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창작물을 판매하는 회사 키뮤스튜디오에는 다른 회사에 없는 직책이 있습니다. 일명 '특디', 특별한 디자이너입니다.

특디는 발달장애를 가진 디자이너입니다. 장애이슈를 포함한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며 세상과 장애 사이 경계를 허물고 있습니다.

지난 22일, 장애인 직원과 비장애인 직원이 함께하는 키뮤스튜디오 체육대회를 찾았습니다. 특디의 재능을 발굴하고 세상과 연결해온 남장원 대표를 만나, 장애인, 가치를 실현하려는 기업, 그리고 정치의 관계를 물었습니다.

경계를 허문 디자인, 경계를 넘은 고용

키뮤스튜디오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공익 근무를 복지관에서 했는데, 제가 미술 전공자다 보니 복지관에서 미술 교육을 부탁했어요. 그래서 발달장애인 직업재활팀, 시니어팀, 중학생팀 등에서 미술 교육을 했어요. 근데 이분들이 그린 원화가 디자이너 관점으로 봤을 때 너무 매력적인 거예요. 교육 결과물은 보통 폐품으로 내는데 그러기 아깝더라고요.

처음엔 그런 작품 몇 개를 가져와서 친구와 얘기하다가, 이 작업을 디자인으로 확장해서 유의미한 결과물을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서 교육, 원화 작업, 디자인 작업을 하게 됐죠. 사회단체, 보건복지부 등의 캠페인을 기획하는 식으로 사업을 하다가 2018년에 키뮤스튜디오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와 부부가 됐죠.

장애인 직원 고용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충현복지관의 비전대학교라는 루트가 있어요. 발달장애인 대학교인데, 저희가 거기서 키뮤 디자인학과를 운영하거든요. 이곳에서 저희에게 직접 교육받은 분들이 채용될 수 있어요. 직무 체험이나 외부 의뢰를 통해 교육받은 분들도 취업되는 경우가 있고요. 타 기업과 저희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해 발달장애인 아티스트 발굴 공모전을 열기도 해요. 거기서 선발된 인원 중 교육을 진행해 오는 분도 있어요.

ESG 캠페인이나 사회공헌 활동을 진행하며 저희를 찾기도 하는데요. 사실 발달장애인과 작업하는 회사라는 걸 모르고 디자인 협업, 콜라보를 먼저 요청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저희가 어떤 기업인지 소개하면서 사업이 확장되기도 하죠.

‘콘텐츠로 세상의 경계를 허문다’가 키뮤스튜디오의 미션인데요. 어떤 의미인가요?

디자인으로 사업을 하다 보니 조직 자체가 창의적이고, 저희가 만드는 모든 것이 콘텐츠예요. 디자인뿐만 아니라 전시, 캠페인, 영상 작업도요. 그 콘텐츠에 사회적 가치를 담으려고 늘 노력해요. 모든 프로젝트에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나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세상에 나에게 만족을 주고 재미있는 콘텐츠가 많지만, 좀 더 의미와 메시지를 담은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지금까지 어떤 사회적 주제를 다루셨나요?

발달장애인 이슈 외의 첫 번째 주제는 난민이었어요. 그때 전시를 하면서 사람들이 좋은 메시지를 진짜 좋아한다는 걸 느꼈어요. 음식도 맛이 있어야 좋잖아요. 그런 것처럼 메시지를 담은 콘텐츠도 퀄리티가 좋으면 더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더라고요. 이후 유기동물, 환경, 정신건강 등의 주제를 담았어요. 매년 새로운 주제가 서너 개는 나오는 것 같아요. 올해는 건강, 교통약자, 그리고 다양성과 포용성이었어요.

주제 선정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도 있고, 다른 기업에서 원하는 얘기를 발전시켜서 다루기도 했어요. 반려동물, 환경, 정신건강은 내부 프로젝트였고요. 건강은 한국건강관리협회와 협업해서 콘텐츠와 전시를 기획했고, 교통약자는 티머니복지재단과 함께 준비해서 DDP에서 전시회를 열었죠. 협업 단체가 가지고 있는 미션이 더 많이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저희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요. 이런 시도가 이어지다 보면 가치가 더욱 확장되지 않을까 하면서요. 저희도 혼자 하는 것보다 같이 하는 게 좋고요.

