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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수가 ESG에 반대하는 이유

미국에선 어쩌다 ESG에 ‘좌파’ 딱지가 붙었을까요?

벨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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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FP via Getty Images, Mandel Ngan

지난 3월,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후 2년 만에 처음으로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현재 미국에는 대법원의 낙태권 보장 판결 번복, 총기 난사 사건 증가 등 뜨거운 사회 이슈들이 많습니다. 대통령 거부권은 상징적 의미가 큰 만큼, 많은 사람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앞선 이슈들을 대상으로 첫 거부권을 행사하리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매우 뜻밖의 사안이 거부권 행사의 대상이 됐습니다. 바로 반(反)ESG 결의안입니다.

반ESG 결의안연금 문제에 대한 것입니다. 미국 근로자의 저축연금으로 ESG 투자가 가능하도록 수정한 미국 노동부의 새로운 규정에 공화당이 반발하며 내놓은 결의안인데요.

이 규정에 대해 공화당 릭 스콧 상원의원은 “바이든과 그의 정권은 그들만의 진보적 의제를 미국인의 이익보다 앞장세운다”며 비판했습니다. 같은 당의 존 바라소 상원의원은 ESG를 두고 ‘극좌파적 정치 의제’라고까지 표현했습니다.

한국의 정치권은 ESG와 관련해 큰 방향에서는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미국에선 어쩌다 ESG에 ‘좌파’ 딱지가 붙었을까요?

ESG가 뭐길래?

ESG는 ‘Environment(환경)’, ‘Social(사회)’, ‘Governance(지배구조)’의 첫 글자를 딴 단어로, 기업 활동에 있어 1) 친환경, 2) 사회적 책임, 3) 지배구조 개선, 이 세 가지 요소가 반드시 고려되어야 지속 가능한 발전이 가능하다는 경영 및 투자 철학입니다.

©Shutterstock

좋게 보면 도덕적인 이야기 같고, 꼬아서 보면 ‘착한 기업’ 이미지를 위한 마케팅 구호로 들립니다. 하지만 ESG는 투자 위험 요소들을 관리하기 위한 차원에서 등장한 실무적이고 계산적인 개념입니다. 현재 대다수의 기업과 금융계가 ESG 전략을 택한 것은 ESG가 주주들에게 금전적 이득을 가져다준다판단 때문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투명 경영과 지배구조 개선은 부당한 수익 배분이나 횡령의 위험을 최소화합니다. 이사진의 구성원을 더욱 다양하게 꾸리는 것은 다원화된 소비자층에 보다 정확한 공급을 할 수 있게 합니다. 탄소배출 절감은 기후변화 속도를 늦출 수 있습니다. 위기관리 측면에 있어 좋은 경영이고, 기업가치도 올리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더 큰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전략입니다.

ESG라는 단어가 처음 공식적으로 제안된 것은 2004년인데요. 본격적으로 회자된 것은 3~4년 전부터입니다. 이 흐름이 만들어진 것엔 세계에서 가장 큰 자산 운용사인 블랙록의 비중이 적지 않습니다.

2020년 1월,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ESG 요인을 자산 운용에 적극 반영하겠다고 선포했습니다. 화석연료 관련 매출이 전체 매출의 25%를 넘으면 투자에서 제외한다는 등의 폭탄 선언이 포함됐는데요.

이후 블룸버그, 다우존스, 무디스 등의 평가 기관에서 ESG 지수를 구체적으로 평가하는 체계를 발전시켰고, 금융사들은 적극적으로 ESG 펀드를 운용했습니다. 그 결과 지난 3년간 ESG 펀드는 미국에서 다른 펀드를 압도하며 2020년 30%, 2021년 39%의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2022년에는 0.9% 증가로 급격히 둔화했으나, 금융침체의 여파로 전체 펀드의 유입 자금이 1.3%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양호한 성적이라고 평가됩니다.

추산에 따르면 2022년 미국의 ESG 투자 규모는 무려 7.6조 달러(약 1경 원)에 이릅니다. 그리고 운용자금의 절반 이상 가량이 연금자금입니다. 규모만 따지면 대한민국의 2022년 추정 GDP인 1.9조 달러보다 약 세 배나 큰 규모입니다.

(금융계의 이러한 흐름이 실제로 탄소중립, 지배구조 개선 등의 목적 달성에 기여하느냐를 두고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관점이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미국 공화당이 이를 다루는 방식에 집중하겠습니다.)

또 다시 ‘woke’

여기까지만 보면 공화당이 ESG에 거세게 반대하는 이유를 알기 어렵습니다. ESG 펀드가 엄청난 경제적 효과를 가져다주는데도 반대한다는 것이니까요.

ESG에 대한 공화당 정치인들의 비판은 이렇습니다. 릭 스콧 상원의원은 앞서 언급된 ESG 투자 조항 추가에 반대하는 결의안을 상원에서 준비하며, 동료 공화당 의원들의 의견을 본인 홈페이지에 개진했습니다. 공화당 의원 36명의 소견이 기록되어있는데, 이 중 14명이 ESG를 비판하며 ‘woke(깨어있는)’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woke’에 관해서는 지난 글을 참조 바랍니다).

