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_최종_만들기
11월의 키워드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빼빼로? 수능?
국회에서 11월은 예산의 달입니다. 국회는 12월 초까지 다음 해 예산을 확정해야 하는데요. 국회의원들은 정부가 짠 예산을 일일이 따지면서,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업의 금액을 늘리려 사활을 겁니다.
올해는 11월 1일부터 국회에서 예산안 심사를 담당하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가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엔 대규모 예산 삭감이 많아, 치열한 논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그런데 예산안, 정확히 어떻게 결정되는 걸까요? 국회의원별로 챙기는 예산이 다르다면, 우선순위는 누가 결정하는 걸까요?
그래서 <근본적 정치 탐구> 예산안 편을 준비했습니다. 1️⃣ 예산안 심사는 어떤 절차를 밟는지, 2️⃣ 심사 과정에서 지켜봐야 할 문제는 없는지 알아봤습니다.
예산안이란?
- 국가 살림을 정해 놓은 1년 계획표입니다. 1년 동안 세금 등으로 거둬들일 수입에 맞춰, 정책 집행에 얼마를 쓸지 계획합니다. 예산안에 따라 매년 정부가 어떤 사업을 진행하거나 중단할지 결정됩니다.
예산안은 어떻게 짜는데?
- 예산(budget)이라는 용어는 본래 영국 재무장관이 재정 보고를 하려고 의회에 들고 가던 가죽 서류 가방(budget)에서 유래했는데요. 정부가 예산을 짜고, 의회에 들고 가서 승인받는 방식은 19세기 근대 민주주의부터 시작된 오랜 전통입니다.
- 우리나라도 헌법 제54조에 의해 예산안은 정부가 편성해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가 심사한 뒤 확정합니다.
- 예산안 편성과 심사 주체를 따로 둔 건 어느 한쪽의 마음대로 예산을 결정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 국회는 예산을 깎을 순 있지만, 늘릴 순 없습니다. 증액하려면 정부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따라서 국회의원들은 감액 단계부터 지역구 예산을 늘리기 위한 로비를 펼칩니다. 다른 예산을 깎은 만큼 지역구 예산을 늘려달라고 요청하는 식입니다.
정부의 예산 편성 (1월~8월)
예산안 편성·심사 기한은 절차별로 법에 규정돼 있습니다.
1️⃣ 5년 계획 짜기: 국가재정운용계획
정부 예산 편성은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도하고, 장관 아래 1급 공무원인 예산실장이 관련 업무를 총괄합니다. 그래서 예산 실장은 ‘실세 중의 실세’로 불립니다.
- 1월: 기재부 장관이 정부 부처들로부터 중기사업계획을 받습니다. 각 부처의 사업계획을 참고해 향후 5년 동안의 계획인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짭니다.
2️⃣ 1년 계획 짜기: 예산안
국가재정운용계획을 토대로 1년 단위의 예산안을 짭니다.
- 3월: 기재부 장관이 정부 부처들에 예산안 편성 지침을 통보합니다.
- 5월: 각 부처는 편성 지침을 참고해 진행할 사업에 필요한 예산 요구서를 기재부에 제출합니다.
- 8월: 기재부 장관이 예산 요구서를 종합해 예산안을 편성합니다. 예산안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의 승인을 받습니다.
🏛️ 올해엔 어떨까
- 8월 31일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내년 예산안은 약 657조원입니다. 올해 예산보다 2.8% 늘어난 규모로, 20년 만에 가장 적게 늘었습니다.
- 감세로 수입이 줄어든 만큼, 지출도 허리띠를 꽉 졸라매겠다는 게 정부 기조입니다. (지난 담소 <😣 2024년 예산안, 절약하긴 하는데...> 참고)
국회의 예산 심의 (9월~11월)
1️⃣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 결성
- 9월: 법정 시한인 9월 초(회계연도 개시 120일 전)까지 정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합니다.
- 11월: 국회가 예산안 심사를 시작합니다. 예산 심사를 주관하는 곳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입니다. 예결위는 5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며, 매년 새로 선출합니다.
- 먼저 예결위 전체회의를 열어 정부 부처별 심사를 합니다. 국회에 부처 장관을 불러 지난해보다 증액되거나 삭감된 예산에 대해 질문하는 겁니다. 경제 부처와 비경제 부처를 나눠서 진행합니다.
