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와 민주주의] (1) 뽑을 사람이 없는데, 선거만 할 수 있으면 민주주의인가요?
이런 질문 너무 기본적인 걸 수도 있지만… 민주주의가 정확히 무슨 뜻인가요?
민주주의요? 국민이 직접 투표로 대통령이랑 국회의원 뽑는 거 아니에요?
그건 대의제 민주주의 아닌가요?
그거랑 이거랑 똑같은 거 아니에요?
헌법 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나라가 운영된다는 것을 못박아둔 것이다. 민주주의(democracy)란 고대 그리스어 ‘demos(인민에 의한)’와 ‘kratia(지배, 통치)’가 합쳐진 단어로, 국가를 통치하는 권력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이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는 제도다.
민주주의를 일상에서 경험하는 순간은 언제일까. 가장 쉽게는 선거를 떠올릴 수 있다. 현실적으로 5천만명의 사람들이 다같이 모여 정부를 운영할 수는 없으니,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 우리를 대신해 일할 공직자를 선거로 뽑는다. 이처럼 선거는 합법적 선거 절차를 통해 대표를 선출하는 행위로, 주권자의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그렇게 자신들의 손으로 뽑은 대표를 못마땅해 한다는 거다. 매년 실시되는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국회에 대한 국민 신뢰도는 여타 정부기관에 비해 201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분명 공정한 선거로 당선된 사람들인데, 우리의 대표는 그 의미와 다르게 국민이라는 전체를 대변하지 못하는 것만 같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라면 왜 그렇게 된 걸까?
대의제(대표제) 민주주의의 모순
국민의 대표가 대표답지 않은 혼란한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을 3가지 개념에서 찾아보자. 대표와 선거, 그리고 민주주의가 그것이다. 우리는 선거로 대표를 뽑으면 국민이 국가를 통치하는 민주주의가 실현된다고 배웠다. 하지만 절차적으로 정당한 선거와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표가 반드시 민주주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국민을 잘 대변하는 사람이 대표가 되어 국민의 의견을 정치에 반영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대의제 민주주의가 순수한 민주주의 형태인 직접 민주주의와 완전히 다른 제도이기 때문이다. 고대 아테네에서 시작된 직접 민주주의에서는 시민이 권력을 직접 행사할 수 있었다.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은 입법 기구인 민회에 참석해 전쟁 등에 도시에 중요한 사안을 다수결로 결정했다. 행정 기구인 500인 평의회에서 일할 의원은 아테네 전역에서 매년 추첨으로 뽑았다. 시민이라면 누구나 동등한 확률로 국가를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본래 민주주의의 핵심은 시민이 직접 의사 결정에 참여하고, 추첨을 통해 번갈아 통치자가 되면서 피통치자와 통치자의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민주주의 원리에 선거를 통한 대표 선출이란 제도를 더한 대의제 민주주의에서는 통치자와 피통치자 간 차이가 생긴다. 선거로 뽑히는 대표가 일반 시민과 유사하다고 말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쉽게 생각해 보자. 내가 만약 아테네 시민이었다면 당장 내년에 추첨으로 뽑혀 행정 관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 별다른 정치 활동도 하지 않는 내가 내년에 구청장으로 당선될 가능성은 거의 0에 수렴한다.
정치학자 버나드 마넹에 따르면, 대의제 민주주의의 핵심 작동 방식인 선거는 일반 시민보다 우월한 사람이 당선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선거는 투표자가 여러 후보들 중 몇 명을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고, 투표자는 후보들을 비교해 조금이라도 더 우월한 특성을 가진 후보자를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넹은 이 우월함에 있어 시험 성적처럼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은 없지만, 그 사회의 문화 혹은 개인의 판단에 따라 우월한 특징이 인지된다고 설명한다. 돈이 많다, 말을 잘한다, 인상이 좋다 등의 특징이 상황에 따라 탁월함으로 인식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선거 자체의 특징으로 인해 대의제 민주주의에서는 결과적으로 일반 시민보다 ‘우월한’(대체로 정치 경력이 많거나 학력이 높은) 사람들이 대표로 선출되고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차이가 벌어지게 된다. 따라서 소수의 통치자들이 다수 국민을 온전히 대변할 가능성은 직접민주주의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공직자가 국가 권력을 행사하는 근거는 투표를 통한 국민의 동의다. 투표권을 행사하면서 국민이 국가 주요 결정의 중심이 되는, 다시 말해 민주적인 가치가 실현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국민의 역할은 보통 투표에서 끝나고, 실제로 국가를 통치하는 사람은 대표일 수밖에 없다.
