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처 제도, 한국 언론의 악습?
듣자마자 눈살이 찌푸려지는, 신뢰할 수 없는 직업을 속으로 5개만 나열해봅시다. 혹시 정치인과 기자가 포함됐나요?
‘정치인은 다 사기꾼’, ‘기레기’, 한국 정치와 언론에 대한 일반적 인식을 정의하는 표현입니다. 두 영역에 대한 불신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정치와 언론의 관계는 복잡합니다. 둘은 서로를 흔들려 시도하며 따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의 관습을 유지하도록 해 함께 이익을 얻기도 합니다.
<근본적 정치 탐구> 언론장악 3편에서는, 이 기묘한 공생을 가능케 하는 언론계의 관행을 알아봅니다. 출입처 제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출입처 제도는 한국과 일본 언론에만 존재합니다. 기자가 특정 기관의 취재를 전담해 그곳에서 상주하는 것인데요. 출입 기자는 본인의 출입처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취재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교육부 출입 기자는 다른 부처기관에서 교육 관련 이슈가 생겨도 다루지 않습니다.
2020년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연구에 따르면, 한 중앙일간지 편집국 취재기자의 67.2%가 출입처 기자였습니다. 정치부 기자는 전원이 출입처 기자였습니다. 이처럼 정치부 기사는 99.9%가 출입처에 의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언론은 출입처를 정보원으로 활용하고, 출입처는 기자를 홍보 창구로 쓰며 공생합니다.
출입처 제도의 문제는 1990년대, 즉 민주화 이후부터 줄곧 지적돼왔습니다. 유착 의혹과 기자단의 폐쇄성이 핵심이었는데요. 법조계에서는 출입 기자증 발급을 제한해 언론사를 ‘관리’하고, 수사 정보를 흘리는 문제가 불거져 ‘검찰 기자단 해체’ 국민청원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해당 청원은 34만명의 동의를 얻었습니다.
정치부 출입처의 개방성은 법조계보다는 높은 편입니다. 국회의 경우 출입 기자 등록절차가 남아있지만 가입에 큰 제한은 없습니다. 인터넷을 통한 자료 접근성 확대로 폐쇄적인 기자단 운영의 유인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치 보도에 있어 출입처 제도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1️⃣ 여당만, 야당만 만나는 기자
정당 출입 기자는 여당 출입 기자와 야당 출입 기자로 나뉩니다. 즉, 여야를 오가며 취재하는 기자는 소수입니다. 대부분 자신이 담당하는 정당만 취재하며 한 쪽의 입장만 듣습니다.
문제는 기자도 사람이란 겁니다. 출입처 인사들과 매일같이 얼굴을 보고 친분을 쌓으며, 그들의 이야기만 듣다 보면 출입처의 사고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출입처 기자들 간 정보를 공유하며 관점이 비슷해지기도 합니다. 일종의 ‘필터 버블’에 갇히는 겁니다. 취재원의 인정이 기자로서 좋은 평가를 받는 길이라는 분위기가 있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출입 기자가 쓴 스트레이트 기사는 어느 언론사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한 내용과 입장을 싣습니다. 양쪽 의견을 종합한 기사는 이후 양측 출입 기자가 취재한 내용을 합친 것입니다. 그러나 취재 주체가 양쪽을 비교하며 방향을 잡지 않기 때문에, 의견 지형을 섬세하게 그리기보단 기계적으로 합치는 것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출입처와 심리적 거리를 둔다 해도, 부정적인 기사를 썼다가 타 언론사의 출입 기자들보다 정보를 얻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에 옹호적인 보도에 집중하게 되기도 합니다. 기자 한 사람 당 일주일에 15개 정도의 기사를 써야 하는데, 대부분의 기사를 출입처에 의존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신랄한 비판 기사를 쓰려면 ‘당장 내일 쓸 기사가 없어도 된다’는 정도의 배짱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출입처가 없는 나라의 기자는 어떨까요. 미국의 경우는 고정적 출입처 없이, 이슈 중심으로 취재합니다. 미국의 취재 기자는 특정 주제 없이 취재하는 ‘일반임무 기자’(general assignment reporter)와 특정 주제만 다루는 ‘비트 리포터’(beat reporter)로 나뉩니다. 비트 리포터의 경우 출입처를 가지는 경우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특정 주제의 전문 기자로서 필요에 따라 해당 기관을 오갈 뿐 그곳의 모든 이슈를 담당하며 보도자료에 의존하진 않습니다.
2️⃣ 따옴표 투성이의 보도, 떨어지는 신뢰도
일명 ‘따옴표 저널리즘’의 문제도 출입처 제도와 밀접하게 연관돼있습니다.
따옴표 저널리즘이란 취재원 발언의 직접 인용에 의존해 쓰는 기사를 비판하는 용어입니다.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저널리즘의 의무라면, 실제 있었던 발언을 그대로 옮기는 것은 오히려 권장되어야 할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주장의 가치나 적절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받아 쓰는 것은 오히려 사안을 왜곡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식의 보도는 대체로 주장의 내용에 대한 사실 확인을 제대로 거치지 않기도 합니다.
주장은 어디까지나 주장입니다. 따옴표 저널리즘이 말하는 ‘사실’은 ‘누가 어떠한 주장을 했다는 사실’일 뿐입니다. 사실과 주장의 영역을 흐리는 것은 정치 분야에서는 더욱 위험한 일입니다. 정치인은 누구보다 자신의 발언에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인데, 따옴표 저널리즘은 이들의 일방적 주장에 면죄부를 쥐어줍니다.
