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 (1) 노조, 대체 뭐하는 곳인데?
이번 탐구 주제는 노동조합이다. 왜 정치 뉴스, 그리고 정치를 이해하려고 할 때 노동조합을 알아야 하는 걸까? 아주 원론적인 얘기부터 꺼내보자면, 결국 정치는 갈등하는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다루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노사 관계나 소득 불평등처럼 경제, 사회 영역의 여러 갈등과 균열은 곧 정치적 사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때 노동조합은 이러한 갈등을 풀어가는 데 핵심적인 정치적 주체 중 하나다. 따라서 한국의 노동조합이 어떤 상황인지, 문제는 없는지 등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노동조합의 중요성에 비해 노동조합 얘기를 제대로 들어볼 기회는 드물다. 간간이 파업이 벌어지면, ‘교통 혼잡이 예상된다’는 정도의 우려섞인 멘트가 담긴 뉴스가 나올 뿐이다. 게다가 ‘귀족노조’, ‘강성노조’ 등 이기적이고 전투적인 노조를 비난하는 말들은 노동조합에 대한 반감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노동조합에 대한 왠지 모를 부정적인 이미지가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과연 사실과는 부합하는지를 한번 뜯어보려고 한다. 1편은 노동조합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돕기 위한 내용을 보기 좋게 간추렸다. 이미 배경지식이 있다거나 본론이 궁금한 사람이라면 2편부터 읽어도 좋겠다.
노동조합이 뭐하는 곳이지?
노동조합은 간단히 말해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단체다. <노동조합법>에서는 노동자들이 자주적으로 단결해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노동자들의 경제적ㆍ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는 단체라고 노동조합을 정의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고유한 노동자 조직이다. 많은 나라들은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불균등한 관계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즉, 노동자 개인은 구조적으로 혼자서 타개할 수 없는 취약성을 갖기 마련이며,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방편으로 노동조합이 존재한다는 거다.
한국은 헌법에 명시된 노동 3권을 통해 노동조합의 결성과 활동을 보장한다. 헌법 제33조는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라고 밝히고 있다.
- 단결권: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
- 단체교섭권: 노동조합이 사용자와의 교섭을 통해 임금 및 복지와 같은 노동조건에 대해 협약을 맺을 권리
- 단체행동권: 파업•태업 등 노동 쟁의를 할 수 있는 권리
단체교섭과 단체행동은 노동조합에서 목소리를 내는 주요한 방식이다.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1) 단체교섭을 통한 단체협약 체결
노동조합은 사용자와의 교섭을 통해 임금이나 노동시간 등의 사항에 대해 합의한 바를 담아 단체협약을 맺을 수 있다. 단체협약의 내용은 사용자(경영자나 고용자)와 개별 노동자 사이의 근로계약을 규율하는 효력을 인정받는다. 단체협약에서 결정된 노동조건이 해당 노동조합이 대표하는 노동자들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된다는 의미다.
단체교섭은 노동조건을 유지 및 향상시키는 것 외에도 노사 관계를 안정화하는 기능이 있다. 단체협약을 맺는 과정에서 노사 간 갈등이 생겨날 수도 있으나, 체결 이후에는 협약의 유효 기간 동안은 노사 관계가 안정적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단, 사용자가 단체협약 체결이나 단체교섭을 정당한 이유없이 거부하거나 성실하게 임하지 않는 행위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돼 처벌 대상이 된다.
모든 사항이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에 대한 징계·전보·승진 등 인사에 관한 사항이나 사업통폐합이나 정리해고와 같은 경영 판단은 사용자에게 귀속되는 권한이라 하여 이를 침해하는 교섭 요구엔 사용자가 응하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 여기에 대해선 이견도 존재한다. ‘경영권’의 법률적 실체가 모호하고, 단체교섭을 통해 기업 경영의 불가침성에 도전해온 노동조합의 역사에서도 나타나듯 노사관계의 변화에 따라 교섭 사항이 점차 확대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2) 단체행동(노동 쟁의)
노동조합은 노동쟁의를 통해 사용자가 자신들의 요구 조건을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노동쟁의의 종류로는 파업(업무를 전면적으로 중단해 사용자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위), 태업(형식적으로는 노동력을 제공하나 고의로 불성실하게 일해 업무능률을 저하시키는 행위), 보이콧(boycott), 피켓팅(picketing) 등이 있다.
다음으로, 노동조합의 조직 형태에 따른 유형을 알아보자. 노동조합은 조합원을 충원하는 방식이나 노조원의 대상범위에 따라 ① 직업별 노조, ② 산업별 노조, ③ 기업별 노조로 나뉜다. 나라마다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노조 조직 형태는 상이하다. 각국의 자본주의 전개 과정이나 산업구조, 노동시장의 구조, 기술혁신의 정도와 노동운동의 역사 및 노조운동의 이념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조직 형태가 정해진다. 이렇게 유형을 분류하는 까닭은 노동조합이 어떤 조직 형태를 띠고 있느냐가 단체교섭 및 여러 노사 관계에 다방면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① 직업별 노조
직업별 노조는 특정 직종이나 직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조직 대상으로 하는 노동조합을 말한다. 주로 산업혁명 이후에 나타난 초기 노동조합 형태로, 일정 수준 이상의 숙련을 가진 노동자를 중심으로 생겨났다. 직업별 노조는 자신들의 숙련에 대한 이익을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예를 들면, 도제(일종의 직업 훈련)에 진입하는 사람의 숫자나 훈련 과정의 질을 통제함으로써 노동시장에서 숙련이 갖는 지위와 임금수준을 관리하는 식이다. 오늘날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형태다.
