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주의자' 양소희
양소희
사단법인 아그니카 최고운영책임자(COO), 전 시대전환 대변인양소희 전 시대전환 수석대변인은 제주도에서 청소년 활동가로 일했다. 대학에서는 세계를 누비며 국제기구 입사를 꿈꿨다. 그러나 2020년,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실 보좌진이 되며 덜컥 정치에 입문했다. 지금은 정치혁신커뮤니티 아그니카에서 최고운영책임자를 맡고 있다는데…
한 번도 정치인을 꿈꾼 적 없다는 그는 어쩌다 정치혁신을 꿈꾸게 됐을까?
양소희가 정치를 보며 느끼는 감정
❤️ 애(愛) : "나는 정치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이어서 좋다!”
“정치는 최후의 어떤 순간에 가장 끝에 남겨진 사람들을 생각하는 일이에요. 정말 맡기 싫은 어려운 일에도 기꺼이 앞장서야 하고, 굉장히 피곤해도 뭔가에 맞서 싸워야 하죠. 지키고 싶은 것들이 있기 때문에 기꺼이 그렇게 하려는 거잖아요. 정치에서 갈등은 결국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행위라고 생각하고, 그래야만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도 제가 사랑하는 존재들을 위해서 기꺼이 그럴 수 있고, 그러고자 여기 뛰어든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사랑의 힘이 없으면 버티기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 증(憎) : “나는 정치가 기꺼이 괴로워하지 않는 모습이 아쉽다…”
“'기꺼이 괴로워하자' 신조는 계속해서 저 스스로도 되새기고 있는 말인데요. 자기가 믿는 가치를 끝까지 추구하고 변화를 만드는 건 결과만 보면 대단하고 멋있어 보이지만, 과정은 절대 아름답지 않잖아요. 예전엔 그런 고난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지만, 이제는 겪어야만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대안을 생각해내는 일이 진짜 괴로운 일이거든요. 그 괴로움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좋은 어른이자 의사결정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정치는 편한 선택지, 성공의 모습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답습하는 형태에 익숙해져 있거든요. 기꺼이 괴로운 선택지를 선택하는 정치인이 많아지면 정치가 바뀔 수 있다고 봐요. 그걸 할 수 있는 어떤 용기나 환경을 불어넣는 게 우리 역할이라고 생각하고요. 아직은 그런 모습이 좀 부족하지 않나 싶어요.”
💪 각오 : “나는 ‘새로운 표준'이 되고 싶다.”
“제가 직업 정치인으로 일했을 때 저를 낯설게 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여성이나 청년과 같은 저의 정체성이나 제가 지향하는 가치와 의제 모두에서요. 그런데 이런 것들이 제가 속한 공동체나 주변의 또래들에겐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거든요. 그래서 정치라는 영역에 새로움을 계속 투입시키고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될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LOVE
처음부터 ‘정치가 내 일’이라고 생각하신 건 아닌가봐요. 정치인이 되기 전엔 정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셨나요?
원래 청소년기 때부터 사회 활동이나 캠페인을 많이 했고, 그것의 연장선에서 국제기구 같은 곳에 가고 싶었어요. 그런 활동의 규모와 영향력을 키우려면 필연적으로 그 지역의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과 협력할 기회가 생겨요. 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고요. 그렇게 간접적으로 정치인의 일을 접하며 이 사람들의 일과 권한에 대한 호기심은 있었어요. 근데 그런 호기심을 압도하는 피로감이 더 컸어요. 당시에는 논쟁에 휘말리고 싶지도 않았고, 어떤 성향으로 내가 규정되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그런 프레임 안에 저를 가둬 두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어서요. ‘어느 쪽도 아닌 나’로 보여졌으면 해서 어떤 정치적 성향이나 관심을 크게 두지 않았어요. 또래들처럼 적당한 거리 두기를 했죠. 막연히 호기심은 있지만 내가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정치는) 권력 투쟁의 성격이 더 강한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이 땅의 어떤 불평등과 빈곤을 없애는 일이고, 그럼 난 국제기구 같은 신성한(웃음) 일을 해야지, 정치 같은 권력 투쟁은 나랑 안 맞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 생각이 좀 나중에 어떻게 바뀌셨는지 궁금해지는데요. 어떤 의제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그걸 굳이 정치적 성향으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말씀이신 거죠? 그러다 어떤 계기로 보좌진, 대변인으로까지도 일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아까 국제기구에 가고 싶었다고 말씀드렸는데, 특히 세계은행이랑 OECD에 관심을 뒀어요. 제가 같이 일했던 조정훈 국회의원이 세계은행의 몇 안 되는 한국인 고위직이셨어요. 국회에 가서 일해보고 싶은 게 아니라 정훈 님이랑 일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보좌진에 지원했어요. 개인적인 커리어 조언도 구하고, ‘적당히 몇 달 일하다가 그다음 단계를 밟아야지’ 그런 마음이었죠.
