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인상이 말하는 정치
<아무튼 정치 때문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뉴스를 분류하는 4가지 카테고리는 사실 크게 보면 다 정치로 통한다.
일상의 현상들, 요즘 뜨는 이야기, 어쩌다 일어난 것 같은 사건 사고들에서 정치와의 연결고리 찾기.
다가오는 겨울, 걱정거리가 또 하나 늘었다. 10월 1일부터 전기요금이 kWh 당 7.4원 인상됐다. 월평균 수준의 전기를 사용하는 4인 가구의 경우, 전기요금이 2,270원 오르는 것이다. 올해 벌써 세 번째 인상이다.
전기요금은 물가, 생활비와 직결되는 만큼 국민들의 불만이 높다. 아직 코로나19의 여파가 가시지 않았고 물가 인상도 심각한데 전기요금까지 오른다니!(심지어 가스요금도 올랐다.)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말이 진짜가 됐다. '최소한 전기는 정부가 책임지고 마음 놓고 쓸 수 있게 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전기요금을 결정하는 주체는 정부다. 한국전력공사(한전)가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에 전기요금 인상안을 제출하면 산자부가 ‘물가안정법’에 따라 기획재정부(기재부)와 협의한다. 그렇다면 정부가 전기요금을 책임져야 한다는 얘기는 맞는 말이다. 실제로 정부는 이번 전기요금 인상 폭을 억제했다. 애초에 한전은 kWh당 261원 인상을 제시했다. 최종 결정된 인상안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하지만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이번 분기 전기요금 인상 억제하기’ 이상이다. 한전이 전기요금 261원 인상을 제시한 배경에는 크게 세 가지 요인이 있다. 한전의 적자, 한국의 특수한 전기요금 체계, 그리고 연료비 급등. 셋을 다 푸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지금의 상황은 정부가 이 숙제들을 미뤄왔기에 발생했다.
한전이 밑 빠진 독이 된 이유
한전 적자 문제부터 짚어보자. 한전은 올해 35조원의 적자를 예상하고 있다. 한전 직원 전원의 인건비를 0원으로 책정해도 메꿀 수 없는 숫자다. 이 적자를 해결할 수 없다면, 전기요금은 오를 수밖에 없다.
당장 정부가 내놓은 해결책들은 효과가 미미하다. 현 수준의 전기요금 인상으로 들어오는 수입(8500억원)은 올해 한전 예상 적자(35.4조원)의 2.4% 밖에 되지 않는다. 정부는 지난 6월부터 한전에게 적자를 알아서 메꿀 방법을 내놓으라고 들볶았다. 이에 한전은 8월 14조 규모의 재정 건전화 계획을 마련했다. 재정 건전화 계획은 부동산·지분 매각(1.5조원), 인원 감축과 사업 연기·축소(2.5조원), 장부상의 자산 재평가(7조원) 등으로 구성됐다. 지금까지 쌓인 적자를 일부 메꿀 수는 있지만, 적자가 계속해서 쌓이는 구조적 원인은 짚지 못하는 방안들이다.
한편 정부는 한전채 발행 한도 인상을 해결책 중 하나로 제시했다. 적자로 부족한 운영 자금을 끌어오기 위해 정부가 한전에 빚을 내주는 것이다. 하지만 과도한 한전채 발행은 채권 시장을 교란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경기 둔화로 채권 수요가 줄고 있는데, 한전채가 많아지면 일반 기업들이 채권을 팔기는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전 적자의 근본적 원인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지적하는 것은 너무 싼 전기요금이다. 한국은 전세계적으로 전기요금이 매우 낮은 편이다. OECD국가 전체의 평균을 100이라고 할 때, 한국의 주택용 전기요금은 61, 산업용 전기요금은 88 정도다.
인상 폭도 낮다. 올해 1분기 영국, 독일, 일본 등의 전기 소매 가격은 지난해 대비 평균 36% 상승했다. 한편 한국의 전기 요금은 지난 1월부터 10월까지 15.8% 상승했다.
이렇게 전기요금이 저렴한 이유는 전기 생산 연료비를 전기요금에 반영되지 않는 구조다. 정부가 요금 인상을 억제하면서 이 구조를 유지한 덕에 한국의 전기요금은 원가보다 싸다. 연료비 상승으로 인한 손해는 오롯이 한전이 감당해야 한다. 이에 대한 전력계의 문제 제기가 계속되자 2021년에는 석탄, 석유 등의 전기 생산 연료비를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가 도입되기도 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연간 kWh당 ±5원, 전 분기 대비 kWh당 ±3원으로 조정폭을 제한해뒀기 때문이다.
전기요금이 원가를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에너지, 특히 화석연료 가격 급등은 한전에게 직격타다. 올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화석연료(석탄, 석유, 가스) 가격이 모두 올랐다. 화석연료는 2022년 기준 한전 발전 비중의 약 60%를 차지한다.
