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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웅: 전세사기가 말하는 나의 미래

빌려 사는 사람이 집을 사는 사람과 동등한 시민으로 여겨질 수 있게 하는 것이 저의 과제입니다.

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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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은 인천 미추홀구의 전세사기 피해자 A씨가 숨진 지 1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더는 버티기 어렵다”는 그의 유서 뒤로, 미추홀구에서만 4명이 더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1년 사이 변화는 없었습니다. 전세사기 특별법이 통과됐지만 유명무실했고, 피해자들의 고통은 여전합니다. 집을 생각하면 우리는 불안하기만 합니다.

권지웅 센터장더불어민주당 전세사기 고충접수센터장을 맡고 있습니다. 그는 10년 이상 청년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민달팽이 유니온을 만들고, 책 <전세사기 방치국가>를 썼으며, 지금은 정당 안에서 해결책을 찾고 있죠.

2월 24일, 뉴웨이즈가 개최한 <할말 있음: 2024 총선 미래 질의응답>에서 권지웅 후보의 대담에 참석했습니다. 주거불안과 전세사기를 키워드로 한 권 후보의 발표 및 질의응답을 정리했습니다.

권지웅 더불어민주당 전세사기 고충접수센터장 ©뉴웨이즈

작년에 전세사기라는 키워드가 뉴스를 달궜죠. 작년에만 7명의 피해자가 돌아가셨고 1만 5천 명의 피해 신청 피해자가 있었습니다. 피해를 신청하지 못한 경우까지 포함하면, 2만 명 이상의 청년이 보증금 전부 혹은 일부를 잃었을 겁니다.

돌아가신 피해자 한 분의 사연을 말씀드릴게요. 30대 여성이고, 국가대표 육상 선수였습니다. 선수 생활을 마치고 다른 경제생활을 해야 하니까, 애견 미용을 배우러 수도권에 올라오셨어요. 서울의 집이 비싸니까 인천 미추홀에 집을 구하고 애견 미용을 배우러 다니려고 하셨죠. 그렇게 구한 집이 전세사기였습니다. 이분은 재작년 4월부터 전세사기가 국가의 문제라고 주장해 오셨어요. 하지만 국가는 되려 이렇게 말했죠. “개인이 잘못 계약해서 그런 거니까 국가가 지원해 줄 수 없다.” 그런 말을 듣다가 결국 목숨을 끊으셨습니다.

전세사기 피해자의 대다수가 국가가 공인한 중개사를 통해 계약합니다. 그리고 대출을 받기 때문에 은행의 심사를 받습니다. 이 집이 팔렸을 때 은행 대출을 돌려받을 수 있는지 심사하죠. 두 가지의 공적 단계를 거치고도 사기를 당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이후 LH공사, 국토부 공무원, 변호사, MBC 기자… 누구 할 것 없이 사기를 당하는 걸 본 뒤에야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는 얘기가 나왔죠.

사기를 당하면 경제적으로 타격이 엄청나지만, 피해자 분들이 처음부터 낙담하시지 않아요. 돈을 잃은 것 자체는 견뎌낼 수 있습니다. 포기하게 되는 건 사회에 대한 신뢰 붕괴 때문이죠. 국가가 이렇게 무책임할 수 있냐고 하면서요. 대전에서 열린 전세사기 간담회에서 20대 여성 피해자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지금 파산하기로 했다. 내가 왜 개인 회생을 해야 하는지 당신이 설명을 좀 해 봐라. 제가 설명할 길이 없었습니다. 결국 이분은 나는 정말 파산하고 싶지 않다면서 간담회장을 뛰쳐나가셨어요.

개인 간 거래가 위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국가가 돌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국가는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고 얘기했죠. 부동산 PF 시장을 보면, 국가가 작년에만 28조원의 정책금융을 지원하고 5천억원을 투자했어요. 그리고 1조원의 지원 펀드를 만들었습니다. 국가는 어떤 때에는 민간 시장의 거래에 개입하지만, 어떤 때에는 그러지 않죠. 이를 보면서 피해자들은 낙담합니다.

11년 전, 관악구에 4500만원 다가구 원룸을 계약한 친구가 전세사기를 당해서 저를 찾아왔습니다. 27살이었어요. 그때의 법, 제도, 정치가 문제를 전혀 해결해주지 못했습니다. 그 방법을 10년 동안 찾았는데 바꾸지 못했어요. 왜일까요? 대한민국은 전세사기 문제가 터지면 지금도 이렇게 이야기해요. “위험하니까 집을 살 수 있게 해줄게”. 개인들이 바라는 일이기도 하죠. 빌려 사는 것에 대한 불안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40년간, 빌려 사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발생하면 집을 살 수 있게 하면 된다고 해 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집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의 비율이 높아졌을까요? 지난 40년간 자가 점유율은 단 1%도 오르지 않았습니다. 전세사기 뿐 아니라 전반적인 주거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집을 사게 해서 주거 문제를 풀겠다는 정치 패러다임 자체를 폐기해야 돼요. 빌려 살아도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정책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권지웅 더불어민주당 전세사기 고충접수센터장 ©뉴웨이즈

구체적으로는 세 가지 활동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입니다. 지금 특별법 개정안이 올라가 있어요. 야당 단독으로 통과가 됐고 다음 주 목요일 정도에 다시 야당이 단독으로 해서 본회의에 올릴 텐데 이것이 통과되게 되면 보증금 전액을 잃어버린 분들에게 최우선 변제금 정도를 보상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전세사기로 임대인이 없어 주택 부실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지원할 수 있습니다.