’조정훈 의원님’이라고 하지 않고 님이라고 하시네요?
맞아요. ‘의원님’은 놀릴 때 써요 (웃음).
정훈 님이 21대 국회에서 신선한 키워드를 많이 던지시는데, 본인을 ‘입법 노동자’라고 생각해 달라고 말씀하신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정훈 님 아이디어였나요?
큰 틀에서 제시한 건 당연히 정훈 님이었어요. 의원실이 의원의 행보나 정책 활동, 의정 활동을 같이 기획하긴 하지만, 큰 방향이나 색깔은 의원 본인의 의지가 없으면 못 만들거든요. 근데 그런 걸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셨어요. 그 내용을 채우는 건 보좌진이 같이 했지만, 방향성은 정훈 님의 제안이었어요. 저도 아주 신선한 시도였다고 생각해요. 오래 정치를 한 사람이거나 거대 정당이라면 못했을 시도 같은데, 세계은행이라는 국제 규범에 맞는 그런 조직에서 일하면서 그 문화를 주입시킨 거죠. 어떻게 보면 새로운 표준을 도입하신 거라 화제가 됐어요. 그런 정훈 님의 제안에 보좌진으로서 존중받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당연한 일을 하는 건데 이렇게 칭찬 받을 건가’ 싶기도 했어요. 스타트업 같은 데서는 ‘님’이라고 부른다고 칭찬하지 않잖아요. 근데 ‘정훈 님’ 그걸로 몇 달 동안 칭찬받고, 각종 언론에서 인터뷰를 했어요. 굉장히 좋은 파트너, 보스를 만났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국회의 문화가 굉장히 후진적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조직에 대한 정훈 님의 비전과 그 안에서의 경험이 소희 님께 긍정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시대전환이라고 하는 당의 방향성은 어떻게 생각됐나요? 소희 님 개인의 관심 분야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네요.
대변인 자리를 제안받을 때까지 당적이 없었어요. 대변인을 하려면 당연히 가입을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인생 첫 정당 가입을 앞두고 천천히 돌이켜본 거죠. 단지 이게 재밌어 보여서 하는 건가? 아니면 정말 나랑 결이 맞다고 생각하는 건가? 저는 양당제의 폐단에 대해 문제 의식이 많았던 사람이에요. 현실 정치를 하려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건 이해하지만요. 둘 다 소모되는 방식으로 갈등하는 가운데 그 사람들이 전혀 대변해주지 못하는 의제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시대전환이라는 조직이 표방하는 것은 ‘생활인의 정당’, ‘일하는 정당’인데요. 상대적으로 그런 갈등 구조보다는 다음 챕터의 의제를 빨리 선점하고 제시하는 것들에 관심이 많고, 실제로 그런 일들을 했어요.
대표적인 게 기본소득과 주 4일제. 시대 전환이 거의 처음으로 던진 의제였어요. 재난 지원금도요. 그런 것들이 마음에 들었어요. 기존의 문법에서 좀 더 자유로운 상황에서 진짜 문제 해결을 위한 고민을 할 수 있는 정당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제가 지향하는 바랑 잘 맞았고요. 지금은 당원이 아니지만, 거기서 정치 커리어를 시작한 것에 대해 후회한 적은 없어요. 거대 정당에서 시작했으면 기존의 문법에 익숙해져서 새로운 의제를 파악하고 발굴하는 그런 기회를 가져보지 못했을 것 같아요. 양당제의 문제에 대해 더 깊게 고민해보지도 못했을 거고요.
대변인과 보좌진이 하는 일이 궁금해요. 소희 님의 블로그와 정훈 님의 말로는 ‘입법 노동 파트너’라고 표현됐는데, 간단히 설명해 주신다면요?
대변인은 어떤 정당을 대변하는 동시에 이 정당이 무엇에 관심과 시선을 두고 있고, 어떻게 나아갈 것이라고 말과 글로 계속 보여주는 직업이에요. 그래서 언어에 대한 책임을 많이 느꼈어요. 저 개인을 대변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온전히 할 수는 없지만, 우리 정당이 지향하는 바와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제의 접점을 잘 찾아내려 했어요. 그걸 당의 특색에 맞게 조정해서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의제나 존재를 호명하는 일을 한다고 봤어요.
