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조례 폐지, 문제는 균형일까
서울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 12년 만에 폐지됐습니다. 충남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쟁점은 다양합니다. 쟁점이 많다는 것은, 조항의 기능을 따져 수정과 보완을 거칠 수 있다는 것이죠. 균형을 잡는 게 목적이라면요. 하지만 두 지역은 단호하게 전면 폐지를 택했습니다. 왜 학생인권조례는 사라져야만 했던 걸까요. 지난한 논의를 따라가봅니다.
✅ 잠깐 맥락 정리
학생인권조례는 2010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총 7곳에서 제정됐습니다. 2009년 교육감 직선제가 시행된 이후 ‘진보 교육감’의 대표적인 정책으로 퍼져나갔는데요.
도입 초기부터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조례에 반대하며, 서울과 전북 조례에 대한 무효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 조례의 합법성을 인정했지만, 여전히 반발이 거셌습니다.
그 결과 2010년대 후반까지 교육청 발의로 조례가 통과된 곳은 경기, 광주, 전북 3곳 뿐이었습니다. 서울의 경우 주민 발의로 진행됐고, 시의회에서 진통 끝에 통과됐습니다. 제주는 보수단체가 지적하는 ‘성적 지향’ 관련 조항을 뺐고, 인천은 같은 조항을 제하는 것에 더해 ‘학교구성원인권조례’로 이름을 바꾸어 통과됐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조례가 확산되는 추세였으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며 폐지 움직임이 활발해졌습니다. 충남에서 제정 3년 만에 조례가 폐지되었고, 경기도도 개정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가장 영향력이 큰 지역인 서울도 폐지 절차를 밟으면서 학생인권조례의 최대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뭐가 문제라는 건데?
폐지 찬성 측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1️⃣ 동성애 조장
- 폐지 찬성 단체의 핵심에는 보수 기독교계가 있습니다. 이들은 조례가 ‘성적 지향 / 임신, 출산 등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규정해 청소년 성관계와 동성애를 부추긴다고 여깁니다.
- 서울학생인권조례폐지범시민연대는 조례가 차별금지법을 구현하고 있기에 성적 지향 관련 조항 개정을 넘어 전면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더불어 조례의 방향성이 ‘양심과 신앙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봅니다.
2️⃣ 교권 추락의 원인
- 교권 추락의 원인으로 학생인권조례를 지목합니다. 학생들이 조례를 근거로 자신의 옳지 못한 행동을 정당화하고, 교사의 정당한 지도 행위를 인권침해로 몬다는 겁니다. 소지품 검사와 압수 금지가 대표적인 독소 조항으로 꼽힙니다.
3️⃣ 학력 저하
- 교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아 기초학력 미달 등 학력저하가 초래됐다고 주장합니다. 조례가 제정된 지역의 미달률이 다른 지역보다 높다는 것이 근거입니다.
➡️ 정말 그런가?
-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 조항은 2019년 헌법재판소의 심리를 받았지만 기각됐습니다. 성별·종교 등을 이유로 다른 이의 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본 것입니다. 헌재는 “이로 인해 달성되는 공익이 매우 중대한 반면 제한되는 표현은 타인의 인권 침해 정도에 이르는 표현으로 보호가치가 매우 낮다”고 판단했습니다.
-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지역의 교육활동 침해 비율은 제정하지 않은 지역보다 적습니다. 교육부에집계된 교권침해 건수 역시 조례 제정과 인과관계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 학생인권조례가 존재하지 않던 대구·경북의 경우 오히려 교권침해 건수가 늘었습니다.
- 인권보장 수준이 높고 인권교육을 많이 받은 학생일수록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교사의 권위 인정과 교육권 존중에 적극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 학력저하와 인권조례의 연관성도 불분명합니다. 2012~2016년 조례 제정 지역과 미제정 지역 간 기초학력 미달률을 조사한 결과, 조례 제정 여부와 무관하게 대부분 지역에서 기초학력 미달률이 증가한 것으로 관측됐습니다.
한편, 서울시의회는 서울교육청이 발의한 교권보호조례를 통과시키지 않았습니다. 교권 보호를 이유로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외치면서, 적극적인 보호 조치에는 무관심했습니다. 특정 지지층의 입맛에 맞추고 진영 논리를 강화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읽힙니다.
➡️ 교사단체 입장은?
- 보수 성향의 한국교총은 조례 폐지를 환영하고 있습니다. 학생 인권의 ‘과도한’ 보장이 교권 침해를 야기했음에 동의하고, 인권조례 없이도 헌법, 초중등교육법 등으로 학생의 권리 보호가 이뤄질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 서이초 사건 이후 급성장한 초등교사노조는 학생 인권보다 교권 회복 논의가 먼저 진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냈습니다. 인권조례 폐지가 근본적 문제 해결 방안은 아니라고 보지만, 공교육 정상화 논의가 학생 인권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에 집중되는 것을 못마땅해하는 모습입니다.
