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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노동시간을 주 52시간제에서 주 69시간제로 바꾸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개편안의 핵심은 노동시간의 유연화, 즉 ‘바쁠 때 많이 일하고, 쉴 때 길게 쉬자’는 거다. 기업은 환영하고, 노동자는 걱정하는 분위기다. 개편안이 시행되면 어떤 변화가 있을지 알아보자.

알면 좋은 맥락

주 52시간제

한국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일하는 시간이 긴 편이다. 우리나라의 연간 노동시간은 1928시간으로 OECD 평균(1500시간대)보다 매우 높다.

문재인 정부 이전까지의 근로시간제는 사실상 주 68시간제였다. 2004년 1주에 최대 52시간(법정근로시간 40시간과 연장근로시간 12시간)만 일하도록 규정했지만, 근로시간 계산에 주말을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일에 52시간을 일하고, 주말에 8시간씩 일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를 막기 위해 문재인 정부는 법에서 계산하는 ‘1주’에 주말을 포함하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했다. 이렇게 주 52시간제가 설정됐다.

그래서 내가 궁금한 건

왜 고치려고 하는 거야?

• 주 52시간제는 기업 현실에 맞지 않는다!
  
  특정 시기에 일을 몰아서 해야 하는 일부 업종은 매주 일정한 시간을 지키기 힘들다고 말한다. IT업계, 연구용역, 하청업체, 중소기업이 대표적이다. 정해진 기간 안에 프로젝트를 끝내야 하거나, 그때그때 주문량에 맞춰 물품을 제작하려면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 일을 더 하고 싶은 노동자를 막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과거 대선 후보 시절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쉬는 게 낫다’는 스타트업 관계자의 말을 전하며 주 52시간제를 비판했다. 주 52시간제가 저임금 노동자들의 근로시간을 단축시켜 소득을 줄이고 투잡을 유도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 다른 나라들도 다 이렇게 유연하게 하고 있어!
  
  이번 개편안은 일본의 근로시간제와 비슷하다. 일본은 연장근로시간을 주 단위가 아닌 1개월 45시간, 1년 360시간으로 관리한다. 업무량이 급증할 때는 노사 합의를 통해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한다. 신기술상품 연구개발은 연장근로에 아예 제한을 두지 않는다. 미국도 일부 전문직과 고액임금자에게 근로시간과 연장근로수당을 규제하지 않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을 운영 중이다.
  
  다만 다른 선진국들은 한국에 비해 연장근로시간의 총량이 훨씬 짧다. 월 단위로 근로시간을 책정하면서도 ‘1일 총량’을 함께 규제하고 있다는 점도 다르다.

시행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

주 69시간제 개편안이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될지는 업종과 기업 문화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정부는 희망편을 얘기하고, 야당과 노동조합은 절망편을 얘기하지만 둘 다 가능한 시나리오다. 다만 한국의 기업 지형과 노사문화를 생각할 때, 후자의 경우가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 희망편: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고

*수평적인 문화의 회사에 다니는 IT 연구개발자 A의 사례

A의 회사는 노동조합과 합의한 결과, 월 단위로 근로시간을 책정하기로 했다. 이번 달 둘째 주에 개발 프로젝트를 끝내야 해서, 그때까지 연장근로를 몰아서 하기로 했다.

<A의 이번 달 시간표>

1주차 64시간 / 2주차 64시간 / 3주차 44시간 / 4주차 40시간

• A의 회사는 자율적으로 근무일과 시간을 정할 수 있는 선택근로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개편안은 선택근로제가 적용되는 업종과 정산기간을 늘린다.) A는 아침에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시간에 맞춰서,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을 1시간씩 늦추기로 했다. 이참에 근무일을 주4일제로 바꿀 지도 고민하고 있다.
• 올해부터는 연장하거나 야근한 시간이 모두 1.5배의 ‘휴가’ 시간으로 저축된다. 회사와 노동조합이 서면으로 합의한 근로시간저축계좌제 덕분이다. 야근한 시간이 총 16시간이면, 24시간(16시간X1.5)의 휴가를 받을 수 있다. A는 이번 달에 야근해서 얻은 휴가를 연차휴가와 합쳐서, 겨울에 제주도 7박8일 여행에 쓸 계획이다.

😈 지옥편: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하고

*노동조합 없는 수직적 문화의 중소기업 노동자 B의 사례

• 노동조합이 없는 B의 회사는 사실상 사장의 마음대로 근로단위가 책정된다. 단위가 길어질수록 연장근로시간의 총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사장은 가장 짧은 월 단위를 제시했다. B의 이번달 시간표는 최근 SNS에서 화제가 된 ‘주 69시간제’ 하의 시간표와 유사하다.

• 노동자와 회사가 서면으로 합의해야 시행되는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도 B의 회사엔 적용되지 않았다. 이전에도 비슷한 제도인 보상휴가제가 있었지만, B의 회사를 포함해 94.9%가 도입하지 않았다. B는 이전에도 눈치가 보여 휴가를 제대로 써본 적이 없다. B와 비슷한 처지의 직장인은 많다. 한국의 연차 사용률은 약 76%밖에 되지 않는다. 정부는 자유롭게 휴가를 쓰는 문화를 조성하는 대국민 캠페인을 추진하겠다고 하지만, B 회사의 사장의 마음이 바뀔지 모르겠다.
• 주 69시간제가 시행되고 B는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됐다. 이번 분기에 주문량이 많아 몇 달 간 야근하며 일을 몰아서 했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주당 노동시간이 52시간 이상인 사업체의 산업재해율이 40시간 미만인 사업체의 5배다. 게다가 맞벌이 부부인 B는 저녁에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계속 구하느라 경제적으로도 부담스럽다. 아이에게도 미안할 뿐이다.

진짜 바뀌는 거야?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안이 지금 당장 시행되는 것은 아니다. 40일 간의 입법예고 기간을 거치고, 국회에서 개정안이 통과돼야 한다. 국민의 힘은 “근로자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 기업 경쟁력이 강화될 것”이라며 찬성한다. 반면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국민 과로사를 강요”하는 안이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에디터 청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