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바꾼 것
미국의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미국 사회를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동권 투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지난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었습니다. 1989년에는 장애인 복지법을 개정하며 장애인의 날을 국가 기념일로 명시했는데요. 개정된 법안에는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국가는 국민의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의욕을 고취하기 위하여 장애인의 날과 장애인 주간을 설정한다.”
이 조항은 현재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법안은 ‘국민’과 ‘장애인’을 나누었습니다. 국민은 주어, 장애인은 목적어입니다. 그렇다면 장애인은 국민에 포함되지 않는 걸까요? ‘장애인의 재활의욕 고취’라는 부분도 문제적입니다. 장애를 가진 시민에게 제도적으로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기보다, 개인의 노력으로 장애를 극복하길 기대하죠.
2002년부터 장애인 단체와 시민 사회는 장애인의 날을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로 바꿔 부르고 있습니다. 시혜와 동정의 시각이 담긴 ‘장애인의 날’을 거부하고, 사회의 구조적 차별을 폭로하며 장애인 권리 실현을 위해 싸우는 날로 기념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차별은 제도의 문제
영화 <그렇게 바버라는 앨런을 만났다>는 영국의 장애인 권익 투쟁을 다룹니다. 장애인 권리 활동가인 주인공 바버라는 장애인을 동정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사회의 시선을 비꼬며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피해자가 아니예요. 사회가 우리를 무능하게 만들 뿐이죠. 만약 사회가 더 낫게 디자인되었더라면 우리는 도움이 필요 없을 거예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사회에서 배제되는 것은 결국 제도의 문제이고, 그렇기에 이를 해결하는 것은 정치의 역할입니다. 정치권은 어느 날 갑자기 제도를 바꾸지 않습니다. 우리가 현재 누리는 권리가 그렇듯, 제도가 바뀌는 일은 누군가의 치열한 투쟁을 필요로 합니다.
영국에서는 앨런과 바버라의 투쟁을 통해 1995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도입됐습니다. 미국은 1990년, 우리나라는 2008년에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만들어졌죠. 미국과 한국에서도 그 배경에는 장애인권 운동이 있었습니다.
미국에는 저상버스가 없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한국에 오면서 ‘저상버스’라는 개념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어렴풋이 한국과 미국의 버스 모양이 다르다고는 느꼈는데, 그저 디자인의 차이라고만 느꼈었죠. 미국 대도시의 버스에서는 휠체어 사용자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미국에는 저상버스 도입률 수치가 없습니다. 1990년 지정된 미국의 장애인차별금지법, ADA (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 법에서 저상버스 도입을 의무화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뉴욕 지하철의 경우 현재 25%의 역만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지하철 시스템이 워낙 오래 전에 만들어졌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ADA법을 근거로 장애 활동가들이 뉴욕 지하철 운영업체인 MTA와 뉴욕시 등을 고소했고, 그 결과 2055년까지 95%의 역사에 승강기나 경사로를 설치해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는 것으로 조정되었습니다.
엘리베이터의 사이즈와 건물의 자동문 유무도 다릅니다. 미국의 엘리베이터가 훨씬 크고, 대부분의 건물에 휠체어 경사로와 자동문 시스템이 있죠. ADA법에서 1993년 이후 건설되는 모든 공공건물에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는 시설 설치를 의무화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장애인 이동권 투쟁과 제도적 변화
ADA 법은 치열한 투쟁의 결과입니다. 1978년,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에서 19명의 장애인과 연대자들은 가장 번잡한 교차로에서 이틀 동안 노숙하며 버스를 막아서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당시 덴버에는 휠체어 탑승 가능 버스가 10대, 전체의 약 0.02%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요. 시위대의 요구는 덴버 시내 운행 중인 버스 3분의 1을 휠체어 탑승 가능한 버스로 도입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훗날 이 시위의 참여자들은 ‘19명의 갱단’(Gang of 19)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게 됩니다. 이들은 전국적인 장애인 이동권 운동을 촉발했고, 1983년 여기에 뿌리를 둔 ADAPT라는 단체가 탄생했습니다. ‘대중교통을 원하는 미국 장애인 모임’의 준말이죠. ADAPT는 현재도 공화당의 건강보험개혁법 폐기를 막는 등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19명의 갱단이 벌인 시위 내용은 ADA 법의 뼈대가 되었습니다. 종래의 장애인 보호 법안을 ‘자선모델’에서 ‘권리모델’로 바꾼 역사적인 법안이죠. ADA 법은 크게 네 가지 부문에서의 차별 금지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1️⃣ 고용, 2️⃣ 공공서비스 영역, 3️⃣ 사인이 운영하는 공공편의시설 및 서비스영역, 4️⃣ 통신 분야 입니다.
ADA 법으로 학교, 직장, 공공기관 등에 경사로, 엘리베이터, 넓은 문, 장애인 화장실 등의 설치가 의무화됐습니다. 대중교통 탑승도 가능해졌죠. 웹사이트와 디지털 플랫폼에서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의무도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바로 대중의 장애인식 개선입니다. 뉴욕타임스는 ADA 법안 제정 이후 태어난 장애인을 ‘ADA 세대’라고 명명합니다. 국가가 장애인의 권리를 법으로 보장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체득한 세대죠. 전 세대보다 장애를 본인의 정체성으로 자랑스럽게 받아들이고, 정신장애 등도 보다 자연스럽게 공개한다고 합니다.
