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동행카드, 뜯어보면 무엇이 나올까

건조 에디터의 취향반영 정책 디깅. 에디터의 관심 의제에서 현재진행형의 변화와 일하는 정치인을 찾아봅니다.

안녕하세요, 건조 에디터입니다🍂

지난해부터 9월은 기후정의행진이 있는 달입니다. 저는 2년 연속으로 행진에 참여했는데요. 지난해에 비해 이번 행진이 훨씬 무더웠습니다. 불과 1년 사이의 변화를 체감할 만큼, 기후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지난 11일, 서울시에서는 탄소중립 정책의 일환으로 기후동행카드 도입을 발표했습니다. 월 6만 5천원에 지하철과 시내버스는 물론, 마을버스 및 따릉이 등의 대중교통 수단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정기 이용권입니다.

ⓒUnsplash

처음 뉴스를 봤을 땐 더없이 반가웠습니다. 정당에 관계없이 정책 방향에는 공감한다는 논평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찬찬히 뜯어보니 물음표가 그려집니다.

대중교통 요금을 한창 올리더니 갑자기 할인 혜택을 준다는 것도 당혹스럽고, 경기도·인천 시민에겐 혜택이 없다는 것도 의아합니다. 그리고 이 정책엔, 오세훈 시장이 오랫동안 추진해왔고 윤석열 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하는 어떤 사업이 붙어 있습니다.

서울시 기후동행카드, 우리가 가져가야 할 건 무엇이고 경계해야 할 건 무엇일까요?

⭐ 키워드: 기후동행카드, 대중교통, 수도권 교통난, UAM

⭐ 미리 보는 결론: 기후위기 대응이 아닌, 정치인과 기업의 이익이 목표라면?

왜 중요해?

대중교통 활성화는 탄소배출 감소와 직결된 정책입니다.

기후동행카드라는 이름에서 드러나듯, 서울시 역시 기후위기 대응에 초점을 맞춰 이 정책을 홍보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물가 상승으로 인한 시민들의 가계부담을 낮추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서울시는 기후동행카드 도입으로 다음과 같은 효과를 볼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 연간 1만 3천대의 승용차 이용 감소
  • 3만 2천톤의 온실가스 감축
  • 50만명에게 인당 연간 34만원 이상의 할인 혜택

도이칠란드 티켓 카드 ⓒalamy

그 근거는 독일의 대중교통 무제한 이용권 도이칠란드 티켓입니다. 기후동행카드는 이 정책을 벤치마킹한 것입니다.

  • 독일은 지난해 여름 도이칠란드 티켓을 도입해 시범 기간 3달 간 약 5천만 장을 팔았습니다. 대중교통 이용 25% 증가, 탄소 180만 톤 저감, 물가상승률 0.7% 감소의 효과를 봤습니다. (참고로 독일 인구는 8,320만명입니다.)
  •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독일은 올해 5월 도이칠란드 티켓을 본격 도입했습니다. 재정상의 이유로 가격을 월 49유로(약 7만원)로 올렸지만, 3달 간 1,100만 장을 팔았습니다. 출퇴근용 티켓은 사업장이 일부를 부담해 월 34.30유로(약 5만원)입니다. 저소득층 지원은 각 지방정부에서 결정합니다. 이후 베를린 인근 대중교통 승객은 20% 증가했습니다.

서울시는 내년 1월부터 5월까지 시범 사업을 운영하고, 내년 하반기부터 본격 도입한다는 계획입니다.

어떻게 바꾸고 있어?

대중교통 정책 수립의 권한은 각 지방자치단체에 있지만, 일반적으로 국토교통부와 주변 지역 등 다양한 관계 조직과 협의를 거쳐 정책을 만듭니다. 특히 서울시의 경우 경기도·인천시와의 협의가 필수적입니다.