(개정안은 지난 27일 야당 단독 의결로 본회의 직회부됐으나 여야 합의를 위해 29일 본회의에 부의되지 않았습니다. 여당 반대가 계속되면 법안이 본회의에 부의될 수 있는 시점은 총선 2주 전인 이번달 27일 이후입니다. 따라서 이번 국회 임기 내 처리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는 예방 조치입니다. 지금까지 전세사기 예방 조치는 두 가지 뿐이었어요. 우선 주택 계약할 때 계약금을 넣으면 집주인의 세금 체납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다가구 주택의 경우 이전 세입자 전세금이 얼마인지 알 수 있게 된 겁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계약하는 게 이미 천만원 이상의 돈을 집주인에게 준 다음이잖아요. 그래야만 이 주택이 안전한지 볼 수 있다는 게 이해가 안 돼요. 임대차 시장은 세입자가 알아야 될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 주지 않고 있습니다. 부동산에서 보증보험 가입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입주하고 나니 보증보험이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건 HUG에서 미리 확인해주면 되는 겁니다.

세 번째 조치는 빌려 사는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게 하는 겁니다. 2013년 목동에 행복주택이 지어지려고 할 때, 목동 주민들이 반대했어요. 이미 교육적으로 과밀 상태고, 차량도 너무 많다고요. 당시 양천구청장도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2019년에 재건축 허가가 났을 땐 너무 좋아했어요. 정치인은 몰라도 행정가는 이래선 안됩니다. 정치인은 시민들의 의사를 반영해 반대할 수 있지만, 행정가는 법과 절차에 따라 주택의 허가 여부만 봐야지, 거기 들어올 사람이 누구인가를 따져서 행정처분에 대한 입장을 내선 안 되죠. 하지만 그런 일이 비일비재해요.

빌려 사는 사람이 집을 사는 사람과 동등한 시민으로 여겨질 수 있게 하는 것이 저의 과제입니다. 더불어 1인 가구, 비정규직 노동자를 포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도 지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Q. 최근 전세사기 피해가 가장 많았던 곳이 서울 강서구 화곡동인데요. 강서구 국회의원은 3명 모두 더불어민주당 소속입니다. 그럼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지역민들에게 민주당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불신이 있는데요. 어떻게 신뢰도를 회복할 계획인가요?

윤석열 정부가 피해 구제에 있어 일관된 기준을 갖지 못하고 사실상 피해자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은 비판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터지고 있는 전세사기 주택들은 거의 문재인 정부 때 계약된 곳들이에요. 이 문제는 계속 잠재해 있었고, 몰랐던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기득권들은 여전히 집을 사게 만드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게 가능하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불가능한 방향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렇다면 빌려 사는 사람들을 보호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책임은 민주당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 상태에서 민주당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피해를 제대로 구제하고, 책임있는 예방 조치를 해야겠죠. 하지만 민주당이 과연 그런 조치를 할 수 있을지 우려됩니다. 예방 조치를 하려면 주택임대차보호법과 세제를 바꿔야 하는데, 보수 진영과 부딪힐 것이 뻔하죠. 그걸 이겨낼 수 있을지 걱정되긴 합니다.

Q. 민주당이 전세사기를 의제로 삼는 과정에선 분명 아쉬움이 있습니다. 민주당에서 이 문제를 얼마나 중요하게 보고 있는지, 올해 총선에서 관련해 어떤 공약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선 보상 후 구상권 청구’*가 부진한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선 보상 후 구상권 청구: 피해자들이 가지고 있는 채권을 국가가 매입하고, 추후 구상권을 청구해 일부를 돌려받는 것.

민주당은 전세사기를 핵심 의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당 대표, 원내대표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전세사기를 여러 번 논했고, 피해자와의 만남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전세사기특별법의 경우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정치적 리스크가 상당한 사보임**까지 하면서 통과를 위해 노력해왔어요. 예방 조치의 경우 제가 간사를 맡은 민주당의 전세사기 근절 특위에서 피해 예방 7법을 발표했는데요. 역시 통과가 관건입니다.

