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민주화 운동의 주역’ 네이선 로
네이선 로
홍콩 민주화 운동화2019년 봄, 홍콩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민주화 시위가 있었다.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벌어진 폭력 진압과 일방적 억압은 홍콩의 봄을 보란 듯 앗아갔다. 그러나 2022년 겨울, 중국에서 시진핑 집권 이후 초유의 정치적 시위가 촉발됐다. 중국의 꿈틀거림에 이끌린 시선은 자연스럽게, 다시 홍콩을 향한다.
네이선 로는 홍콩 민주화운동의 주역인 청년 정치인이다. 2014년 학생사회의 리더로서 주도한 우산혁명을 시작으로, 홍콩 민주화 운동의 중요한 장면에는 늘 그가 있었다. 2016년 조슈아 웡과 함께 홍콩 자결권, 행정장관 직선제를 내걸고 데모시스토당을 창당했고, 아시아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됐으나 민주화 활동을 이유로 제명됐다. 이후 몇 번의 투옥을 겪었고, 2020년에는 홍콩 국가보안법으로 신변의 위협이 커지면서 영국으로 망명했다. 네이선은 망명 후에도 홍콩 민주화를 위해 목소리 내길 멈추지 않았다. 네이선에게 그가 바라보는 중국과 홍콩, 그리고 언젠가 다가올 봄에 대해 물었다.
홍콩의 혁명가가 생겨나기까지
어떻게 정치에 입문하게 되었나요?
저희 가족은 정치와는 전혀 무관한 집안이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원래 중국 본토 분들이신데, 아버지께서 홍콩으로 70년대에 이주를 하게 되셨어요. 저도 93년에 중국 본토에서 태어났지만 99년에 어머니와 함께 홍콩으로 이주했습니다. 저희 가족은 소위 말하는 ‘블루 칼라’(노동자)였어요. 아버지는 공사장에서 일하셨고 어머니께서는 환경미화원이셨죠. 제가 자란 곳은 홍콩 내에서도 가장 열악한 동네였고, 저희 가족은 정부가 지원하는 공공주택에 살았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일종의 ‘난민 의식’을 가지고 계셨다고 생각하는데요. 설명하자면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은 최대한 멀리 하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정치 얘기도 잘 안 했죠. 그저 저희 형제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을 얻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셨어요. 그래서 저도 자유, 민주주의, 인권이나 그런 것들의 역사를 부모님으로부터 듣게 되진 않았어요.
그러다가 2010년에 류샤오보가 노벨평화상을 받았어요. 그 때 전 고등학생이었죠. 류샤오보는 노벨평화상을 받은 유일한 중국인인데, 중국 정부는 그를 비난했어요. ‘노벨상을 받은 건 나라의 영광 아닌가? 그럼 존경을 받을 일인데, 왜 정부에서 비판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 궁금증을 가지고 2011년 빅토리아 공원에서 열린 천안문 사태 추모 촛불집회에 참석하게 됐어요.
추모 집회 참석은 제게 인생의 전환점과 같았어요. 이 경험을 통해 인생에는 개인적인 성공이나 가정의 안정 같은 목표보다 더 큰 소명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러면서 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이 생겼고, 저와 하나도 다를 게 없었지만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천안문에서, 홍콩에서 싸웠던 용기있게 사람들이 비로소 이해가 가기 시작했어요.
그 때가 제가 정치적으로 ‘각성’했던 시기죠. 그렇게 해서 대학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하게 됐고, 그 선택 때문에 2014년 우산 혁명에서 주목 받게 됐어요. 그게 제 사회운동(activism)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저는 정치인이나 사회운동가가 될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제 관심사는 그저 돈을 많이 버는 것, 가족들이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것, 잘 먹고 잘 사는 것이었어요. 인생이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며 오늘의 제가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년 런던으로 망명 후에는 주로 어떤 활동을 이어가고 계신가요?