  • 경기도에서 서울로 통근·통학하는 인구는 125만명입니다.
  • 국토교통부가 운영하는 탄소공간지도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탄소가 가장 많이 배출되는 지역은 서울과 경기도·인천을 잇는 지역입니다.
  • 따라서 정책 목표가 탄소배출 감소에 있다면 서울-경기도·인천의 대중교통을 활성화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수도권 탄소공간지도. 빨간색에 가까울 수록 탄소배출량이 많다. 경인고속도로 시점부와 서부간선도로가 교차하는 영등포구 양평동3가 일대, 도봉산역 일대 등 경기·인천을 잇는 곳에 빨간색 사각형이 집중돼있다. ⓒ국토교통부

하지만 기후동행카드의 혜택은 서울 내에서만 누릴 수 있습니다. 경기·인천 → 서울의 경우 사용할 수 없고, 반대의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고, 경기도-서울 출퇴근 시 주로 이용하는 신분당선과 경기도 광역버스는 사용 대상이 아닙니다.

서울시는 이러한 정책 내용을 결정하면서 경기·인천과 사실상 논의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서울 지하철을 일부 운영하는 코레일과의 협의도 없었습니다.

  • 서울시는 기후동행카드 정책을 9월 11일 발표했는데, 경기·인천과 논의를 시작한 것이 9월 8일이었습니다. 본래 14일로 예정됐던 발표 계획을 언론 보도 때문에 앞당긴 것이지만, 원래 일정에 따른 일주일의 논의 기간도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 인천시는 "취지에 공감한다"면서도 일방적 시행 발표에 유감을 표명했고, 경기도는 ‘사전 협의 없는 일방적 발표’라며 반발했습니다. 김상수 경기도 교통국장은 서울, 경기, 인천 3개 지자체의 교통실무 협의체를 구성해 정례적으로 만나며 교통 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안했습니다.
  • 오세훈 시장은 해당 사업은 서울시 자체 예산으로 하는 시범사업일 뿐이며, 오히려 서울시가 치고 나와 경기·인천이 협상에 참여하도록 압박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중앙정부의 정책 계획과도 충돌하는 지점이 있습니다.

  • 국토교통부는 지난 8월 말 K패스라는 전국 단위의 대중교통 사업을 발표했습니다. 월 21회 이상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교통비를 20%에서 53%까지 환급해 주는 제도로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국토부 발표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서울시에서 기후동행카드를 내놓았습니다.
  •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K패스와 기후동행카드는 목적과 수단이 같다며 “중복된 정책은 오히려 국민에게 손해”라고 비판했습니다.
  • 이에 오 시장은 “K패스와 기후동행카드를 왜 충돌이라고 표현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현명한 소비자들은 다 계산을 하고 내 소비 패턴이 어떻다는 걸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분들 입장에서는 즐거운 선택”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서울시의 기존 대중교통 정책에 역행한다는 점도 비판받았습니다.

  • 지난 달부터 서울시 시내버스 요금이 300원 올랐습니다. 지하철 요금도 다음 달 7일부터 150원 인상할 계획입니다.
  • 서울교통공사는 2020년과 2021년 1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냈고, 코레일은 올해 당기순손실이 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몇 달 전만 해도 65세 이상으로 규정된 무임승차 연령을 올리고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을 국가가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 적자 보전 계획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에 오 시장은 “그만큼 기존 승용차 이용객들이 기후동행카드를 구매함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하면 된다”고 해명했습니다.
  • 윤종장 서울시 도시교통실장은 “적자 문제는 계속 끌어안고 가야 할 문제다. 하지만 재정 문제만 생각했다면 이 정책은 올라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비용이나 재정위기보다 더 큰, 앞으로의 위기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이 정책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재정건정성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윤석열 정부의 기조와도 맞지 않습니다.

앞으로 지켜볼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 추진이 적극적으로 이뤄진 것을 두고, 오세훈 시장이 다음 대선 출마를 인식해 차별화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 지자체장은 국회의원에 비해 정쟁과 거리를 두기 쉽습니다. 정책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지역민의 삶에 곧바로 영향을 미치는 사업을 진행하면서 긍정적 이미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 오세훈 시장과 민주당 소속의 김동연 경기도 지사가 최근 이 효과로 호감도가 높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두 사람은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 오 시장은 “차기 대선에 출마하기보다 서울시장을 다시 하고 싶다”고 밝혔지만, 신중한 태도를 보일 뿐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오세훈 시장의 기후동행카드 정책 발표 자료 ⓒ서울시

한편 기후동행카드 사업에서 가장 불확실한 지점은 경기·인천과의 협의도, 국토부와의 충돌도 아닙니다. 리버버스, UAM, PM을 통합환승체계에 포함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교통수단은 오세훈 시장도 발표에서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사업 발표 자료에 분명히 들어가 있습니다.