시스템 변화의 전제, 실험과 설득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선 비생산성을 이유로 장애인을 노동 시장에서 배제합니다. 노동과 자립보단 돌봄의 관점에서 장애인을 바라보기도 하고요. 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비장애인으로서 이런 관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발달장애인에게 돌봄이 필요한 건 부정할 수 없어요. 장애인에게 지금 산업 구조에 필요한 생산성을 요구하기도 어렵고요. 직업의 선택권이 별로 없어요. 대체로 제품 포장, 음료 제조 같은 거죠. 그래서 저희는 생산성보다 재능의 관점에서 접근하려고 해요. 예를 들어 색채 감각이 좋으면 저희와 일할 수 있어요.

사실 저희도 잘 하는 디자이너 한 명을 뽑는 게 더 생산성이 높아요. 하지만 그보다는 장애인 직원들이 만드는 가치에 초점을 두는 거죠.

경계를 허물기 위해선 경계의 안팎을 오가야만 하죠.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경계부터 장애계 안의 경계까지 다루려면 섬세한 접근이 필요할 것 같아요.

저희는 홍보물에서 장애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요. 편견을 없애기 위한 건데, 외부에서는 왜 홍보를 더 안 하냐고 하죠. 저희는 장애라는 구분 없이 이분들과 일하고 싶은데 처음부터 그런 구분을 지어버리면 되려 편견을 강화할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장애와의 연관성을 드러내는 활동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두 방향이 부딪히는 것처럼 얘기해요. 사실 그럴 필요가 없거든요. 각자 나름대로 성장하면 되는데 한국 사회는 방향을 모으려는 성향이 강한 것 같아요. 정치적으로도 마찬가지고요. 기업도 그렇고 정책도 유기적으로 바뀌어야 해요. 다양한 실험을 해보면 좋겠어요.

장애인 의무고용 제도와 관련해서도 재고해봐야 할 관점이 있을까요?

저희 회사의 브릿지팀이 하는 일이 장애인 디자이너의 취업 연계에요. 일명 브릿지 서비스인데요. 일반 기업에서 발달장애인 고용을 하면 관리가 사실 불가능하죠. 업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고요. 그러니 기업에서 장애인을 직접 고용하고, 복지 혜택으로 키뮤쪽으로 미술, 디자인 교육을 보내는 거예요. 교육을 통해 나온 원화를 바탕으로 기업에서 원하는 디자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죠. 이 파트너십을 통해 기업은 관리 비용 절감과 함께 디자인 서비스까지도 제공 받을 수 있어요.

많은 기업이 실제로 고용을 하려고 노력해요. 기업에서 뽑고 싶어 해도 실제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문제도 있어요. 장애인 당사자들의 준비도 필요해요. 미국에서 저희가 협업한 작가들을 고용을 하거나 라이센스를 주려고 했더니 거부하더라고요. 그러면 국가 지원이 끊겨서요. 그래서 지원금을 개인이 아닌 복지 단체에 주고 돌봄, 교육 인프라를 더 제공하기도 해요.

임팩트는 곧 시스템 변화라고 생각해요. 누가 잘못했다, 못됐다 이런 얘기보다는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 뭐가 필요한지에 대한 얘기가 많아지면 좋겠어요. 이를테면 장애인 직업 개발 R&D도 필요해요.

반대로 꼭 고용이 답인가 싶기도 해요. 비장애인도 기술 발전으로 대량 실업을 겪을 거란 얘기가 나오잖아요. 그런데 한국의 고용 정책은 여전히 제조 생산 산업 때의 마인드인 것 같아요. 시급을 중시한다거나요. 장애인뿐만 아니라 전체 고용 시장이 과도기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일하고 있지 않은데요.

더 큰 임팩트를 꿈꾸다

해외에서도 전시회와 협업을 진행하고 계시죠. 얼마 전엔 뉴욕에서도 전시회를 여셨는데.

뉴욕 전시가 정말 의미 있었어요. 올해 10월 12일부터 16일까지 <KIMU LOVES NEW YORK>이라는 전시를 진행했는데요. 키뮤스튜디오 프로젝트 중 중 국내, 해외 통틀어 가장 규모가 큰 단독 전시였어요.