출입처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에서 따옴표 저널리즘은 기자의 최선이 됩니다. 위험하고 자극적인 발언을 쓸 때는 오히려 직접 인용에 그침으로서 발언의 여파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도 합니다.
출입처 보도자료에 의존하는 것 역시 따옴표 저널리즘과 비슷한 문제를 가집니다. 보도자료는 결국 작성 기관의 입장을 반영해 작성됩니다. 기관에 유리한 내용만 쓰거나 특정 사실을 과장해 쓸 수 있습니다. 보도자료만 보고 추가 취재를 하지 않는 기사는 어느 정도 편파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보도자료를 ‘복붙’하는 수준의 획일적인 보도가 쏟아지면서 언론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기도 합니다.
3️⃣ 정책과 소수정당은 어디에
출입처 중심의 사고는 정책 보도의 한계와도 연결됩니다. 정책은 정치권의 다양한 주체와 얽혀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출입처 기자들은 정책 이슈를 다루더라도 출입처의 입장을 챙길 수밖에 없고, 사안을 종합적으로 파고들거나 긴 호흡으로 다루기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기자의 출입처는 보통 2년에 한 번 바뀝니다. 특정 주제, 정책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기 힘든 구조입니다.
정책 보도와 관련해서는 한국 정치의 특성과 출입처 제도가 맞물리며 나타나는 문제도 있습니다. 정책에 관한 정당의 의사결정은 ‘실세’ 인물의 정무적 판단에 따라 이뤄질 때가 많습니다. 정당 출입 기자들은 정책을 다룰 때 그런 인물의 발언을 따라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책 보도를 한다 해도 정책 내용보다 이를 둘러싼 정쟁을 조명하게 됩니다.
소수정당이 주목받지 못하는 문제도 있씁니다. 야당 출입 기자는 말 그대로 여당 외의 모든 당을 담당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거대양당 중 야당’ 출입 기자에 가깝습니다. 한국 언론사는 늘 업무량에 비해 인력이 부족합니다. 언론사는 많지만 언론사 당 기자는 적습니다. 각 언론사는 가장 ‘핫한’ 주제를 모두 보도해야 하고, 그 작업에 모든 인력이 투입됩니다. 즉 현재의 정치 구도에서 야당 출입 기자는 민주당 이슈에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수정당 취재에 힘을 쓰는 것은 해당 정당이 캐스팅보트로 떠올랐을 때 정도입니다. 평상시 소수정당의 입장과 정치활동은 다뤄지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취재의 효율성과 현장과의 밀접한 관계를 위해 출입처 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오히려 바로 옆에서 취재원들을 지켜보기 때문에 견제할 수 있는 불의가 있다고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출입처 제도를 통해 언론이 얻는 편의가 과연 시민을 위한 것일까요. 정치와 언론은 신뢰를 잃어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언론은 출입처에, 정치는 여의도에 갇히더라도 그 자리만 지키고 있을 수 있다면 이익을 봅니다. 정치와 언론에 대한 혐오가 강한 사회일수록 견제의 동력은 떨어집니다. ‘현행 유지’는 이들에게 제법 매력적인 선택지입니다. 심지어 쉽습니다. 하던 대로만 하면 되니까요.
언론계 내에서 변화의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2019년, KBS는 보도의 질 향상을 위해 출입처 폐지를 시도했습니다. 대안을 찾으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의견은 쉽게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출입처 개혁과 폐지 사이에서 방향을 정하는 단계부터 갈등이 있었습니다. 일부 성과가 있었지만, 당초 선언했던 것 만큼의 개혁은 없었습니다. 구체적인 방향성에 대해선 이견이 있지만, 현 출입처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에는 언론계 다수가 공감합니다. 출입처 제도 개혁의 공은 다시 쏘아질 수 있을까요.
<근본적 정치 탐구> 언론장악 시리즈 보러 가기
언론장악1_언론장악의 역사
언론장악2_문제는 공영방송?
참고자료
[논문]
김창숙·최지향(2021). 왜 한국 신문의 문제적 사실확인 관행은 고쳐지지 않는가?. 언론과 사회 29권 2호. 5-57
박재영·허만섭·안수찬, (2020). 언론사 출입처 제도와 취재 관행 연구.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정 2020-02. 한국언론진흥재단
[웹사이트]
류석우·김양진. 출입처, 패거리 저널리즘의 출처. 한겨레21. 2023. 03. 03.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53491.html. 2023. 10. 30. 접속
박지은. "출입처 보도자료 '복붙'해서 기사 쓰면, 그게 기자인가". 한국기자협회. 2020. 11. 24. http://m.journalist.or.kr/m/m_article.html?no=48480. 2023. 10. 30. 접속
손가영. 외신 기자가 보는 한국 출입처 기자는 "주둔자, 세입자". 미디어오늘. 2020. 11. 18.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0408. 2023. 10. 30. 접속
정민경. 출입처 제도 폐지 선언했던 KBS 어떻게 바뀌었나. 미디어오늘. 2021. 02. 21.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2034. 2023. 10. 30. 접속
조권형.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 되짚기 02] 정치부 기자의 현실과 기사 쓰는 마음. 신문과방송. 2023. 05. 19. https://m.blog.naver.com/kpfjra_/223098071351. 2023. 10. 30. 접속
한승연. [질문하는 기자들Q] ‘기자도 못 들어가는 기자단’은 누구를 위해 유지되나?. KBS. 2021. 04. 18.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5165348. 2023. 10. 30. 접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