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_최종_보스_기재부

‘공룡 부처’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정부 부처의 규모와 소관 업무가 너무 많을 때, 마치 공룡처럼 크다는 의미로 쓰는 말인데요.

대표적인 ‘공룡 부처’로는 기획재정부(기재부)가 있습니다. 기재부는 국가 경제를 총괄하는 부처입니다. 1️⃣ 경제정책, 2️⃣ 세금, 3️⃣ 예산에 관한 핵심 권한을 모두 갖고 있습니다.

특히 기재부 예산실은 예산 편성부터 집행까지를 주도하는 실세 부서입니다. 모든 중앙 부처와 지자체의 사업 예산을 일일이 심사·조정해 정부 위의 정부라고 불립니다.

예산의 달 11월, 두 번째 <근본적 정치 탐구>에서는 예산안 확정의 ‘최종 보스’ 기재부를 살펴봅니다.

기획재정부, 얼마나 세길래?

  • 예산실 사무관 한 명의 X 표시로 사업 예산 수억 원이 날아갈 수 있습니다. 예산 편성 시기가 되면 다른 부처나 지자체 공무원들이 기재부 복도에서 몇 시간이고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오재록 행정학 교수의 중앙 부처 내 권력 연구에서 기재부는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연속 1위를 차지했습니다. 검찰청(2위)보다도 권력지수가 높습니다.

기재부와 예산안

예산안은 정부가 편성하고, 국회가 심의해 확정합니다. 기재부는 사실상 전 과정에서 결정권을 쥐고 있습니다. (자세한 결정 과정은 지난 탐구 <예산안_최종_만들기> 참고)

1️⃣ 예산 편성: 기재부

  • 실질적인 예산 편성은 기재부가 주관합니다. 8천 개 이상의 사업 중 핵심 사업엔 청와대가 관여하지만, 대부분은 기재부가 결정합니다.
  • 3월 말, 기획재정부에서 400쪽 가량 되는 예산지침서를 각 부처에 내립니다. 각 기관의 기본 경비부터 내년에 추진 예정인 사업 예산을 어떻게 짤지 촘촘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대부분 신규사업 억제 등 예산 삭감을 요구하는 내용입니다.
  • 각 부처는 지침에 따라 사업 예산을 짜고, 예산요구서를 기재부에 보냅니다. 사업 예산 증액을 요청하는 부처와 삭감을 원하는 기재부 사이 협의가 진행됩니다.
  • 기재부에서 최종 예산안을 편성하고,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9월 초까지 국회에 제출합니다.

2️⃣ 예산 심의: 국회 (+기재부)

  • 11월, 국회가 예산안 심의를 시작합니다. 50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가 예산 심사를 주관합니다.
  • 국회는 예산을 깎을 순 있지만, 늘릴 순 없습니다. 헌법 제57조에 따라 예산을 증액하려면 정부, 즉 기재부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삭감한 예산을 다른 사업에 옮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 예결위 여야 간사가 소속 당 의원들이 요구하는 증액 사업 리스트를 만들어 기재부에 전달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기재부는 증액 거부 예산에 X 표시를 해 국회에 전달합니다.
  • 국회 심의 과정에서 삭감·증액되는 예산은 1% 안팎입니다. 이에 국회의 예산 심사가 수박 겉핥기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3️⃣ 예산 집행: 기재부

확정된 예산안을 토대로 예산을 집행하는 것도 기재부의 소관입니다.

‘기재부 파워’의 그림자

예산안 편성·심사 기한은 절차별로 법에 규정돼 있습니다.

1️⃣ 비밀리에 진행되는 예산 편성

  • 기재부 예산실의 업무는 대부분 비공개로 진행됩니다. 예산실에서 편성한 예산안은 7월 대통령 보고를 마칠 때까지 외부에 절대 알려지지 않습니다.
  • 공개되는 예산서도 사업별 예산액만 나와있어 사업 현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기재부가 각 부처에 배분하는 예산 총액 정도는 공개해야 국회에서 부처별 재원 현황을 파악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 예산을 짜는 동안 기재부에 들이닥치는 민원과 요구사항이 워낙 많아, 비공개 원칙을 지킬 수밖에 없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 그러나 비공개 원칙이 자의적인 예산 편성으로 이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불거진 ‘최순실 예산’ 논란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최순실 씨가 관여한 일부 사업에 대해 기재부가 문체부의 당초 요구액보다 예산을 늘려 편성한 겁니다.

2️⃣ 다른 부처의 자율성 저하

  • 본래 기재부는 경제 정책만을 총괄하지만, 예산권을 가지고 있기에 다른 부처의 정책 집행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 기재부의 권한으로 사업을 사실상 폐기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코로나19 대응 정책으로 행정안전부가 시행한 지역사랑상품권 사업입니다.
  • 2021년 3월 기재부는 예산지침서에서 사업의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습니다. 반면 행정안전부는 작년보다 늘어난 예산을 기재부에 요구했습니다.
  • 여러 차례 예산 협의를 거쳤지만, 기재부가 최종 통보한 지역상품권 예산은 행정안전부의 요구안에서 83.3%가 삭감된 규모였습니다.
  • 이에 기재부의 예산 통제가 각 부처의 정책의 창의성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기재부가 신규 사업의 예산 편성을 꺼려 새로운 사업에 예산을 과감하게 투자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3️⃣ 모피아 네트워크