1️⃣ 한강 리버버스

  • 내년 9월 운항을 목표로 하고 있는 수상 버스. 한 번에 200명이 탈 수 있습니다. 김포골드라인 혼잡도 완화를 위해 추진 중입니다. 이랜드그룹과 협약을 맺어 진행 중입니다.
  • 오세훈 시장이 서울시장이던 2007년 도입한 한강 수상택시의 버스판이라는 얘기가 나오는데요. 해당 사업은 선착장의 접근성이 떨어지고 다른 교통수단과의 연계가 어려워 실패했다고 평가됐습니다. 현재 한강 수상택시의 이용객은 하루 4명 정도입니다.
  • 리버버스 역시 같은 길을 걷는 게 아니냔 지적이 나옵니다. 서울공공투자관리센터의 ‘한강 리버버스 타당성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리버버스를 대중교통 수단으로 보면 연간 최대 8,946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하루 평균 27명인 셈입니다. 관광용으로 활용할 경우 연간 35만명 가량이 이용할 것으로 추산됐지만, 서울시는 어디까지나 대중교통으로 리버버스를 홍보하고 있습니다.

2️⃣ UAM(Urban Air Mobility)

UAM 상상도 ⓒ게티이미지뱅크
  • 도심항공교통, 사람을 태우고 다니는 큰 드론입니다. ‘에어택시’ 등이 포함됩니다.
  • 영화 같은 얘기지만 몇 년 전부터 글로벌 대기업들이 주목하고 있는 사업입니다. UAM 상용화는 윤석열 정부 국정 과제에도 포함돼 있으며, 2025년 서울시 도입을 목표로 현재 적극 추진 중입니다.
  • UAM 상용화를 위해선 이착륙장 건설부터 항공기 제작, 교통관리 시스템 개발까지 각 분야의 첨단 기술이 필요합니다. 통신, IT, 인공지능, 부동산 등 거대자본이 집중된 산업들이 복합적으로 관여하는 대규모 사업입니다. 국토부 추산에 따르면 UAM 시장 규모는 2025년 1,300억 원에서 2040년에는 800조 원으로 성장할 거라 예측됩니다.
  • 실제로 UAM 시장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이끌고 있습니다.  3대 통신사와 롯데 등이 항공사, 건설사 등과 팀을 꾸려 경쟁 중입니다.
  • 하지만 UAM을 2025년까지 상용화하는 건 무리한 목표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인프라 건설, 교통안전 관련 법안 통과만 2~3년이 걸린다는 전망도 있습니다. 수상택시의 환승 문제가 UAM에도 적용될 텐데,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대중화는 어렵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3️⃣ PM(Personal Mobility)

  • 전동킥보드 등의 개인형 이동장치를 말합니다.
  • 민간 기업들이 점유한 사업으로 최근 대중교통과의 연계가 논의되고 있습니다. 지난 6월에는 교통카드로 이용할 수 있는 PM 서비스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서울시 도시교통실 2023년 신년 업무보고 ⓒ서울시

서울시 도시교통실의 올해 신년 업무보고에는 ‘서울형 모빌리티 서비스 통합 환승 체계 도입 검토’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현행 대중교통 환승 제도를 개편해 공공 + 민간 교통 환승 체계를 마련한다는 계획입니다. 리버버스와 UAM, PM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문제는 세 가지 교통수단 모두 민간 기업의 주도로 인프라를 만드는데, 사업의 수익성은 불확실하다는 겁니다. 앞서 언급했듯 서울시는 충분히 예상되는 허점에도 불구하고 기후동행카드 정책을 급하게 추진했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정책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문제의 핵심을 빗나가는 진단과 최근까지 서울시 행정의 방향은 그 진정성을 의심하게 됩니다.

리버버스와 UAM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너무 촉박하다”고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정책 검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민간 기업을 참여시켰다면, 그리고 그 결과가 실패라면, 기업의 손해를 세금으로 메꾸는 모양새가 됩니다.

속도전에 치중한 정책이 역효과를 부르는 것은 아닌지, 혹은 역효과의 가능성을 고의로 무시하고 있는 건지 파악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