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정치: 자원순환과 순환경제

제대로 분리배출되지 않고 쌓여있는 쓰레기들 ⓒUnsplash

저는 쓰레기 버리는 날마다 ‘000 분리배출 하는 법’을 검색합니다. 매주 버려도 늘 헷갈립니다. 애써 분리배출한 쓰레기가 사실 재활용되지 않는 품목임을 뒤늦게 알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구청을 원망하곤 합니다. ‘왜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거야!’

쓰레기를 줄이고, 재활용하고, 안전하게 처리하는 과정을 자원순환이라고 합니다. 자원순환 정책은 우리 동네를 넘어 지구의 운명까지 바꾸는 기후위기의 열쇠입니다. 우리 정치는 이 열쇠를 잘 쥐고 있는 걸까요?

오늘의 <쓸모있는 정치플리>에서는 자원순환 정책의 현주소와 참여 주체들을 살펴보겠습니다.

키워드: 자원순환, 순환경제, 지방자치, 주민밀착

미리 보는 결론: 자원순환은 중앙정부, 지자체, 시민, 기업의 팀플레이!


왜 중요해?

▪️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절반이 물건을 만들고 버리는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그리고 한국의 1인당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은 전 세계 3위입니다.

▪️ 다행히 분리배출을 해야 한다는 국민 의식은 높습니다. 한국의 재활용률은 전 세계 2위입니다.

▪️ 그럼에도 안정적인 쓰레기 관리가 어렵습니다. 좁은 땅에 인구가 몰려있어 면적 당 배출량이 많기 때문입니다. 무려 미국의 7배입니다. 이대로라면 쓰레기 대란을 피할 수 없습니다. 쓰레기 배출량은 늘어가는데 매립지는 부족합니다.


어떻게 바꾸고 있어?

자원순환 분야에서 정치가 나서야 할 과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문제 해결에 필요한 시스템의 설계와 정착, 그리고 문제를 둘러싼 이해관계의 조정입니다.

중앙정부는 국가 전체의 정책 방향을 설정하고, 그에 맞는 시스템을 기획합니다. 지자체는 정책 수립 과정에서 주민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각 지역의 상황에 맞춰 이를 적용합니다.

자원순환은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협력이 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물건의 생산-유통-소비-재활용 전 과정을 다뤄야 하기 때문입니다.

1️⃣ 중앙정치: 일관적인 목표 세우기

최근의 자원순환 정책 과제를 알려면 우선 순환경제라는 개념을 짚어봐야 합니다.

선형경제와 순환경제의 도식

순환경제란 자원을 반복 사용새로운 자원의 사용과 폐기물을 최소화하는 경제 시스템을 말합니다. 국제사회에선 EU를 선두로 순환경제를 달성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습니다. 재생원료 사용을 의무화하는 등 강력한 규제를 추진 중입니다. 이 흐름에 탑승하지 못하면 우리 기업의 경쟁력도 약화됩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자원순환기본법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으로 개정했습니다. 순환경제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것은 긍정적이지만, 구체적인 실천 방안은 아직입니다. 전문가들은 허울 뿐인 개정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자원순환을 산업 전체의 문제로 바라봐야만 진정한 순환경제 전환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환경부 사업 정도로 축소되면 효과를 볼 수 없습니다.

당장 산업부부터 관여하게 될 일이 많습니다. 수출을 하려면 고품질 재생원료를 해외에서 비싸게 수입하거나, 국내에서 공급할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후자는 장기적인 정책 계획을 필요로 합니다. 기업의 수요에 맞춰 장기적 재생원료 공급 목표를 정하고, 이를 추산할 통계 체계를 갖춰야 합니다. 그 다음 재활용 업체에선 무엇을 개선해야 할지, 선별 업체와 분리배출 기준, 지자체 정책에는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논해야 합니다. 재활용률에만 집중해서는 살펴볼 수 없는 요소들입니다.

이처럼 위에서부터 변화를 일으키려면 중앙정부가 확실한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기업이 확신을 갖고 관련 사업에 투자할 수 있고, 지자체의 목표도 분명해집니다.

2️⃣ 지자체: 주민과 밀착하기

분리배출 수거 방법을 정하고 공공 선별 시설을 운영하는 것은 법적으로 지자체의 몫입니다. 그러니 지자체에 따라 재활용률도 천차만별입니다.

그중에서도 성공적인 사례들은 ‘주민 밀착’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합니다.

인프라 확대📌

순환경제 전환을 위해선 다양한 인프라가 필요합니다. 다회용기 세척기, 일회용컵 회수기가 곳곳에 있어야 합니다. 재활용 품질을 높이려면 분리배출 및 선별 시설도 고도화되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플라스틱도 PET, PP, PVC 등 세부 분류에 따라 수거할 수 있어야겠죠. 이 인프라들은 아직 제도화 논의 중에 있습니다.

당장 정착한 인프라는 재활용 정거장입니다. 분리수거장이 따로 없는 단독주택과 빌라의 분리수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업입니다. 각 정거장에는 분리수거를 돕는 자원관리사가 있습니다. 참여주민에겐 종량제 봉투를 제공합니다.

서울시 은평구가 가장 성공적으로 운영 중입니다. 정거장을 통해 한 주 약 10톤의 재활용품을 수거하고 있습니다. 정거장 설치 후 은평구의 재활용률은 88%까지 올랐습니다. 서울 자치구들 중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수거된 재활용품의 품질이 높아 판매율도 높습니다.

재활용품 선별비도 절약하고, 자원관리사를 주민들로 구성해 일자리도 창출했습니다. 지금은 다른 지자체에서도 벤치마킹해 운영 중입니다.