- 경제 부처 심사에는 기재부 장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방송통신위원장 등이 출석합니다. 비경제 부처 심사에는 행정안전부, 교육부, 법무부 장관 등이 출석합니다.
2️⃣ 상임위원회 예비심사
- 예결위의 본격적인 심의에 돌입하기 전 국회 17개 상임위원회(상임위)에 예비심사를 의뢰합니다. 상임위는 특정 분야를 전담하는 의원들의 모임입니다. 상임위 예비심사를 통해 각 부처 상황을 전문적으로 알고 있는 상임위 의원들의 의견을 반영합니다.
- 상임위 예비심사에서 예산이 감액되면, 예결위 본 심사에 대부분 그대로 반영됩니다. 예결위가 감액된 예산을 원상복구하려면 국회법상 상임위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 상임위에서 증액 요청이 올라가기도 하지만, 대체로 반영되지 않습니다.
3️⃣ 예결위 본심사
- 50명의 예결위 의원 중 15명을 추린 예산안 조정소위(예산소위)가 본격적인 심사를 맡습니다. 예산소위는 각 상임위원회별 예비심사 결과를 토대로 예산의 최종 증감을 결정합니다.
- 예산소위는 여야 간 예산 전쟁의 하이라이트가 펼쳐지는 곳입니다. 여야 예결위 간사, 기재부 차관, 각 부처 관계자가 예산 증감을 두고 기 싸움을 펼칩니다. 대개 여당이 정부의 예산안을 방어하고, 야당이 수정 공세를 펼칩니다.
- 그만큼 예결위원 자리는 경쟁이 치열합니다. 자신의 지역구에 유리하도록 예산 편성에 입김을 불어 넣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결위원에게 일반 의원들이 로비를 시도하기도 합니다.
- 예산소위에서 여야가 최종 합의안을 만들면, 예결위 전체회의와 국회 본회의 투표를 거쳐 확정됩니다
🏛️ 올해엔 어떨까
11월 3일과 6일 경제부처 심사, 7~8일 비경제부처 심사가 진행됩니다. 예산소위 활동은 14일부터 시작합니다.
내년도 예산안을 둘러싼 여야의 주요 쟁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R&D(연구개발) 예산 삭감: 윤석열 대통령이 연구자들 간 ’예산 나눠먹기‘를 지적해 전년도 대비 16.6%(7조원)의 예산이 삭감됐습니다. 민주당은 R&D 예산 복원을 1순위 과제로 앞세웠습니다.
(2) 새만금 개발사업 예산 삭감: 새만금 세계잼버리대회 파행을 계기로 사실상 사업이 취소됐습니다. 78%(5146억원)가 삭감됐습니다. 민주당은 사업을 복원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예산안 심의의 꼼수 관행
1️⃣ 법정 시한 미루기
- 예결위가 예산안 심사를 마쳐야 하는 법정 시한은 11월 30일입니다. 그때까지 마치지 않으면 12월 1일, 국회의 수정을 거치지 않은 정부안이 그대로 본회의에 넘어갑니다. 2014년, 국회가 자체적으로 법정 시한 안에 예산안을 처리하도록 만들어진 예산안자동부의제도입니다.
- 이렇게 되면 국회의 예산 심사권이 사실상 사라지게 됩니다. 정부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 예산안자동부의제도가 탄생한 건, 국회가 예산안 처리 시한을 번번이 어겨왔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국회 본회의의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은 12월 2일이었는데, 매년 여야 대치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 그런데 이 제도가 생긴 뒤로도 국회는 2020년을 제외하면 법정 시한을 계속 어겨왔습니다. 작년에는 여야 합의안을 대통령실이 파기하면서 12월 24일이 돼서야 예산안이 처리됐습니다.
- 원인은 예산안부의제도의 예외 조항입니다. 국회의장이 교섭단체 대표와 합의하면 예산안 자동부의를 취소할 수 있다는 내용인데요. 이를 이용해 본회의로 정부 예산안이 넘어가는 것을 막아왔습니다. 사실상 예산안부의제도를 무력화한 겁니다.
