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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선거가 사회보장을 바꿀까?

사회보장 정책은 우리 일상의 하한선을 긋습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과 결국 끝에 몰린 사람의 항로를 바꾸는 정책이죠.

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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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겨도 달라질 게 없다’는 말, 선거 전후로 주위에서 한 번은 들어보셨을 거예요. 승패의 결과만을 보도하는 헤드라인 사이에서 포착하기 어렵지만 선거는 무수한 것을 바꿉니다. 여의도 안팎을 가리지 않고요.

그중에서도 사회보장 정책은 우리 일상의 하한선을 긋습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과 결국 끝에 몰린 사람의 항로를 바꾸는 정책이죠.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결정적 순간에 내리는 선택은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들을 모아보면 사회의 청사진이 나올 겁니다.

그래서 오늘의 <쓸모있는 정책플리>에는 사회보장 정책 전망을 가져와 봤습니다. 정책 논의의 주류화를 위해 활동하는 민간 싱크탱크, LAB2050‘2024 정책전망 세미나’ 중 최영준 연세대 교수의 발제를 정리해봤어요.

사회보장 정책이 말하는 것

정치 성향과 관계없이 모든 시민은 정치가 삶의 질을 높여주기를 원하죠. 사회보장은 그 기준을 정하는 복지제도입니다.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모든 국민을 보호하고, 빈곤을 해소하며, 국민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모든 제도를 말하죠. 사회보장이 다루는 사회적 위험에는 질병, 장애, 노령, 실업, 사망 등이 포함됩니다.

사회보장 제도의 종류

1️⃣사회서비스: 규정된 요건을 충족하는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일상적인 사회생활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

  • 난임지원, 보육 서비스, 방과후 돌봄, 노인일자리, 치매 돌봄 등

2️⃣사회보험: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잠재적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보험 형식으로 건강과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

  •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3️⃣공공부조: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립을 지원하는 제도

  • 기초생활보장, 의료급여, 재해구호 등

사회보장 정책의 작동 여부는 몇 가지 지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민들이 위험으로부터 충분히 보호받고 있다고 느낀다면, 출산율은 높고 자살률은 낮겠죠. 살아온 터전을 떠나지 않아도 일정 수준 이상의 삶을 유지할 수 있으니 지방소멸 위험지수는 낮겠고요. 사회적 고립도와 노인 빈곤율도 낮을 겁니다. 한국은 이 모든 지표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죠.

영국 사회보장 제도의 맹점을 고발하는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미혼모 ‘케이티’는 생계보조수당을 신청하러 복지센터를 찾았지만 상담 시간에 늦었다는 이유로 쫓겨납니다.
영국 사회보장 제도의 맹점을 고발하는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미혼모 ‘케이티’는 생계보조수당을 신청하러 복지센터를 찾았지만 상담 시간에 늦었다는 이유로 쫓겨납니다.

2023년 사회보장 이슈

1️⃣감세와 건전재정

  • 윤석열 정부의 재정 기조입니다. 수입과 지출을 모두 줄이겠다는 거죠. 올해 총수입은 지난해보다 2.2% 줄어들 예정입니다. 법인세율을 내리고 세금 감면도 늘려 국세 수입이 정부안 기준 8.3% 감소하죠. 총지출은 2.8%만 늘릴 계획입니다.
  • 그 결과 지출보다 수입이 45조원 적습니다. 적자가 났으니 재정 건전성은 오히려 악화됐습니다.
  •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지출이 필요한 곳은 점점 늘어갑니다. 지난해 물가상승률이 3%로 높은 편이어서 경기도 위축됐습니다.
  • 예산 전문가인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에 따르면, 국가 재정은 가정 살림과 반대로 관리해야 합니다. 내수가 나빠 수입이 줄면 정부 지출을 확대해 경기를 부양해야 하고, 경기가 과열돼 수입이 늘면 정부 지출을 줄여야 하죠.

2️⃣약자복지

  • 올해 기초생활보장제도 금액은 1조 7천억원 늘었습니다. 역대 인상분을 고려하면 상당한 규모로 인상됐습니다. 중장년 1인 가구, 자립준비청년, 가족돌봄청년에 대한 일상돌봄 서비스도 확대됐습니다. 정부는 이를 약자복지 정책으로 강조합니다.
  • 약자복지라는 표현의 강조는 선별복지로의 회귀를 예고합니다. 선별된 약자만을 대상으로 복지 정책의 폭을 좁히겠다는 겁니다. 2010년 이후 한국 복지정책 기조는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보편복지를 수용해왔습니다.