미국의 발달장애인 아티스트인 피터와 인호가 협업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더불어 AHRC라는 뉴욕 발달장애인 단체와 함께 전시 기념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협업 작품을 만들어 전시했고요. 덕분에 뉴욕 에디션 작품이 새롭게 나왔죠. AHRC 측에서도 많이 참여했고, 작품 판매도 잘 돼서 내년에도 뉴욕 전시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올해 10월 초에 싱가포르 차임스에서도 전시를 열었어요. 프랑스의 인테리어 박람회 ‘메종오브제’에 출품도 하고요. 당시 반응이 좋아서 얼반아웃피터, 헤리티지 백화점 등에서 연락이 오고 납품 논의도 했어요. 하지만 제품보다 콘텐츠로 먼저 사람들한테 다가가고 싶었어요. 뉴욕 전시를 기획한 것도 해외 진출을 위해서 현지화된 콘텐츠 브랜딩을 우선시하기 때문이에요.

AHRC에서도 결국 현지의 발달장애인들이 받는 혜택을 중시하더라고요. 미국에도 똑같은 문제가 있으니 현지에서도 이런 사업이 이뤄지고, 지역에 혜택이 돌아가면 좋겠다는 거죠.

그래서 키뮤스튜디오 시스템을 세계 여러 도시에 만들어가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요.  AHRC 같은 단체와 함께 미술에 재능 있는 친구들을 발굴하고, 거점별로 작품을 만드는 거죠. 내부에선 그 작품들을 묶어서 시너지를 내고요.

키뮤스튜디오 같은 임팩트 사업에 정부는 어떤 지원을 하고 있나요?

국내보다는 해외의 임팩트 펀드가 더 규모가 크고 다양합니다. 예를 들면 장애 관련 펀드가 따로 있기도 하고, 사업비를 대출해주고 미션을 달성하면 면제해 주는 펀드도 있어요. 성장과 매출보다는 임팩트 성과에 집중되어 있죠. 한국의 임팩트 펀드는 예산규모가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 해외 임팩트 펀드의 규모보다는 작긴 해요.

그런 분위기인 만큼 소셜벤처 기업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더 필요하겠군요.

임팩트 달성에 대한 평가는 현재까지는 기업의 자체 평가에 의존할 수 밖에 없어요. 하지만 최근에는 정부 차원에서 임팩트 성과에 대한 평가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고 해요. 이는 정부가 소셜벤처와 임팩트 시장을 주시하고 있다는 신호여서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사업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지자체와 함께 교육 인프라를 확장해보고 싶어요. 발달장애인은 물리적인 돌봄을 제공할 공간이 필요해요. 아이를 학원 보내는 것과 똑같아요. 학원처럼 돌봄과 교육을 모두 제공하는 성격의 유료 아카데미를 만들면 어떨까 해요. 2008년부터 키뮤에서 무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무상으로만 진행하니 규모 확장이 어렵더라고요. 유료 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무상 교육 프로그램도 양적·질적 성장을 이끌어내고 싶어요.

관련해 정부와 협업을 할 수 있다면, 지자체에서 바우처를 제공해 저희 아카데미에서 쓸 수 있게 하거나 우수한 인재를 뽑아서 저희 쪽으로 보내주는 방식이 가능하겠죠. 나아가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교육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목표에요.

글로벌하게 사업을 진행하면서 각 지역 아티스트들을 연결할 방법도 고민하고 있어요. 키뮤 뱅크라는 걸 기획하고 있는데요. 지금 원화가 4만 개 이상 쌓여 있어요. 이걸 벡터화해서 이미지 생성 AI에 활용할 수 있게 오픈하는 거죠. 그러면 라이센스 구매를 통해 수익을 만들 수 있어요.

궁극적 목표는, 발달장애인 아티스트들이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을 때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거예요. 발달장애인은 노후가 빨리 와서, 일을 오래 하기 어렵거든요. 그때를 대비한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요.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기업인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은 무엇일까요?

예전엔 저도 미션 중심으로 생각했어요. 하지만 기업이기 때문에 지속 가능성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결국 성장해야 해요.키뮤스튜디오도 지속가능성, 성장, 임팩트를 모두 중시하며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 이 기사는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재단법인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