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라는 단어는 어떻게 오염됐나
요즘 정치 뉴스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단어 중 하나는 ‘가짜뉴스’다. 실제로 가짜뉴스가 심각한 사회문제이기도 하거니와, 정치인들도 과거에는 ‘사실이 아니다’ 정도로 했던 반박했을 의혹들도 이제는 가짜뉴스라고 반박하고 있다.
가짜뉴스를 판별하고 걸러내는 게 중요한 시대가 됐지만, 최근에는 ‘가짜뉴스’라는 말이 지나치게 많이 쓰이면서 거꾸로 문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가짜뉴스라는 말, 어떻 만들어졌고, 어떻게 잘못 쓰이고 있을까?
나치부터 유튜브까지, 가짜뉴스의 모든 것
원래 가짜뉴스(fake news)란 ‘뉴스 형태를 빌려 허위 사실을 전달하는 매체’를 말했다. 종이신문을 읽다 보면 광고를 마치 언론사에서 직접 쓴 기사처럼 만든 것들이 있다. 이런 식으로 만들되, 좀 더 악의적으로 허위 사실을 전달하는 형태라고 보면 된다.
악의적으로 허위사실을 전파하는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일이다. 정치적 목적으로 퍼트리는 프로파간다(선전)는 고대부터 이용돼온 전략이고, 나치 독일에서도 거짓 선동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수백 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했다. 서구권의 황색언론이 작성하는 저질 기사들도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비슷한 예시로 우리나라 스포츠신문들도 악의적으로 헤드라인을 뽑아 문제가 되곤 했다. “연예인 아무개 결혼”이라는 헤드라인에 혹해 꺼내보면 ‘꼭 결혼 하고싶다’는 시시한 내용이 들어있는 식이었다.
오늘날 가짜뉴스가 비로소 공공연한 문제가 되기 시작한 덴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온라인 공론장의 활성화다.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이 성장하고 SNS가 성장하면서 누구나 뉴스를 만들고 쉽게 퍼트릴 수 있게 됐다. 덕분에 자유롭게 발언하고 정보와 의견을 나눌 수 있게 됐지만, 동시에 검증되지 않은 소식이 생산되기도 쉬워졌고 퍼지기도 쉬워졌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미디어 환경에 불을 지른 것이 도널드 트럼프라는 인물의 등장이다. ‘가짜뉴스(Fake news)’라는 단어의 구글 검색량을 확인해보면,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가 실시될 즈음부터 검색량이 급증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짜뉴스는 항상 있었지만 비로소 ‘가짜뉴스’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트럼프가 등장하면서부터였다.
이후 가짜뉴스를 걸러낼 수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는 현대인의 필수 소양이 됐고, 미디어 업체들과 SNS 기업들은 가짜뉴스나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판별하는 인공지능을 도입하기도 했다. 가짜뉴스와 헛소문을 걸러내는 팩트체크 전문 미디어들도 여럿 등장했다.
언론을 믿지 마, 트럼프를 믿어!
도널드 트럼프 재임기 4년은 가짜뉴스가 얼마나 큰 해악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트럼프는 서슴지 않고 가짜뉴스를 퍼트렸다. ‘멕시코인들이 마약과 범죄를 가져오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오바마가 선거 승리 직전 내 전화를 도청했다’는 내용의 트윗을 올리기도 했다. 워싱턴 포스트의 팩트체크에 따르면, 트럼프가 재임 중 거짓말이나 사실을 오도하는 주장을 한 사례는 3만 건이 넘었다.
물론 그 중에서 가장 치명적이었던 거짓말은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가 조작됐다’는 주장이었다. 미국의 극우파와 트럼프 지지자들은 폭동을 일으켜 국회의사당을 점령했고, 의회는 이들을 쫓아내기 위해 군대까지 동원해야 했다. 복잡한 사실관계는 건너뛰고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이야기들만 꾸며내는 가짜뉴스가 사람들을 더 극단적으로 몰아간 것이다. 이런 현상은 2020년 총선 당시 부정선거 음모론을 꺼내든 한국의 극우 세력에서도 관찰됐다.