3️⃣국민연금·공적연금 개혁

  • 연금 개혁은 노동 개혁, 교육 개혁과 함께 윤석열 정부의 3대 개혁 과제였습니다.
  • 2022년에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발족해 개혁안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2개 안으로 압축되었고, 시민대표단 500명의 논의를 통해 최종 개혁안을 도출할 예정입니다. ‘많이 내고 더 받기’ 또는 ‘조금 더 내고 똑같이’ 중 선택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4️⃣실업급여 논쟁

  • 정부여당은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실업급여가 높아 실업자의 취직 의욕을 꺾고, 반복·부정수급이 많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현재 실업급여는 월 180만원 수준입니다.

5️⃣사회서비스의 고도화 또는 민영화

  • 윤석열 대통령은 사회서비스의 민간 기업 참여 확대로 경쟁구도를 만들어야 서비스의 질이 개선되고 가격도 합리화될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또한 중산층 이상은 자비로 이용할 수 있게 하면  취약층 지원을 강화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 임대 건물에 노인요양시설을 운영할 수 있게 하는 규제 완화 시도가 대표적입니다. 현행법 상으로는 건물과 땅을 소유한 경우에만 허용됐는데요. 임대를 허용하면 자본이 더 쉽게 투입될 수 있고, 사모펀드의 진입도 용이해집니다.

2024년 사회복지 전망

최영준 교수가 예측한 선거 결과에 따른 사회복지 정책 변화는 이렇습니다.

🟥여당이 승리할 경우

  • 약자복지 기조가 강화되며 증명된 약자에 대한 지원이 확대될 수 있습니다.
  • 실업급여 개편이 반복실업 노동자를 징벌하는 방향으로 이뤄질 수 있습니다. 반복수급 제한이 강화되고, 급여 하한선이 내려가며, 급여 수급을 위한 보험 가입 기간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업이 잦고, 임금이 낮고, 취업기간이 짧은 노동자일수록 어려워집니다.
  • 사회서비스 상업화가 가속화됩니다.
  • 기초연금 축소가 논의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민의힘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점진적으로 통합하는 안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 육아휴직 급여는 인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민의힘은 육아휴직 급여 상한액을 150만원에서 210만원으로 인상하는 공약을 발표했고, 정부 역시 급여 상한과 기간 확대를 추진 중입니다.

🟦야당이 승리할 경우

  • 사회보장 분야에서 야당은 다수당이어도 정책을 적극 추진하기 어렵습니다. 예산 편성에 개입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총선에서 승리하면 정부여당의 정책을 가로막는 식으로 개입할 수 있습니다.
  • 사회서비스 시장화보다 지역 중심의 돌봄 논의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노인, 장애인 등이 병원과 시설에 의존하기보다 살고 있는 지역에서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를 위해 지역 사회의 돌봄 체계 통합을 해결책으로 제시합니다.
  • 실업급여국민연금은 야당의 구체적인 개혁 전략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유의미한 변화가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
  • 육아휴직 급여 인상 및 확대는 여야 모두 동의하는 안으로, 규모의 차이는 있더라도 동일하게 추진될 것으로 보입니다.
  • 더불어민주당은 저출산 공약으로 아동수당 확대를 내놓았습니다. 현재 0~7세를 대상으로 1인당 매월 10만원을 지급하는 아동수당을 8~17세까지 확대하고, 금액도 매월 20만원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그러나 정부의 감세 기조로 예산 확보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총선을 앞두고 이런 정책은 잘 얘기되지 않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장기적이고 파급력이 큰 정책일수록 그렇습니다.

세상이 변하면 분명 누군가는 손해를 보고, 변화가 클수록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많아집니다. 어설프게 건드렸다가는 모두를 적으로 돌리게 되고요. 그러니 사람을 표로 생각하면 개혁보다 현상 유지가 승리에 가까운 단어입니다. 양당의 공고한 지지층은 비슷한 규모니까요.

사람들은 손해 보기를 싫어하지만, 설득 당할 수는 있습니다. 이미 우리 정치는 사회보장 정책 개혁으로 성공한 경험이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는 건강보험 체계를 통합했고, 노무현 정부는 연금 개혁을 이뤘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모두가 기피하는 증세에 성공했죠. ‘욕 먹을 얘기’를 피하는 게 능사가 아니란 겁니다. 제대로 된 변화를 원하시는 분이라면, 누가 더 ‘욕 먹을 얘기’를 하는지 지켜보는 것도 방법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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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침착하게 바라볼 때 나오는 날카로운 분석을 좋아합니다. 동시에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다정함을 글 쓰는 동력으로 삼고 싶습니다.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변화의 출발점이라고 믿습니다. 애정클에서 애(愛)든 증(憎)이든, 정치를 대할 때면 쉽게 끓어오르는 마음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변화를 추구하는 마음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합니다. 최근엔 일상을 가꾸고 나를 돌보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