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성범죄, 정치는 막을 수 있을까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공포가 전국을 휩쓸고 있습니다. 정치권도 분주해졌어요. 피해가 발생한 기관부터 경찰까지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죠.

상황이 심각한 만큼 여야 모두 국회 차원의 대응을 말하고 있습니다. n번방 때도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당시의 대응은 지금의 상황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간 정치권은 어떤 해결책을 논의해온 걸까요? 앞으로는 유의미한 대책이 나올 수 있을까요?

n번방 이후의 변화

5년 전, n번방 사건 이후  n번방 방지법이 도입됐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 처벌 강화: 디지털 성범죄 방지를 위한 조항들을 추가하고 양형 기준도 강화했습니다. 딥페이크 편집, 불법 촬영물의 소지, 구입, 저장, 시청에 대한 처벌 조항도 이때 처음 생겼어요.
  • 정보통신사업자 의무 강화: 인터넷 사업자들에게 불법촬영물 유통방지와 삭제 의무를 부과했어요.

이외의 정책 보완도 있었습니다.

  • 피해자 지원 강화: 디지털 성범죄 지원센터를 추가 설립하고 영상물 삭제지원, 법률 서비스 연계 등의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게 했습니다.
  • 디지털 성범죄 TF 출범: 법무부 산하에 디지털 성범죄를 전문으로 다루는 TF가 생겼습니다. 검찰 내 미투 운동을 이끈 서지현 검사가 팀장을 맡았어요. TF는 텔레그램에 대한 강력 대응국제 공조 수사 등을 담은 권고안을 11차례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며 디지털 성범죄 대응이 크게 축소됐습니다.

이번에 어떻게 대응한대?

n번방 방지법은 2020년부터 시행됐어요. 하지만 이후에도 ‘00판 n번방’이 계속해서 등장했고, 디지털 성범죄는 오히려 늘었습니다.  법안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이죠.

이에 국회에서 보완 입법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29일까지 총 12건이 발의됐어요. 민주당 안이 10건, 국민의힘 안이 2건입니다.

✅정보통신망법 강화

  • 딥페이크 성착취물 유포와 확산을 막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인터넷 사업자 처벌
  • 가해자 정보 보존 등 인터넷 사업자의 수사 협조 의무화
  • AI 생성 콘텐츠에 워터마크 표시 의무화

n번방 방지법의 가장 큰 한계는 텔레그램이 규제 대상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겁니다. n번방 역시 텔레그램에서 운영됐기 때문에, 실효성 있는 예방을 위해선 텔레그램 규제가 필수적입니다.

텔레그램은 수사에 응하지 않는 것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이에 활동가 개인이 직접 텔레그램에 들어가 가해자를 추적하는 상황입니다. 실제로 가해자를 밝혀낸 사례가 등장하자, 그간 경찰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을 뿐이라는 비판이 나왔죠.

더불어 이번달 텔레그램 최고경영자 파벨 두로프가 프랑스에서 체포되면서 텔레그램 수사의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처벌 강화

  • 딥페이크 성착취물의 소지, 구입, 저장, 시청, 판매, 협박 처벌 (현행법에선 제작만 처벌)
  •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이용한 범죄수익을 몰수, 추징
  • 딥페이크 피해자의 손해 및 위자료 배상 명령 허용

위의 법안들은 지난 국회에서 이미 발의됐습니다. 임기 내 처리되지 못해 폐기되고, 이번 사건이 터지자 부랴부랴 다시 올라온 것이죠. 이에 정치권이 n번방 방지법의 한계를 알고 있었음에도 방치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딥페이크 성범죄와 관련해 촉법소년 연령 하향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밝혔어요. 한 대표가 법무부 장관으로 일할 때도 추진했던 정책입니다.

한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방심위 홈페이지에 딥페이크 성착취물 피해 신고 전용 배너를 설치하고, 모니터링 요원도 2배 늘렸습니다. 텔레그램 측과 즉각 협의할 수 있는 핫라인도 개설할 예정이에요.

왜 대응이 늦어진 거야?

국회가 뒤늦은 대응에 나서면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정치권의 인식도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범죄의 유형과 심각성에 대한 이해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와요.

딥페이크 제작, 유통에 대한 처벌은 2020년 국회 법사위 회의에서 이미 논의됐습니다.

  •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은 “청원한다고 법을 다 만드냐”,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면 (법의) 구성요건을 다 만들어야 하냐”며 새로운 처벌법의 필요성에 의문을 표했어요.
  • 미래통합당 정점식 의원은 “자기만족을 위해 이런 영상을 가지고 나 혼자 즐기는 것까지 갈(처벌할) 것이냐”고 말했습니다.
  • 김오수 법무부 차관은 “청소년이나 자라나는 사람들은 자기 컴퓨터에서 그런 짓 자주 한다”, 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은  “자기는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만들 수 있다”고 발언했습니다.

결국 반포를 목적으로 한 딥페이크 영상 제작만 처벌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당시 n번방 방지법 논의에서 과잉 규제도 논란이 됐습니다. 불법촬영물을 걸러낸다는 이유로 사적 대화를 ‘검열’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번에도 비슷한 주장이 나옵니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이번주 과방위 질의와 개인 SNS에서 이렇게 발언했습니다.

  • 텔레그램 차단 외엔 방법이 없다. 어떻게든 대책을 만들려다 과잉 규제가 나올 수 있다.
  • 텔레그램 쓰는 사람들을 모두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선 안 된다.
  • 과장된 피해자 수치로 위기감을 조장하고 있다. 냄비 입법포퓰리즘적 대처를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처럼 규제의 ‘부작용’에 초점을 맞추는 이들도 있습니다. 여야가 한 목소리를 내고 있고, 대통령도 강경 대응을 말한다고 하지만 논의가 축소될 가능성은 남아 있는 것이죠.

아직 정부 차원의 대책은 구체적으로 발표된 것이 없습니다. 9월 4일 여성가족위원회에서 딥페이크 관련 첫 질의가 진행되는데요. 이 자리에서 현 여성가족부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