다양한 연대활동을 하고 있어요. 회의에 참석하기도 하고, 정치인들을 만나 홍콩 민주화 운동에 도움이 되는 법안들을 추진해달라고 설득하기도 해요. 재외 홍콩인들이 많이 모인 영국에서 여러 위원회 활동을 하며 이들을 영국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일도 하고 있어요. 가령 지난 21개월 간 15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시민권 취득 절차를 밟을 수 있게 도왔어요. 영국의 홍콩 커뮤니티를 통해 본국의 사람들이 더욱 가시화되고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문화 관련 활동도 하고 있어요. 중국 정부의 검열 때문에 홍콩에서는 상영이 금지된 영화들로 영화제를 열고 있는데요. 주로 2019년 시위에 관한 영화이거나 그 이전의 홍콩 정치운동에 관한 영화들입니다. 영화제를 통해 영국의 홍콩인들이 고향의 기억을 되새기기를 바라요. 문화를 잘 보존하고 시위의 기억을 상기하는 것은 공동체에 중요한 동력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중국의 국가보안법이 통과된 후 홍콩의 상황은 어떠한가요?
국가보안법 제정은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 게 범죄화 될 것이라는 선언과도 같았습니다. 많은 정치운동가들이 이전의 활동으로 인해 투옥됐습니다. 홍콩 사람들은 단순히 온라인 게시물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체포될 수 있다는 공포감을 갖고 있고, 이미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사람들은 공공성을 띤 활동을 회피하기 시작했고, 시민 사회는 붕괴됐어요.
중국의 저항, 시든 것일까 움튼 것일까
지난 몇 주간 중국의 여러 도시에서 소위 ‘백지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시위를 통해 인민들은 무엇을 요구하고 있고, 이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1~2주 전쯤 중국 전역, 수십 개 도시에서 시위가 벌어졌죠.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로 중국 본토에서 일어난 적 없는 일이에요. 전국적인 코로나 봉쇄 정책은 중국 사람들에게 ‘고통’이라는 공통의 경험을 안겨주었어요. 그러니 말하자면, 역설적이게도 중국 정부의 엄격한 통제가 불가능했던 시위를 가능하게 만든 것이죠.
시위대의 요구는 코로나 봉쇄 해제부터 정치적 변화까지 이르렀어요. 심지어 "중국공산당 물러가라"나 "시진핑 퇴진"을 외친 사람들도 있어요. 그러나 정치적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중 다수는 그저 봉쇄 해체를 원할 뿐이고, 구조적 변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소수에 그칠지도 모르죠. 공개 데이터도 없고 여론조사를 할 수도 없으니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 상황이 굉장히 인상적이라고 생각해요. 디지털 권위주의 국가에서 이런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걸 목격하고 있잖아요. 중국 본토의 전국적 감시 시스템이 얼마나 정교하고 기술적으로 발전해 있는지 생각해보면 조지 오웰의 《1984》보다 더하죠. 이런 조건 속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행진하고 반대 의견을 외치고 있어요. 이것만으로도 굉장한 거죠.
시위대의 움직임이 여기서 끝난 건지, 중국공산당의 정당성을 흔들 만큼의 잠재력을 갖고 있는지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분명 중국 본토에 큰 영향을 줬을 거예요. 물론 해외의 진보적인 중국인들도 움직이게 했을 거고요.
말씀하셨듯이 이번 시위는 한 곳에서 일회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곳에서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요?
우리는 사회운동에 최소한 집단적인 목표나 조직화된 요구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중국의 상황에서 사람들을 조직하기는 어려워요. 정부에 요구하는 것이 있어도 그걸 거리에 나가 외칠 수 없죠.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가기만 해도 잡혀 갈 거예요. 그러니 꽃을 들고, 백지를 들고, 아니면 아무것도 들지 않고 시위하는 건 매우 영리한 움직임이에요. 그런 행동을 이유로 경찰이 출동해서 당신을 곧바로 끌고 가긴 어려우니까요.
시위대는 그냥 백지 한 장씩을 들고 행진했을 뿐인데, 많은 사람들이 그게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차렸어요. 사람들이 몇 년 간 봉쇄를 경험했으니까요. 가족들이 죽었고요. 음식이 부족했던 적도 많아요. 봉쇄를 거치면서 십수억 명의 중국 본토인들이 같은 트라우마를 공유한 게 거대한 전국적 시위의 기반이 됐습니다. 우루무치 화재 같은 사건을 봤을 때 사람들이 즉각 공감해 나라 전체가 함께 움직인 거죠. 그렇게 해서 통신도, 조직도, 리더십도 없는 시위대가 똑같은 생각을 가진 것처럼 퍼져나갈 수 있었어요.
각지에서 일어난 시위에 당이나 리더십에 대한 규탄의 정서도 공유되고 있다고 보시나요?