제가 대변인 선임되기 전 시대전환의 논평은 주로 통일, 북한, 경제 관련 이슈 위주였는데요. 제가 대변인 한 뒤로 기후위기, 젠더, 혐오 범죄 등의 이슈 또한 시대전환이 관심을 갖고 있단 걸 많이 보여줬어요. 사람들이 당을 인식할 때 보통 당의 홈페이지나 SNS에서 어떤 글이 최근에 나왔는지 많이 보는데, 그게 저를 통해 가공돼서 나가는 거거든요. 그걸 보고 ‘이 당이 이런 문제에도 관심이 있고 내 얘기를 해주네’라는 피드백을 해줄 때 많은 효능감을 느꼈어요.
보좌진은 기획자에요. 의원은 플레이어, 선수고 그 판을 짜는 건 보좌진들이 같이 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대정부 질문에서는 문장 하나하나, 어디서 강조를 하고 어떤 부분에서 치고 나가고 이런 것가지 다 같이 기획하고요. 그 기획을 플레이어가 잘 소화하고 퍼포먼스를 해내는 데서 이 일이 정점을 찍는데요. 정치의 영역에 없을 때는 마지막 결과물만 보이죠. 철저히 (의원) 개인의 역량에 의한 결과인 줄 알았어요. 사실 그 뒤에 팀과 기획자들이 있어요. 정훈 님이 왜 입법 노동 파트너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아요. 이건 파트너십의 구조고, 서로 역량을 끌어주고 신뢰하는 게 의원 개인의 퍼포먼스 역량과 매우 중요한 연결성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보좌진은 어떤 구체화된 정책이나 어떤 법의 형태를 만들잖아요. 그게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 건지도 궁금해요.
흥미로운 경험을 들려드릴게요. 물론 저의 보좌진 경험은 굉장히 특수한 케이스긴 해요. 다른 300개 의원실 중 200곳은 굉장히 수직적인 구조라 저 같은 경험을 거의 못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런 특수함을 감안하고 들어주세요.(웃음)
저희가 어떤 법안을 조정훈 의원실의 1호 법안으로 낼 것인가에 대한 토론과 제안을 했었거든요. 당시 정훈 님이 가지고 있는 관심사와 제가 하고 싶은 일의 접점을 계속 찾았어요. 정훈 님은 플랫폼 노동자에 관심이 많으셨고, 저는 노동권,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벌어지는 양극화와 그로 인한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았는데요. 제가 눈여겨본 건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 기록 삭제였어요. 이분들의 노동 기록이나 이력은 플랫폼 기업에 귀속돼서, 일을 그만두면 앱 상에서 삭제돼요. 자기가 일했던 기록이 한 순간에 다 날아가는 거예요. 그게 합당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걸 보완해 줄 수 있는 장치를 입법화하면 어떨까. 그 사람들의 경력과 사회적 기여에 대한 기록이 이직할 때 이전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이걸 정훈 님이 너무 마음에 들어하셔서 저희 의원실 1호 법안으로 채택돼 실제로 법안이 나갔었어요.
그 과정은 어떻게 되냐면, 법률 제안서라는 게 있어요. 보좌진이 1차로 초안을 써요. 이걸 국회 내에 입법 정책처에서 법 형태로 가공을 해요. 그럼 저희가 최종 점검을 한 뒤 의원이 법안을 발의하는 형태입니다.
사회 현상에 대한 관심, 무엇이 개선돼야 한다는 믿음과 의지가 필요하군요. 아이디어도 있어야 하고요.
더불어 법이라는 틀 안에서 이걸 어떻게 보호하거나 또는 발전시킬 수 있을지, 법과 제도의 공백을 계속 찾아내야 해요. 이슈는 계속 터지는데 법과 제도는 느리게 변하잖아요. 그래서 공백이 많이 생겨요. 이걸 찾아내서 어떻게 메울지 아이디어를 빠릿빠릿하게 내야 하고요. 또 사람들을 설득하고 모아야 해요. 의원 10명을 모아야 발의를 할 수 있거든요.
많은 일을 해야겠어요.
사실 입법 건수 채우려고 기존 법안에서 글자 하나만 바꾸고 이런 분들도 계세요. 근데 정훈 님은 그런 스타일은 아니세요.
그렇군요. 의원실과 법안이 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하나의 체계라고 본다면, 그게 잘 굴러가기 위해서 어떤 운영 방식이 필요할까요?
사람들이 의견 내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아무리 높은 급수의 사람이 낸 아이디어일지라도 잘못된 방향이나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마음껏 비판하고, 제대로 된 피드백 과정을 거쳐야 해요. 시대전환은 그런 거버넌스를 만들려는 노력이 있어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나와요. 빠른 시도가 가능하고요. 수평적 의사결정 구조의 최대 수혜자는 보좌진이 아니라 정훈 님이라고 생각해요. 직급에 관계없이 자기가 제시한 프로젝트나 아이디어는 끝까지 리더가 돼서 끌고 가야 되거든요. 그 결과는 결국에 의원이 가져가니까 의원이 최대 수혜자죠. 의사결정권자는 수평적 의사결정 구조가 나의 권한을 내려놓는 게 아니라 결국에 팀을 위한 거라고 봐야 해요. 정치에 그런 문화가 유입되면 좋지 않을까요?
