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선수, 정치는 감독

아무튼 정치 때문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뉴스를 분류하는 4가지 카테고리는 사실 크게 보면 다 정치로 통한다.
일상의 현상들, 요즘 뜨는 이야기, 어쩌다 일어난 것 같은 사건 사고들에서 정치와의 연결고리 찾기.

카타르 월드컵이 피날레를 향해가고 있다. 최초의 겨울 월드컵은 연말 분위기를 타고 더욱 뜨거워지는 듯하다. 한국 대표팀도 역사상 세 번째 16강 진출이라는 뜻 깊은 기록을 세우며 국민들에게 위안을 주었다. 하지만 카타르 월드컵의 그림자는 그 열기에 비례해 짙어졌다. 각종 정치적 이슈들이 개막 전부터 불거졌다. 시작은 월드컵 경기장 건설 노동자의 사망이었다. 수천 명의 이주노동자가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숨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카타르 월드컵 홍보대사가 성소수자 차별 발언을 하며 카타르의 성소수자 억압이 주목받기도 했다. 일부 선수들은 이에 대항해 성소수자 차별 반대를 의미하는 ‘OneLove’ 완장을 착용했다. 이란 국가대표팀은 자국의 여성인권운동 탄압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국가 제창을 거부했다.

일각에서는 연이은 논란들을 두고 이번 월드컵을 ‘역사상 가장 정치적인 월드컵’이라 평했다. FIFA는 이를 전면으로 부정했다.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은 “축구는 이념적·정치적 싸움에 휘말려선 안 된다”는 내용의 편지를 모든 출전팀에게 전달했다. ‘정치적 행위’를 하는 선수들에게는 옐로카드를 비롯한 직접적 제재가 가해졌다.

스포츠 규정 상으로는 적절한 대응이다. ‘경기장 안에서의 정치적 표현 금지’는 현대 스포츠의 불문율이다. 스포츠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스포츠를 도화선으로 한 정치적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작금의 사태와 역사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반문하게 된다. 스포츠와 정치를 분리하는 게 가능한가? 답은 예상했듯이, ‘절대 불가능’이다. 오히려 스포츠와 정치를 이을 때, 정치의 각축장은 더 선명히 그려진다.

독재의 비밀병기는 스포츠?

최근 10년 간 국제 스포츠 행사 중 독재 국가가 개최한 행사의 비중은 37%로, 그 전 20년 간(1989~2012년)에서 2배 이상 증가했다. 가장 유명한 국제 스포츠 행사인 올림픽과 월드컵만 살펴봐도 그 경향은 뚜렷하다. 2008년 이후 중국은 두 번의 올림픽을 개최했고, 러시아는 올림픽과 월드컵을 한 번씩 개최했다.

독재 국가 개최 비중의 반등의 요인은 복합적이겠으나, 분명한 사실은 독재 국가들이 민주주의 국가들보다 스포츠 행사 개최에 열성적이라는 것이다. 2022년 동계 올림픽 개최국 선정에서 후보국은 중국 베이징과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두 독재 국가 뿐이었다. 후보 신청을 했던 민주주의 국가들은 재정 문제와 부정적인 국내 여론을 이유로 입후보를 철회했다. 이렇듯 독재 국가는 스포츠 행사를 원할 뿐만 아니라 쉽게 결정할 수 있다. 여론을 고려하지 않고 공적 자금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재 국가들이 스포츠 행사를 원하는 이유는 뭘까. ‘이미지 세탁’‘우민화’다. 일명 ‘스포츠 워싱’이다. 스포츠 워싱은 독재 국가에서 흔히 사용해온 전략이다. 국제 정치 측면에선 스포츠의 나라로서 국제적 위상을 다지고 국내 문제에 대한 국외의 비판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국내적으로는 국민들의 관심을 스포츠로 돌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촉발하고, 정권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 성공적 대회 개최를 명목으로 저항하는 국민들을 탄압할 수도 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당장 우리나라에서도 전두환 정권 시기 88올림픽을 유치하고 프로야구 리그를 개막했다.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은 무솔리니의 독재 하에서 열려 국민 통합과 파시즘 선전의 도구로 쓰였다. 스페인에서는 1936년 프랑코 독재정권 당시 레알 마드리드의 유러피안 컵 선전을 통해 유럽 내에서의 ‘비호감’ 이미지를 씻었다.