정치 시스템을 바꾸고 독재를 끝내라는 것이 시위대 공통의 요구라는 분명한 증거는 없어요. 정부 입장에선 유리한 점이죠. 코로나 봉쇄를 완화하기만 하면 운동이 와해될 수도 있으니까요. 사람들은 방역 정책이 완화돼도 시위가 계속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런 합의가 없더라도 정치적 변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그 가운데 존재한다는 사실은 중요해요. 중국에서 이런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들어본 지 아주 오래됐거든요. 이번 시위가 공산당이 정당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고, 변화를 원하고 있어요.
결국 중국 정부는 코로나 봉쇄 정책을 완화하는 회유책을 내놓았어요. 이것이 정부가 인민들의 요구에 부합한 결과라고 볼 수 있을까요?
시위가 벌어지기 전부터 정부에서 코로나 봉쇄 조치를 완화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긴 했었어요. 하지만 시위대가 그 흐름을 가속화했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중국 정부는 자신들이 인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며, 인민의 삶에 책임감을 갖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더 많이 양보하려 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중국 정부는 앞으로도 많은 어려움을 경험하게 될 거예요. 중국 정부가 지금까지 팬데믹에 대해서 해 왔던 이야기들, ‘코로나19와 함께 살 수는 없다’고 했던 말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거든요. 쉽지 않은 길이 될 겁니다.
사람들이 백지를 들고 시위를 하는 모습을 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백지 시위는 2020년 홍콩에서 시작되었잖아요. 홍콩에서 시작된 시위 방식이 중국 본토에도 이어졌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글쎄요, 그렇게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아요. 홍콩에서 벌어졌던 시위를 중국 본토인들이 봤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홍콩 시위에 관한 정보들은 중국 본토에서는 전부 검열돼요.
저는 백지 시위 전략이 검열과 감시가 가득한 체제 안에 살아온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라 생각해요. 국가의 처벌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방법이죠. 종이에 구호를 적어서 거리에 들고 나가면 바로 잡혀가요. 하지만 백지를 들고 있으면, 모두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어도 정부는 날 잡아갈 수 없어요. 시위가 가능해지는 것이죠.
사실 슬픈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거예요. 중국 본토에선 인민에 대한 검열과 감시가 심각해서 자신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예요. 저항을 하고 싶어도 우회적으로 말해야 하거나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요. 그러니 백지 시위는 본토의 표현의 자유 억압과 사회 통제가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죠.
연대, 민족과 국경을 넘다
해외 여러 곳에 있는 홍콩인들과 계속해서 소통하고 계신가요? 중국 본토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이들의 반응은 어떠한가요?
굉장히 다양한 반응들이 있었어요.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어요. 홍콩만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분들은 중국 본토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거든요. 하지만 어떤 이들은 시위대가 외치는 민주주의와 자유의 가치에 공감과 연대를 보내고 있어요. 그래서 저희는 중국 본토 인민들의 목소리가 더욱 널리 퍼질 수 있도록 노력하죠.
해외에 유학 중이거나 거주 중인 중국인들도 움직이고 있어요. 해외의 홍콩인들 중 이들이 시위를 할 수 있도록 조직을 돕거나 경험을 공유하는 등의 연대를 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서 해외의 홍콩 커뮤니티에 중국 본토인들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도록, 더욱 국제적인 관심을 얻을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서울에서도 지난 주 중국인 유학생들이 시위를 벌였어요. 한국인을 비롯한 세계 시민들은 어떻게 중국인들과 연대할 수 있을까요?
가능한 모든 지지를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중국 본토에 있는 분들은 많이 외로울 거예요.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다 감시되고 있어서 친구들과도 솔직한 감정을 공유하기 어렵고, 해외에서 우리가 연대 집회를 열어도 관련 뉴스 한 줄 읽기 어려울 거예요.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세계에 알릴 수 있어요. 모든 인민이 중국 공산당을 무조건 따르지 않고, 공산당이 모든 인민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걸 말이죠. 이 메시지가 세계에 중요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고, 해외에 살고 있는 중국인들에게도 큰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타국에 나와있는 중국인들과 관계를 맺는 것도 중요합니다. 대부분 중국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들로서 유학 중인 경우가 많거든요. 이들에게 민주주의나 자유의 가치를 전달할 수 있다면, 단번에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할 지라도 미래의 변화의 가능성에 씨를 뿌리는 셈이죠.
