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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도 진보, 보수가 있다고?

애정클
애정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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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지방선거날 투표는 잘 하셨나. 6.1 지선이 마무리됐다. 보수 여당인 국민의힘이 크게 승리했다는 평가가 다수다. 광역단체장 결과만 놓고 보면 국민의힘은 경기, 호남, 제주를 제외한 12곳에서 단체장 자리를 거머쥐었다. 교육감 선거 결과도 주목받고 있다. ‘진보 교육감 시대’가 막을 내렸다고들 한다.

학교를 다닐 땐 선거권이 없어서, 졸업 후엔 순식간에 학생 시절이 아득하게 느껴져서 교육감 선거에는 큰 관심을 둬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교육감에도 진보, 보수가 나뉜다고? 학교는 정치적 중립이 대단히 강조되는 공간이 아니던가. 진보 교육과 보수 교육은 뭐가 다르다는 걸까. 이번 교육감 선거 결과가 어땠고, 왜 그렇게 된 건지 한번 알아보자.


지금 상황 알아보기


지난 1일에 치러진 전국 시·도 교육감 선거의 경우 보수와 진보 성향 후보들이 수적으로 균형을 이뤘다. 서울·인천·경남·울산·세종에서는 진보 성향의 현 교육감이 재선 혹은 3선에 성공했으며, 경기·강원·부산·충북·제주에선 진보에서 보수 성향으로 바뀌었다. 특히 경기는 진보 교육의 산실이라고 불리며 진보적 교육 정책을 펼치는 데 앞장섰던 곳이다. 경기에선 교육감 직선제 도입 이후 처음으로 보수 성향 교육감이 당선됐다.

지금까지의 교육감 선거에서는 진보 성향 후보가 우위를 나타내왔다. 교육감 직선제가 전국적으로 시행된 2010년 선거에선 총 6곳에서 진보 교육감이 당선됐고 이후  2014년에는 13곳, 2018년에는 14곳에서 진보 교육감이 당선됐다.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보수 진영의 약진이자 진보 진영의 후퇴라는 해석이 나오는 까닭이다.


개념부터 짚고 가기


교육감각 지역 교육청의 장으로, 유·초·중·고 교육 및 사교육을 총괄한다. 교육감이 가진 권한은 상당한데, 관할 지역 학교장 및 교사에 대한 인사권부터 교육 예산 편성, 조례 및 규칙 제정 및 학교의 설립·폐지 결정권을 아우른다. 이외에도 학생들의 등교 시간, 복장 등의 생활에 관한 사항과 학력진단평가 시행 여부처럼 교실 현장에 영향을 미치는 교육 정책을 재량껏 펼칠 수 있다.

교육감 선거는 2007년에 주민 직선제로 선출 방식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다가 1991년 지방선거 시작과 함께 교육위원, 학교운영위원, 교원단체 등이 간접선거로 교육감을 뽑아왔다. 하지만 간선제의 경우 학생, 학부모, 교사 등 다양한 교육 주체에 비해 선거인단 규모가 작아 대표성이 떨어진다. 게다가 후보자들이 선거인한테 금품을 제공하는 등 부정과 비리가 발생하기 쉬웠다. 이에 간선제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교육 자치를 실현하려는 목적으로 주민 직선제가 도입됐다.


알면 좋을 맥락


주민 직선제 도입의 근거 중 하나는 교육감이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간선제 개선 방향을 논의할 때 지자체장 후보와 교육감이 러닝메이트로 출마하는 방법도 제시됐지만, 정당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않았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대한민국 헌법에 밝혀져 있다. 교육은 어떤 권력이나 외부의 힘으로부터 본연의 목적이 흔들리지 않아야 하며, 이를 위해선 정치의 관여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행 교육감 선거는 정당의 개입이 배제된 채 이뤄진다. 교육감 후보는 후보자 등록 1년 전부터 정당에 소속돼있을 수 없고, 정당은 교육감 후보를 추천하거나 유세를 지원할 수 없다.

교육 현장에서도 정치적 중립성이 강조된다. 대표적으로 교사의 정치활동 금지를 들 수 있다. 교사는 후보 등록, 정당 활동을 할 수 없으며 정치에 관한 발언에도 제약이 따른다. 이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특정한 정치적 견해를 일방적으로 전달함으로써 학생들의 독립적인 판단을 저해하는 일을 막기 위함이다.

하지만 특정 신념의 강요를 막는 것과 정치적 사안에 대한 논의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구분돼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모든 사회적 활동이 포괄적인 의미에서는 정치와 불가분 관계에 놓여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발언을 금지하는 것이 교육 활동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이유로 교실에서 다룰 수 있고, 다뤄야 할 주제가 금기시된다는 것이다. 학교 교육이 민주 시민을 양성하는 기능을 담당하므로, 사회적으로 논쟁적인 사안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며 활발하게 토론하는 ‘정치적’ 경험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래서 내가 궁금한 건…

  •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왜 언론도 후보 본인들도 진보·보수를 나누는 거지?