정치도 전기로 돌린다
한전 적자를 해결하는 가장 빠르고 근본적인 방법은 전기요금을 원가에 맞게 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인들에게 전기요금 인상은 폭탄과 같다. 저렴한 전기요금에 익숙한 한국인들은 전기요금 인상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전기요금 인상은 곧 여론 악화요 표의 상실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기요금 인상 논의는 밀리는, 일종의 폭탄 돌리기가 이어졌다. 원가 상승이라는 경제적 요인이 아닌 정치적 요인이 전기요금을 억제해왔다.
현 전기요금 제도 역시 정치적 고려에 기반해 만들어졌다. 한전은 1973년 이후 용도별 요금제를 유지했다. 주택용, 일반용, 산업용, 교육용, 농사용, 가로등 6가지로 요금제를 구분하는 것이다. 이는 세계적으로 특수한 경우다. 해외 주요 전력 회사들은 주로 전압별로 요금을 달리 정하는 전압별 요금제를 사용한다. 한국이 용도별 요금제를 채택한 배경에는 국가 주도의 산업화가 있다. 수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산업용 전기를 싸게 공급한다는 정책적 결정에 따른 것이다. 이후 용도별 요금제를 정책 방향에 연동하는 게 정치적 관행으로 굳어졌다. 즉 전기요금은 정부가 가진 정치적 수단 중 하나였다.
나아가 전기요금은 정쟁의 대상이 됐다. 전기요금 인상이 특정 정부 정책 실패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전기요금 인상이 전 정부의 탓인가를 두고 논쟁이 격렬하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한전 적자의 원인이라 지적하고 있다. 저렴한 원전 발전이 줄면서 전기 공급에 차질이 생겼고,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아져 연료비 상승의 영향을 더 크게 받았다는 주장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시기 원전 가동률이 오히려 증가해왔다며 반박했다. 원인을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진영이 갈리는 모양새다. 탈원전 정책에 대한 평가도 더불어서 말이다.
한편 현 정부는 한전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다. 지난 6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한전 적자의 원인이 방만경영에 있다고 질타했다. 한덕수 총리는 기자 간담회에서 “(한전이) 본인들 월급 반납하겠다는 건 한 번도 안 하지 않았는가”라며 한전이 요금 인상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전은 기재부의 관리감독을 받는 공기업이다. 한전의 방만경영이 정말 문제라면,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기재부의 책임도 있다. 책임의 소재가 무 자르듯이 나눠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전의 문제만을 강조하는 것은 현 정부의 부담 덜기에 적합할지언정 제대로 된 진단은 아니다.
전기요금 인상에서 기후위기까지
한전의 수익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연료비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발전 연료는 세 종류다. 화석연료, 원전, 재생에너지. 앞서 언급했듯이 현재는 화석연료 발전 비중이 가장 높다. 가격이 낮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이번과 같은 공급망 대란이 일어나면 가격이 크게 오른다.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발전 방식을 다양하게 하면 보다 안정적인 이익구조를 만들 수 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려면 전기요금을 오히려 올려야 한다. 재생에너지의 생산단가는 원전보다 높고, 전력 생산량도 불규칙하다.
당장은 효과보다 비용이 큰 방안인 만큼 정부의 접근도 소극적이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비중 증가는 더 이상 미루기 어려운 과제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이 확대되며 전세계가 탄소중립을 목표 삼았고, RE100 등의 규제가 세워지며 재생에너지 사용 여부가 수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게 됐다. 한국 역시 재생에너지 전환의 흐름에 탑승했지만, 실천은 미흡한 상황이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7.5%다. 이에 미국 상공회의소가 2030년까지 OECD 평균인 30% 수준으로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올려달라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와 한전은 적자 앞에서 재생에너지 문제를 미뤄왔다. 한전의 재정 건전화 계획에는 석탄발전상한제, 해상풍력투자를 유보했다. 재생에너지 공급의 핵심인 송배전 투자도 2조원 삭감했다. 피할 수 없는 재생에너지 전환 앞에서 미리 국민들을 설득하긴커녕, 최선을 다해 ‘시선회피’를 하는 중이다.
지난 10월 국정감사 기획재정위원회 감사에서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추경호 경제부총리에게 “지금껏 전기요금을 낮게 유지하느라 쌓인 한전 적자는 사실 우리가 미래 세대에 떠밀어놓은 탄소 가격”이라고 강조했다. 단기적인 정치·경제적 이익에 집중하는 정치는 장기적 문제에서 눈을 돌렸다.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예전처럼 폭탄 돌리기를 할 여유는 없다. 에너지 전환의 기반을 쌓으려면 할 일이 산더미다. 요금 인상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정부가 적극적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부담이 큰 저소득층을 지원할 방안을 준비하고, 물가를 고려해 점진적인 요금 인상안을 마련해야 한다.
전기요금 논의는 결국 정치가 기후위기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문제로 이어진다. 정치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지 않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국정감사에서 “탄소중립 방향성에는 동의하지만, 전기라는 자원의 공공성과 국민의 부담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렴한 전기요금과 기후위기에도 대응할 수 있는 전기요금 체계와 전력시장 형성 중 에너지 공공성 확보를 위해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정치권의 정교한 논의가 필요한 때다.
글: 에디터 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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