국민이 국가를 통치한다는 민주주의 이념이 잘 구현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모순은 역사 속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민주적인 선거로 선출됐지만 다수 국민보다 자신이 속한 계급의 이익을 도모하거나, 극단적으로는 대표가 독재자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이와 같은 위험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대의제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최대한으로 실현하는 방식을 찾고, 민주적인 대표를 선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국민을 대변하는 좋은 대표의 의미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원리를 최대한으로 실현하는 대표란 무엇일까? 좋은 대표가 무엇인지 논의하기에 앞서 대표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치적 대표의 의미를 연구한 한나 피트킨은 대표의 다면적인 성격을 구별해 대표의 유형을 정리했다.
- 형식적 대표(formalistic representation)는 선거를 통해 선출되거나 임명되어 권한을 위임받은 대표를 말한다. 대표자 선출과 교체를 기준으로 대표를 정의하기 때문에 대표가 활동하는 내용에 관해서는 설명할 수 없는 유형이다.
- 묘사적 대표(descriptive representation)는 대표자가 성별, 연령, 인종 등 피대표자의 속성을 똑같이 가지고 있다. 여성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여성인 경우 묘사적 대표라고 할 수 있다. 묘사적 대표에 속하는 인구사회학적 대표는 대표자가 피대표자의 사회적 분포를 정확하게 반영한다. 여성과 남성의 비율이 7:3인 국가라면 여성의원과 남성의원도 7:3으로 맞추는 것이다.
- 상징적 대표(symbolic representation)는 피대표자의 주관적 믿음을 통해 대표자가 된다. 독립운동가의 상징 중 한 명이 김구인 것처럼, 상징적 대표는 성별이나 연령 등 대표자의 객관적 속성과 상관없이 사람들의 믿음을 바탕으로 피대표자를 대변한다.
- 실질적 대표(substantive representation)는 피대표자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그들의 이름으로 행동하는 대표다. 실질적 대표는 피대표자에게 무엇이 최선의 이익이 되는지 판단하고, 그 판단이 피대표자의 의견과 다를 경우 적극적으로 피대표자와 상호작용하면서 판단을 조율한다. 피대표자가 원하는 정책이나 요구사항을 실현하기 위해 피대표자에게 “반응하는" 대표라고 볼 수 있다.
피트킨은 실질적이지 않은 대표의 종류도 구분했다. 한 가지는 피대표자가 지시하는 대로만 행동하고 스스로는 어떤 판단도 내리지 않는 경우다. 다른 한 가지는 부모가 미성년자를 대신해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피대표자의 의견을 듣지 않고 대표자가 완전히 자유롭게 활동하는 경우다. 피트킨은 두 경우 모두 바람직하지 않으며, 좋은 대표는 양 극단 사이에 존재하는 실질적 대표라고 보았다.
이러한 대표 유형들은 뚜렷이 구분되지 않고 서로 중첩될 수 있다.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은 선거에서 선출된 ‘형식적 대표’이면서 시각장애인을 대변하는 ‘묘사적 대표’로 볼 수 있다.
우리가 뽑은 국회의원은 위의 유형 분류에 따르자면 ‘형식적 대표’다. 하지만 이들이 우리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실질적 대표’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머뭇거려진다. 왜 그럴까?
가장 많이 언급되는 문제는 국회에 ‘묘사적 대표’가 부족한 점, 즉 대표자와 피대표자의 유사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다. 국회의원 대부분이 고학력 중장년 남성이기 때문에 학력, 연령, 성별이 다른 대다수 국민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묘사적 대표’가 피대표자가 원하는 걸 파악해 수행하는 ‘실질적 대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가정한다. 여성 의원이 여성이 겪는 사회적 어려움을 잘 알기에 여성을 위한 법을 제정할 것이라는 논리다.
물론 좋은 대표가 되기 위해 피대표자와 꼭 닮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노동자의 대표가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하지만, 그가 반드시 노동자 출신일 필요는 없다고 했다. 고학력 중장년 남성 의원도 고졸 청년 여성을 위한 입법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끊임없이 의회의 대표성을 지적하는 이유는 피대표자를 닮지 않은 대표자가 실제로 피대표자를 위해 일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논문]
이관후(2016). 한국정치에서 대표의 위기와 대안의 모색. 시민과세계,(28),1-34.
이관후(2016). 민주화 이후의 정치적 대표에 대한 비판적 고찰. 시민과세계(29), 27-56.
홍철기(2014). 『대표의 개념』과 『선거는 민주적인가』: 정치적 대표와 대의 민주주의의 미래. 뉴 래디컬 리뷰,(61), 266-290.
[단행본]
모니카 브리투 비에이라, 데이비드 런시먼(2020). 대표: 역사, 논리, 정치. 후마니타스
버나드 마넹(2004). 선거는 민주적인가.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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