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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필 정신영 대표: 난민은 테러리스트도 노예도 아니다

문화적인 인종차별과 정책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애정클
애정클
- 27분 걸림 -

어느덧 연말입니다. 소중한 사람들과 선물을 주고받고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시기죠. 2023년 애정클의 마지막 인터뷰에선 취약한 이들을 위한 ‘선물’을 사시사철 준비하는 사람을 만나봤습니다. 공익법센터 어필정신영 대표입니다.

어필은 취약한 이주민과 외국인을 지원하는 공익변호사 단체입니다. 난민, 구금된 이주민, 무국적자, 인신매매 피해자, 한국 기업 인권침해 피해자를 수임료 없이 변호합니다. 난민 처우와 인식 개선을 위한 활동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정신영 대표는 자신이 누리고 있는 평범한 삶이 우연히 주어진 ‘선물’이라 말합니다. 어필은 12년째 그 ‘선물’을 받지 못한 이들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최근 정 대표의 우려는 정부의 이민 정책이 그것을 앗아가려는 방향에 가깝다는 겁니다. ‘기회의 땅’ 한국을 찾은 이들이 마주한 건 세련된 만큼 날카로운 차별이었습니다.

따스함이 불안이 되기 시작한 12월 13일, 어필 사무실에서 정신영 대표를 만나 난민과 이주민을 둘러싼 오해와 그들이 처한 현실,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선에 대해 물었습니다.

어필 정신영 대표 ⓒ애증의 정치클럽

‘노오력’이 통하지 않는 세계

삼성에서 엔지니어로 일하시다 로스쿨에 진학해 어필로 오셨다고 들었어요.

사실 도피였어요. 저는 정말 평범한 사람이에요. 회사가 너무 다니기 싫어서 여러 진로를 알아보던 중에 제일 먼저 합격한 학교에 간 거거든요. 살면서 변호사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포장이 안 되는 이야기에요. (웃음)

한동대 로스쿨이라는 독특한 학교에 있었어요. 미국 커리큘럼을 따르지만 미국 로스쿨은 아니에요. 그래서 교수님들도 독특한 분들이 많았어요. 미국에서 평범하게 변호사로 살 수 있는데 먼 한국에 있는 시골의 작은 학교에서 수업하며 행복하게 사는 분들이었어요. 교수님들을 보면서 남들처럼 안 살아도 된다는 걸 깨달았죠.

제가 특히 좋아하는 교수님이 미국에서 NGO를 하고 계셨어요. 인도에 있는 인신매매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인턴을 할 기회를 얻게 되었어요. 비슷한 일을 하는 NGO에서 어디에서 펀딩을 구하는 지 리서치를 하고 프로포절을 쓰는 일을 했어요. 그러면서 세상에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저는 세상이 엉망이라 불평만 했는데 이런 사람들 덕분에 세상이 이나마 유지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 뒤로도 NGO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졸업 후 김종철 변호사가 어필을 만들었다는 걸 들었어요. 사실 저는 인권의 ‘ㅇ’에도 관심이 없었는데 김 변호사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말 필요한 일이더라고요. 그래서 인턴으로 들어갔고, 2012년도부터 상근으로 일했어요. 너무 재미있어서 10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어요. 어필에서 일하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지 않게 됐어요.

인권의 ‘ㅇ’도 몰랐다면, 어필에서 일하면서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일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서 만난 에티오피아 난민이 있어요. 2013년 난민법 시행 이후 공항에서 난민 신청을 할 수 있게 됐지만 그땐 할 수 없었는데요. 그분이 인천공항에서 난민 신청을 했다가 거부 당했어요. 두 달 정도 구금됐다가 강제 송환 당했는데, 에티오피아로 보내지 못해서 타고 온 비행기의 환승국인 태국으로 보낸 거예요. 근데 여권이 없어서 태국에서도 7개월 이상 환승 구역에 갇혀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저랑 김종철 변호사가 태국 공항으로 갔어요.

만나보니 그분이 제 나이 또래였어요. 어렸을 때 아버지가 반군 활동을 하러 떠났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끼리 시신도 없이 장례를 치르다가 잡혀간 거예요. 반군의 죽음을 추모한다고요.

