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og in

지방선거, 당 보고 뽑으면 될까?

애정클
애정클
- 13분 걸림 -

지난 모임에선 지방선거(지선)를 실시하는 이유에 대해 알아봤다. 지선은 지역의 문제를 해결할 사람을 주민들이 직접 뽑는 선거다. 그러니 출마한 사람들 중 누가 우리 동네를 잘 알고 있는지, 누가 지역 맞춤 정책을 펼칠 적임자인지 살펴보는 게 필요하다.

그런데 지방선거 뉴스를 보면 정작 공약은 잘 안 보인다. 뽑아달라는 후보자들 말을 들어보니 자기 정당 밀어달라는 얘기만 한다. 언론에선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 추가경정예산안 집행 같은 중앙정부의 이벤트가 지선의 변수라고 말한다.

가만히 생각하면 조금 이상하다. 지방선거는 지역에서 일 잘할 사람을 뽑자는 것 아니었나. 그런데 왜 지선이 당의 세력 싸움, 중앙정부에 대한 평가전이라고 말할까. 왜 지선에서 지방 얘기는 안 나오는 걸까.

지금 상황 알아보기


지방선거를 나흘 남짓 앞두고 막바지 선거운동이 한창이다. 이번 6.1 지선은 대선 이후 불과 3개월 만에 치러지는 선거로, ‘대선의 연장전’ 성격을 띤다는 얘기가 많다.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과 안철수 후보가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각 정당의 선거를 이끌겠다고 밝히면서 대선의 경쟁 구도가 재현되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의 지선 승리’를 이유로 해당 지역에 연고가 없거나 행정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이 출마하는 경우도 보인다. 대표적인 사례가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다. 송 후보는 인천 계양을 지역에서 국회의원을 5차례나 연이어 맡을 만큼 인천에 연고가 깊은 인사지만, 인천이 아닌 서울시장에 출마했다.

이번 지방선거를 두고 언론과 정치인들은 인물이나 공약보다 집권 여당과 야당 간 경쟁 구도를 강조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에 힘 싣기’와 ‘윤석열 정부 견제’ 중 사람들이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가 이번 선거의 핵심이라는 식이다.


알면 좋을 맥락

  • 이런 현상들이 특이한 건가? 지난 지방선거들도 지금과 분위기가 비슷했는지 궁금하다.


지방선거는 지속적으로 정권과 정당에 대한 평가로 해석되어왔다.

대선 직전의 지방선거는 ‘대선 전초전’, 대통령 임기 중의 지선은 ‘정권 중간평가’라고 불려왔다. 지선이 지방의 특수한 이슈보다는 현 정권과 정당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받았다는 얘기다. 실제로 대부분의 지선은 선거 기간 당시 지지율이 높았던 정당이 많은 자리를 가져가는 식으로 진행돼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6년 지선이다. 2006년 지선은 노무현 정부 말기에 치러졌다. 당시 노무현 정부의 지지율은 20%에 불과했다. 선거 결과는 한나라당의 압도적인 승리였고,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은 기초단체장 총 230석 중 19석, 광역자치단체장 총 16석 중 1석밖에 얻지 못했다.

특정 지역에서 지지율이 높은 정당이 그 지역을 독점하는 것도 특징이다.

지방선거에서도 정당에 대한 지지가 주요하게 작용하는 만큼,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율이 높은 지역에서는 해당 정당의 후보가 유리하다. 특히 한국 정치사에선 영남 지역(경상도)은 보수 정당, 호남 지역(전라도)에서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오랫동안 나타났다. 실제로 경상북도지사의 경우, 1995년 첫 지선 이후 지금까지 매번 보수정당 후보가 당선됐다! 전라북도지사의 경우 항상 민주당계 후보가 당선됐다.


그래서 내가 궁금한 건…

  • 정권에 대한 평가, 지역주의… 모두 지방자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왜 이런 이슈들이 지방선거의 중심이 된 걸까? 지역 이야기를 하는 정치인들, 그 지역에 오래 살아온 정치인들이 눈에 띄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지방 선거에 지방 얘기가 없는 이유


왜 지방선거에서 지역 이야기보다 당 이야기가 많이 나올까? 현행 지방선거제도 자체가 지방선거의 중심을 지방 이슈가 아닌 중앙정치에 두게 만든다는 지적이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이 정당공천제선거구제다.


정당공천제란 정당이 공직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를 추천하는 것을 말한다.

A정당 소속의 정치인이 X지역의 군수에 출마하고 싶다면, A정당으로부터 공천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무소속이 아닌 정당 소속으로 출마하려면 무조건 공천을 받아야 한다.현재 지방선거제도에서는 지방자치단체장, 광역의회의원, 기초의회의원 모두 정당공천을 허용하고 있다.정당공천제는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가 정당 중심의 정치이므로 필요한 제도이나, 아래의 두 가지 부작용이 발생했다.

1) 지방 정치가 중앙 정치에 얽매이게 만든다.

  • 후보자가 정당의 이름을 달고 나오게 되면서 정당 지지에 따라 투표하는 경향이 심화된다. 따라서 지역 정책보다 정당의 이슈가 지방선거의 중심이 된다.
  • 당선자는 어디까지 당 소속이기 때문에, 당 기조를 따를 수밖에 없다. 지역 시민의 필요보다 중앙 정치와 관련된 당의 요구를 우선시하게 된다.
  • 정당에서 지방선거를 정치인들의 발전 기반으로 이용하게 된다. 행정 경험이 없음에도 당에서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고 판단되는 정치인이라면 공천해 정치적 기반을 만들어주는 식이다.


