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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누가 만들지?

하나의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까지의 과정은 국회에서 펼쳐지는 ‘정치판’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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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이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것? 나라를 운영할 예산안을 짜는 것? 시장을 통제하거나 풀어주는 것? 우선순위를 가릴 것 없이 모두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이뤄지기 위해 공통적으로 필요한 작업이 있습니다. 법을 만드는 것, 입법입니다. 정치는 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시민의 의견을 반영합니다.

입법권은 실로 어마어마한 권력입니다. 그만큼 입법 과정은 매우 까다롭습니다. 하나의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까지의 과정은 국회에서 펼쳐지는 ‘정치판’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각 단계에서 벌어진 사건의 의미를 알기 위해선 입법의 시스템을 이해해야 합니다.

입법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 개정: 원래 있는 법을 바꾸는 것
  • 제정: 완전히 새로운 법안을 만드는 것

개정안이든 제정안이든, 만든 법안을 검토해달라고 회의에 올리는 것을 발의라고 합니다. 발의가 가능한 주체는 국회의원정부입니다.

국회의원

법에도 다양한 종류와 위계가 있는데요. 국회가 만드는 법은 그중에서도 핵심이 되는 법률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법은 대부분 법률을 가리킵니다.

법안 발의를 위해선 10명 이상의 국회의원이 모여야 합니다. 그중 법안을 준비한 사람을 대표 발의자라고 하고, 대표 발의자의 요청으로 발의에 참석한 사람을 공동 발의자라고 합니다. 대표 발의자는 공동 발의자를 채우기 위해 동료 의원들을 설득해야만 하죠.

주로 같은 당의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의원들이 공동 발의에 응합니다. 이전에 나의 법안 발의에 참여해줬는지, 평소 색깔이 맞고 친분이 있는 의원인지 고려해 참여를 결정하기도 합니다.

발의자 수를 채워 법안이 발의되면, 국회 내의 심사 과정을 거쳐 본회의에 올라갑니다. 이 과정에서 상임위원회교섭단체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1️⃣상임위원회

국회의원들은 효율적이고 전문적인 운영을 위해 분야별로 모임을 만들어 일합니다. 이 모임을 상임위원회(상임위)라고 합니다.

21대 국회 상임위원회 및 특별위원회 구성
  • 현재 국회에는 총 17개의 상임위가 있고, 각 상임위는 정부부처와 짝을 이뤄 해당 부처와 관련된 안건을 다룹니다.
  • 법안이 통과되기 위해선 소관 상임위의 심사를 거쳐야 합니다.
  • 상임위 차원에서도 법안을 발의할 수 있습니다. 단 소관 사항에 대해서만 가능합니다. 이 경우 대표 발의자는 상임위원장이 됩니다.
  • 상임위원의 임기는 2년입니다. 상임위 배정은 국회의장이 교섭단체 대표의 요청에 따라 시행하고, 교섭단체가 없는 의원의 경우엔 국회의장이 결정합니다.
  • 상임위원장은 각 위원회의 대표자로, 회의 진행과 의견 조율을 맡습니다. 발언권을 주고 안건을 상정할 권한도 가집니다. 즉 특정 법안을 밀어주거나 막을 수 있는 영향력이 있습니다. 상임위원장은 보통 의석비율에 따라 정당별로 나눠갖습니다.
  • 각 당은 상임위별로 간사의원을 둡니다. 간사는 상임위의 원내대표와 같은 역할로, 각 당 위원들이 국정감사에서 신청한 증인들을 수합하며 상대 당 간사와 협상해 최종 출석 증인을 결정합니다.

상임위 중에서도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는 특별한 위치를 갖고 있습니다.

