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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심판을 지나는 마음가짐

건조
건조
- 11분 걸림 -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이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지난 13일 헌재가 정한 8번의 변론까지 끝났어요. 18일 추가 변론을 진행하기로 했는데, 마지막 변론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변론이 끝나면 2주 뒤 선고가 나옵니다. 3월 초 탄핵이 결정되고, 5월 초 대선을 치르는 시간표가 그려져요.

법조계, 정치권에서는 탄핵이 인용될 것이란 의견이 대다수입니다. 국회에 군을 투입한 것만으로도 국헌 문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긴장을 늦추긴 일러요. 탄핵 심판에서 윤석열 측이 보여준 태도와 그 파장은 계엄 직후보다도 극렬한 갈등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탄핵이 인용된 후 우리가 감당해야 할 혼란은 상상 이상일지도 몰라요.

탄핵 심판의 주요 장면을 따라가며 다가올 봄을 예측해봅니다.

©경향신문/정효진 기자
©경향신문/정효진 기자

탄핵심판의 쟁점

헌재가 정리한 탄핵소추 사유는 아래의 4가지입니다.

  • 계엄 선포 행위
  • 계엄사령관에게 포고령 1호(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를 발표하게 한 행위
  •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국회를 봉쇄하고 진입해 국회 활동을 방해한 행위
  • 군대를 동원해 영장 없이 중앙선관위를 압수수색한 행위

이 쟁점들은 내란죄와도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지만, 헌재에선 내란죄 성립 여부를 다루지 않기로 했습니다. 내란죄는 형법 위반이므로 헌법재판이 아닌 형사재판에서 판단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두 재판을 동시 진행하면 탄핵심판이 지연될 우려도 있었어요.

윤석열 측과 국민의힘은 내란죄를 다루지 않기로 했으니 탄핵안 표결을 다시 해야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윤석열의 주장과 태도

한국갤럽의 결과는?

  • 이후에도 엉터리 여론조사가 끊이지 않고 있으나, 가장 공신력 있다는 평가를 받는 한국갤럽의 1월 17일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힘의 지지율(39%)이 민주당(36%)을 앞지르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성 의견은 57%, 반대 의견은 36%였습니다. 눈여겨볼 점은 직전 조사(1월10일)와 비교해서 탄핵 찬성(64%)은 줄었고 반대(32%)는 늘었다는 점이었습니다.
  • 한편, 조기 대통령 선거가 치러질 시 ‘정권 교체’ 의견(48%)이 ‘정권 유지’ 의견(40%)보다 높았습니다.

왜 자꾸 거짓말을 하는 걸까?

윤석열 측의 주장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에 집중하고 있어요. 계엄은 경고성이었고, 국회를 막으려 한 적도 없고, 포고령도 집행할 의사가 없었기 때문에 탄핵과 내란죄 프레임은 민주당의 정치 공작이며 자신은 피해자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은 설득력이 거의 없습니다. 윤석열 측이 입장을 밝히는 대로 이를 반박하는 진술이 나오고 있어요.

  • 윤석열은 정치인 체포 지시를 증언한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고, 받아적었다는 체포 명단이 여러 개라며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에 홍 차장은 같은 명단을 깨끗이 정리했을 뿐이라고 반박했어요. 더불어 다른 증인들도 간접적으로 정치인 체포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습니다.
  • 최상목 권한대행도 쪽지를 분명히 받았다며 다시 증언했습니다.
  •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은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분명히 받았다고 반박했습니다. 국회의원이 아닌 ‘인원’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의결정족수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국회의원을 가리키는 게 확실하다는 겁니다.
  • 어제는 계엄이 경고성이었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핵심 증거가 나왔습니다. 계엄 준비에 관여한 노상원 전 사령관의 수첩에서 지난 총선 전부터 계엄을 준비한 정황이 발견됐어요. 정치인 사살부터 전 국민 출국 금지, 북한과의 거래, 장기집권 계획까지 암시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윤석열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지자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탄핵심판을 하루라도 더 지연시키는 게 중요합니다.

  • 물고 늘어질 수 있는 명분을 하나라도 더 만들면 됩니다. 논리적 타당성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절차에 문제가 있다며 체포영장 집행을 거부하던 때와 같은 전략입니다.
  • 탄핵이 예정되어 있더라도 이 전략은 유효합니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헌법재판관 2명의 임기가 만료되는 4월까지 재판을 끄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헌재가 6인 체제로 돌아오기 때문에 헌재를 마비시킬 수 있고, 그 사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재판이 대선 출마 제한으로 마무리 될 수도 있습니다.
  • 3월에 결론이 나더라도 재판을 끌수록 국민의힘에 대한 여론은 완화될 수 있습니다. 시민들의 피로도가 올라가고 탄핵 찬성 측의 힘이 빠질 거라 기대하는 겁니다.
  • 윤석열이 진심으로 탄핵을 막고 내란죄에서도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 믿는지는 미지수입니다. 어느 쪽이든 재판 지연이 이득이 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갈등, 어떡하지?

극우세력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어요. 국민의힘에서 온건파로 분류되던 이들도 집회를 방문하고, 비공식적으로라도 예배에 참석하며 연결고리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영향력을 고려할 때, 전광훈 목사로 대표되는 극우세력은 더 이상 무시할 수 있는 ‘소수’가 아닙니다.

그들이 대표성을 획득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우리’와 ‘그들’을 구분짓게 됩니다. 계엄부터 탄핵 정국을 지나오며 ‘이해할 수 없는 그들’에 대한 분노는 커져만 갔습니다. 소수의 일탈이라며 무시하기엔 그들이 보여준 행태가 너무나 충격적이었고, 국민의힘이 속절없이 끌려가는 모습 역시 실망스러웠죠. 거짓과 왜곡이 난무하는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선동에 나선 세력이 득세하는 과정을 보면서 이미 지쳐버린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역사는 이들이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줍니다. ‘우리’는 영원히 ‘그들’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고, 받아들일 수 없는 역사가 반복될 겁니다. 설득을 포기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그러나 공존을 포기할 순 없습니다. 반대 세력을 잡아들여 섬에 몰아넣는 일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고,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양극화된 정치를 해결할 마법 같은 해결책은 없을 겁니다. 개헌도, 다당제도 한 번에 문제를 해결해주진 않습니다. ‘그들’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당장은 제도 정비와 마음가짐 정도의 얘기밖에 드릴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최소한의 규칙은 함께 지킬 수 있도록 제도의 허점을 정비하고, 기준을 벗어난 행위를 억제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처벌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지치지 말아야 합니다. 규칙을 지키거나 바꿀 것을 얘기할 때는 지속성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문제에서 잠시 벗어나 ‘우리’의 성취, 앞으로 나아간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다. 지금과 다른 시공간에서 누군가는 ‘그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해냈습니다. 그 이야기를 꺼내보며 영감을 얻다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시대를 건너가는데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by 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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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침착하게 바라볼 때 나오는 날카로운 분석을 좋아합니다. 동시에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다정함을 글 쓰는 동력으로 삼고 싶습니다.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변화의 출발점이라고 믿습니다. 애정클에서 애(愛)든 증(憎)이든, 정치를 대할 때면 쉽게 끓어오르는 마음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변화를 추구하는 마음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합니다. 최근엔 일상을 가꾸고 나를 돌보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