정치에서 민주주의가 제1의 원칙처럼 말해지잖아요. 정치하는 사람들이 국가뿐만 아니라 개별 조직에서도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고민하고 있을까 생각하게 되네요. 그런데, 정치를 직접 해보니 어떠셨나요? 재밌으셨나요?
저는 효능감을 진짜 많이 느꼈어요. 또 상대적으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또래에 비해 제 언어를 펼칠 공간이나 무대를 많이 부여받은 편이라서요. 그래서 그런 제가 제안한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정책, 프로젝트나 제가 쓴 논평이 사람들에게서 호응을 얻을 때, 특히 그 논평이 가리키는 이슈의 당사자나 대변하고자 한 사람이 ‘이런 얘기해줘서 고맙다’고 할 때 효능감이 들어요. 그게 아주 미미한 영향일지라도 우리의 이야기를 그 공간에서 전해줘서 고맙다, 힘이 된다는 의견을 받을 때요.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의원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밌어요. 예를 들어 정훈 님과 제가 시민 백서라는 프로젝트를 했었는데요. 테이블에만 앉아 있지 말고, 보고서만 보지 말고 통계 뒤에 사람을 보러 가자고 해서 서울에 있는 100명의 이제 시민들을 만나면서 인터뷰한 거거든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지만, 보고서가 담아내지 못하는 현장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어요. 정훈 님이 각종 인터뷰에서 그 내용을 많이 언급하셨어요. 그분의 시선이 보고서의 통계 그래프가 아니라 사람으로 이동했다고, 그 얘기를 밖에서 많이 하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문제를 직접 보고 나니 이렇게 하고 싶다는 의지를 불태우시는 모습을 보면서도 보람을 느꼈어요.
‘정치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이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결국 정치라고 하는 게 사람을 보고 하는 걸까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정치인은 부패한 사람, 피곤한 사람이라고 뭉뚱그려져서 말해지지만 사실 분투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지금은 잘못된 것처럼 보이지만, 정치를 시작하려고 할 때의 초심은 진심이었다고 믿어요. 나쁜 마음으로 시작한 사람은 정말 적었을 것 같아요. 내가 이왕 맡게 됐으니 뭐라도 해봐야지, 하는 마음이 분명 있었을 거예요. 그걸 일깨워줄 수 있는 게 사랑의 힘이라고 보거든요. 저는 사랑은 전염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정치인이 가지고 있었던 양심, 사랑을 계속 깨워주는 문화가 필요한 것 같아요.
처음에는 정치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고 하셨지만, 지금은 내가 어떤 식으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고 하셨잖아요. 그럼 정치에 대해서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나요?
정치는 최후의 순간에 사람을 생각하는 일이라고 봐요. 이게 제가 공공 영역에 계속 남아 있는 이유고요. 친구들이 ‘넌 왜 대기업을 안 가냐, 스펙 헛쌓았다’ 이런 말을 하는데요. 사실 민간 영역에서도 만들 수 있는 변화가 있어요. 그게 오히려 더 빠르고 영향력이 클 수도 있죠. 근데 그 영역에서는 최후의 순간에 이익을 생각하거든요. 어쩔 수 없이 돈, 이익이 되는지를 생각하게 돼요. 하지만 공적 영역에서는 최후의 순간에 사람을 생각해야 해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을 지킬 수 있지? 이 변화의 파도가 너무 빠른데 이 파도에 못 올라탄 사람들을 어떻게 데려가지? 이런 걸 생각하는 게 정치가 해야 될 일이고, 정치만 그걸 할 수 있다고 봐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이고요.
저는 언제든지 정치를 할 생각이 있어요. 하지만 여의도 한복판에서 제가 경험하고 느낀 바로는, 정치 생태계에서 바뀌어야 할 점이 너무 많아요. 지금 너무 엉망진창이라서, 이걸 조금이라도 정리하는데 기여하고, 도전하고 싶어요. 정치 생태계, 문화를 바꿔나가는 일은 내부인일 때도 할 수 있겠지만, 외부인일 때 객관적으로 조명하고 실험해 볼 수 있는 게 더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사단법인 아그니카’ 라는 조직에 합류를 해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고 있어요.
이전에 하셨던 사회 활동이나 캠페인 기획과 정치가 하는 일이 좀 닮아 있다고 느끼신 걸까요?
