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트: 그날, 전두환이 죽었다면
《팝콘폴리틱스》는 문화콘텐츠에 나타나는 정치적 배경을 ‘덕력’ 넘치는 시각으로 파헤쳐보는 콘텐츠입니다.
영화 《헌트》는 팽팽한 두뇌싸움과 함께 벌어지는 풍성하고 긴장감 넘치는 액션을 결합해 성공적인 첩보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영화의 줄거리는 1980년대 초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현 국가정보원)에 숨어든 북한 간첩을 색출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희대의 독재자인 대통령(작중에서 그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는다)에 대한 암살 시도가 이어지고, 이를 막기 위한 치열한 첩보 공작이 벌어진다.
영화에서 대통령 암살 시도는 두 차례 벌어진다. 하나는 허구고, 다른 하나는 실제 있었던 사건이다. 허구는 워싱턴 DC에서의 대통령 저격 미수고, 실제 사건은 태국에서 일어나는 폭탄 테러다. 장소는 바뀌었지만, 태국에서의 폭탄 테러는 1983년 10월 버마(미얀마) 양곤에서 일어난 아웅산 장군 묘소 폭탄 테러 사건을 재구성했다.
테러 당일, 대통령 이하 주요 각료들은 버마의 독립 영웅인 아웅산 장군의 묘소 참배가 예정돼 있었다. 테러의 대상이었던 전두환은 이전 일정이 지연돼 도착이 늦어져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부총리와 외무장관 이하 17명의 수행원, 취재진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전두환은 1980년 광주에서 수 많은 시민의 목숨을 빼앗은 학살자였고, 내란으로 권력을 잡은 독재자였다. 그가 그날 목숨을 잃었다면 민주주의는 조금 더 빨리 찾아왔을까?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스포일러를 하고 싶지 않아서, 비슷한 다른 영화를 가져와 이야기를 이어가 보겠다. 《남산의 부장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사건(10·26 사건)을 거의 그대로 그리고 있다. 영화를 봤건 안 봤건, 우리는 모두 이 영화의 결말을 알고 있다.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전가옥에서 술을 마시던 박정희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목숨을 잃는다. 체포된 김재규는 이후 재판에서 “본인이 결행한 이번 10·26 거사는 자유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한 혁명"이라고 주장했다.
독재자의 죽음을 상상하는 일은 즐겁다. 독재자가 죽으면 민주주의가 찾아올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김재규의 주장은 일견 타당하게 들리기도 한다. 김재규가 일으킨 10·26 사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대의를 위하여 소의를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움”을 주장하며 김재규 구명운동에 나섰고, 역사학자 한홍구는 “김재규는 보수우익계에 돌출한 마지막 대륙형 인간”이라며 그를 옹호했다. 반면 같은 사건을 다룬 임상수 감독의 영화 《그때 그사람들》는 배우 윤여정의 입을 빌려 김재규의 거사를 차갑게 비웃는다.
"어때요, 저 사람? 혁명적 민주투사로 보입니까, 아니면 과대망상에 빠진 돈키호테였을까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담은 저 사내(김재규)의 법정 최후진술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는 설이 있습니다. 글쎄? 관심있는 사람들은 찾아서 읽어보시도록."
결과적으로 우리는 김재규의 ‘의거’ 이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있다. 같은 해 12월 6일, 국무총리 최규하가 간접선거로 대통령에 선출됐다. 그러나 12월 12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부를 장악했다. 이듬해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 수백 명의 시민이 계엄군에게 학살당했고,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면서 대한민국은 다시 군부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된다.
아웅산 묘소 테러는 그로부터 3년이 지난 1983년에 벌어졌다. 《헌트》에서는 북한이 주도한 이 테러를 국내의 반독재 세력이 역이용한다. 역사에는 만약이 없다지만, 가끔은 이런 상상을 하게 된다. 그 테러에서 만약 전두환이 어떻게든 세상을 떠났다면 80년대의 비극은 조금 더 빨리 끝나지 않았을까? 박종철 열사, 이한열 열사가 아까운 목숨을 잃지 않아도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쉽게 흘러가지 않는다.
