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교육도 과외합니다

아무튼 정치 때문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뉴스를 분류하는 4가지 카테고리는 사실 크게 보면 다 정치로 통한다.
일상의 현상들, 요즘 뜨는 이야기, 어쩌다 일어난 것 같은 사건 사고들에서 정치와의 연결고리 찾기.

자녀의 중학교 진학을 앞둔 학부모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난이도가 급상승한 학교 공부부터 사춘기까지, 다양한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 사교육 시장은 이런 변화를 앞둔 부모들의 불안을 먹고 자라났다. 그렇게 아이들은 학원에서 가능한 모든 것에 대비할 수 있게 됐다. 최근 사교육은 가장 민감하고 비밀스러운 분야까지 뻗어나갔다. 바로 성교육이다.

마음이 맞는 학부모들이 모여 ‘그룹 성교육 과외’를 추진하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다. 인기있는 사설 성교육 업체의 경우 이미 2025년까지 예약이 꽉 차있다. 보통 4~6명이 한 그룹을 이뤄 진행한다. 교육 과정은 성별, 연령에 맞춰 구성된다. 가격은 회당 25만원 정도다.

성교육 과외의 유행은 2018년 가량부터 시작됐다. 스쿨미투 운동이 있었고, 각종 연예계 성추문과 n번방 사건이 연달아 터졌다. 공교육 내 성교육의 부실함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그러나 공교육 내 성교육은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 사회에서 성은 엄청난 부담을 감수하고 건드려야 하는 분야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성 상담가인 어머니를 둔 주인공 오티스가 교내에서 비공식 성 상담소를 운영하는 내용이다. 청소년과 성에 관련된 문제들을 가감없이 다뤄 주목받았다. ⓒ넷플릭스

성교육,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교내 성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반응은 늘 극단적이다. ‘왜 이것밖에 가르치지 않느냐’거나, ‘왜 이런 것까지 가르치느냐’다. 부모의 가치관에 따라 원하는 교육 수준과 방향이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국의 성교육은 내용도, 시수도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교육부는 학년별로 연간 15시간의 성교육 실시를 권고한다. 이 시간은 대부분 성과 관련된 교과 과목 수업으로 채워진다. 전문적인 성교육이 이뤄지는 시간은 초중고를 통틀어 4시간 남짓이다. 이 4시간은 대체로 보건, 창체 시간을 활용해 이뤄진다. 보건교사나 외부 강사가 1~2시간 정도의 일회성 강의를 진행한다. 이마저도 영상 시청으로 대체되곤 한다. 인문계 고등학교의 경우 교과과목에 밀려 시수 확보조차도 어렵다.

교육 내용은 생물학적 지식과 성폭력 예방 중심이다. 성적 자기결정권과 구체적인 피임법, 성관계 시의 주의사항은 다뤄지지 않는다. 실제 청소년들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이다. 2018년 기준 한국 청소년이 성경험을 하는 나이는 평균 13.6세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교육에 대한 만족도는 떨어진다. 불만족 사유 1위는 ‘이미 다 아는 내용이어서’다. 그렇다고 해서 청소년들이 ‘알아서 잘 배우고 있는’ 것도 아니다. 성경험을 한 청소년의 피임 비율은 58.7%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게 부족한 한국의 성교육은 무엇을 기준으로 운영되고 있는 걸까. 2015년 교육부에서 제작한 성교육 표준안이다. 무려 6억 원의 예산을 들여 만든 표준안은 공개 당시에도 잘못된 성 관념을 조장한다고 지적받았다. 표준안은 “남자는 누드에 약하고 여자는 무드에 약하다”, “남자가 여자보다 성욕이 강하니 여자가 스스로 성폭력에 대비해야 한다”라고 서술했다. 교육부는 2017년 해당 내용을 수정해 배포했지만 금욕과 순결을 강조하는 기조는 동일했다. 이후 교육부 차원의 성교육 자료는 제공되지 않았다. 공인된 성교육 교과서도 당연히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는 표준안 활용 여부를 각 시도 교육감에게 위임했다.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은 부분은 교육청 판단에 맡기겠다”는 입장이다. 동시에 표준안은 “성교육은 교사의 성적 가치를 전수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현장의 교사는 난감할 따름이다. 관련해 민원이 제기되면 책임은 개별 학교와 교사 개인에게 떨어진다. 민원을 피하기 위해 대부분의 교사는 외부 강사에게 ‘표준안을 따라 달라’고 요청한다.

어떤 성교육을 할 것인가

2018년, 교육부가 구성한 ‘교육분야 성희롱 성폭력 근절자문위원회’(자문위)는 성교육 표준안을 폐기하고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표준안 개정은 지금까지도 이뤄지지 않았다. 교육부는 개정안 마련을 위해 정책 연구과제를 세 차례나 발주했지만 응모자가 없어 무산됐다. 연구자들이 민감한 주제라는 이유로 나서길 꺼리기 때문이다.