맞아요. 옛날에는 국제기구가 숭고한 일, 권력 투쟁에서 벗어난 일을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곳에 가고 싶었어요. 이제는 '정치가 권력 투쟁에만 매몰되지 않는다면 제가 속한 공동체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내가 무엇을 위해 싸우고 타협하는지만 명확하다면요. 국제기구에서 먼 나라의 가장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것도 물론 의미 있는 일이죠. 하지만 저는 제 공동체에 있는 사람들의 변화를 이끄는 데 더욱 열의가 있는 것 같아요. 그건 정치로서 해낼 수 있는 일이고요. 그래서 커리어의 방향을 바꾸게 됐어요.
💔 HATE
정치를 할수록 재미와 중요성을 느끼면서 당초에 가지셨던 거리감이 줄어들었던 것 같네요. 그럼에도 늘 즐겁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정치를 하면서 회의감을 느끼신 적은 없을까요.
제 상식의 기준에서 전혀 용납할 수 없는 일들이 횡행하고, 심지어 그게 호응을 받고 힘을 얻는 모습을 보면 많은 회의감을 느껴요. 이 거대한 파도를 우리가 뚫을 수 있나 싶고 현장에서 분투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그런 잘못된 언어와 정치적 만행으로 다 후퇴되는 것만 같고요. 특히 혐오에 힘입은 의제가 등판하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내몰리게 될 때가 있잖아요. 사랑하는 친구들이 정치인들의 말 한 마디에 가슴 아파하는 걸 지켜보기가 참 고통스러워요. 미안한 마음도 들고요. 동시에 이런 미안함을 정작 느껴야 될 사람들은 태평한 것 같을 땐 회의감이 깊어지죠. 우리가 그렇게 지치고 포기하는 걸 바랄 테니 지치면 안 된다로 결론이 나지만요.
앞서 정치 생태계가 엉망이라는 말을 해주셨어요. 저도 정치 뉴스를 들으면 급격히 피곤해지는 사람인데요. 정치를 좀 더 가까이서 지켜보시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문제라고 느끼셨는지 궁금해요.
지금의 구조에선 정치인들이 문제 해결에 집중하기가 정말 어려워요. 저도 외부에 있을 땐 국회의원은 왜 저렇게 일도 안 하고 싸우기만 하나 했는데, 정치인이 쇼맨십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의 문제가 있더라고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요. 국정 감사에서 어떤 의원이 질의를 정말 잘하는 거예요. 어떻게 저 문제를 저렇게 접근했지 싶을 정도로 환상적인 질의였어요. 근데 그 회의는 그 의원과는 별개로 싸움으로 끝났고, 당일 보도에는 그 싸움밖에 안 나갔어요. 의원 질의 얘기는 전혀 없고요.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 아니면 시민들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길이 없는 거죠. 문제 해결을 아무리 잘 하더라도 그게 인정받지 못하고, 알려지지 못한다면 다음 권력을 잡는 데는 크게 소용이 없고요. 이래서 정치인들이 싸워서라도 미디어에 더 비춰지려고 하는 거구나 싶었어요. ‘일단 악플을 받더라도 유명해지자’는 게 공통 정서예요. 그러니까 의미 없는 싸움을 하게 되고요. 물론 그런 선택을 한 건 잘못이지만 개개인의 문제만으로 치환될 수 있느냐는 고민이죠.
정치에서 선거는 정치인에게도, 시민들로서도 굉장히 중요한 이벤트잖아요. 최근의 대선과 지선 모두 후보 캠프에서 활동하셨는데요, 직접 선거에 관여해보면서 정치에서 선거를 치르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게 있을까요.
우선, 출마할 사람들이 선발되는 기준 자체가 너무 불투명해요. 열심히 준비하고도 경쟁 한번 제대로 못 해보고 우수수 떨어지는 제 동료들을 보면서 ‘경쟁해볼 기회라도 달라’는 상식적인 요구조차 지켜지지 않는구나 싶었어요. 선거 일정부터 정치 신인들한테는 너무 불리하거든요. 예를 들면 ‘내일 모레가 면접이래’ 이런 식으로 일정 공표가 이틀 전에 나와요. 애초에 의사결정이 시시각각 이뤄지는 데다 안내도 제대로 안되니까 다음엔 뭐가 닥칠지 예측하기 힘들고요. 만약 사기업에서 채용을 이런 식으로 했다면 난리가 날 일인데 정치에선 ‘원래 그랬으니까’가 통하는 거예요.