기재부의 권력이 강력한 만큼, 기재부 관료 간 네트워크도 정치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 모피아란, 재무부를 뜻하는 영어 약자 ‘MOF’(Ministry of Finance)와 ‘마피아’를 합친 말입니다. 전•현직 기재부 관료의 막강한 권력을 뜻합니다.
  • 모피아는 기재부 은퇴 후 중앙·지방정부나 금융 기관에 영입됩니다. 이런 인사 패턴은 전체 행정 부처에 대한 기재부의 권한과 영향력을 강화합니다.
  • 지방정부에선 국가 보조금 확보를 위해 기재부 출신을 영입합니다. 이들의 기재부 선후배 인맥을 활용하는 겁니다. 2021년 기준, 경제부시장·부지사를 둔 광역시·도 10곳 중 6곳에 기재부 출신이 재직 중이었습니다.
  • 청와대 인사, 다른 부처 장·차관 등 중앙정부의 핵심 직책에도 기재부 출신이 대거 뽑힙니다. 현 정부 인사 중 한덕수 국무총리,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주현 금융위원장 등이 기재부 출신입니다.

‘기재부 파워’를 줄이려면

1️⃣ 기재부 예산권 분리

🏛️ 예산실을 대통령실로 옮기기

  • 예산 편성권을 대통령에게 넘겨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미국은 백악관의 예산관리국이 대통령 예산안을 짜서 의회에 넘깁니다.
  • 대통령 비서실로 예산권이 넘어가면 대통령의 공약이 정책으로 실현되기 쉬워집니다. 공약에 대한 대통령의 책임도 강화됩니다.
  • 대통령의 권한이 지나치게 커진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 예산실을 국무총리실로 옮기기

  • 모든 부처를 지휘하는 국무총리가 운영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예산 편성은 각 부처와 수시로 협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 과거에 시도해본 적이 있었다

기획재정부 변천사

김대중 정부는 당시 경제 정책 총괄과 예산 편성을 담당했던  재정경제원을 해체하고, 대통령 직속 기획예산위원회를 두려 했습니다.

  • IMF 외환위기가 재정경제원의 권한 집중으로 나타난 부작용이었다는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 그러나 당시 연합정부를 구성한 자유민주연합과 야당이 강하게 반대하며, 국무총리 산하에 예산실을 두자고 주장했습니다.
  • 결국 기획예산위원회는 예산 편성 지침만 내리고, 재정경재원에서 분리된 예산청이 실제 편성을 맡게 됐습니다.
  • 조직이 나뉘자 업무는 비효율적으로 진행됐습니다. 두 조직은 1년 만에 국무총리실 소속 기획예산처로 통합됐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기획예산처, 재정경제부, 청와대 국무조정실 일부 기능을 통합해 기획재정부를 만들었습니다. 이로서 경제 총괄 부처에 다시 예산권이 돌아갔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비서실에 재정기획관을 신설해 예산권을 조정하려 했습니다. 재정기획관은 대통령 공약이 예산에 반영되는지 살피고, 기재부와 예산을 조정합니다. 그러나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2️⃣ 국회의 권한 강화

현재 예산안 결정 과정에서 국회의 영향력은 기재부보다 훨씬 작습니다. 이에 2022년 더불어민주당 맹성규 의원은 국회의 예산 심사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 예결위를 상설 상임위원회로

  • 예결위가 예산 편성 단계부터 1년 내내 예산 업무에 집중하게 하자는 제안입니다. 예결위 입성을 위한 의원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 재정총량 거시심사 제도 도입

  • 기재부가 국회에 총 예산과 부처별 예산 한도를 보고하면 국회가 심사하는 제도입니다. 지금까지는 총량이나 부처별 한도에 대한 거시적인 고민 없이 개별 사업 단위로 심사가 이뤄졌습니다.

국회의 권한 강화가 오히려 예산의 비효율적 편성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지금도 국회의 예산 심의 과정에서 지역구 민원 사업 예산을 과도하게 늘리는 ‘쪽지 예산’ 관행이 문제되고 있습니다.

현재는 예산 관련 자료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국회의원이나 보좌진도 많지 않습니다. 국회의 예산 관련 업무를 지원하는 국회예산정책처도 기재부 도움 없이 예산을 독자적으로 검토하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참고자료

[논문]

오재록(2009). 정부조직개편에 따른 기획재정부의 권력관계 변화 분석. 행정논총 제47권 2호. 21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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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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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무•홍민철. 기재부 해체, 그 오래된 미래…김대중. 민중의소리. 2021.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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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근. '경제 사령탑' 기재부 개혁 방향은···“부서 쪼개기론 한계, 총액배분예산제도가 해법”. 시사저널. 2021.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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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원•연다혜. 정부 위의 정부, 기재부를 개혁해야 하는 이유. 뉴스타파. 2021.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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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민철. 기재부의 국회 사용법, 예산 선물 보따리엔 뭐가 들었나. 민중의소리. 2021.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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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민철. 정부 위의 정부, 기재부가 ‘폐기한’ 골목상권 지원책. 민중의소리. 2021.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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