미국 또한 이상과는 멉니다. 지난 4월 기준 미국 장애인 고용률은 37%로, 비장애인 고용률인 75%에 훨씬 못 미칩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2023년 장애인 고용률은 36%, 전체 고용률은 69%입니다.) 일상적인 차별도 여전히 경험합니다. 하지만 ADA 세대는 이전 세대와 비교했을 때, 적극적으로 차별에 맞서고 부당함에 대응하는 다양한 방법을 압니다.
영국, 미국, 심지어 인권 선진국이라 여겨지는 핀란드에서도 장애인의 권리가 제도적으로 보장받기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당사자들의 요란하고 힘겨운 투쟁이었습니다.당연히 여론의 시선은 곱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조금씩 변해갔습니다. 전장연 전 정책국장 변재원 활동가는 “비장애인 시민들이 피해를 호소하거나 답답함을 느끼는 순간부터 이동권 정책에 대한 법과 예산이 얘기되기 시작한다”고 말했죠.
그 열매는 모두의 권리로 돌아옵니다. 퀴어영화 감독 이송희일은 <그렇게 바버라는 앨런을 만났다>를 보고 이렇게 평했습니다. “안전턱, 경사로, 신호등 경고음, 엘리베이터 등 우리 사회의 수많은 안전 장치들은 장애인들이 ‘모두를 위해’ 빚어낸 투쟁의 과실들이다. 노인, 어린이, 교통약자를 포함해 우리 모두가 그 혜택을 보고 있다. 장애인의 투쟁이 빚어놓은 그 안전한 길과 교통에 무임승차를 하는 건 비장애인들이다. 비장애인의 지하철은 장애인을 그냥 지나치고 있지만, 장애인이 구축해놓은 역사 내 엘리베이터 앞엔 더 많은 비장애인이 줄서고 있다.”
전장연은 ‘비뚤어진 강자’일까
우리나라에서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가 이슈가 되었을 때, ‘선량한 시민을 볼모잡는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작년 11월, 오세훈 서울시장은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습니다. “(전장연은) 그동안 ‘약자’의 이름으로 수십 차례 지하철과 버스를 가로막았다. (중략) 자신들이 주장하는 예산 반영을 요구하며 다른 시민들의 권리를 함부로 침해하는 전장연은 사실상 ‘비뚤어진 강자’에 가깝다.” 서울교통공사는 전장연을 상대로 총 9억 90만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습니다. 서울시는 전장연 시위로 발생한 사회적 손실 비용이 4450억원에 이른다고 주장합니다.
‘약자와의 동행’은 오세훈 시장의 서울시의 핵심 정책입니다. 최근 서울시는 올해 서울시 총 예산 46조원 중 1조 6000억원을 장애인 복지 예산에 투입했다고 홍보도 했는데요. 작년에 비해 8.4% 증가한 수준입니다. 그중 가장 비중이 큰 예산은 6321억원이 투입된 ‘장애인활동지원급여’입니다. 일상생활과 사회활동을 하며 활동보조, 방문목욕, 방문간호 등을 받을 수 있는 바우처를 제공하는 건데요. 이동권과 관련해서는 올해 말까지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100% 설치하고, 내년까지 저상버스 도입률을 70% 수준에서 100%로 올릴 계획입니다.
하지만 장애인 단체는 서울시의 ‘위선’을 지적합니다. 장애인권법센터의 김예원 변호사는 서울시 정책이 ‘장애 인권 퇴보’라고 평가했습니다. 2020년부터 시작한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사업이 없어진 것이 대표적입니다. 최중증장애인에게 동료지원 활동을 제공하고, 탈시설 장애인에게 우선권을 주는 사업으로 각광받았는데요. 실적 부진과 중복사업을 이유로 폐지되면서 400명의 최중증장애인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탈시설 지원 예산 19억원도 삭감됐고, 서울시 탈시설 조례는 폐지 위기에 놓였습니다. 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의 근거를 담고 있는 조례입니다. 2003년부터 열린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도 올해부터 예산 지원을 중단했습니다.
‘장애인의 날’의 정의에 대한 문제 제기로 글을 시작했습니다. 올해도 정부는 ‘장애인의 날’ 기념 행사를 열고 여러 장애인과 활동가들에게 훈장을 수여했습니다. 같은 시각, 전장연의 활동가들은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을 앞두고 혜화역 대합실을 찾았습니다. 시위의 목적으로 모인 것이 아니었음에도, 경찰은 엘리베이터를 가로막았습니다. 하차하려던 휠체어 이용자들이 제지되기도 했죠. 서울시와 오세훈 시장이 말하는 ‘약자와의 동행’은 어떤 의미일까요? 정말 전장연은 ‘비뚤어진 강자’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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