한국 프로야구 창단 개막 경기에서 시구를 하는 전두환 ⓒe영상역사관

산유국들의 스포츠워싱

카타르 월드컵도 스포츠워싱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가장 문제되는 것은 이주노동자 사망 사건이다. 현재 카타르 인구의 80%는 이주노동자다. 카타르는 ‘카팔라’라는 독특한 이주정책을 가지고 있는데, 이주노동자를 법적으로 고용자에게 귀속시킨다는 게 골자다. 이주노동자들의 계약 기간과 직종 변경 여부, 귀국 여부와 시점을 고용주가 결정할 수 있다. 현대판 노예제나 다름없다.

월드컵 기반시설 건설을 위해 카타르는 수 천명의 이주노동자를 고용했다. 카팔라로 인해 월드컵 경기장 건설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하루 14시간 이상을 일해야 했다. 가디언지에 따르면 2010년에서 2020년까지 카타르에서 사망한 이주노동자는 무려 6500명이다. (카타르 정부는 이중 공사 현장에서 사망한 경우는 3건 뿐이라고 반박했다.) 국제인권단체의 지속적인 지적에 카타르 정부는 이주노동자 최저임금을 제정하고 카팔라를 폐지했다. 그러나 노동 현장에서는 여전히 카팔라가 관행으로 남아있다.

카타르는 월드컵 개최를 위해 막대한 노동력을 필요로 했다. 에어컨이 나오는 최첨단 축구 경기장 8개와 관광객을 위한 호텔, 교통 기반시설이 10년 안에 지어졌다. 건설에 투입된 비용만 2000억원이다. 어떻게 이런 대규모 지출이 가능했을까. 카타르 재정수입의 70% 이상은 석유와 가스에서 나온다. 하지만 국제적인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으로 석유 시장이 쇠퇴하며 카타르의 경제성장도 주춤했다. 더불어 중동의 외교지형도 카타르에게 불리하게 짜여졌다. 2017년부터 3년간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카타르에 대한 경제 봉쇄를 실시했다. 카타르가 친이란 정책을 폈다는 이유에서였다. 카타르는 경제를 되살릴 불씨를 찾아야 했다. 그렇게 선택한 ‘뉴비즈니스’가 스포츠였다. 막대한 오일머니가 스포츠에 투입됐다. 지난 18년 동안 카타르는 20회 이상의 대형 스포츠 경기를 열었다. 이번 월드컵은 그 클라이맥스다. 카타르가 중동의 주요 국가로 부상했음을 선언하는 정부 차원의 프로젝트다.

F1 2021 사우디 그랑프리를 위해 건설된 서킷

이러한 전략은 카타르 외의 걸프지역 산유국들에서도 시행되고 있다. UAE, 사우디 역시 국제 스포츠 행사를 연이어 개최해 스포츠 관광객들을 유인하며 관광 산업을 성장시켰다. 이들은 모두 왕정 국가다. 왕정은 전폭적인 복지 제도를 조건으로 민주화 요구 철회를 요구해왔다. 인권 단체들은 스포츠 메카로 거듭나기 위한 산유왕정의 노력도 같은 맥락에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 국가는 탈석유시대에 대비하고 이슬람 극단주의와 선을 긋는 등 중동 국가들 중에서는 개방적인 면모를 보였지만, 인권에 관련해서는 국제 사회의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사우디와 카타르는 반체제 인사 탄압과 여성 인권 침해가 심각한 수준이다. 이들에게 스포츠는 ‘인권 탄압 국가’ 이미지 세탁과 정권 안정, 그리고 관광산업 발전까지 보장하는 ‘일석삼조’의 수단이다.

키를 쥔 것은 스포츠 단체

스포츠워싱은 권위주의 국가의 의지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국제 스포츠 행사를 개최하기 위해선 국제 스포츠 단체들의 허가가 필요하다. 그리고 스포츠 단체들의 내부 상황은 여러모로 권위주의 국가들에게 유리하게 짜여 있다.