은평구의 재활용 정거장. ⓒ서울&

재활용 정거장은 원래 서울시 측에서 시범사업으로 시작했는데, 관리부실과 쓰레기 투기로 일시 중단됐습니다. 이 정도로 효과를 보고 제도를 정착시킨 건 은평구가 처음입니다. 그 이면에는 녹색소비자연대와 은평구의 협력이 있었습니다. 지역 활동가와 정치의 소통으로 정책을 발전시킨 결과입니다.

인식 개선📌

순환경제를 위해선 소비 문화부터 변해야 합니다. 소비에 대한 책임을 인식하고, 그 책임을 어떻게 물을 것인지 윤리적·정치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도 탄소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지자체는 교육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알리고, 개인의 실천을 돕는 기반을 만들 수 있습니다.

물론 분리배출의 필요성과 정확한 방법에 대한 교육도 필요합니다. 고품질의 재활용을 위해선 가정에서의 올바른 분리배출이 전제돼야 합니다. 이물질이 섞여 들어가 선별 장비에 문제가 생겨 수리비로만 몇 억원을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서울시 성동구는 기초의회(시, 군, 자치구) 차원에서 연구단체를 만들어 주민들을 교육한 첫 사례입니다.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사업을 집행했고, 성동구의 재활용률은 2020년 55%에서 2022년 76%까지 올랐습니다.

당시 교육 사업을 진행했던 황선화 전 구의원은 교육에 있어서 생활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큰 가치보다는 주민들의 현실에 초점을 두어야 설득력이 높아진다는 겁니다.

성동구는 10년 내로 매립지와 소각장을 새롭게 찾지 않으면 쓰레기를 처리할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을 교육을 통해 주민들에게 꾸준히 알려온 결과, 한 설문조사에서는 성동구민의 70%가 성동구 내 소각장 건립에 동의했습니다.

이해관계 조정하기📌

자원순환은 다양한 이해가 얽혀 있는 분야입니다. 그만큼 갈등도 치열합니다. 매립지 문제가 대표적입니다.

수도권은 당장 2026년부터 매립지가 부족합니다. 약 30년 간 인천의 수도권 매립지에서 서울의 쓰레기를 함께 처리해왔는데요. 2026년부터는 인천 쓰레기만 처리할 예정입니다.

10년 전부터 대체 매립지를 찾아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서울시는 수도권 매립지 연장 사용이 가능할 것이라 보며 미뤄왔습니다. 급하게 마포구에 소각장을 신설하기로 했지만 주민 반발이 심각합니다.

매립지와 소각장은 대표적인 기피 시설입니다. 지자체가 일방적으로 입지를 결정하면 주민들은 무조건 반대하는 상황이 반복돼왔습니다. 주민들의 참여를 입지 선정 단계부터 보장하고, 앞선 성동구 사례처럼 지자체가 인식 개선에 나서야만 대화가 가능합니다.

구로구와 함께 이용하는 광명시 자원회수시설(소각장)

보다 창의적인 사례도 있습니다. 광명시와 구로구의 ‘환경 빅딜’이 대표적입니다. 2000년, 광명시는 소각장을, 구로구는 하수처리장을 짓고 폐기물을 상호 교환해 처리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건설비도 절감하고 주민 갈등도 해소한 긍정적 사례입니다.


앞으로 지켜볼 것은?

중앙에서 애써 자원순환 체계를 만들어도 지역 인프라를 고려하지 않으면 실효성이 없습니다. 정책이 주민들의 생활에 스며들 수 있는 방법을 지방자치를 통해 구체화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기후위기에 관심을 둔 지역 정치인이 더 많아져야겠죠.

근본적인 체제 전환을 위한 준비는 아직 부족한 상황입니다. 여전히 국내 자원순환 정책은 재활용 중심입니다. 기업을 생산 단계에서부터 압박할 규제도 미흡합니다. 그 첫 단추인 확실한 목표 세우기부터 현재의 정치문화에서는 어려운 과제로 보이는데요.

위안이 되는 건 환경이 경제의 문제인 동시에 윤리의 문제가 됐다는 사실입니다.

산업부의 보도자료에서 ‘순환경제’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탄소중립, 기후위기 기본 조례를 제정하는 지자체가 많아졌습니다. 예산 편성 시 온실가스 감축 기여도를 분석하는 온실가스감축인지예산제도 확대되고 있습니다. 개인과 지자체, 중앙정부를 잇는 체계는 조금씩 갖춰지고 있습니다.

성장을 외치던 사람도, 분배를 외치던 사람도 기후위기를 말하는 시대입니다. 어쩌면 모두가 갈망해왔던 협치가 등장하기에 딱 좋은 환경이 아닐까요?


🎼건조 스테이션: 생각할 거리 자동재생

🎵 건설폐기물 - 85%의 쓰레기

사실 국내 쓰레기의 85%는 건설·산업 폐기물입니다. 다행히 최근 환경부·기업 협약규제 강화가 이뤄지며 재활용 처리방식이 크게 늘었고, 현재 건설폐기물의 99%가 재활용됩니다. 그러나 양 자체가 워낙 많아서, 발생량을 줄여야 한다는 비판이 계속돼왔습니다. 쓰레기의 발생 자체를 줄이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요?

🎵 어딘가의 노동자들 - 작업복이 너무해

쓰레기 처리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쓰레기 소각장, 재활용 선별업장, 하수처리장에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최근 이들이 ‘비용 문제’로 적절한 작업복을 제공받지 못한다는 경향신문 기사가 화제였는데요. 쓰레기 처리 시스템을 고도화할 때, 노동자들의 작업환경도 고려돼야 하지 않을까요? 안전한 작업환경과 적절한 보상이 보장돼야 이 업계에 유입되는 사람도 있을 거고요. 이들의 노동환경은 법으로 충분히 보호되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