그래서 도망치고 숨어 산 이야기를 들으면서 처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노력한다고 인생이 잘 풀리는 게 아니구나.’ 그전까지 저의 세상에서는 열심히 하면 되는 거였는데, 그 인과율을 적용할 수 없는 사람을 본 거예요. 내가 노력으로 얻었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사실 선물처럼 주어진 것들이란 걸 깨달았죠. 한국에서 평범하게 살면서 가질 수밖에 없었던 그런 세계관이 어필에서 일하면서 바뀌었어요.

한국에 사는 아프리카계 여성난민단체 와이즈우멘협회가 어필에 남긴 감사패 ⓒ애증의 정치클럽

난민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와 정책에도 그런 ‘한국적 세계관’이 녹아 있을 수 있겠군요.

2018년에 제주도에 온 예멘 난민 분들이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끌었잖아요. 그전까지 한국 사회에서 난민은 가시화되지 않았어요. 예멘 난민이 화제가 되면서 난민이 한국을 찾아온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됐고, 동시에 난민을 받고 싶지 않다는 메시지도 선명하게 드러나게 됐어요.

그때 댓글들을 보면 우리는 6.25 때 나라도 지키고 민주화 투쟁해서 민주화도 이뤘다, 노력해서 이렇게 된 거니까 너희도 돌아가서 나라를 지키라고 해요. 심지어 더운 나라 사람은 게을러서 못 사는 거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난민을 실제로 만나보면 열심히 한다고 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난민들이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던 이유를 들어보면 독재자를 몰아내기 위해 데모를 하다가 쫓기게 되고, 그 탄압이 심해져 외세가 개입했다가 전쟁이 나는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어요. 또 식민지의 잔재로 강제로 한 나라가 된 곳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성공하기 요원한 것이죠. 너무나 헌신적으로 민주화 운동·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패해서 난민이 된 모습을 봐요.

한국의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부인할 생각은 당연히 없어요. 하지만 모든 게 노력해서 얻은 자격의 문제는 아니잖아요. 요새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도 순수한 능력이라는 게 과연 어디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거고요. ‘내가 이만큼 했으니까 이만큼 나오는 거’라는 관점으로 스스로와 타인을 바라보면 빡빡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인도네시아에서 이뤄진 한국 기업의 인권 침해와 삼림 파괴를 다룬 다큐멘터리 ‘잃어버린 파푸아: 숲을 지켜야 사는 사람들’. 사단법인 기후솔루션과 어필이 공동 제작했다. ⓒ어필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에게 300년 넘게 식민 지배를 당했어요. 근대 국가가 되기 전에는 천 개가 넘는 섬이 별개의 왕국이었어요. 문화적 다양성이 굉장히 크죠. 그런데 아직 독립운동을 하는 지역도 있어요.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하면서 인도네시아에 강제합병을 당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저항하는 거죠.

그 외에도 여러 나라에서 벌어지는 소수민족 독립운동이나 독재자를 몰아내기 위한 싸움이 얼마나 치열한지 보면 그런 터무니없는 말은 할 수가 없어요. 인도네시아 역사를 배우면서 너무 억울했어요. ‘나는 왜 학교 다닐 때 이런 걸 못 들어봤을까. 왜 유럽 역사만 잘 알지?’ 제 안에서도 세계사가 유럽 중심으로 형성돼 있더라고요.

그게 원인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다양한 나라의 역사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거죠. 그래서 난민, 이주민들에 대해 그저 가난한 나라에서 온 못사는 사람이라고 납작하게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주민, 테러리스트 또는 노예

난민 하면 테러리스트, 범죄자를 떠올리는 시선도 있죠.

사실 난민은 법적인 개념이에요. 안전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지위이지 정체성이 아니죠. 하지만 우리 사회는 난민 하면 무슬림이라고 생각하고 공포를 느껴요. 낯설다는 건 이해해요. 우리나라에 없던 사람들이고, 뉴스도 테러와 관련된 걸 많이 접하죠. 실제로 만나보지 않고 무슬림, 난민을 해석하기엔 어려울 수 있어요.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서 이해할 기회를 가지면 오해가 많이 풀릴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난민, 이주민, 인종, 종교의 문제가 다 섞여서 얘기되고 있어요. 국내 외국인들 중 난민도 있고, 이주 노동자도 있고, 결혼 이주민도 있고, 유학생도 있어요. 각자가 가진 배경이 다 달라요. 이 사람이 한국에 왜 왔는지,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지 개인들의 이야기를 더 궁금해하면 더 입체적으로 이주민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그렇다면 난민의 법적 지위는 어떻게 정의되나요?

