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노조 파업: 파업은 정치일까?
아무튼 정치 때문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뉴스를 분류하는 4가지 카테고리는 사실 크게 보면 다 정치로 통한다.
일상의 현상들, 요즘 뜨는 이야기, 어쩌다 일어난 것 같은 사건 사고들에서 정치와의 연결고리 찾기.
11월 30일, 퇴근길 서울 지하철에서 진풍경이 펼쳐졌다. 개찰구까지 줄이 늘어섰고 일부 역에선 승강장 진입이 통제됐다. 경광봉을 든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은 다 쉬어가는 목소리로 ‘00역 방면 못 가십니다’를 연신 외쳤다. 역에서 출발하지 않고 멈춰선 지하철도 많았다. 당시 서울 2호선의 배차간격은 20분이었다.
원인은 서울교통공사의 파업이다. 서울교통공사노조는 지난해부터 서울교통공사가 제시한 인력 감축안에 반대하며 실랑이를 해왔다. 지난 25~29일 세 차례에 걸쳐 단체교섭이 이뤄졌지만, 공사 측에서 인력 감축안 철회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협상이 결렬됐다. 결렬 직후 노조는 예고했던 대로 총파업에 들어갔다. 파업 첫날 오후 8시부터 노사 교섭은 다시 시작됐고, 공사가 인력 충원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 타결됐다. 1일부터는 모든 호선이 정상운행으로 돌아왔다.
여기까지 보면 상황이 일단락된 듯 하다. 하지만 서울교통공사노조 파업 정국이 던진 화두, ‘정치파업’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서울 지하철 파업은 정치파업?
서울교통공사노조는 총파업을 일주일 앞둔 23일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공개 면담을 요청했다. 노조에 따르면 공사의 인력 감축 결정은 서울시와의 사전협의가 있었기에 진행됐다. 서울교통공사는 서울시 산하의 공기업으로, 서울시의 교통정책에 따라 운영 방향이 결정된다. 따라서 이번 인력 감축안에도 서울시의 책임이 있다는 게 노조 측의 주장이다.
오세훈 시장은 면담을 거부했다. 그의 답변을 인용해보자면 이렇다.
서울시에 20개 넘는 투자기관이 있는데 시장이 기관 노사협상에 하나하나 직접 개입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파업은 정치적인 파업이라고 개념 정의를 하고 싶다. 교통공사노조가 표면적으로 내세운 파업 이유는 구조조정 철회, 혁신안 철회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지금 본격화하고 있는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파업에 다 연결돼 있다는 게 저희 판단이다. 이번 협상 결렬 과정에서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는 여러 장면이 목격됐다.
오세훈 시장이 이번 파업의 배경으로 언급한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파업’을 잠시 짚어보자. 11월 말에는 서울교통공사노조를 포함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에 소속된 기관들의 연이은 파업이 있었다. 화물연대는 24일부터 무기한 파업에 들어갔다. 25일에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조와 학교 비정규직 노조가 파업을 진행했다. 2일에는 전국철도노조가 파업 진행 예정이었으나 당일 새벽 협상 타결로 철회됐다. 교통공사노조 파업 역시 이 흐름의 일환으로, 결국에는 정부를 압박하려는 민주노총의 정치적 의도가 배후에 있다는 게 오 시장의 해석이다.
교통공사노조는 ‘정치파업’임을 부정하며 이번 파업이 ‘시민 안전을 위한 투쟁’이라고 반박했다. 구조조정이 안전 인력 감축으로 이어져 시민들과 공사 직원들의 안전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공사의 인력 감축안에는 △기동검수반 축소·외주화 △역사 누수관리 업무 외주화 △궤도유지보수 외주화 등 안전과 관련된 업무가 감축 대상에 포함돼있다. 인력 감축안은 서울시의 공사 적자 해소 자구책 요구에 따라 고안됐다.
이번 파업에 있어 ‘정치파업’이 과연 오명인지를 따져볼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 위해선 우선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봐야겠다. 정치파업이란 무엇인가? 정치적인 파업과 정치적이지 않은 파업의 차이는 무엇인가? 정치적 파업은 왜 문제적인가?
'정치파업', 법으로 따져보기
정치파업은 새로운 표현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정치파업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은 1996년부터다. 당시 노동계는 여당이었던 신한국당이 노동법 개정안을 단독 통과시킨 일명 ‘노동법 날치기’에 반발하며 총파업에 들어갔다. 이 파업은 1996년 말부터 1997년 1월까지 장기간 지속됐다. 당시 법원은 해당 파업이 근로조건 향상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회사가 아닌 국가에 대한 파업이므로 불법이라 판단했다.