‘교육의 정치적 중립’에서 중립은 교육의 내용이 정치적으로 편향적이어서는 안되고, 교육자가 정치의 압력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즉 교육의 내용과 정치와 교사의 관계에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교육의 방식과 목적은 정치와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진보 성향인지, 보수 성향인지에 따라 교육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진보 교육은 뭐고, 보수 교육은 뭔데?


진보와 보수의 특징부터 잠깐 짚고 가자.

진보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보고, 공공성과 평등을 중시한다. 반면 보수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하며, 시장의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해야 한다고 본다. 진보와 보수 개념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이 글을 참조해보자! 교육 정책에서의 진보·보수 역시 이러한 진보·보수의 기본적 특징과 연결돼있다.

진보부터 얘기해보자.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성향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들은 8년 간 실시된 진보 교육 정책들을 확대 또는 보완하는 경향을 보였다. 지난 8년 간 학교를 다닌 적이 있는 클러버나 현재 재학 중인 클러버라면 내가 아는 학교의 모습을 떠올려보라. 혹은 ‘라떼’와 달라진 학교의 모습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지.

  • 흠… 요즘 고교학점제 이야기가 많이 들리던데, 그것도 진보 교육 정책인가?

그렇다.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진로에 따라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들을 수 있게 하는 제도로, 문재인 전 대통령의 1호 교육 공약이었다. 진보 교육감들이 대다수였던 당시 고교학점제 추진에 속도를 낼 수 있었다.

고교학점제에서 볼 수 있듯이, 진보 교육 정책학생의 자율성과 경쟁 해소를 중시한다. 사회적 형평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므로 교육 불평등에도 관심이 많고, 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통해 이를 해소해야 한다고 본다. 무상급식과 저소득층 학생 지원이 그 사례다.

보수는 어떨까. 보수 성향 후보들은 이번 선거에서 그간 진보 교육감들이 추진해온 정책에 반대하거나 보완을 요구하는 행보를 보였다. 무작정 ‘진보니까 반대했다’고 보긴 어렵다. 보수가 지향하는 교육의 모습을 따라 나온 주장이기 때문이다.

보수 교육 정책학생의 자율성보다는 교권(교사의 권리 및 권위)을 중시한다. 학력 향상을 우선시해 상대적으로 교육 경쟁에 우호적이다. 국가 개입의 최소화를 중시하는 만큼 공교육에서도 평준화보다는 다양한 교육을 선택할 권리의 존중이 중요하다고 본다. 대표적인 정책으로는 자사고, 특목고 유지와 시험 유지가 있다.

이번 교육감 선거의 주된 쟁점들을 사례로 진보와 보수의 입장 차이를 더 자세히 살펴보자:

학력평가


기초학력 향상은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보수 할 것 없이 전면에 내세운 공약이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기초 학력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보수 교육감 후보들은 학력평가를 그 해결책으로 내걸었다. 학력평가(학업성취도평가)국가에서 학생들이 배운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치르는 시험이다. 이명박 정부까지는 전국의 모든 학생들이 치르는 전수 조사로 실시됐지만,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때부터 전체 학생의 3%만 선정해 치르게 됐다.

보수 성향 후보들은 학력평가를 통해 학생들의 수준을 제대로 파악해야 학력 향상 방안을 세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진보 성향 후보들은 학력평가와 그 결과를 공개하는 것이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고, 학생들에게 열등감을 심어준다며 반대했다.

학생인권조례


학생인권조례학생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조례다. 주로 체벌 금지, 두발 규제 금지, 소수자 권리 보장 등이 포함된다. 다만 각 교육청이 자체적으로 제정하기에 지역마다 내용이 다르다. 어느 지역은 학생인권조례에 따라 두발규정이 사라졌지만, 다른 지역에는 남아있을 수도 있다. 아예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도 있다.

교육감 선거에서도 학생인권조례와 관련된 공약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폐지, 유지부터 내용 수정까지 진보와 보수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린다. 진보 성향 후보들은 주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이고, 보수 성향 후보들은 폐지 또는 보완을 주장한다. 학생 인권을 강조하면서 교사들이 적절한 지도를 하기 어려워졌다는 이유에서다.


  • 공약도 공약이지만, 보수 교육감 후보들 현수막에서 ‘전교조 out’이라는 문구가 빠지지 않더라. 진보 교육감들이 전교조라는 건가? 그 전에 전교조는 뭐하는 곳인가?

전교조는 왜 자꾸 소환될까?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말 그대로 교사들의 노동조합이다. 1989년 교육의 민주화와 교사의 노동권 보장을 주장하며 출범한 진보 성향 단체다. 진보 성향 교육감 중 상당수가 전교조 출신이기도 하다.