한국이 난민을 보호하겠다고 결정한 건 난민협약이라는 국제협약을 비준해서예요. 인종, 민족, 종교, 정치적 의견, 특정 사회 집단 구성원이라는 5가지 사유 때문에 자국의 보호를 못 받거나, 보호받길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난민으로 인정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 협약이 2차 대전 끝나고 생긴 거라 한계가 많아요. 난민 사유 중에 전쟁은 없잖아요. 하지만 난민이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전쟁이거든요. 그럴 경우 보통 인도적 체류자라고, 난민보다 보호 수위가 낮은 체류 자격을 줘요. 한국에서도 미얀마,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을 인정하지 않았어요.

최근에 우리 사무실이 러시아 병역 거부자 때문에 제일 바쁜데요. 병역 거부자도 절대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아서요. 저희는 정치적 박해라고 주장하지만, 한국에서는 특히 민감한 문제에요.

한국의 난민 인정률이 너무 낮다, 난민 협약 비준한 의미가 없는 수준이라는 비판도 자주 보여요. 왜 한국은 난민에 대해 이렇게까지 경직된 걸까요?

2022년 난민인권센터에서 집계한 난민 인정률이 2.2%에요. 가족 결합, 재정착 난민 말고 법무부에서 판단해서 들여오는 순수 난민 수치가 그 정도인데요. 트럼프가 난민 싫다고 밀어낼 때도 미국의 난민 인정률이 30%는 됐어요. 한국이 아주 낮은 거죠.

난민 인정률이 낮은 이유는 여러가지에요. 난민 신청을 하면 일차적으로 출입국 관리소에서 인터뷰를 해요. 많은 경우 인터뷰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면 인터뷰의 목적이 난민신청자가 거짓말을 하는지 가려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진술의 일관성을 중시하는데, 진술이 꼭 일관적일 수가 없어요. 기억이라는 게 그렇고, 상황이 급박하니 증거를 정리해 가져오기도 어려워요. 한국처럼 서류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나라도 별로 없고요.

(정부의) 세계 정세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문제도 있어요. 미국, 유럽, 중국, 일본 외의 세상에 대한 이해도가 현저히 떨어진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난민들이 박해받은 이야기를 해도 심사관들이 이해를 못하고, 거짓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필 정신영 대표 ⓒ애증의 정치클럽

테러에 대한 공포도 있어요. 법무부가 난민을 잠재적 테러리스트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죠. 최근 법무부에서 난민법 개정안 입법예고를 했는데, 난민 불인정 사유를 추가하는 안이에요. ‘국가안전보장 질서 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해쳤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요.

이런 규정은 너무 모호해서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어 문제가 돼요. 난민은 많은 경우 자국에서 반정부 활동 등으로 박해를 받아 떠나온 건데, 이럴 경우 ‘국가안전보장 질서 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해친 사람’이라고 얼마든지 해석할 수 있어요. 이렇게 되면 보호해야 할 난민을 쫓아내겠다는 거라 우려가 큽니다.

2016년, 시리아 내전이 한창일 때 알란 쿠르디라는 아이의 시신이 터키 해안에 떠내려왔어요. 그 사진이 화제가 되어서 ‘너무 불쌍하다, 유럽은 왜 난민을 안 받아주냐’ 하는 뉴스가 한참 나왔어요. 그런데 같은 시기에 갑자기 시리아 사람들이 갑자기 한국에 많이 와서 난민 신청을 하는 것처럼 뉴스가 나왔어요. 제 동생도 그 뉴스 보고 우리나라에 테러리스트들이 오는 거냐고 무섭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한국에서 난민 신청한 시리아인 중 성인 남성만 들여보내 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공항에서 28명이 8개월 동안 구금되는 사건이 있었죠. 동시에 국정원에선 우리나라도 이제 테러 안전국이 아니라면서 테러방지법을 만들었고요.

난민은 자기 나라도 보호해 주지 않는 취약한 사람들이잖아요. 아무도 편들어 줄 사람이 없으니까 한국 정부도 박대하는 거예요. 한국 사회에 있는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 덮어버리기 위한 수단으로서 난민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필에서 이주노동자 문제도 다루고 있는데요. 이민청을 서두르는 건 인구 절벽에 대응하기 위해서잖아요. 이민을 해결책으로 보는 관점엔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내년에 E-9 고용허가제로 들어오는 노동자를 사상 최대 규모로 받을 예정인데요. 동시에 외국인 지원센터 예산을 전액 삭감했어요. 충격적이죠. 노동력 부족과 인구 소멸 같은 온갖 문제의 해결책으로 값싼 이주 노동자를 내세우면서 실컷 부려먹고, 권리보장을 위한 제도는 전혀 마련하지 않고, 체류자격 없어지면 바로 쫓아내겠다는 거에요.

