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손으로 국감을 뒤져봤더니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애증의 정치클럽 🍂건조 에디터입니다.
11월은 제가 가장 싫어하는 달입니다. 해는 본격적으로 짧아지고, 날은 추워지고, 연말은 불쑥 다가오는데 1년 동안 이룬 건 딱히 없는 것 같아 초라해지는 시기여서요. 내년을 기약하며 올해의 실수를 털어내기도 애매해 자꾸 이불 속으로, 나만의 생각 속으로 파고들게 됩니다.
하지만 애정클의 11월은 새로운 도전으로 꽉 찬 달입니다. 정기적으로 출연하고 있는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의 국정감사 특집 방송에 참여하고 있고, 플랫폼 아그레아블과의 협업으로 북클럽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협업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물론 애정클의 콘텐츠도 다듬어나갈 계획입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침잠해 있기엔 할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해야 할 일에 마냥 휩쓸리고 싶진 않습니다. 모든 경험을 일일이 곱씹고 싶습니다. 직접 국감의 장면들을 뜯어보고 전해보는 것도, 구독자와 만나 대화하는 것도 저에겐 두려운 만큼 흥미로운 일이니까요.
그러기 위해 오늘의 에디터노트에서는 <그것은 알기 싫다> 국정감사기록실을 준비하며 느꼈던 것들을 기록해봅니다.
지난 2주간의 애정클 콘텐츠
- [근본적 정치 탐구: 언론장악_2] 문제는 공영방송? (10/24)
- [주간 애증 담소] 국민의힘, 달라질까, 쪼개질까? (10/26)
- [여의도 밖 정치] 박경석: “이 투쟁은 비장애인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10/27)
- [근본적 정치 탐구: 언론장악_3] 출입처 제도, 한국 언론의 악습? (10/31)
- [주간 애증 담소] 김포가 서울로 갈 수 있다면 (11/2)
이외에도 이런 활동이 있었습니다.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
구독자분들께선 이런 의견을 보내주셨습니다.
박경석: “이 투쟁은 비장애인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10/27)
- 박경석 전장연 대표님 인터뷰를 읽으면서 감미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보다 거대한 낙관과 사람에 대한 믿어지지 않는 기대에 넋을 놓게 되는 인터뷰였습니다. 정치에 회의감이 들고 중력 같은 지금의 질서를 거스를 자신이 없어질 때마다 잠언처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나 명예로운 이야기를 기록하고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대호 님)
애정클 콘텐츠에 대한 다양한 의견 제시는 늘 환영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린 의견에 대해서도 피드백창을 통해 의견을 남겨주시면, 다음 에디터 노트에서 논의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편하게 찾아주세요!
*보내주신 의견은 에디터의 편집을 거쳐 소개됨을 알려드립니다. 내용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가독성을 위한 편집만 진행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의견은 합쳐서 제시되기도 합니다.
🍂에디터 스토리
국감을 키워드로 기사를 찾아보시면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단어가 ‘맹탕 국감’입니다. 국회의원들이 감사를 뾰족하게 하지 못해 국감이 밍숭맹숭했다는 겁니다.
상황은 유튜브에서도 비슷합니다. 언성을 높이며 서로에게 삿대질을 하고, 피감기관에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하는 의원들의 영상이 대다수입니다. 심지어 영상 내용의 대부분은 국감이 아닐 때도 지겹게 들었던 똑같은 정쟁 얘기입니다.
국감은 상임위 당 보통 10일 씩, 하루에 9시간 이상 진행됩니다. 12시간을 넘길 때도 많지만 적게 잡아 10시간씩 했다고 해도 상임위 당 100시간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질의가 쏟아집니다.
그중에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질의는 극소수입니다. 중요하지 않은 질의가 많아서가 아닙니다. ‘팔리는’ 질의만 골라내기 때문입니다. 언론의 체에 남는 것은 주로 ‘현안’이라 불리는 정쟁 이슈입니다.
<그것은 알기 싫다>가 국감 시즌마다 진행해온 ‘국정감사기록실’은 국감 현장을 제대로 뜯어보고 진짜 현안을 찾아보는 기획입니다. 애정클 팀이 이렇게 전통도 의미도 깊은 방송에 참여하게 되어 기쁘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했는데요.
준비 과정에서 국감 라이브와 의원실 아카이브를 뒤지며 우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몰랐던 국회의원이 정말 많다. 제 지식이 짧은 탓이겠지만, 언론에 자주 얼굴을 비추는 국회의원은 그렇지 않은 국회의원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낯선 이름과 얼굴을 분주히 익히다 보니 그들의 관심사, 전략, 그리고 태도가 차츰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흔히 생각하는 국회의원의 스테레오 타입과 너무나 달랐습니다. 일을 잘 하는 방식도, 일을 못 하는 방식도 가지각색이었습니다. 국회의원의 수많은 업무 중 국감 질의만 두고 평가한 것이긴 하지만요.
정성을 들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갈렸습니다. 매일 언론에서 반복되는 이야기를 그대로 하는 의원이 있는 반면, 피감기관의 데이터를 샅샅이 뒤져 완전히 새로운 문제를 발견한 의원도 있었습니다. 통계 시스템의 허점을 찾고 데이터 자체가 없는 사각지대를 조명하기도 했습니다.
국감장에서 국회의원들은 동시대의 문제를 발굴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를 지적하는 것을 넘어 직접 대안을 찾아 제시하고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실로 국민의 대표가, 선출된 정치인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사 찾기로 넘어가 보니, 제가 생각하기에 ‘잘 한’ 질의는 언론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의원실 보도자료를 받아 쓴 기사 한두 개가 있어도 자료를 그대로 옮긴 수준에 그쳤습니다. 그런 기사 아래에는 ‘맹탕 국감’을 헤드라인으로 뽑은 추천 기사가 자리했습니다. 늘상 성숙한 정치, 유능한 정치를 요구하면서 그런 정치를 찾지 않는 언론의 아이러니가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언론에 지겹게 나오는 이야기여도 좋은 질의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의원이 어떤 관점과 근거를 제시하느냐에 따라 정쟁 이슈도 내실 있는 사안, 출구가 있는 사안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런 질의도 언론에서 가장 자극적인 한 마디만 조각 내 흩뿌리면 갈등과 정치 혐오를 몰고 다녔습니다.
이런 광경을 보고 있자니 오히려 정치 혐오가 씻겨나가더군요. 맹탕이라고 해서 들어가 봤더니, 안에 하나의 생태계가 있었습니다. 그 바닥을 직접 뒤져 진주를 찾아내는 일은 효능감을 줬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무언가가 이 아래에 있고, 눈을 잘 뜨고 살펴보면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을요. 어떤 질의가 제게 기쁨을 주었는지는, 국정감사기록실 방송에서 여러분이 직접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그러던 중 여러분의 희망도 발견하게 된다면 더없이 기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