전교조의 핵심적 의제는 입시 경쟁 교육 해소교사의 정치기본권 보장이다. 교사의 정치기본권 보장이란 교사 직위를 유지하면서 교육감 선거에 출마하고, 학교 밖에서 교육정책에 대한 입장을 표현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말한다.

보수 진영은 전교조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치고 있다고 비판한다. 좌파 편향적인 교육으로 학생들에게 이념을 주입한다는 것이다. 전교조와 보수 진영은 교육 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를 두고도  갈등을 빚어왔다. 박근혜 정부 시기에는 고용노동부가 전교조의 노동조합 지위를 박탈하면서 ‘전교조 탄압’ 논란이 일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하면서 국가공무원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받기도 했다.

보수 성향 후보들의 전교조 비판은 교육감 선거의 단골 소재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전교조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교실에서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표명해 문제가 된 전교조 소속 교사의 사례가 있긴 하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한데, 이를 과장해 ‘전교조는 좌편향 교육을 한다’는 이미지를 씌운다는 것이다.

전교조는 이번 선거에서 ‘전교조 out’ 구호를 내건 교육감 후보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하지만 해당 문구를 쓴 조전혁 서울시교육감 후보는 그만큼 전교조가 교육을 망쳤기 때문이라며 반발했다.


  • 지난 두 차례 교육감 선거에서는 진보 성향 후보가 우세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번에 보수 교육감이 많이 당선된 이유는 뭔지 궁금하다.

사람들의 해석을 종합하면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1) 이번 지방 선거가 보수 진영에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치러진 게 영향을 미쳤다.

6.1 지방선거 결과엔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간 견제보다 윤석열 정부의 안정적인 국정 운영에 힘을 실어주려는 여론이 작용했다고 얘기된다. 이런 정치 지형이 지방 정부 구성 뿐 아니라 교육감 선거에도 연동돼 보수 성향 후보들이 선전하게 됐다는 시각이 있다.

2) 코로나19로 인해 학력 격차가 심화되면서 학력 신장을 강조하는 보수 후보에 표가 갔다.

보수 성향 후보들은 진보 교육감 시기 이뤄진 학업성취도평가 폐지와 혁신학교(교과과정 구성의 자율성을 높이고 창의적 활동을 강조) 등의 정책이 코로나19 이전부터 학력 저하를 야기했다고 비판하며 학력 신장을 위한 정책을 내걸었다.

3) 진보 교육감 하에서 시행된 정책이 실효성을 거두지 못했다.

진보 교육감 시기의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해 유권자의 마음이 돌아섰다는 분석도 있다. 공교육 위기를 바라보는 문제의식이 지난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교육감이 대거 당선되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눈에 띌 만한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평가다.


오늘 담소 마무리


앞으로 지켜볼 만한 변화는 향후 교육 정책의 방향이다. 진보 성향 교육감들이 오래 자리잡았던 지역에서 보수 성향 교육감이 당선되면서 이전까지 추진되었던 진보 교육 정책이 동력을 잃으리라는 예측이 나온다. 중앙 정부와 진보 교육감들이 주요 교육 정책을 두고 갈등을 빚을 수도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진보 교육 정책의 일환인 자사고·외고의 일반고 전환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교육감 선거는 우리나라의 교육 정책의 방향성이 정해지는 중요한 선거지만. 시민들의 관심이 저조하다는 고질적 문제를 겪어왔다. 오늘의 담소를 마치고 나니 나중에 교육 정책에 대한 소식이 들려올 때 조금 더 눈길이 갈지도 모르겠다. 다음 모임에서 또 새로운 질문들을 가지고 씩씩하게 만나자.


오늘의 담소 요약


  • 이번 전국 17개 시도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성향 후보가 9곳, 보수 성향 후보가 8곳에서 당선됐다. 진보 성향 중심이던 전국 교육감 지형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학력평가 축소, 학생인권조례, 혁신학교 등 진보 교육감들이 시행해온 기존 교육 정책에 큰 변화가 생기리라는 예측이 나온다.
  • 우리나라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법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중시하고 있다. 교육감 선거부터 교육 현장까지 교육과 정치가 연계되는 것을 경계한다. 하지만 교육에서 정치적 사안에 대한 논의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도 있다.
  • 교육의 방식과 목적에 대한 관점은 진보 성향인지, 보수 성향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진보는 학생의 자율성을 중시하며, 경쟁을 줄이는 창의적·능동적 교육을 추구한다. 교육 불평등에도 관심이 많다. 보수는 학생의 자율성보다는 교권을 중시한다. 학력 향상을 우선시해 상대적으로 교육 경쟁에 우호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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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의 정치클럽 팀이 함께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