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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통보제: 아이도 엄마도 지키려면

출생통보제 논의에서 정작 중요하지만 얘기하지 않는 문제들에 대해 건조 에디터가 알아봤습니다.

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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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분 걸림 -

최근 예외적으로 여야가 별 갈등 없이 합의한 사안이 있습니다. 지난달 말 국회를 통과한 출생통보제인데요.  신생아의 출생신고를 의료기관이 지자체에 의무적으로 통보하는 제도입니다.  의료기관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출생 사실을 전달하면, 평가원에서 이를 지자체에 알리는 식인데요. 한 달 넘게 출생신고가 안되면 지자체장이 부모에게 신고를 독촉하고, 그래도 신고하지 않으면 지자체장 권한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습니다. 법안 시행은 내년부터입니다.

출생통보제는 지난달 수원에서 냉장고에 영아를 유기한 사건이 알려진지 9일 만에 통과됐습니다.  본회의 투표에선 반대 표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출생통보제 도입이 논의되기 시작한 건 무려 10년 전부터인데 말입니다. 2011년부터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에서 도입을 권고했고, 2019년에 정부 차원의 도입 계획이 나왔지만 정부안 발의가 이뤄진 건 지난해였습니다. 이후에도 1년이 넘도록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는데, 사건이 발생하면서 급물살을 탄 겁니다.

오늘의 쓸모있는 정치플리에서는 출생미신고 아동 문제에 대한 이야기와 이야기되지 않는 것들을 다뤄보겠습니다.

키워드: 비혼모, 출생미신고 아동, 출생통보제, 보호출산제, 임신중지권

미리 보는 결론: 출생통보제 논의, 출산 뒤의 이야기는 빠져 있다!

©Unsplash

왜 중요해?

출생통보제 통과와 함께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영아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전수조사가 시작됐는데요. 조사 결과 최근 8년간 미등록 영아 수는 2123명, 이중 사망한 영아가 249명 입니다. 아직 수사 중인 건이 814건으로, 사망자 수가 더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출생통보제는 아동 보호를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법안이지만,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안은 아닙니다. 우선 출생신고를 피하기 위해 병원 밖 출산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영아 유기사건 관련 연구를 보면 영아 유기 범행 동기가 “출산 사실을 주변 사람에게 숨기기 위해서”라고 답한 경우가 가장 많은데요. 이런 경우 대부분 애초부터 병원 출산을 피합니다. 실제로 영아살해 사건 24건을 조사한 결과, 병원에서 아이를 낳은 여성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출생 등록 시스템만 개편해서는 영아 살해·유기 방지 효과는 적을 것입니다. 실효성 있는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어떻게 바꾸고 있어?

임산부 시기부터 집중 케어📌

많은 전문가들은 위기 임산부 지원 시스템을 갖추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합니다. 위기 임산부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는지 파악하고 복지망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게 실질적인 방지책이라는 겁니다.

보건복지부 산하 아동권리보장원정익중 원장도 이에 동의합니다. 정 원장은 위기 임산부를 위한 통합적인 지원책이 없는 것을 지적합니다. 현재 정부와 민간기관이 운영하는 위기 임산부 상담전화가 여러 개 있는데, 모두 흩어져 운영돼 임산부 상황에 맞는 정보를 전달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은 지난 19일 위기 임산부 지원을 위한 한부모가족지원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해당 법안에 위기 임산부의 정의를 규정하고, 법안의 적용 대상으로 포함하며 별도 지원센터를 설립하는 내용입니다. 고용과 상담지원도 규정하도록 돼있습니다.

보호출산제도 세트로?📌

병원 밖 출산을 줄이기 위해 보호출산제를 보완 입법하자는 얘기도 나옵니다. 보호출산제는 익명 출산을 원하는 임산부를 지원하고, 태어난 아이는 지자체에서 출생신고하게 하는 제도입니다. 그러나 보호출산제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립니다.

  • 보호출산제 옹호

    산모의 건강을 해치고 영아유기 확률을 높이는 병원 밖 출산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 출생신고를 해야 산모가 아이를 포기하더라도 입양을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우선 출생신고를 늘리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 보호출산제 반대

    보호출산제 도입 시 양육을 쉽게 포기하게 될 것이고, 아이들이 자신의 뿌리를 알 권리를 침해당한다고 주장합니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아동에게 “친생부모를 알고 친생부모로부터 우선적으로 키워질 권리”와 “친생부모와 아동을 지원하고 차별하지 않을 책무를 이행하라고 국가에 요구할 권리”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2019년에 익명 출산 가능성을 허용하는 제도 도입은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익명 아동 유기를 허용하는 베이비박스를 금지하라고 한국 정부에 권고하기도 했는데요.

    이를 반영해 아동이 부모의 정보를 청구할 권리를 보장하도록 법안을 보완하는 안도 제시되고 있습니다. 일명 신뢰출산제인데요. 독일과 프랑스가 이러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제도를 통해 프랑스에선 매년 6백여 명이 태어나 출생신고를 마칩니다. 독일은 자녀가 16세가 되면 출생증명서를 볼 수 있고, 친모가 이를 원하지 않는다면 비공개 요청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프랑스는 성년이 된 자녀가 열람을 원해도 친모 동의가 필요합니다.
베이비박스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드롭박스>( 2016)의 스틸컷.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이종락 목사가 박스에서 아기를 꺼내고 있다. ©다음영화

앞으로 지켜볼 것은?