올해 들어 단속도 심해졌어요. 그전까지는 종교 시설에는 안 들어갔거든요. 근데 이번에 대구에서 경찰이 예배 중인 필리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단속한 일이 있었어요. 얼마 전 경주에서는 출입국관리소 직원이 태국 여성 이주노동자 목을 졸라 끌고 갔죠.

태국 여성 이주노동자의 목을 조르는 출입국외국인관리소 직원. 틱톡 캡처

이렇게 노동착취를 위해 사람들을 이주시키는 것에 대해 현대판 노예제라는 비판을 하고 있어요. 점점 더 많은 산업현장에서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작년부터 조선업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의 수를 많이 늘렸어요. 그런데 이분들이 고용허가제가 아니라 다른 경로로 들어와서, 인력송출업체가 껴서 높은 수수료를 요구하거나 여권을 뺏어가고 임금을 유보하는 그런 경우가 생겨요. 도망가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로요.

왜 도망을 못 가게 해야 할까요? 도망가고 싶은 일터니까요. 그런 문제에 대한 고민은 없으면서 외국인을 들여오는 통로는 늘리고 있어요. 일할 사람은 없는데 열악한 노동 조건을 바꿀 생각은 없고 이주민들로 손쉽게 때우겠다는 거죠. 지금은 이주민과 선주민이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고 있어요. 이주민은 갈수록 늘텐데 정부가 인종차별적 제도를 계속 운용하면서 정책을 가져가면 어떻게 될지 두려워요. 문화적인 인종차별과 정책은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요.

인신매매 관련 활동도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인신매매 하면 봉고차에 납치하는 무서운 장면을 많이 떠올리실텐데, 착취의 목적으로 사람을 속이거나 취약한 지위를 사용해서 모집하면 인신매매에 해당해요.

저희가 지원했던 케이스 중에선 한국에 가면 가수를 시켜준다고 필리핀 여성들을 속여서 외국인 전용 유흥업소에 취업시키는 일이 있었어요. 임금을 40만원밖에 안 주면서, 남자 손님에게 술을 얻어먹고 성매매를 하면 포인트를 지급하고 그에 따라 임금을 지급했어요.

2014년에 여성 5명이 도망쳐서 저희가 지원을 했어요. 경찰에 단속이 됐는데 경찰이 이 사람들을 인신매매 피해자로 보호하기는커녕 성매매 피의자로 조사한다고 외국인 보호소에 구금시켰어요. 이에 대해 행정소송, 형사절차 등 여러 법적 절차를 진행했는데 다 졌어요. 그런데 몇 년 있다가 같은 업소에서 또 여성들이 도망쳤어요. 그런데 성매매 강요는 진술밖에 증거가 없잖아요. 그래서 이번에도 검찰이 증거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업주는 기세등등해졌죠.

이주어선원 문제를 고발한 어필 유튜브 콘텐츠 ‘바다에 붙잡히다’ 캡처 ⓒ어필

원양어선에서 일하는 이주어선원 문제와 관련해서도 활동하고 있어요. 원양어선은 노동조건이 굉장히 열악한데 잠도 못자고 12시간 이상 일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고요. 일이 워낙 힘들어서 배에서 일하는 사람 중 80% 정도가 이미 이주노동자에요.

그런데 한국인 선원에게 차별도 많이 당하고, 물리적, 언어적 폭행도 많아요. 이런 곳에서 일하기 싫어도 일단 먼 바다라 육지로 갈 수 없고, 신분증이 없거나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일을 계속할 수 밖에 없는 구조에요. 이런 것도 인신매매라고 할 수 있어요.

이런 활동으로 김종철 변호사가 미국 국무부의 2018 인신매매 척결 영웅상을 받기도 했어요.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한국의 인신매매 상황에 대해 알리는 일을 해왔는데요. 미국에서 매해 6월 경 인신매매 보고서라는 것을 발행해 전 세계의 인신매매 현황에 대해 알리고 있어요. 그런데 작년에 한국이 20년 만에 1등급에서 2등급으로 떨어졌어요. 정부에서는 나라 망신 시킨다고 하지만 저희 입장에서는 성과라면 성과라고 할 수 있어요. (웃음)

‘우리’의 경계를 넓히자

현 난민법에 문제가 많은 것 같은데, 어떤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할까요?

