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그것으로 만족합니까?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애증의 정치클럽 🍂건조 에디터입니다.
넷플연가에서 진행한 <애증의 시네마 정치클럽>이 이번주에 마무리됩니다. 12명의 멤버들과 총 4회차의 모임을 진행했어요. 매번 하고 싶은 말이 넘쳐서 시간이 부족했는데요. 벌써 마무리되다니 너무나 아쉽습니다. 감사하게도, 넷플연가와 함께 다음 모임을 준비하고 있어요. 평소 정치 이야기를 꾹꾹 담아두셨던 분들, 정치는 낯설지만 용감하게 이야기해보고 싶은 분들 모두 눈여겨보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회차에서 다룰 영화는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의 <신문기자>(2019)입니다. 정부 비리에 대한 익명의 제보를 받고 이를 파헤치는 기자의 이야기에요. 한국의 배우 심은경이 주연으로 출연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권력과 언론의 관계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이 영화를 선정했는데요.
마침 어제,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회견에 대한 감상은 <신문기자>의 장면들과 자연스럽게 맞물렸죠. 저는 기자는 아니지만, 질문을 기반으로 일한다는 점에선 기자와 비슷한 일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에디터노트에서는 질문에 대한 생각을 풀어봅니다.
지난 2주간의 애정클 콘텐츠
- [쓸모있는 정책플리] 학생인권조례 폐지, 문제는 균형일까 (4/30)
- [주간 애증 담소] 🤝드디어 만난 윤석열-이재명, 결과는? (5/2)
- [애증의 인터뷰] 장혜영, 또 다른 시작 (5/3)
- [근본적 정치 탐구] 특검이 뭐길래 (5/7)
- [주간 애증 담소] 💰연금개혁 근황 총정리(5/9)
팟캐스트 출연
- [그것은 알기 싫다]545a. 애증의 정치클럽:세월호 세대가 본 세월호 참사 10년
- [그것은 알기 싫다]545b. 애증의 정치클럽:탈시설/이동권 투쟁과 우리 삶의 변화
구독자분들께선 이런 의견을 보내주셨습니다.
[애증의 인터뷰] 장혜영, 또 다른 시작 (5/3)
- 안 그래도 장혜영 의원님의 총선 평가와 다음 행보에 대한 고민이 궁금했는데, 시의적절한 인터뷰 감사합니다. 4번째 사진 캡션에 오기가 있으니 확인 부탁드려요~! (건빵 님)
- 참 좋은 인터뷰 감사합니다만 중간 사진 설명 중 '박주리 의원'으로 표기된 것이 있네요! (이대호 님)
말씀해주셨듯이 레터로 보내드린 버전에 캡션 오기가 있었습니다. 알려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더 꼼꼼히 검수해서 보내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애정클 콘텐츠에 대한 다양한 의견 제시는 늘 환영입니다! 피드백창을 통해 의견을 남겨주시면, 다음 에디터 노트에서 논의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편하게 찾아주세요!
*보내주신 의견은 에디터의 편집을 거쳐 소개됨을 알려드립니다. 내용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가독성을 위한 편집만 진행하고 있습니다.
“질문은 모든 뉴스의 출발점”, 언론학자 칩 스캔란의 말입니다. 영화 <신문기자>의 주인공 요시오카는 제대로 된 질문을 갈망하는 기자입니다. 아버지를 잃은 고등학생 딸의 심정을 묻는 기자에게 그게 지금 할 질문이냐며 분노하고, 정부의 비밀을 발견했을 때 우리가 이걸 내버려둬도 되느냐고 묻습니다.
요시오카라는 배역은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도쿄신문의 사회부 기자 모치즈키 이소코가 그 주인공입니다. 모치즈키는 관례상 5분이면 끝나는 관방장관 기자회견에서 40분 동안 23개의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더불어 아베 총리의 사학 스캔들, 무기 수출 금지 원칙 철폐 등을 추적하며 아베 정권에 맞서는 '일본 언론 자유의 상징'으로 떠올랐어요.
모치즈키가 쓴 동명의 책 <신문기자>에서 묘사되는 일본 언론의 풍경은 낯설지 않습니다. 한국의 ‘출입처 제도’와 유사한 ‘기자 클럽’, 정해진 질문과 답변만 주고받는 기자회견, 두루뭉술한 답변을 그대로 받아쓸 뿐 더 이상 묻지 않는 기자들… 모치즈키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자 정치인들은 그를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함께 회견에 참여한 기자들은 그가 ‘물을 흐린다’고 생각합니다. 정보의 출처가 되는 정치인과의 관계를 원활히 유지해야 한다며 불만스러워하죠.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꾸안꾸’였습니다. 꾸민 듯 안 꾸민 듯, 각본이 없는 것처럼 짜여진 각본. 예상을 빗나가는 질문은 없었습니다. 회견 전부터 예상됐던 큼직한 쟁점들이 테이블에 올려졌지만, 해체되지 않았습니다. 총선 패배, 국정 기조 전환, 경제 현안에 대해선 이전의 입장이 되풀이됐고 구체적인 해결책은 없었죠. 채 상병 특검법과 관련된 대통령실 외압 의혹은 답변을 회피했습니다. 김건희 특검법과 관련해선 “대통령의 의견이 궁금하다”는 모호한 질문 하나만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모치즈키가 질문하길 멈추지 않은 것은 그가 ‘반(反)권력 기자’이거나, 사회파 기자여서가 아닙니다. 그저 의문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 일본이라는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 그를 움직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실수도 있었습니다. 어설프고 성급한 질문으로 피해자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고, 오보를 내기도 했습니다. 다만 그럴 때마다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스스로를 향한 질문을 멈추지 않았죠. 그 결과 진실에 다가섰습니다.
대통령이 두루뭉술한 답변을 해도 추가 질문은 없었습니다. 정부가 난처해 할 의제들이 ‘언급’됐을 뿐 달라진 게 없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난처한 문제를 피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의미를 가져갑니다. 모치즈키의 질문이 곤란하지 않느냐는 말에 “전혀 곤란하지 않다”며 미소지었던 스가 관방장관처럼요. 무엇을 할 것인가, 사실은 무엇인가 구체적인 답변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고, 일본과 마찬가지로 정보를 쥔 출입처의 의사에 반하기가 어렵다는 한계도 작용했죠.
모치즈키를 응원해온 캐스터 가네히라 시게노리는 일본 언론에 대해 이렇게 논평했습니다. “문제의 본질에서 멀찍이 떨어져 항상 뒤편에만 선다.” 모치즈키의 행동을 모든 언론사가 다뤘지만, 사람을 앞에 내세울 뿐 결과에 책임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질문을 벼리는 대신, 닳도록 내버려둡니다. 권력도 언론도 그 날카로움에 찔리면 불편하니까요. 언론에 대한 신뢰도 함께 닳아버리겠지만 누군가는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영화로 돌아옵니다. 요시오카는 협력을 망설이는 정부의 내부고발자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그것으로 만족합니까?” 모든 질문은 나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무엇을 왜 알고 싶은지, 알아낸 다음엔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 나는 무엇에 만족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상대와 나 사이를 오가며 부딪힐 때 질문은 날카로워집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뉴스의 출발점을 넘어, 정의의 시작이 될지도 모릅니다. 모치즈키와 요시오카에게 그랬듯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