그리고 어쨌든 주목조차 받지 못하면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적거든요. 물리적으로 대면하기에는 코로나라는 한계도 컸고요. 그러다보니 유권자들에게 공약이나 정책, 자기가 하고 싶은 문제를 충분히 설명하고 보여줄 기회가 없다. 사실 이건 유권자들도 손해인 것 같아요. 자기가 뽑는 사람의 공약이 뭔지도 모르고 ‘저 당 싫으니까 이 당 사람’ 이거에서 우리는 발전해야 되지 않나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지난 지선 때 당이나 후보자 이름에 얽매이지 않고 공약을 열심히 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좋은 정책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정책이 비슷비슷하니까 당을 고려하지 않을 수도 없잖아요. 게다가 소수정당은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의제를 우선순위에 두지만 정작 수권 가능성이랄지 실현할 수 있는 역량을 고려하면 표를 주기 망설여지고요. 선거에서 과연 내 선택권이 충분히 보장되고 있나? 라는 고민을 늘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비슷한 고민을 해요. 지난 지선에서 이대호 성남시장 후보자 캠프의 선대위원장으로 선거를 치렀어요. 플레이어의 입장에 가장 가깝게 뛰어본 선거였는데요. 선거를 기획하는 입장에서도 우리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선거 모델에 집중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라는 걸 느꼈어요. 정책과 공약에 힘을 쏟을 역량과 시간이 너무나 부족했거든요. 그러다보니 당장 이름을 알릴 수 있는 퍼포먼스 같은 것에 우리도 모르게 자꾸 시선이 쏠리고, ‘이런 거 해야 되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이 덮치기도 했고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항상 노력했지만 그게 결과적으로 크게 돌아오지 않을 때 후보들은 굉장히 조급해지거든요. 저는 그래도 선대위원장이니까 해야 될 방향을 제시할 수 있지만 후보자는 즉각적인 반응이 오지 않으면 불안한 그런 힘든 자리기 때문에. 후보자가 효능감을 느끼면서 자기 의제에 집중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했었죠.
정치만큼 여성의 과소대표 문제가 심각한 영역은 없는 것 같은데요. 그게 결국에는 정치인들이 하는 말, 내놓는 정책의 낮은 성인지적 감수성로 이어질테고요. 정치 그리고 여성이라는 키워드와 관련해 생각하게 된 바가 있을까요.
제가 총 세 번의 선거를 치렀고 각 캠프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았는데요. 메세지 팀장을 한 적도 있고, 정책팀장으로 여성의제를 다루거나 아까 말했듯 선대위장으로 뛰기도 했었고요. 그러면서 여성 의제가 그 중요성이 제대로 인식되기보단 정말 많은 하위 범주 중 하나 정도로만 여겨진다는 걸 느꼈어요.
예를 들면, 한 캠프에서 일할 때 불법 촬영이 얼마나 심각하고 해결해야 하는 일인지에 대해 후보자를 설득해서 관련 시민단체와의 간담회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자리에서 “불법촬영 문제에 대응하는 활동이 남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기르면 어떡하냐”는 식의 발언이 나왔거든요. 해당 의제에 대한 인식 수준이 이렇게나 차이가 나는 거죠. 이런 사람이 권한을 가졌을 때 옆에서 계속 문제의식을 불어넣는 사람이 없다면, 정당이 바뀐들 뭐가 달라질까 싶더라고요.
선대위원장 때는 정치하는 여성에 대한 상상력의 빈곤을 많이 맞닥뜨렸어요. 예를 들면 출마선언식을 했을 때 지역신문 기자님들이 ‘선대위원장 어딨어, 데려와’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저라고 하니까, “아, 선대위원장이 뭔지 모르냐”고 (웃음) 그러시는 거예요. 진행하는 과정에서 또 작은 실랑이가 있었는데 그 기자 분이 휙 돌아서서 “어린 년이 뭘 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들으니까 오히려 전투력이 생긴 게 ‘뭣 모르는 어린 년이 전면에 있는 팀은 이런 재밌는 거 한다’, ‘이런 씬(scene)에 이런 사람들도 있고 어린 년도 역량이 있고 의지가 있으면 마땅한 권한과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걸 계속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굉장히 좋은 동력의 분노를 준 거죠.
물론 이런 상황이 굉장히 화나고 어이없지만 한편으로는 저를 통해서 문제가 드러난 거기도 하거든요. 만약 후보자가 남성 선대위원장을 뒀다면 이런 문제가 있는지도 몰랐을텐데 제가 그 자리에 위치했기 때문에 저를 통과해서 드러난 문제잖아요. 그래서 ‘더 많이 플레이할 수 있는 공간에 더 많이 등장해서 이런 문제가 존재한다라는 걸 보여줘야겠다, 그게 나의 역할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결국 이런 것들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구조적 차별이겠죠. 조금 비슷한 결일 수도 있는데, 청년 정치도 같이 짚어보고 싶었어요. 청년이라는 호명에 대한 문제의식은 많지만 정치 영역에 있는 청년 자체가 너무 적다보니 그걸 피력하게 되는 지점도 있잖아요. 어찌보면 정치인의 자원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이 같은 난점을 소희님은 어떻게 풀어가고 계신가요.