  • 소관 상임위를 통과하더라도 법사위를 거쳐야만 모든 의원이 투표하는 본회의에 올라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법사위는 법안이 다른 법률과 충돌하지 않는지, 법안에 사용된 용어는 적절한지 심사합니다.
  • 법사위원장은 국회에서 두번째로 의석 수가 많은 정당(원내 2당)에 배정됩니다. 다수당에게 상임위원장 자리가 몰리면 일방적인 입법 처리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2️⃣교섭단체

  • 의원들의 의사를 사전에 통합하고 조정하기 위해 구성하는 단체로, 20석 이상을 확보한 정당이 구성할 수 있습니다.
  • 교섭단체 대표의원은 일반적으로 정당의 원내대표가 맡습니다.
  •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은 국회의장단 선출, 상임위 구성, 임시국회의 소집, 본회의 일정 결정에 관여할 수 있습니다.

법안에 대한 각 정당의 의견을 조율해 절충안을 만드는 것도 교섭단체 간 협상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 상임위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된 법안이더라도 교섭단체 간 갈등이 심하면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하기도 합니다.
  • 반대로 교섭단체 대표들이 법안 통과를 합의하면 소관 상임위에서 급히 논의를 마쳐 본회의에 올리기도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고도 입장이 좁혀지지 않을 경우, 국회의장이 나설 수 있습니다.

3️⃣국회의장

  • 국회의 대표로, 국회의 원활한 회의 진행과 전반적인 운영을 담당합니다.
  • 보통 다수당에서 선출되는데, 의장이 되면 정당 소속을 버리고 중립을 지켜야 합니다.
  • 교섭단체 간 갈등이 심해 법안 처리가 늦어지면 원내대표 간 만남을 주선하거나 중재안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국회의장은 상임위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에 안건을 상정할 권한도 가집니다. 이를 국회의장 직권상정이라고 합니다.

  • 법안 처리가 이유 없이 미뤄지는 상황을 막기 위한 것인데, 의장이 다수당을 밀어주기 위해 쓸 경우 문제가 됩니다.
  • 직권상정을 막기 위해 소수당에서 의장실을 점거하거나 본회의장 문을 막고 몸싸움을 벌이는 일도 많았습니다. 2012년부터는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되면서 국회의장 직권상정 조건이 까다로워졌다.

정부

입법은 국회의 고유한 업무지만, 신속한 입법 대응을 위해 정부 역시 법을 만들거나 고칠 수 있습니다. 이를 행정입법이라고 합니다. 행정입법에는 법규명령행정규칙이 있습니다.

1️⃣법규명령: 법률에서 정부가 정할 수 있도록 위임해서, 또는 정부의 법률 집행을 위해서 행정권에 의해 제정된 규율

  • 대통령령(시행령): 법률의 시행을 위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각 중앙행정기관에서 마련합니다.
  • 총리령 · 부령(시행규칙): 법률과 대통령령의 시행을 위해 만들어집니다. 총리소속기관이 마련하는 것을 총리령, 각 중앙행정기관에서 마련하는 것을 부령이라 합니다.

2️⃣행정규칙: 임무수행, 조직 등 행정조직 내부 영역에서 효력이 있는 규율

정부는 법안 제출 20일 전에 공개적으로 알려 법안에 대한 의견을 받고, 여당 및 관련 부처와 협의해야 합니다. 또한 정부입법이 특정 시기에 몰리지 않도록 그해 제출할 법안 계획을 1월 31일까지 국회에 제출해야 하죠. 정부에서 낸 법안은 법제처 검토와 국무회의 심의를 거칩니다.

대통령이 외국과 맺은 조약 역시 법에 해당합니다. 조약 체결을 위해선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고, 중대한 사안일 경우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국회 동의를 받은 조약의 경우 법률과 동등한 효력을 발휘합니다.

다음 편에선 입법의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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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 정치 탐구

건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침착하게 바라볼 때 나오는 날카로운 분석을 좋아합니다. 동시에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다정함을 글 쓰는 동력으로 삼고 싶습니다.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변화의 출발점이라고 믿습니다. 애정클에서 애(愛)든 증(憎)이든, 정치를 대할 때면 쉽게 끓어오르는 마음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변화를 추구하는 마음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합니다. 최근엔 일상을 가꾸고 나를 돌보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