데이터를 창출해서 그 신용카드 회사에 제공하신 거예요. 이거에 대한 보상도 필요하지 않아요?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하는데. 일의 뒷면에 노는 게 있고 노는 것의 뒷면엔 일이 있게 돼버렸어요. 이런 세상에서 ‘일하지 않은 사람 먹지도 말라’고 하면 도대체 일이 뭐냐는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없어요. 1시간 동안 회사에 가만히 있는다고 생산성이 올라가지 않아요. 가끔 샤워하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나을 수 있어요. 회사에서 9시간 일하는 중에 진짜 집중해서 일하는 시간이 6시간 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을 들었을 때 ‘그러면 안 그래도 노는 애들이 기본소득 받고 계속 놀면 어떡하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지금도 구직 수당 받고 조금 일하고 이런 친구들이 있잖아요. 그래도 저는 조금의 일탈이 있더라도 우리 사회가 선별 복지에서 보편 복지로 가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봐요. 이건 시간 문제에요. 오죽하면 국민의힘의 정강 정책 1호가 기본소득이겠어요.
노동에 대한 시각도 달라져야 한다는 말씀 같은데요. 정훈님의 노동관을 좀 더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믿지 않아요. 가능하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보단 비정규직이 정규직만큼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정규직, 비정규직이 일종의 계급이잖아요. 일의 형태가 계급으로 연결되는 걸 깨고 싶어요. 제가 세계은행에 있을 때 전 직원이 한 만 천명 됐는데, 정규직은 3천~4천명이고 나머지는 다 비정규직이에요. 비정규직은 똑같은 일을 해도 정규직보다 월급을 30~40% 더 줘요. 노동의 유연성을 감당해야 하니까요. 이게 맞는 거예요. 근데 우리는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단일 노동에 대한 임금이 적어요. 말이 안 되잖아요. 뒤집혀야 돼요.
그래서 저는 정의당이 노란봉투법을 들고 나온 게 아쉬워요. 대우조선해양 사태로 배운 게 과연 그걸까 싶었어요. 저는 그때 정규직 노조와 정규직 가족들이 나와서 비정규직 노동자 시위에 항의하는 장면이 가장 아팠어요. 노-노 갈등이 생긴 거예요. 그 원인은 노동의 양극화, 노동의 이중 구조에요. 정의당이 정말 노동을 생각하는 정당이라면 이를 해결하는 연대임금제 같은 걸 들고 나왔어야 해요. 정규직 노조의 천국을 만들기 위한 노란봉투법이 대우조선해양의 가장 중요한 교훈이라는 데 전 동의할 수 없어요. 얼마 전에 SPC 노동자들이 시위할 때, 민주노총이 도와준다고 했지만 거부했어요. 노조 가입할 생각이 없지만, 노조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에게도 시위할 수 있는 노동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요. 이게 맞다고 생각해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정치인이 아닌 사람들은 원하는 정치를 위해서 투표 말고 대체 뭘 할 수 있을까요?
어떤 교수님을 만났는데 그분이 그러셨어요. 정치인들의 정치보다 더 무서운 정치가 대학 정치라고요. 대기업에 다니시는 분은 사내 정치가 더 무섭다고 할 거예요. 정치가 없는 곳이 없어요. 정치라는 건 결국 이해관계가 충돌했을 때 조율하는 과정이에요. 이해관계가 충돌하지 않으면 정치까지 오지 않아요. 노사가 잘 협의하는데 정치가 끼어들 이유가 없잖아요. 쟁의를 일으키니까 정치가 개입하는 거죠.
우리 사회는 갈등과 분쟁이 일어났을 때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아직 잘 몰라요. 쉽게 얘기해서 아직까지 ‘옥상으로 올라와’ 같은 식이에요. 누가 힘이 센지 보려고 윽박지르고요. 접촉 사고 나면 소리 지르는 사람이 나올까 봐 겁나잖아요. 이렇게 갈등을 조율하는 방법을 모르는 게 한국 정치의 미숙함의 본질일 수 있어요.
일반 정치에 관심이 없어도 주변에서 갈등은 항상 볼 수 있잖아요. 가족 안에서도요. 이걸 잘 조율하는 방법을 키워나가는 게 성숙한 정치 환경의 중요한 씨앗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투표해 주시고, 후원해 주시고, 마음에 드는 정치인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시는 것도 너무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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