어떤 의제를 ‘청년 문제’라고 이름 붙이면 그건 곧 청년의 특수한 문제가 돼버리는데 어떤 문제건 그렇게 한정지을 수는 없거든요. 그래서 의제를 말할 때 청년을 앞세우는 건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대신 내부 투쟁 과정에서 이 시대의 새로운 과제가 무엇이냐를 얘기할 때는 청년이란 정체성이 유용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민주화나 북한과의 관계 같은 문제가 더는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시의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잖아요. 기후 위기, 젠더 갈등, 혐오 범죄 이런 의제가 우리 세대한테는 당장의 과제고 향후 10년에 더 주요해질 의제고요. 그래서 우리는 이런 의제를 더 파야 한다고 내부적으로 설득하고 주장할 때 이 의제를 가장 가깝게 경험하는 사람으로서 갖게 되는 당위성은 있는 것 같아요.
🍷 CLUB
시대전환 설명 문구가 ‘생활인이 만들어가는 정책 의제 중심의 플랫폼 정당’이에요. 플랫폼 정당, 심지어 생활인이 만들어간다, 이런 키워드들이 모두 낯설게 다가왔거든요. 이 당이 주장하는 대안적인 정당 모델인지도 궁금했고요. 지금은 당적이 없으신 상태지만, 대변인으로서의 경험에 비춰봤을 때 플랫폼으로서의 정당의 기능이나 장점은 뭔가요?
기존의 거대 정당에서는 공론장이 활성화되지 않았거든요. 당원 게시판 같은 게 형식적으로 있다고 하나 일방향적인 의견 내기에 불과하고, 하향식 의사결정 방식이 많아요. ‘공지’, ‘공고’ 이런 것들이 대부분이고 투표의 형태로만 참여할 수 있는 거죠. 시대전환의 큰 장점 중 하나는 당원들이 직접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거예요. ‘이번에 국회의원이 이런 법을 발의하려고 하는데 동의하시나요, 안 동의하시나요.’ 이렇게 물어봐요. 그러니까 정훈 님이 갖고 있는 의석을 공공재로 쓰는 거예요. 그 외에도 4분기마다 당원들이 낸 입법 아이디어가 토론과 검증의 과정을 거쳐서 1~2위로 선택되면 의원이 실제로 입법을 해요. 제가 대변인일 때 논평 제안 시스템도 도입했어요. 보통 논평은 대변인이 알아서 메시지를 짜고 내는 브리핑 형식인데 시대전환에서는 누구나 논평을 제안할 수 있어요.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야 되지 않느냐고 당원들이 제안을 하면, 대변인이 그게 타당한지 검토하고 바로 논평으로 내는 거죠. 이처럼 당원들이 법안 발의나 의사결정 과정, 정치에 조금 더 깊게 관여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잘 마련돼있어요.
소희님 블로그 읽으면서 이 글이 굉장히 재밌었어요. ‘직업 정치인은 뭘까’란 제목이었죠. 처음엔 자신을 가리켜 직업 정치인이라고 일컫는 주변인의 말에 손사래를 쳤지만 막상 생각해 보니 내가 가진 공적인 역할과 책임이 있더라는 내용이었죠.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직업 정치는 뭘까요?
직업 정치인은 형식적으로 말하자면 정치의 영역에서 그걸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고, 그들이 가진 중요성이 당연히 있죠. 저도 언젠가 확신이 생긴다면 정치에 뛰어들 생각이 있지만, 동시에 직업 정치인만 정치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봐요. 대부분 자기가 직업 정치인으로 선출되면 이런 거 저런 거 하겠다, 말은 정말 많이 하잖아요. 사실 그런 일은 정치인이라는 타이틀과 무관하게 충분히 시도해볼 수 있거든요.
예를 들면, 저는 제주도 출신이고 ‘경험의 양극화’라는 문제에 관심이 많은데요. 이건 제가 정의한 문제의 언어예요. 경험의 양극화는 생계에 직접적인 타격은 가지 않지만 사람의 비전이나 상상력의 크기에 굉장히 영향을 미쳐요.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섬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기회를 박탈당해요. 수도권에서 열리는 좋은 컨퍼런스에 참석하려면 제주도에 사는 친구들은 비행기를 타고 숙박을 해야 하고, 그마저도 그런 비용을 지원받을 여건이 안 되면 누리지 못하는 기회죠. 그런 작은 격차가 모여서 개인의 식견, 가치관, 나아갈 수 있는 길, 네트워크, 이런 것들을 한정시키거든요.