공화당은 ESG는 ‘woke 자본주의’(woke capitalism)의 일환, 즉 ‘좌파 자본주의’라고 말합니다. ‘좌파’와 ‘자본주의’의 조합이 혼란스러우신가요? ‘woke’는 정치적으로 갈라치기가 필요할 때면 일단 쓰고 보는, ‘종북 좌파’ 같은 단어입니다. 이처럼 맥락 없는 ‘woke’ 딱지 발급이 전통적으로 친공화당 성향의 업계인 금융계까지 겨냥한 것입니다. ‘월가가 좌파에 잠식되었다’면서 말입니다. 당장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올해 초 ‘ESG 투자전략은 woke 금융계의 사기이며 급진적인 좌파 쓰레기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Getty Images/iStockphoto

‘woke’와의 전쟁을 가장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는 플로리다의 론 디샌티스 주지사 또한 ‘ESG는 woke 이념을 퍼뜨리기 위한 지배 계급의 노력의 집합체’라며, ‘이들은 (원하는 의제를) 투표로 이룰 수 없으니 경제를 통해 이루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치권 반발의 진짜 이유

정치권이 ESG를 정쟁의 도구로 사용하는 건 확실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ESG가 여야의 쟁점이 된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화석연료 기업들에 대한 금융계의 투자 규제 움직임입니다.

미국 보수 정치 세력은 주로 화석연료 산업 중심 지역에 정치적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미국 정치의 반ESG 움직임은 2020년 텍사스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텍사스의 소규모 석유 시추 기업들은 그동안 거래해오던 은행 JP모건체이스에 대출을 요구했는데요. JP모건은 이를 거절했습니다. 장기 투자 관점에서 석유 사업이 더 이상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석유 기업들은 금융기관이 기후 어젠다로 인해 화석연료 산업에 등을 돌렸다며 텍사스 주 정부에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이에 주 정부는 자산 운용사들과 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선포했습니다. JP모건을 포함한 미국의 거대 자산 운용사들은 주 정부를 고객으로 두고 주 연금기금 등을 운용하는데요. 이 자금을 회수하겠다는 겁니다. 2021년 텍사스 주는 화석연료 산업을 보이콧하는 자산 운용사들과의 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반ESG 움직임은 전국으로 확산됐습니다. 인디애나, 캔사스, 루이지아나, 플로리다 등 공화당 기반의 여러 주에서 비슷한 ‘반ESG 법안’이 통과됐습니다. 현재 최소 15개 주에서 반ESG 법이 실행되고 있습니다. 관련해 발의된 법안은 올해만 99건 이상, 통과된 법안은 28개입니다.

반ESG 전쟁의 여파

반ESG 법안은 경제적 이유를 들어 법안의 필요성을 정당화합니다 . 자금 운용의 목적은 수익률 극대화인데, 자산 운용사들의 ESG 정책이 이를 가로막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명확한 근거는 없습니다.

어쨌든 이런 논리로 텍사스 등의 공화당 기반 주 정부들은 자산 운용사들로부터 연금기금을 빼기 시작합니다. 플로리다 주는 20억 달러(한화 약 2.6조 원) 가량의 자금을 블랙록으로부터 빼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과연 현명한 결정이었을까요? 당장 법이 제정된 주 정부 내에서도 투자 손실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텍사스에선 주의 최대 연기금인 텍사스교사연금이 우려를 표했습니다.

자산 재분배 과정, 법정 소송 등에서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펜실베니아대학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반ESG 법안으로 인해 텍사스가 치를 수 있는 비용은 1년에 4억 달러(5,200억 원), 10년간 60억 달러(7.8조 원) 가량입니다. 주민들의 연금을 지킨다면서 실제로는 정 반대의 결과를 야기하는 것입니다. 콜럼비아 경영대 연구진들은 반ESG 법안은 정치적일 뿐 다른 목적은 없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여론은 어떨까요? 2021년 모닝스타가 상장기업들의 ESG 결의안에 대해 미국의 주 연금기관들에게 의견을 물었는데, 무려 민주당 기반 주의 98%와 공화당 기반 주의 80%가 지지를 표했습니다. 일반 주주들이 63%의 지지를 보낸 것보다도 월등히 높은 수치였습니다.

미국 주 연금기관들의 그룹별 ESG 결의안 지지 비율. 왼쪽에서 세 번째가 민주당 기반 주 연금기관(98%), 다섯 번째가 공화당 기반 주 연금기관(80%)_ ©Morningstar

흥미로운 조사가 또 있습니다. 펜실베니아주립대학과 ROKK솔루션이 2022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정부가 기업의 ESG 투자를 제한하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묻자, 민주당 지지층의 57%와 공화당 지지층의 70%가 반대한다고 답했습니다. 민주당보다 공화당 지지층이 정부의 ESG 투자 제한에 더 강하게 반대하는 것입니다. 공화당 정치인은 반ESG 움직임에 한창인데, 참 아이러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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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빅

지금 내가 서있는 곳에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평화적 공존과 환대의 공동체를 만드는 일을 위해 활동해왔습니다. 미국에서는 난민과 이민자 출신 청소년들과 주로 함께했는데, 한국에 와보니 정치와 시민 사이에 쌓인 게 많아보였습니다. 둘 사이가 좀 더 친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애정클을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