중국 정부는 시위에 대해 외세 개입설을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중국 본토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면 늘상 적대적인 외부 세력에 의한 것으로 규정되곤 하는데요. 이는 ‘외세 개입이 아니라면 당에 반대할 사람이 없다’는 당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홍콩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도 쓰여온 프로파간다 전략입니다.
하지만 중국인들에게 스스로 판단할 주체성과 목소리, 그리고 때론 항의할 능력이 있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최근 중국 국적의 어떤 분이 이에 대해 인터뷰하는 영상을 봤는데요. 이렇게 비꼬며 말했어요. “우리가 인터넷이나 뉴스를 자유롭게 검색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외세의 영향을 받았다니요? 외국과 소통할 수도 없는데요? 그들이 말하는 ‘외세’란 마르크스주의를 말하는 건가요?”
중요한 건 사람들이 외세 개입설 같은 얘기를 믿지 않는다는 거예요. 중국 정부는 인민들이 타당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걸 부정하기 위해 그런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인민들은 모국에 대해 타당한 걱정을 하고 있는 겁니다. 중국 정부는 본토에서 일어나는 시위 뿐만 아니라 해외 중국인 유학생의 조직도 경계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들이 진정한 저항의 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중국 공산당의 민족주의 노선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최근 트위터에 “사람이 국가보다 크고, 정의가 애국보다 크다”고 남기셨는데, 여기에 대해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애국심이란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생기는 감정이지만, 과연 그 뿌리가 어디에서 비롯되느냐는 질문은 중요한 것 같아요. 만약 그것이 독재를 찬양하거나 권위주의에서 비롯됐다면, 정의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애국의 상위에 놓아야 합니다. 우리를 지키는 것은 바로 민주주의적 가치들이고, 그것이 ‘애국’을 값지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이 지점이 제가 중국 시민들과 소통하려 노력하는 부분이에요.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어릴 때부터 국가를 사랑하고 당을 사랑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만약 당이 잘못된 길을 간다면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지는 못했습니다. 당이 정의와 반대되는 길을 간다면요? 오히려 억압의 길로 간다면요?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 그들이 왜 민주적 가치를 지향해야 하는지, 왜 그것이 애국과 상충하지 않는지 얘기하려 해요. 정부가 바뀌기를 거부할 때 시민들이 그것을 바로잡을 권한과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요.
중국 공산당은 그간 소수 민족을 억압해왔는데요. 이번 시위에서 중국 인민들은 소수 민족이 많이 거주하는 우루무치에서 일어난 불의에 반응해 일어났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이런 측면에서 중국이 자유의 가치로 연합해 민족주의나 인종주의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보시나요?
그렇다고 단정짓기는 어려워요. 중국 내에서 사고 소식이 전달될 때 피해자들의 인종이나 위구르인 등에 대한 언급은 많이 못 본 것 같아요. 인민들은 코로나 봉쇄로 인해 발생한 비극을 전해 들었고, 사람들이 모두가 경험한 고통에 공감하면서 사건을 시위의 도화선으로 삼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해외 중국인들과 유학생들의 연대 시위를 보면 그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어요. 몇몇 중국 유학생들은 그동안 탄압받는 위구르에 대해 무관심했다며 공개적으로 사과했어요.
중국 정부는 그동안 티베트인, 위구르인, 홍콩인 등의 소수자를 문제적으로 그려왔고, 프로파간다를 통해 혐오를 조장해왔어요. 위구르인들은 중국 정부가 어떻게 사회적 사건을 조작해서 위구르인을 테러리스트로 낙인 찍어 왔는지 증언했어요. 그래서 중국 인구의 다수인 한족은 위구르인들에 대한 깊은 혐오감을 가지고 있죠. 이게 독재 정권의 통제 방식이에요. 정부를 대신해 다수가 소수를 감시하게 만들고 반란을 제압하죠. 사회적 화합, 국가적 평등, 통합 등의 가치를 내세우면서 그 반대의 길로 가는 거예요.
이번 시위는 그동안 본토에 살며 정부로부터 프로파간다를 주입받아온 해외의 중국인들로 하여금 많은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어요. 비로소 그들이 그동안 믿어왔던 바를 고민하게 만들었죠.