근데 이 문제의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게 꼭 선출돼야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올해 초에 제가 블로그로 얻은 수익으로 장학 펀드를 조성해서 제주도 친구들한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거든요. 사실 이건 선출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근데 그런 일을 계속하다 보면 권력이 없어서 못하는 일에 부딪힐 때가 있거든요. 이런 걸 잘 기록해 놨다가 ‘이래서 내가 권력이 필요하다’고 말하려고 해요.
지금 제 메모장에는 ‘양소희가 권력이 없어서 못한 일’이라는 폴더가 있어요. 이 폴더를 나중에 제시하면서 ‘권력이 없어서 여기까지 밖에 못했다. 이제 권력을 갖고 싶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사람들로부터 부여받는 권력을 얻으려면 이 정도의 시도와 그것을 통한 한계는 겪어봐야 하는 것 같아서요. 당장 직업 정치인, 선출직 기초의원 해볼래라는 제안을 다 거절한 것도, 직업 정치인로서 커리어를 시작하기 전에 이런 경험을 많이 하고 양소희가 권력이 없어서 못한 사례들을 많이 수집해놔야겠다. 그래야 정당성이 생기겠다. 그런 생각을 해서였어요.
저희가 이런 느낌이거든요. 이 인터뷰를 하면 명예 클러버가 됐다! (우와) 그래서 이제 다 우리 클러버예요. (너무 신나요) 그래서 다른 클러버들에게 의견도 낼 수 있는 거죠. 우리가 원하는 정치를 위해서 투표 한번 하는 거 말고 어떤 역할을 더 해볼 수 있을까요? 당장에 정치와 엄청 가깝게 있지 않는 사람이라도요.
기본적으로는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를 끊임없이 말하고 설득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투표라는 행위만 봤을 때는 순간이지만, 그 행위를 하기까지는 오랜 시간 쌓인 가치관이 작동하잖아요. 그런 가치관들을 부단히 다루고 설득하고 합쳐가는 걸 일상적으로 하는 게 중요하죠. 거기서 한 발 나아가 판을 바꾸는 일에 기여할 방법을 찾을 수도 있어요.
제가 활동하는 ‘ 사단법인 아그니카 ’ 에 대해 잠깐 소개를 드리자면, 정치 생태계 혁신에 있어서 ‘문제 해결’을 키워드로 삼아요. 문제를 풀 방법을 발전시켜 나갈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유입될수록 정치는 바뀐다는 지향점을 가지고 있어요.
아그니카가 하고자 하는 주요 프로젝트는 ‘시빅 해킹(Civic Hacking)’이에요. 좁은 의미의 시빅 해킹은 디지털 기술과 시민 참여가 결합된 거예요. 정부는 몸집이 크고 느리다 보니 시시각각 문제를 대응할 수 없죠. 그래서 공공 데이터나 기술을 가지고 시민들이 사회 문제를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많이 만드는 거예요. 이번에 ‘계단 정복 지도’라고, 배리어프리(barrier-free) 앱 만드는 걸 하고 있는데요. 이런 건 시민들이 데이터와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거거든요. 넓은 의미의 시빅 해킹은 이제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시민 운동이에요. 한국에서는 시빅 해킹이 아직 활성화되지 않았어요. 아그니카는 이것을 주도해 보려고 만든 단체에요. 저희 목표는 정치하고 싶은 사람들이 누구나 자기만의 시빅 해킹을 작게라도 시도해보고 이끌어보는 거예요. 문제를 풀고 사람을 모아 조직을 만드는 과정을 프로젝트를 통해서 경험해보게 하는 거죠. 그렇게 잠재적인 정치 플레이어들이 조금이라도 실험을 해본 뒤에 정치에 임하면 전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식으로 직업 정치인이 아니어도 내 나름의 방식으로 정치를, 판을 움직이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봐요. 애정클도 정치의 판을 움직이는 일을 하고 있고, 에디터 님도 나름의 방식으로 정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정치를 한다’는 동사가 정치를 직업으로 가져야만 쓸 수 있는 동사는 아닌 것 같아요.
그러면 마지막으로 인터뷰 소감 한번 들어보도록 할게요.
너무 질문을 꼼꼼히 준비해 주셔서 저도 준비를 진짜 열심히 했거든요. 이렇게까지 열심히 해 주셨는데 저도 열심히 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했는데, 주변에서 많이 말하고 다녔었던 저의 파편적인 지향, 가치, 하고 싶은 일들이 정리가 된 것 같아 좋은 기회였어요. 인터뷰를 읽은 클러버들이 정치가 소수의 전유물이 아닌, 나도 얼마든지 플레이 해볼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을 가지고 많이 참여해주시면 좋겠어요. 애정클도 재밌게 구독해주시고요!
지난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