현행법에서 정치파업에 대한 정의를 따로 두고 있지는 않다. 다만 단어의 용례와 노동법계의 논의를 종합해 의미를 정리해보자면 아래 두 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하는 파업
- 법 제정, 정책 변화 등 정치적 요구 사항을 내세우는 파업
정치파업이 정당한 파업이 될 수 없다는 시각은 이 두 가지 조건에 근거한다. 법원은 파업의 형법상 정당성이 1) 파업의 주체가 단체교섭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자이고 2) 그 목적이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한 노사간 교섭 조성에 있어야 인정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국가를 상대로 한 정치적 요구사항, 국회와 정부가 권한을 가지고 있는 법 개정 요구사항은 교섭대상이 될 수 없다.
다만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 사용자가 국가라고 판단될 때다. 공무원, 공기업 근로자 등 사실상 국가 사용자인 노동자는 근로조건 또는 근로자의 지위와 관련된 사안을 요구하기 위해 국가 대상으로 파업을 할 수 있다. 노동법계에서는 이러한 파업을 경제적 정치 파업이라고 부른다.
한편 순수하게 정치적인 주장을 하는 파업도 있다. 이를테면 정권 퇴진, 전쟁 반대 등을 주장하는 데 있어 파업을 정부 압박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순수 정치 파업이라 부른다. 이러한 파업을 민주주의 국가 시민의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것으로 여기는 입장도 있다.
한국의 노동법계는 어떤 것이든 정치파업은 위법이라는 입장과 경제적 정치파업은 정당하다는 입장으로 양분되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정치파업이라는 표현을 비판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대부분 순수 정치 파업의 성격을 겨냥한다. 특정 파업이 정당한 명분 없이 정치적 목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따라서 이기적이라는 해석이다. 이때 정당한 명분이란 노동자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문제를 말한다. 즉 ‘파업을 할 만큼 어려운 상황도 아니면서 무언가를 볼모로 잡고 정치적 목적으로 파업을 해 피해를 끼친다’는 주장이다.
결국 개념정의의 주체는 정치
문제는 순수 정치 파업과 경제적 정치 파업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 인상은 한국 사회 전반에서 논의가 필요한 정치적 문제다. 동시에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들의 사용자가 국가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총파업은 순수 정치 파업인가, 경제적 정치 파업인가? 정치적 파업인가, 비정치적 파업인가?
이러한 구분은 ‘정치’라는 개념을 사용할 때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정치가 공적인 영역에서의 이해관계 충돌을 다루는 것이라면, 정치적 파업과 비정치적 파업을 구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경제적 정치 파업만을 인정하거나 모든 정치파업은 위법적이라는 입장은 ‘정치적’이라는 표현을 보다 좁은 의미에서 사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공공부문에서 정부가 행사하는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 또는 이념적 동기를 가진 행위를 ‘정치적’이라 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정치적 요구와 정치적 요구가 구분되고, ‘노동자들의 요구가 정치적 성격을 띄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이 세워질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정치파업’에 대한 논쟁은 정치가 파업을 다루는 방식의 문제기도 하지만, 정치가 정치를 다루는 방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현재 정치파업에 대한 논의는 적법·위법 여부 판단에 한정돼있다. 동시에 노동법상 인정되는 쟁의행위의 목적 인정범위는 좁고, 정치파업에 대한 헌법적 수준의 논의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나서 특정 파업을 ‘정치파업’으로 정의한다는 것은 해당 파업이 위법하거나 부적절하다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노동자의 경제사회적 지위가 정치적으로 다뤄지기 어렵게 만든다.
다시 서울교통공사노조 파업으로 돌아가보자. 앞서 말했듯 교통공사는 서울시 산하 공기업이기 때문에 공사 직원들의 근로조건도 서울시 정책의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면 이번 파업은 경제적 정치 파업의 성격을 띈다. 즉, 서울시라는 지자체가 사용자의 지위를 갖는다. 오세훈 시장의 발언을 보면, 서울시 역시 이를 인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서울시가 협상 대상으로 움직이길 거부하며 정치파업이라는 정의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은 정치의 역할이 무엇인지 질문하게 만든다. 정치가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지,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 정치적인 것이 문제로 여겨지는 영역은 무엇인지. 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주체는 결국 정치다.
글: 에디터 건조🍂
참고문헌
강희원, 2010, 「이른바 “정치파업”과 우리 노동헌법」, 『노동법연구』 28, 서울대학교노동법연구회, 145-230
김도훈, 2018, 「정치파업의 정당성」, 학위논문 (석사)-서울대학교 대학원 : 법과대학 법학과
박제성, <정치 파업의 개념과 정당성>, <<노동법률>>,20080901, https://www.worklaw.co.kr/view/view.asp?in_cate=102&gopage=1&bi_pidx=21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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