'시민' 혁명이 성립하려면
대통령이 지지율 하락에 민감한 것은 왜일까? 투표로 뽑힌 대통령은 지지율에 상관 없이 임기를 보장받지만, 떨어진 지지율은 국정 동력의 발목을 잡는다. 지지율이 하락했다는 것은 자신에게 권력을 준 유권자들이 더 이상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자신에게 권력을 부여한 근거에 책임을 져야 한다.
마찬가지로 독재자가 죽었다고 해도, 그를 시민들의 손으로 끌어내린 게 아니라면, 시민들이 권력을 얻을 수는 없다. 원론적인 말이지만, 시민들에게 권력이 돌아가기 위해선 시민들의 행동에 의해 일어난 시민 혁명이 필요하다. 즉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쏴 봤자 민주주의를 얻을 수 없다.
최근 철학계와 사회과학계에서는 ‘페이션시(patiency)’라는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우리말로는 ‘감수력’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개념인 페이션시는 행위능력(에이전시, agency)에 상대되는 개념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무언가를 감수하고 인내했던 경험, 그런 수동적 상태에서의 경험이 이후에 어떤 행위를 할 수 있는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예시를 들어보자. 최악의 인종차별정책을 깨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첫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된 넬슨 만델라는 백인에 대한 복수 대신 기억하고 용서하는 방법을 택했다. 당연히 흑인 사회에서는 처벌이나 보복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백인 정권에 의해 27년 간 수감생활을 해야 했던 만델라 자신이 화해를 외치자 흑인 사회 역시 동참할 수 있었다. 즉, 만델라의 용서라는 행위는 그가 흑인 민권 운동의 리더로서 평생에 걸쳐 형성한 페이션시 덕분에 가능했다.
민주주의를 위했다는 김재규의 주장이 성립할 수 없는 것도, 아웅산에서 전두환이 죽었어도 민주주의가 빨리 찾아올 수 없었던 것도 마찬가지다. 김재규의 거사는 시민의 페이션시를 결여하고 있다. 1944년 독일 군부 내 소장파 세력이 히틀러를 죽이고 나치 정권을 전복하려 한 사건이 있었다. 《작전명 발키리》라는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던 이 사건을 두고 누군가는 이렇게 평했다. “히틀러를 제거한 후 군인 출신 독재자를 세우고 연합군과 강화한 다음 재군비를 해서 20년 쯤 지나면 다시 전쟁을 시작할 속셈이겠죠.” 그 누군가는 바로 ‘안네의 일기’를 쓴 안네 프랑크다. 시민혁명은 다른 누구도 아닌 시민 전체가 페이션시를 가져가는 혁명을 말하는 것이다.
‘80년대 정치극’ 시리즈
격동하던 80년대의 정치적 상황은 창작물에 있어 매력적인 시공간이다.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참혹한 고문을 받은 김근태 전 의장의 이야기를 다룬 《남영동 1985》,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부터 6월 민주 항쟁까지의 과정을 그린 《1987》이 대표적인 작품이고, 《화려한 휴가》와 《택시운전사》는 80년대 최대의 비극인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그렸다. 《남산의 부장들》, 《그때 그사람들》로 시작해 《화려한 휴가》와 《택시운전사》, 《남영동 1985》를 거쳐 《1987》로 이어지는 한국의 80년대라는 역정에 《헌트》라는 작품이 더해졌다. 이쯤 되면 이 영화 ‘80년대 정치극’ 시리즈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한국에서 민주주의 체제가 수립된 것은 4.19 혁명부터 6월 민주 항쟁까지 3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형성된 페이션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페이션시가 필요한 것은 일상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치는 엄청난 참을성을 요구한다. 하나의 좋은 성과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하고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게 힘들게 노력해도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고통으로 형성되는 페이션시를 생각하면 정치에 지쳐버린 마음도 조금은 달래볼 수 있지 않을까.
글: 애증의 정치클럽 에디터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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