하지만 트럼프가 진짜 무서운 이유는 따로 있었다. 트럼프는 본인이 직접 가짜뉴스를 양산하면서, 정작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사들(친공화당 매체인 폭스뉴스를 제외한 거의 모든 미국의 제도권 언론들)을 ‘가짜뉴스’라고 매도했다. 비판의 여지를 아예 차단해 버린 것이다. 덕분에 트럼프 지지자들은 대통령에 대해 제기된 모든 비판을 가짜뉴스로 치부했다. 그들은 조작된 대선 결과를 바로잡기 위해 의회를 점령하는 자신들이 진짜 정의를 실천하고 있다고 믿었다.
‘가짜뉴스’라는 단어를 남발하는 정치인들
가짜뉴스가 일종의 주홍글씨가 되면서, 한국의 정치인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나 비판적인 주장에 가짜뉴스라는 딱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비슷한 전략을 선택했다.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발언 논란이 발생했을 때 대통령실이 ‘가짜뉴스’를 주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발언과 비속어 보도가 거짓이라는 대통령실의 해명은 대중을 설득하지 못했지만(여론조사 결과 대통령실의 해명을 믿는다고 답한 사람은 27%에 불과했다), 적어도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데는 성공했다. 대통령실 해명이 나오자 여당 의원들은 ‘조작보도’를 비판하며 발언을 최초 보도한 MBC를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민주당 역시 ‘가짜뉴스 피해구제법’이라며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 ‘악의적이고 진실되지 못한 보도’에 대해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가능하게 하자는 의도였다. 하지만 애초에 가짜뉴스의 경계 자체가 분명한 것이 아니고, ‘악의적’이라는 것에 대한 판단 기준도 모호했다. 결국 언론중재법 개정 시도는 정치적 의도로 언론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비판을 받고 수그러들 수 밖에 없었다.
참과 거짓을 명쾌하게 나눌 수 있는 뉴스만 있다면 좋겠지만, 모든 뉴스가 진짜와 가짜로 딱 떨어지지는 않는다. 의도적으로 퍼트린 ‘악의적’인 가짜뉴스와 보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보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을까? 근거 없는 억측과 합리적인 의혹 제기를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정치적 발언에는 사실에는 해석과 판단이 덧붙여지기 때문에, 판단하기에 따라 참과 거짓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가령 누군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생각해보자.
‘‘2017년 이후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책임이다’’
이 말은 가짜뉴스일까? 부동산 가격 상승에는 다양한 국내외적 요인이 작동하니, 누구 탓이라고 딱 잘라 결론을 지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렇게 주장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이러저러한 근거들을 토대로 볼 때 부동산 가격의 폭등은 문재인 정부의 책임이 크다’라고 주장할 수 있고, 여기에 다른 사람도 ‘그 주장은 어떠어떠한 사실들을 간과하고 있으며, 전임 박근혜 정부의 정책이 뒤늦게 영향을 준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반박할 수 있다. 이렇게 이뤄지는 정상적인 토론에서 다짜고짜 “가짜뉴스”라는 딱지를 붙이게 된다면 토론의 공간은 닫히게 된다. 그때부턴 토론이 아닌 정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최근 언론계나 미디어 연구자들은 가짜뉴스를 ‘허위정보(disinformation)’나 ‘오보(misinformation)’와 같은 보다 중립적인 단어로 대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가짜뉴스’가 하나의 정치적 도구로 전락했을 뿐만 아니라, 애초에 가짜 정보를 ‘뉴스’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신문에서는 ‘가짜뉴스’라는 단어를 빈번하게 만날 수 있다. 오늘날 ‘가짜뉴스’라는 단어의 남발은 가짜뉴스 그 자체만큼이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인이 됐다.
에디터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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