② 산업별 노조(산별노조)
산별노조란 직종이나 기업에 상관없이 특정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조직 대상으로 하는 노동조합이다. 자동차, 선박, 중장비, 철강, 엔진 등 금속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조합인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이 산별 노조에 해당한다. 산별 노조는 산업 전체의 노동조건을 통일적으로 개선하고 동종 산업 내 노동자들 간 격차를 해소하는 데 효과적이다. 하지만 중앙화된 성격이 강하므로 개별 사업장의 특수성을 파악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서구 산업국가의 노동조합운동 과정을 보면, 산업별 노조가 보편화되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③ 기업별 노조
기업별 노조란 특정 기업 또는 특정 사업장에 종사하는 노동자만을 조직대상으로 하는 노동조합으로, 한국 사회에서 가장 오랫동안 유지돼온 노동조합 형태다. 기업별 노조는 다른 노동조합 형태에 비해 상대적으로 배타적인 성격이 강하다. 기업별 조합은 개별 기업별로 교섭을 하기 때문에 단체협약의 효력이 기업 내부에만 머무르며, 기업의 상황에 따라 같은 산업이나 직종 내에서도 노동조건에서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한국 노동조합은 어떤데?
한국 노조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압축적으로나마 훑어보도록 하자.
1945년 해방 이후, 노조 조직의 바람이 불면서, 전국에서 수많은 노조가 결성됐다. 남한에서민 무려 천여개의 노조가 나왔는데, 이를 산업별로 묶어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라는 노조 연맹이 탄생했다. 전평은 사회주의를 이념적 기반으로 삼았다. 즉, 좌파 성향이 강했다.
우파 인사들은 전평 주도의 노조운동에 대응하고자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대한노총)을 결성했다. 대한노총은 지금의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의 전신이다. 대한노총은 전평 산하의 노조를 몰아내는 방식으로 반공 투쟁을 진행하며 전국 노조를 총괄하게 됐다. 1948년에는 대한노동총연맹으로 단체명을 고쳤다. 이승만 정부는 대한노총을 유일한 합법적 노조로 인정하고, 다른 노조들을 불법화했다. 이에 대한노총은 노동자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정부를 따를 뿐인 ‘어용 노조’라고 비판받았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붕괴하자 노조운동은 활발히 전개됐다. 하지만 1961년 5.16 쿠데타로 출범한 박정희 정부는 노동조합 해산명령을 내렸다. 이후 박정희 정부는 산별노조의 결집체인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을 출범시켰다. 당시 한국노총의 주요직은 정부가 지목한 사람들로 채워졌다. 한국노총은 박정희 정권의 장기 집권에 필요한 개혁안 지지에 동원되는 등, 정부의 통제 하에서 움직였다.
1970년, 침체됐던 노조운동은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평화시장의 노동자였던 전태일이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자살한 것이다. 전태일의 항거를 계기로 한국 사회에서 노동 문제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게 됐고, 노조운동의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졌다. 바로 ‘민주노조운동’이다. 민주노조운동은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조 설립을 목표로, 정부 주도의 노조 활동을 비판하며 노동자 중심의 노조를 세우고자 했다.
1980년, 전두환의 신군부 집권 후에도 노조운동과 민주화운동에 대한 탄압은 지속됐다. 이에 노조운동은 민주화운동과 연합해 한층 강경한 태도로 진행됐다. 1987년 7월, 노동자들은 6월 항쟁의 흐름을 타고 일명 ‘노동자대투쟁’을 벌였다. 이는 한국 최초의 대규모 노동운동으로 3달 간 지속됐다.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며 노조의 수는 1년 만에 2배나 증가했다.
당시 설립된 노조들은 유일한 전국 노조 조직이던 한국노총 가입을 거부하고, 민주노동조합들의 새로운 연대조직을 만들고자 했다. 그 결과가 1995년 출범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다. 한국노총은 민주화 이후 어용 노조에서 벗어나고자 ‘민주복지사회를 위한 노동운동’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세운다.
이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노조 조직들로서 노동운동을 이끌어왔다. 다만 여전히 둘의 성격엔 차이가 있다. 한국노총은 상대적으로 정부에 협조적이고 타협을 추구하며, 민주노총은 강경하고 급진적이다. 두 노총은 사안에 따라 협조하기도, 대립하기도 한다.
그러나 1990년대의 노동운동은 새로운 위기를 맞는다. 불황과 세계화로 노동의 유연성이 높아지면서 노조가 크게 위축된 것이다. 구조조정과 실업에 대한 불안이 지속되자, 노조들은 이전보다 당장의 이익을 추구하는 성향을 가지게 됐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현재도 낮은 편이다. 2021년 기준 14.2%인데, 이는 OECD 국가들 중에서도 중하위권(36개국 중 26~28위)이다. 그마저도 2010년대 들어 꾸준히 상승한 수치다. 최근에는 IT기업 등 노동조합이 거의 존재하지 않던 업계에서도 노조가 빠르게 늘고 있다.
한편 노동시장에 새로 유입된 청년 세대와의 소통 문제가 노조의 핵심 고민으로 떠오르고 있다. 2030 세대들이 기존 노조에 충원되지 않으면서 노조가 고령화되며 노조의 지속성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청년들이 노동조합에 거리감을 느끼는 것이 원인이라고 말한다.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불안정한 노동 조건에 처한 청년들은 자기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 해도 벅차기 때문에 노동운동에 공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학생운동에 대한 경험도 드물고, 직접 행동에 나서는 것이 낯선 세대인 만큼 노조의 운동 방식 자체가 낯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청년들이 노동 문제와 노조의 필요성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그보다는 기존 노조의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불신과 기성 세대에 대한 불만, 즉 노조 내 세대갈등이 노조와 청년의 거리를 넓히는 직접적인 원인이란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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