첫째는 스포츠 단체들이 정치와 스포츠의 분리를 주장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정치적 사안이 경기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자부한다. FIFA는 자국 축구 협회에 개입하는 국가들의 출전을 금지하고 있다. 경기장 내 정치적 행위 금지는 거의 모든 국제 스포츠 행사의 공통 규정이다. ‘스포츠는 비정치적’이라는 단언은 역설적으로 권위주의 국가의 정치적 목적 성취를 가능케 한다. 스포츠 단체가 나서서 독재 정권을 곤란하게 하는 정치적 주장을 압박하고, 행사를 개최한 정치적 의도에 대한 관심을 차단해주기 때문이다.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은 카타르의 노동자 인권에 대한 비판에 서방 국가들은 카타르의 이주노동자 처우를 비판할 처지가 아니라며 직접 방어에 나섰다. 성소수자 탄압에 대해서도 “종교, 인종, 성적인 취향과 관계없이 카타르에 오는 모든 이들은 환영받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일축했다.

2010년 카타르의 2022년 월드컵 개최국 선정을 발표하는 제프 플레터 전 FIFA 회장 ⓒSky Sports

둘째는 스포츠 단체 내부 정치와 부패다. 카타르는 월드컵을 개최하기엔 부족한 이력을 가진 국가였다. 카타르 국가대표팀은 한 번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적이 없다. 여름 기온이 최대 50도로 월드컵 기간에 경기를 개최하기 위험했고, 모든 경기장을 새로 지어야 했다. 그럼에도 카타르가 개최국에 선정된 이유로 뇌물수수 의혹이 제기된다. 월드컵 개최국 선정은 24명의 FIFA 집행위원의 투표로 이뤄진다. 2014년, 2010년 투표에서 일부 집행위원들이 카타르 측으로부터 뇌물을 수수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듬해에는 FBI에서 FIFA 간부들을 횡령과 뇌물 등의 혐의로 체포했다. 카타르의 유치전 당시 집행위원 13명이 기소되거나 자격 정지됐다. 당시 FIFA 회장이었던 제프 블레터는 결국 사퇴했고, FIFA 윤리위원회로부터 8년의 자격정지라는 징계를 받았다. 이후 개최국 투표는 FIFA 의회를 통해 이뤄지도록 변경됐다.

카타르는 혐의를 부정했고, 같은 시기 2018년 월드컵 유치국으로 선정된 러시아도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나 부패한 FIFA의 폐쇄적인 시스템이 개최국의 환경과 정치적 문제를 뒤로 한 이례적인 유치국 선정을 가능케 했다는 것은 자명하다. FIFA는 정치와의 분리를 주장하지만, 동시에 만연한 부패로 스포츠의 권력을 과시했다. 국제 스포츠 행사가 몰고 다니는 자본과 사회적 영향력은 어마어마하고, 이를 좌지우지하는 스포츠단체의 권력은 전세계에 발휘된다. 월드컵 유치와 FIFA 간부 선출이 몰고 다니는 부패 의혹이 그 크기를 증명한다. 이 권력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더없이 정치적인 문제다.

지난 10일, 나세르 알 카터 카타르 월드컵 조직위원장은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해 “죽음은 삶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이라 표현했다. 이주노동자 사망을 개인적인 사고로 치부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발언이다. 그의 말마따나 삶에는 죽음이 수반되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면, 스포츠가 정치를 업고 나아간다는 것은 이 사회의 섭리다. 알 카터 위원장은 이어진 발언에서 이 사실을 스스로 증명했다. “많은 언론인들이 이주노동자 사망 사건에 대해 이렇게 오랫동안 이야기하려고 한 이유를 스스로 묻고 반성해야 한다”. 이주노동자 처우 논쟁에 다른 의도가 있다는 듯한 발언이다. 카타르 월드컵과 이 행사를 다루는 방식, 둘 다 정치의 영역에 걸쳐 있다.

글: 에디터 건조🍂

참고문헌

SCHARPF A. GLÄßEL C. & EDWARDS P, 2022, International Sports Events and Repression in Autocracies: Evidence from the 1978 FIFA World Cup.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1-18.

「FIFA 언커버드」, 2022, 넷플릭스, https://www.netflix.com/title/8022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