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규제 완화와 정치의 말 고르기
아무튼 정치 때문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뉴스를 분류하는 4가지 카테고리는 사실 크게 보면 다 정치로 통한다.
일상의 현상들, 요즘 뜨는 이야기, 어쩌다 일어난 것 같은 사건 사고들에서 정치와의 연결고리 찾기.
집안일은 정교한 계획을 필요로 하는 업무다. 장보기 단계에서 마트 쉬는 날부터 제대로 확인하지 않으면 주방의 프로젝트 전체가 어그러진다. 조만간 장보기 시간 운용은 좀 더 수월해질 가능성이 있다. 윤석열 정부가 대형마트 영업규제 완화를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타겟은 크게 세 가지다. 1) 의무휴업 폐지, 2)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 3) 의무휴업일, 영업제한 시간 온라인 배송 허용. 현재 대형마트는 월 2회 일요일 또는 공휴일에 의무적으로 휴업해야 한다. 밤 12시부터 오전 10시까지는 영업이 제한된다. 의무휴업일과 영업제한 시간에는 지점 기반 온라인 배송이 불가능하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기부터 의무휴업 폐지를 규제개혁 1호 공약으로 내세웠고, 지난 7월에는 이에 대한 온라인 국민투표를 제시했다. 투표는 무산됐지만 정부의 방향성은 그대로다. 지난 28일 정부는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과 대형마트 온라인 배송에 협력한다는 상생협안을 발표했다.
관련 논의에서 정부가 강조하는 것은 ‘소비자의 권리’와 ‘시장의 자유’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국정 전반에서 거듭 말해온 키워드기도 하다. 그러나 대형마트 규제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소비자’와 ‘시장’이라는 단어만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정부가 그리는 것보다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얽혀있고, 각자의 사정도 복잡하다. 제대로 된 관계도를 그린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흘러갈까.
이해당사자들의 복잡미묘한 관계도
대형마트(기업)‘대형마트 규제’의 정확한 대상은 SSM(Super Supermarket), 대규모 유통 기업이 운영하는 체인 슈퍼마켓이다. 국내에선 홈플러스, 이마트, 롯데마트 3사가 대표 주자다. 이들 업계는 현행 규제가 대형마트 매출에 치명적이라고 주장한다. 월 2회 의무휴업이 사라지면 업체당 매출은 7000억~1조원 가량 뛸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대형마트업계는 코로나19와 온라인 유통업체의 강세로 몇년째 부진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반등 가능성 역시 낮게 점쳐지는 가운데 규제 완화가 유일한 희망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전통시장 소상공인의무휴업 규제 도입의 주요 근거는 전통시장을 비롯한 중소유통업과 대형마트의 상생이었다. 대형마트 등장 초기, 소상공인 단체들은 대형마트 불매운동까지 펼치며 규제 강화를 요구했다. 그러나 규제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조사 방법과 지역에 따라 상반되는 결과가 나온다. 골목상권 붕괴 문제는 ‘대형마트 대 전통시장’보다 ‘오프라인 대 온라인’의 구조로 접근하는 게 적절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결과적으로 대형마트 규제가 전통시장에 도움이 된다는 공식은 증명되지 않았다.
소상공인연합회 등 주요 상인 단체들은 여전히 강경 반대 입장이다. 그러나 일부 단체는 의견을 달리했다. 전국상인연합회는 대형마트의 시장 지원을 조건으로 정부의 상생협안에 합의했다. 전국상인연합회 대구지회도 대형마트 의무휴업은 전통시장 매출 증가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대구시의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에 협력했다. 상인들 사이에서도 영업 형태와 사정에 따라 대형마트가 미치는 영향이 달라 입장이 갈린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자체법 개정이 필요한 나머지 사안과 달리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은 지자체장 협의만으로 가능하다. 지역별로 유통업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미 51개 지자체에서 평일 의무휴업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정부의 규제 완화 움직임에 새롭게 반응한 지자체는 대구다. 지난 13일, 대구시는 2월부터 대형마트 휴업일을 둘째·넷째 주 월요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광주시, 대전시는 대구의 추이를 지켜보고 평일 전환을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한편 대구시는 의무휴업 평일 전환 행정예고 과정에서 구·군 단위 의견을 수렴하지 않아 비판받았다.