- 진보 성향의 전교조는 조례 폐지를 비판합니다. 학생 인권과 교권은 상호 존중되어야 하며, 둘을 대립시키는 것은 교육 현장의 갈등을 더욱 부추긴다고 우려합니다.
세 단체의 입장이 갈리지만, 교사 사회에서 서이초 사건 이후 학생인권조례를 논의하기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사실입니다.
공교육 정상화를 외치는 목소리가 강해지면서 교사의 권리와 법적 보호 조치를 구체적으로 명시할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정부에서 다양한 대안을 제시했지만 교사들은 현장과 동떨어졌다며 비판했죠. 당사자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불만이 누적됐고, 교사 보호를 위한 법 개정이 최우선 과제로 올라왔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논의가 중심으로 떠오른다면, 즉각적인 교사 보호 조치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형성됐습니다. 전교조에서도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언급이 줄어들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대응하겠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가장 적극적으로 폐지 반대를 외치고 있습니다. 3일간 교육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진행했고, 앞으로는 이동 집무실을 운영하며 반대 운동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5월 중순에는 교육감 권한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계획입니다. 재표결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온다면 마지막 수단으로 재의결 무효확인소송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폐지 반대, 국민의힘은 찬성 입장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 민주당
- 민주당은 조례 폐지를 ‘정치적 퇴행’으로 규정했습니다. 교권 문제는 공교육 붕괴에서 발생하는 것이고, 학생 인권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 김영배, 김영호, 강민정, 박주민 의원과 김동아 국회의원 당선인이 조희연 교육감의 농성 현장을 찾아 지지를 표명했습니다.
- 조례보다 상위에 있는 학생인권법을 제정하자고 주장합니다. 교육감 성향이나 지방의회 구성 변화에 흔들리지 않도록 통일된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지난 총선 공약이기도 했습니다.
- 학생인권 보장을 법률에 담으려는 시도는 2006년 민주노동당의 학생인권법 발의가 최초입니다. 현재의 학생인권조례는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 21대 국회에는 박주민 의원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강민정 의원의 학생인권특별법이 계류되어 있습니다. 박주민 의원은 “교사들의 우려를 담아 정당한 생활지도와 일상적 교육 활동에 대한 면책 조항을 잘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 윤석열 정부·국민의힘
- 서울과 충남의 학생인권조례 폐지는 국민의힘 주도로 이뤄졌습니다.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황철규 의원은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 등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항목들을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 포함시켜 불필요한 논란을 지속적으로 양산해왔다”고 말했습니다.
- 교육부는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침해의 원인이라는 입장입니다. 서이초 사건 이후에도 학생인권조례 정비를 공교육 정상화 방안으로 꺼냈습니다.
- 당정협의를 거쳐 이를 대체할 조례안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예시안에는 학생인권조례에서 명시되었던 ‘차별받지 않을 권리’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휴식권’ ‘사생활의 자유'가 제외됐습니다.
한편, 성적 지향 관련 조항에 대해서는 당과 관계없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인사들이 있습니다.
⬛ 이외 야당
-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조희연 교육감 농성장을 찾아 폐지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정치적 의도로 학생·교사 인권 갈라치기한다”는 의견입니다. 강경숙 당선인은 학생 인권과 더불어 학부모, 교직원 인권을 포괄하는 학교인권법 발의를 약속했습니다.
- 정의당 역시 강경 반대 입장입니다. 21대 원내정당 중 유일하게 성소수자위원회를 가진 당으로서 폐지의 주된 사유가 성소수자 보호임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해 학생인권조례와 교권침해는 무관하며, 아동학대 허위신고에 대한 페널티 강화가 교권 보호에 더욱 효과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학생인권조례는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2023년 충남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됐을 때, 유엔인권이사회는 조례 폐지가 인권침해라는 서한을 보냈습니다. 인권기본조례가 폐지되면 인권위원회와 인권센터, 인권침해를 조사하는 인권보호관 등을 법적으로 운영할 근거가 없어진다는 지적이었습니다. 특히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대한 차별 대응을 막아서는 것에 우려를 표했습니다.
학생인권조례 폐지 근거 중 다수는 법적으로, 통계적으로 논박할 수 있습니다. 교사의 권리 보장과 학생 인권 보호의 조화는 토론의 영역이지요. 하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금지는 아닙니다. 학생인권조례의 본질을 담고 있는 조항이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부당한 이유로 차별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죠.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는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하는 차별, 즉 트랜스젠더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최초의 법령이었습니다. 서울시의회 국민의힘 의원의 발언과 폐지 범시민연대의 주장을 연결하면 조례가 전면 폐지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차별할 권리를 절실하게 원하는 조직적인 움직임이 있고, 그들은 힘이 셉니다. 학생인권조례 폐지의 표면적인 핵심 쟁점은 교권 침해지만, 논의의 키를 잡은 건 교육계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 사이 학생들은 어디에 놓이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