2️⃣ ‘밀실심사’와 ‘쪽지예산’, 예산 소소위
- 본래 예산안 심사는 예산소위에서 끝나야 하지만, 법정기한이 넘어가면 일명 소소위를 만들어 심사를 이어가는 관행이 있습니다. ‘예산소위의 작은 소위원회’라는 뜻입니다.
- 소소위 구성원은 단 3명, 예결위원장과 여야 간사 뿐입니다. 적은 인원으로 협상을 빠르게 진행하기 위해서입니다. 대개 예산소위에서 여야 간 입장 차이가 큰 사업은 보류해 소소위에서 비공개로 논의합니다.
- 소소위는 국회법에 근거 조항이 없어 속기록도 남기지 않습니다. 국민들이 확인할 수 없는 정치적 거래가 이뤄진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 소소위에는 지역구 의원들의 ‘쪽지예산’이 졸속으로 들어가곤 합니다. 소소위 의원에게 다른 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 사업 예산 증액을 쪽지로 부탁하는 겁니다. 최근엔 ‘카톡예산’이라고도 합니다. 주로 지역구에 성과로 홍보하기 좋은 철도, 도로 등 사회기반시설 사업이 끼워집니다.
- 총선이 다가올수록 ‘쪽지예산’ 챙기기는 심해집니다. 즉, ‘쪽지예산’ 사업 대부분은 총선을 위한 졸속사업입니다. 국토교통위에 따르면, 2021년 국가 지원을 받은 지방도로 건설 사업 60개 중 34개가 예산액의 50% 미만으로 집행됐습니다.
더 나은 예산안을 짜려면
꼼수 관행이 지배하는 예결위에서 예산 심사는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고, 여야의 갈등은 심해집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 페이고(PayGo) 제도 도입: 정부가 새로운 지출을 할 때 재원 마련 방안까지 의무적으로 제시하게 하는 제도입니다. 미국과 일본에서 시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적용하고 있지만, 예외 사유가 많아 실효성이 낮습니다.
- 예산 심사 기간 확대: 우리 국회의 예산심사 기간은 대체로 한 달 이내입니다. 반면 미국의 심사 기간은 240일, 독일은 120일로 훨씬 깁니다. 이렇게 심사 기간이 짧은 건 9~10월 동안 국정감사를 하고 11월부터 예산안 심사를 안건에 올리기 때문입니다. 꼼꼼한 심사를 위해선 국정감사를 9월 전 끝내고 예산안 심사 기간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참고자료
[논문]
이영환•이남수(2017). 결산 및 예산안 심의제도 개선에 관한 연구. 재정학연구 제10권 제2호(통권 제93호). 223-261.
[웹사이트]
강서구. [법 밖 예산➋] 밀실서 예산 주무르는 소소위의 비밀, 더스쿠프, 2022. 12. 09. https://www.thescoop.co.kr/news/articleView.html?idxno=56109. 2023. 11. 05. 접속
김기환. 尹 "나눠먹기식 재검토하라"…657조 예산안 심사 시작, 쟁점은. 중앙일보. 2023. 10. 31.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3658#home. 2023. 11. 05. 접속
김진·양근혁. ‘감액 전쟁터’ 상임위, 예비심사부터 증감 진검승부…곳곳 지뢰밭. 헤럴드경제. 2023.11.05. https://biz.heraldcorp.com/view.php?ud=20231103000714. 2023. 11. 05. 접속
성지원. 수백억 예산 따내고는, 결국 집행 0원…이런 '쪽지예산' 수두룩. 중앙일보. 2022. 11. 29.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21439#home. 2023. 11. 05. 접속
송명희. ‘뭉텅뭉텅’ 허술한 삭감…“예산 심사 기간 늘려야”, KBS 2021. 02. 14.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5117300 2023. 11. 05. 접속
장정욱. 헌법 안 지키는 국회…예산안 법정 시한 또 넘기나. 데일리안. 2022.11.23. https://light.dailian.co.kr/news/view/1175926/. 2023. 11. 05. 접속
장정욱. 법 만드는 국회, 20년 동안 ‘두 번’ 지켰다. 데일리안. 2022. 11. 24. https://light.dailian.co.kr/news/view/1176357/. 2023. 11. 05. 접속
홍영식. '예산 소소위'가 뭐길래. 한국경제. 2022. 12. 01. https://www.hankyung.com/opinion/article/2022120191401. 2023. 11. 05. 접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