마트노동자의무휴업 규제 완화에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는 집단이다. 주말 휴식과 고정 휴일은 마트노조의 핵심 의제다. 마트노동자의 대다수는 자녀 2명을 둔 중년 여성이고,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 빠듯한 생계 유지로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이 이들의 가장 큰 설움이다. 마트 배송기사는 10시간 이상 노동이 잦은데, 온라인배송 관련 규제가 완화되면 업무량이 더 늘어난다. 이에 마트노조는 지난해 국민투표 국면에서부터 의무휴업일 평일 전환 반대 시위를 진행했다. 대구에서는 의무휴업 협의에 마트노조가 배제되면서 노동자들의 불만이 더욱 커졌다. 정책 협약 장소에 침입하려던 노조원 20명이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현재 정부의 접근 방식에서 위에 나열된 주체들의 사정은 지워진다. 전통시장 보호와 마트노동자의 휴식권은 소비자의 권리와 시장의 자유보다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여겨진다. 대형마트의 위기는 규제 완화면 끝날 문제가 된다. 지자체의 결정권에 담긴 의의는 퇴색된다.
정치권은 여전히 논쟁적인 인과관계를 가져와 당사자들을 배제하는 데 사용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제도는 좌파 포퓰리즘의 상징적인 정책이다. 좌파 정권이 끝났으니 정책 전환을 가져와야 한다”고 말했다. 홍 시장이 말하는 ‘좌파 포퓰리즘’이란 대형마트를 규제하면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이 살아난다는 주장이다. 이 공식이 증명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좌파 포퓰리즘’이라는 표현은 정확한 효과 검증의 필요를 차단한다. 규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됐다는 프레임을 씌워 ‘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명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규제 없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질문엔 답하지 않는다. 나아가 규제 도입의 과정에 있었던 문제 의식 자체를 흐린다. 이는 국민투표라는 결정 방식에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정치가 써야 할 이야기는 이 모든 논쟁의 시작점으로 돌아온다. 규제 입법의 취지는 무엇이었나. 이는 2018년 헌법재판소 판결문에 남아있다.
건전한 유통질서를 확립하고, 대형마트 등과 중소유통업의 상생발전을 도모하며, 대형마트 등에 근무하는 근로자의 건강권을 보호하려는 심판대상조항의 입법목적은 정당하고(…)대형마트 등과 중소 유통업자들의 경쟁을 형식적 자유시장 논리에 따라 방임한다면 유통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 질서가 깨어지고, 다양한 경제주체 간의 견제와 균형을 통한 시장 기능의 정상적 작동이 저해되며, 중소상인들이 생존 위협을 받는 등 경제 영역에서의 사회정의가 훼손될 수 있으므로, 국가는 헌법 제119조 제2항에 따라 이에 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입법 취지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합성이 합헌 판결의 핵심이었다. 헌재는 규제의 실효성 역시 검토했고, 제시된 분석자료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오히려 규제효과가 확실하지 않더라도 규제 시기가 늦어져 생길 수 있는 피해가 더 막대하기에 입법 목적에 적합한 수단이라고 판단했다. 이는 현 시점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논리다. 그러나 정치는 입법 취지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당사자들을 외면하면서 검증되지 못한 제도의 무용성만 따졌다.
헌재 판결문과 윤석열 정부 모두 ‘공정한 경쟁’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 의미는 다르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공정한 경쟁’은 무엇인가? ‘공정한 경쟁’에서 전통시장은 왜 지원돼야 하는가? 마트노동자들의 쉴 권리와 소비자의 불편은 동일선상의 문제인가? 이런 질문들을 던질 자리는 국민투표가 제시될 때도, 지금도 마련되지 않았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규제혁신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대안을 만들어가는 윈윈 게임”이라고 말했다. 본질적 가치의 추구를 말할수록 ‘포퓰리즘’으로 비춰지는 쉬운 정치판이지만, 이야기의 시작은 ‘윈윈 게임이 필요한 이유’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글: 애증의 정치클럽 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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