난민 신청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데, 반대로 가야 해요. 그리고 지금 난민법에 처우와 관련된 내용이 너무 없어요. 그래서 난민 인정을 받아도 생활이 크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씀들 하세요. 모든 사회 보장 제도가 국민을 중심으로 구성이 되어서요.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으로 살면서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받기가 어려워요. 외국인에게 차별적으로 적용하는 정책이 너무 많아요.

예를 들면 최근 건강보험 관련해서 문제제기가 많이 되고 있는데요. 한국인은 주민등록상 같은 주소지면 지역가입세대가 될 수 있는데 외국인은 세대주의 배우자와 19세 미만 자녀만 한 세대로 인정해요. 그리고 한국인은 소득수준과 재산에 따라 보험료를 다르게 내지만, 외국인은 전년도 평균보험료 이상을 내야 해요. 14만원 정도인데 굉장히 부담스러운 금액이죠.

인도적 체류자의 경우 한국에서 쫓아내지는 않을테니까 숨만 쉬고 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고 봐요. 인도적 체류자로 인정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데 아무런 처우 보장을 안 해요. 많은 분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부분은 가족을 불러올 수 없다는 거예요. 인도적 체류자에 대한 처우도 난민 인정자 수준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정치권의 관심은 어떤가요?

국정감사 때나 기회가 있을 때 국회의원들과 일할 일이 있는데, 진정성 있게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주목을 못 받아요. 우리가 보기에 진짜 일 잘하는 의원들은 주목을 못 받고 자극적인 얘기 하는 사람이 페이스북에 뭐라고 썼는지만 기사가 나오죠. 일 잘하는 사람은 또 금방 사라져요. 홍보도 못 하고 라인에 붙어있지 못하니까요.

입법 관련해서는 국회의원과 같이 일을 해야 할 때가 많아요. 행정기관이 잘하는지 못하는지 보려면 자료 요청도 해야 하고, 토론회도 우리끼리 하려면 정부 사람들 부르기 어려운데 의원실을 끼고 하면 할 수 있으니 협업이 절실하긴 해요. 하지만 (할 사람을) 찾기도 어렵고, 그나마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영향력이 미미하죠. 그래도 이 정도면 만족해요.

난민 문제와 관련해 정치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정치인보다는 동료 시민들한테 바라는 게 있어요. 시민단체에서 일하면서 배운 게 ‘탑다운’보다 ‘바텀업’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거거든요. 위에서 바꿔주기를 기다리면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더 궁금해 하면 당연히 언론이나 정치하는 사람들도 관심을 갖지 않을까요?

어필에서 난민 인식 개선 교육도 진행하고 있죠. 어떤 방식으로 하고 있나요?

기회가 될 때마다 중고등학교에 많이 갔어요. 젊은 사람한테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요. 현장에서 난민을 만나는 사람으로서 이야기하는 거죠. 무엇보다 당사자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싶어요.

어필의 유튜브 콘텐츠 ‘네일쌀롱’ ⓒ어필

그래서 유튜브도 하는데요. 예전에 ‘네일쌀롱’이라는 기획이 있었어요. 당시 네일아트를 잘하는 인턴이 있어서, 난민 여성들이 네일 받으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콘텐츠를 만들었죠. 가끔 난민 관련 행사가 있어도 주로 남성들이 스피커가 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난민 여성들이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보려고 했어요.

마음대로 안 풀리는 일도, 가슴 아픈 일도 많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이 일을 지속할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어필의 동료들과 일하면서 제가 도구가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일하면서 저를 도구로 여긴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어요. 그전까지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그런 대우를 별로 받아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사실 숭고한 일을 위해 누군가를 수단화할 수 있거든요. 내가 믿는 가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할수록 다른 사람을 쉽게 수단으로 여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렇게 일을 배우지 않았어요.

결국 어필에서 제가 일하면서 배운 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소중히 여기는 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저희가 훌륭한 인턴 분들을 계속 모시고 있는데, 인턴 분들도 어필에서 행복하게 지내다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요. 인권을 이야기하면서 내 인권이 착취되면 안 되잖아요.

어필 정신영 대표 ⓒ애증의 정치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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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의 정치클럽 팀이 함께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