이야기를 듣다 보니 미얀마에서 일어났던 일이 생각났어요. 그동안 미얀마의 주류 민족인 버마족 또한 소수 민족을 탄압해왔지만, 작년에 민주화와 자유를 위해 투쟁하면서 소수 민족에게 저질렀던 잘못에 대해 사과하는 움직임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미얀마 국민통합정부(NUG)를 꾸릴 때 소수 민족 출신 다수를 리더로 세우기도 했잖아요.
맞아요. 우리가 민주주의를 말할 때 여러가지의 가치들이 자연스레 따라붙게 되죠. 다양성, 공감, 소수에 대한 이해 등 말이에요. 우리가 정치적 변화를 말하는 것은 그 안의 정치적 문화, 가치, 공유하는 믿음 등을 다 포괄하는 거예요. 그래서 민주주의 운동에서 이러한 가치들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광경을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네이선 로가 혁명을 지속하는 동력
어떻게 해야 ‘백지 시위’가 동력을 받아 계속 나아갈 수 있을까요?
여러가지 제약 때문에 중국 본토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겠죠. 하지만 우리가 해외에 있는 중국 유학생들과 소통하며 그들이 목소리를 내고 힘을 키우도록 도울 수 있어요. 홍콩인들의 경우, 해외 각지에 흩어져있는 디아스포라 홍콩 공동체들이 잘 보존되고 성장하는데 일조하면서 중국 공산당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게 할 수 있고요.
일반적으로 우리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아요. ‘의미 없는 일은 없다’고 믿는다면 말이에요. 한국과 대만의 민주화 운동에서도 작은 노력들이 모여서 결국 큰 변화를 일궈냈잖아요. 중국의 변화를 기대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었죠. 수 년 내에 이뤄질 일은 아니에요. 그럼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변화의 동력을 축적하는 거예요.
국내에서 큰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는 세계의 큰 흐름과 맞아 떨어질 때가 많아요. 언젠가 중요한 시점이 올 테고, 우리가 더 준비돼있을수록 그런 순간을 더 잘 확보할 수 있겠죠. 당장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멈추면 안돼요. 계속해서 우리의 역할과 의미 있는 일들을 해나가야죠.
결과가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쟁한다는 것은 때론 매우 지치는 일인데, 네이선 님은 매우 확고해 보여요. 어디에서 계속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나오는 건가요?
제게는 이 일이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가 된 것 같아요. 저는 활동가로서 ‘운동’(activism)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삶의 일부를 기여하는 것이라 정의하고 있는데요. 결과가 어떻든 이 긴 소명의 길을 걷기로 이미 마음을 정했어요. 제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이 길에 서 있을 것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떻게 이 길을 더욱 효율적으로 걸을 수 있을까’예요. 길든 짧든 어떻게 변화의 일부가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요.
이 길 위에 서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걸 소명으로 받아들일 거예요. 움직이기 위해 명확히 펼쳐진 길이 필요한 게 아니에요. 그 길을 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 뿐이죠. 저는 그저 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 노력하는 거예요.
‘정치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너무 순진하거나 무례한 질문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투쟁하시는 상황의 절실함에 비해 저희는 상대적으로 편한 위치에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한국의 그러한 자유 또한 수십 년 전 많은 사람들의 희생에서 왔죠.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며 많은 것을 깨달았어요. 특히 ‘의미 없는 일은 없다’는 메시지에 대해서요. 영화 속의 인물들은 평범한 소시민이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요. 그리고 그렇게 노력할 때 역사적 변화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죠. 사람들이 양심을 따르고, 본능적으로 그른 길 보다 옳은 길을 따르게 된다는 이야기예요. 몇 년 전 이 영화가 홍콩에서 상영 가능했을 땐 꽤 영향력이 있었어요. 지금은 극장에서 감히 이런 영화 상영을 못하죠.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읽을 한국의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지정학적으로, 사회ˑ경제적으로 한국 정부의 곤란한 상황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중국 정부와 가깝게 지내야 하죠. 하지만 한국에는 굉장히 강력한 시민 사회가 있어요. 그들과 더욱 소통하고 싶어요. 홍콩 민주화 운동에 있어서도, 중국 본토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에 있어서도 많은 지원을 받고 싶어요. 한국에 몇 번 갔었는데, 한 번은 스타트업, 미디어, 정치관련 단체들과 교류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분들께서 홍콩과 중국 본토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많이 걱정해주셨어요. 내년에 기회가 된다면 꼭 방문하고 싶어요. 가능할 지는 한 번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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