2) 공천 경쟁에서 지역 정치인들과 정치신인들이 배제된다.

  • 후보자의 지역 현안 해결 능력보다 정당(중앙당)에 대한 기여도에 따라 공천의 우선순위가 매겨져 지역정치인과 정치 신인들은 능력이 있음에도 공천에서 배제된다.
  • 공천에서 지역 국회의원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국회의원과 연고가 있는 사람, 국회의원 선거에 정치자금을 제공한 사람들이 주로 공천 대상이 된다. 따라서 공천을 받기 위한 비리도 심화된다.

더불어 현행 정당법에서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정당은 전국구 정당 뿐이다. 서울을 포함한 4개 이상 광역자치단체에 지부를 두어야만 정당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런 정당들은 전국적 이슈를 다루는 중앙정치에 중점을 두므로, 정당공천제가 지역 이슈보다는 중앙정치와 연계돼 진행될 수밖에 없다.

이에 지역정치 활성화를 위한 대안으로 지역정당 창당 허용이 제시되기도 한다. 지역정당이란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지역문제 해결을 목표로 하는 정당을 말한다. 지역 문제에 집중하는 다루는 정당이 있으면 정당정치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지방자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선거구대표자를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실시되는 가장 작은 단위를 말한다.

선거구제의 유형은 크게 세 개로 구분된다. 소선거구제는 하나의 선거구에서 1인의 대표자를, 중선거구제는 더 넓은 범위의 지역으로 이뤄진 하나의 선거구에서 보통 2-4인의 대표자를, 대선거구제5인 이상의 대표자를 뽑는 것을 가리킨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광역의원 선거는 소선거구제가, 기초의원 선거는 2-4인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가 적용되고 있다.

문제는 일부 정당들이 현행 선거구제를 이용해 기초의회를 독점한다는 것이다.

  • 현재 기초의원 선거구 중 절반 이상은 2인 선거구이다. 딱 2명만 뽑을 수 있기 때문에, 높은 확률로 지지율이 높은 두 정당의 후보자들이 자리를 가져가게 된다. 소수정당 소속이거나 무소속인 후보자가 당선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이다. 심지어 한 지역구의 기초의회가 모두 같은 당 출신으로 구성되기도 한다.
  • 이러한 현상은 지역주의와 결합하며 더 심해진다. 지지 정당이 뚜렷한 지역에서는 타 정당의 당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지지율이 낮은 정당에선 후보를 아예 내지 않기도 한다. 그 결과 후보가 한 명밖에 나오지 않아 무투표 당선되는 경우도 있다. (이번 지선의 무투표 당선자는 무려 494명으로, 지난 지선보다 5배 증가했다)
  • 이렇게 기초의회를 한 당이 독점하기 쉽기 때문에, 후보들은 정책보다는 어느 당에 소속되어 있음을 내세우게 된다.
  • 당에 소속된 기초의원들은 중앙당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A당이 어떤 정책에 반대하는 입장이라면, A당 소속의 기초의원은 B지역의 의원이든, C지역의 의원이든 간에 그 정책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 B지역과 C지역의 필요와는 관계없이 말이다. 이렇듯 한 당이 독점한 기초의회는 중앙정치에 휘둘릴 위험이 있다.

정리하자면 정당은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제중선거구제를 이용해 더 많은 자리를 확보하고자 한다. 그 부작용은 지역 문제의 해결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지역과 관계없고 행정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라도 당선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담소 마무리


이번 지방선거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는 전국 11곳의 기초의원(시·군·구의원) 선거에서 중대선거구제가 시범 실시되는 것이다. 중대선거구제가 소수정당의 기초의회 진입 장벽을 낮춘다는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서다. 또한 ‘하나의 시 도의원 지역구에서 4인 이상 의원을 선출할 때 2개 이상의 선거구로 분할할 수 있다’는 공직선거법 조항도 삭제됐다. 일명 ‘선거구 쪼개기’를 통해 4인 이상 선거구까지 양당이 독점하는 문제를 막으려는 것이다. 시범 지역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는지 지켜보는 것도 좋겠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거리도, 우리 마음도 소란하다. 앞으로 나흘 간 그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클러버들의 마음에 당장 평화가 찾아올 순 없겠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결정을 했다는 소소한 뿌듯함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다음 모임에서 우린 또 씩씩하게 만나는 걸로!


오늘의 담소 요약


  • 지방선거는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한 선거라기보다는 정당과 정권에 대한 평가로 여겨져왔다. 또한 특정 지역을 특정 정당에서 독점하는 현상이 지속돼왔다.
  • 지방선거에서 지역 문제보다 중앙 정치의 문제가 쟁점이 되는 원인은 정당공천제중선거구제(2~4인 선거구제)의 악용에 있다. 정당은 원하는 인사를 당선시키고 유리한 지역을 독점하기 위해 인사를 전략적으로 배치한다. 그 과정에서 지역 문제의 해결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정당 간 대결과 정권에 대한 평가가 부각된다.
  •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이러한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일부 지역에서 중대선거구제(3~5인 선거구제)를 시범 실시한다.
작가와 대화를 시작하세요
주간 애증 담소

애정클

애증의 정치클럽 팀이 함께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