보수종교단체과 인권단체는 성교육 방향을 두고 양보 없는 싸움을 벌여왔다. 가장 치열한 쟁점은 성소수자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내용이다. 2015년 표준안의 내용을 보면 정부는 보수종교단체 쪽에 더 가깝게 서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정부의 이러한 경향은 이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2018년 자문위의 개정 권고안은 ‘성소수자와 성적 자기결정권 등 논란의 소지가 큰 부분’을 개편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2022 초·중등학교 및 특수학교의 교육과정’ 개정안에서는 성소수자, 섹슈얼리티, 성평등이라는 단어가 삭제됐다. 해당 조치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며, 성교육 전문가들의 의견도 반영되지 않았다는 항의가 있었지만 변화는 없었다.

2020년, 바나나에 콘돔을 끼우는 성교육을 하려던 교사는 학부모 항의로 수업을 취소해야 했다. ⓒUnsplash

한편 성교육 개정을 주장하는 이들은 포괄적 성교육을 개정 방향으로 제시한다. 포괄적 성교육 성의 인지·정서·신체·사회적 측면을 포함한 교육과정이다. 유네스코는 ‘국제 성교육 가이드’를 통해 포괄적 성교육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성소수자, 젠더 불평등, 성관계 및 피임 방법과 쾌락, 미디어 리터러시 등 풍부한 주제를 다루며, 내용도 매우 구체적이다. 인권과 다양성을 기반으로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맺는 방법에 방점을 둔다. WHO 등 국제기구들은 포괄적 성교육을 표준으로 삼고 있다. 국내에선 2020년 울산시교육청이 전국 최초로 포괄적 성교육을 추진했다.

보수적 성교육을 주장하는 학부모들은 ‘성교육에 따른 조기 성애화’를 우려한다. 성에 대한 정보를 일찍, 많이 접하면 성적이지 않은 것도 성적으로 보게 되고, 성 경험을 일찍 시작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네스코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오히려 포괄적 성교육을 실시할 때 성행위 시작 시기 지연, 성행위 빈도 감소, 성 파트너 수 감소, 피임 증가 등의 효과가 나타났다.

공과 사, 성교육의 자리는

성교육 과외를 찾는 부모들의 최대 고민은 교육의 ‘수위’다. 공교육에 부족함을 느끼긴 하지만 적합한 성교육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긴 어렵다. 공교육이 납득할만한 기준을 정해주지 않았기에 생긴 혼란이다. 심지어는 성교육 강사 양성 현장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자격증 발급 기관마다 교육시간과 커리큘럼이 다르다. 민간업체의 경우 짧게는 3시간 교육을 하고 자격증을 주는 곳도 있다.

성교육을 어떻게 할 건지는 성교육의 목적이 분명해진 이후에 결정될 테다. 그러나 정치는 ‘사회적 합의 부족’을 핑계로 논의를 미뤄왔다. 합의를 추진할 시공간과 중재자가 없는데 어느날 갑자기 합의가 만들어질 리가 없다. 결과를 내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없다면 같은 핑계가 반복될 뿐이다. 성은 공론의 장에 떠올랐다가 가라앉길 반복했다. 충격적인 성범죄가 대서특필되면 제도적 변화를 외치는 목소리가 잠시 커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개인의 문제로 축소된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성교육에 대한 정치권의 개입은 '논란의 소지가 큰 부분'을 피하거나, 한쪽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반영하는 것에 집중됐다. 지난 15일, 국민의힘 정경희 의원은 성교육 기관이 아동·청소년 대상 성교육 내용을 정부와 지자체에 보고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게 되는 법 개정안을 냈다. 정 의원은 과거 포괄적 성교육을 반대하며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해 논란을 빚었다. 오는 4월 예정된 울산교육감 보궐선거에서는 보수 성향 예비후보들이 앞다퉈 포괄적 성교육 폐지를 공약했다. 이러한 행태는 성교육이 ‘누구의 표를 끌어올 것인가’를 결정하는 도구 이상으로 쓰이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성교육은 사회가 성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를 논하는 첫 단계다. 그러나 정치인은 성교육을 둘러싼 갈등의 깊은 골을 아전인수에 활용할 뿐, 이 기본적인 질문조차도 답하려 하지 않았다. 정치는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다양한 집단의 충돌이 조정하기 위해 존재한다. 도무지 좁혀지지 않는 입장 차이를 어떻게든 결론으로 이끌어 가는 게 정치의 역할이다. 지금의 교착 상황에서 성교육 표준안 개정에 가장 앞장서야 할 주체는 학부모도, 교사도 아닌 정치다.

글: 에디터 건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