**사보임: 특정 의원을 특정 상임위원회에서 물러나게 하거나(사임) 직책을 맡게 하는 것(보임). 당 원내대표가 권한을 갖고 있으며, 특정 안건을 통과시키기 위해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선 보상 후 구상권 청구’의 경우, 채권 평가 금액에 맞춰 국가가 매입하는 내용이 특별법 개정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국민의힘과 정부가 반대했기 때문에 지금껏 합의되지 않았고요. 특별법이 통과되면 ‘선 보상 후 구상권 청구’가 도입되고, 민주당과 정의당이 단독으로 처리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실현된다면 국가적으로도 의미가 큰 일입니다. 국가가 피해를 입은 기업에 경제적 보상을 한 경우는 많지만, 개인에게 준 사례는 그렇지 않거든요. 이런 사례를 만드는 것 자체가 유의미합니다.

사실 국민의힘의 협조가 절실합니다. 법을 강행 처리해서 통과시키면 거부권 행사할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합의 처리되지 않은 건은 정부의 업무 태만으로 집행이 잘 되지 않습니다. 합의 처리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습니다.

Q. 깡통 전세와 전세사기의 구분이 모호한 지점이 있는데, 지금 발의 중인 특별법에는 이 둘에 대해서 지원의 격차가 있나요?

보증금을 못 돌려받았는데, 돌려주지 않는 임대인이 악의가 있었다고 하면 전세사기로 규정합니다. 보증금을 못 돌려받았지만 악의는 없었고, 내가 보증금을 다 회수할 수 없는 상황이면 깡통 전세라고 하고요. 하지만 세입자 입장에서는 보증금 못 돌려받는 건 매한가지입니다. 시민사회는 어쨌건 주거권과 밀접한 문제니 임대인의 악의와 관계없이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는 입장인데요. 현행법으로는 그렇게 접근하기가 어렵습니다. 사기 의도가 있었다는 게 증명돼야만 국가 지원이 가능해요.

하지만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죠. 보증금이 단순히 사적인 영역은 아니지 않느냐. 개인의 기본적인 권리와 연결되니 이것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먼저 개입했어야 하지 않느냐는 거예요. 사실 전세자금 대출, 전세 보증보험은 국가가 보증하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국가가 마음먹고 주택 가격이 2억 원이면 전세가 1억 4천 이하일 때만 전세 대출을 할 수 있게 보험 또는 대출을 설계하겠다고 하면 전세가가 떨어지지 않을까요? 전세가율이 낮아지면 집을 팔았을 때 보증금 전액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겠죠.

Q. 지금 제가 살고 있는 곳 옆에 신도시 계획이 나왔어요. 며칠 전 그린벨트를 해제하겠다는 얘기도 나왔고요. 얼마나 더 많은 집을 지어야 전세를 전전하는 불안이 해소될 수 있는 걸까요? 이 불안이 해소될 수 있긴 한 걸까요?
권지웅 더불어민주당 전세사기 고충접수센터장 ©뉴웨이즈

이런 질문을 받으니까 너무 좋네요. 말씀하신 대로 주택 정책은 단순히 주택 가격을 어떻게 해소할 지의 문제가 아니에요. 국토를 어떻게 쓸지, 인구 현황은 어떤지 고려해야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에 약 2100만 채의 주택이 있는데, 그중 약 160만 채가 비어 있어요. 일본은 이 문제를 먼저 겪어서 빈 집이 1600만 채나 있죠.

노후된 주택을 부수고 새로 짓는 것과 신도시를 짓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는 문재인 정부 때도 3기 신도시를 반대했었어요. 근데 이번에는 그린벨트까지 풀고 하겠다는 거죠.

주택 수요가 있는 곳은 무조건 있기 마련이에요. 하지만 그것만 보면 안됩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그 수요를 분산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려해야 해요. 대한민국이 지금 장기적 시야를 가지고 적극적 조치를 하지 않으면 일본과 똑같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도쿄로부터 1시간 정도 떨어진, 우리로 치면 용인, 일산에 해당하는 곳의 5층 아파트 24평이 2016년 한국 돈으로 600만원에 팔렸어요. 제가 1년 치 월세를 가지고 있으면 24평 짜리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상태인 거예요.

1980년대 후반 경기가 나빠지자 일본과 스웨덴은 서로 다른 조치를 했어요. 일본은 부동산으로 경기를 살려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죠. 스웨덴은 돌봄 비용을 늘렸어요. 두 국가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갔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갈지, 지금 제동하지 않으면 후세대가 엄청난 영향을 받을 거예요.

지금이 대한민국의 패러다임 전환을 만들어야 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버지를 보면서 가지게 된 세계관이 더 이상 대한민국에 적용되지 않아요. 그 세계관에선 소수의 사람들만 행복할 수 있어요. 자기 집을 갖고, 4인 가족을 꾸리고, 정규직 노동자일 수 있는 사람들이요. 패러다임 전환 없이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불행해집니다. 여러분과 함께 그 전환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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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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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침착하게 바라볼 때 나오는 날카로운 분석을 좋아합니다. 동시에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다정함을 글 쓰는 동력으로 삼고 싶습니다.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변화의 출발점이라고 믿습니다. 애정클에서 애(愛)든 증(憎)이든, 정치를 대할 때면 쉽게 끓어오르는 마음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변화를 추구하는 마음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합니다. 최근엔 일상을 가꾸고 나를 돌보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