출생통보제 역시 실질적인 제도 운영을 위해 필요한 자원을 고민하지 않고 도입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장애·여성·아동 대상의 인권 침해 사건을 다뤄온 김예원 변호사의 비판입니다. 지자체에 출생 사실이 통보됐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으면 그 이유를 담당 공무원이 ‘발로 뛰어’ 알아봐야 하는데, 법안엔 그 시스템과 인력 확보 방안, 예산조차 설명되지 않습니다. 관련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급하게 통과된 법안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을지 우려됩니다.

김 변호사는 “익명 출산을 옹호하는 쪽은 프랑스도 그렇다는 얘기를 하지만, 프랑스는 아이를 낳으면 비혼 관계에서 태어났든, 국적이 없는 사람한테 태어났든 일을 하지 않고 집에서 아이를 키울 수 있을 정도로 돈을 주는 나라”라고 꼬집었습니다. 출산과 육아를 바라보는 사회문화적 관점이 상이해 단순히 제도를 베껴오는 것만으로는 같은 효과를 볼 수 없단 겁니다.

보호출산제 역시 세부적인 논의를 건너뛰고 덥석 도입될 수 있습니다. 수원 영아살해 사건에서 친모는 살인 혐의로 기소됐지만, 친부는 불송치됐다가 재수사가 요청됐습니다. 범행 사실을 몰랐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친모가 영아살해까지 내몰린 상황에 대해 친부는 범행에 협조한 것이 아니라면 책임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호출산제가 도입되면 아이에 대한 생부의 책임은 더 흐려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번주 국회에서 통과된 영아살해죄와 영아유기죄 폐지입니다. 영아살해죄의 법정 최고 형량은 10년 이하의 징역형으로, 최대 사형까지 가능한 일반 살인죄보다 낮은데요. 처벌을 강화해서 영아살해를 막겠다는 겁니다. 물론 영아살해는 이유를 불문하고 무거운 범죄이고, 처벌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처벌 강화만으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아이를 죽이거나 유기하는 선택이 이뤄지는 상황을 개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출생신고를 더욱 회피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출생신고가 사각지대 해결이 아닌 감시의 수단으로 여겨지는 겁니다.

©Unsplash (Tingey Injury Law Firm)

영아살해 사건 피고인의 98%가 미혼모입니다. 대다수가 10-20대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범죄가 발생하는 배경은 고려하지 않고 그저 처벌 강화만 내세우면 범죄가 줄어들기보단 더 찾아내기 힘든 음지로 숨어들 수 있습니다.

미혼모를 돕는 정책에 정치가 그간 얼마나 소극적으로 접근해왔는지 생각해보면 더욱 착잡합니다. 현재 미혼모의 출산 지원금은 100만원 정도입니다. 출산 이후엔 한부모가족 양육비로 기준중위소득 60% 이하일 경우 월 20만원, 72% 이하 청소년 한부모일 경우 월 35만원줍니다. 생계를 겨우 유지하기에도 빠듯한 비용입니다.

영아 살해에 이른 엄마들의 사례를 보면 ‘차라리 낳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안전한 임신중지가 가능했다면 아이도, 엄마도 이렇게까치 처참한 상황에 놓이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기에 영아 살해와 미등록 아동 문제는 필연적으로 임신중지권 문제와 연결됩니다.

2019년 낙태죄는 폐지됐습니다. 헌법 불합치 판결이 나왔죠.  헌재는 판결을 내리며 낙태 허용 범위와 임신 중지 여성 권리 보호를 입법을 통해 정하라고 주문했습니다만, 후속 입법은 전혀 없었습니다. 관련 법안이 다수 발의됐지만 통과한 것은 없습니다.

그 결과 임신중절 수술비는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여전히 부담스럽습니다. 미프진 같은 유산유도제 도입도 아직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음지에서 약을 구매하는 수밖에 없어 부작용 문제도 심각한 상황입니다.

미신고 영아 문제가 수면에 떠오르고 가장 먼저 이뤄진 제도적 조치가 출생통보제와 영아살해죄 폐지라는 것은, 한국 사회가 여전히 임신·출산·양육의 책임을 여성 개인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방증으로 보입니다. 우선 행정적으로 누락되는 아이가 없게 하고, 아이를 버리면 무겁게  처벌한다. 그러니 알아서 잘 키우라는 식이죠. 이 논리 안에 여성과 아동이 ‘행복한 삶’을 누릴 권리는 없어 보입니다. 정부가 정말 영아살해를 막고 싶다면, 임신은 여성의 ‘선택’이라는 관점부터 제도에 반영해야 하지 않을까요.

🎼건조 스테이션: 생각할 거리 자동재생

🎵 출생신고 안 하면 입양 안 시켜주지 - 입양특례법

현재 입양은 친부모가 출생신고 후 법원에서 입양 허가를 받아야만 가능합니다. 2012년 입양특례법이 개정된 결과인데요. 아동이 부모를 알 권리를 중시해 내린 결정입니다. 그러나 입양 사실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하는 산모의 유기 가능성이 오히려 높아진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아동의 알 권리와 부모의 선택권은 충돌할 수밖에 없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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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침착하게 바라볼 때 나오는 날카로운 분석을 좋아합니다. 동시에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다정함을 글 쓰는 동력으로 삼고 싶습니다.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변화의 출발점이라고 믿습니다. 애정클에서 애(愛)든 증(憎)이든, 정치를 대할 때면 쉽게 끓어오르는 마음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변화를 추구하는 마음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합니다. 최근엔 일상을 가꾸고 나를 돌보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