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안심귀갓길이 문제인 진짜 이유
건조 에디터의 취향반영 정책 디깅. 에디터의 관심 의제에서 현재진행형의 변화와 일하는 정치인을 찾아봅니다.
⭐ 키워드: 여성안심귀갓길, 셉테드(CPTED), 젠더갈등
⭐ 미리 보는 결론: 범죄 예방에 필요한 건 여성안심귀갓길 이상인데...
왜 중요해?
지난달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등산로에서 강간살인 사건이 벌어지면서, 국민의힘 최인호 관악구의원이 주도했던 여성안심귀갓길 폐지가 논란의 대상이 됐습니다.
⏰사건 타임라인
- 최인호 구의원은 ‘여성안심귀갓길’은 남성 차별적일 뿐더러 범죄 예방 효과도 적으니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또한 관악구에서 별개로 시행 중인 ‘안심골길’ 사업과 내용이 겹치므로 합쳐 진행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 이에 따라 지난 12월 관악구의 여성안심귀갓길 예산 7400만원은 전면 삭감됐고, 해당 예산은 안심귀갓길 사업으로 이관됐습니다. 최인호 구의원은 본인의 유튜브에 이를 홍보했습니다.
- 관악구의회 홈페이지에는 여성안심귀갓길 폐지가 살인사건과 무관하지 않다며 최 구의원 사퇴 요구가 쏟아졌습니다.
- 최 구의원은 자신의 입장을 고수했으며, ‘여초 사이트의 선동’에 의해 공격받고 있다며 악성 댓글에 법적 대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범행 장소는 원래 여성안심귀갓길 대상 지역이 아니었습니다. 최 구의원은 이를 근거로 자신이 범죄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으며, 대상 지역이었더라도 범죄가 일어나지 않았을 거란 보장은 없다고 반했습니다. 그러나 가해자 최윤종은 CCTV가 없는 것을 노려 등산로에서 범행할 계획을 세웠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최인호 구의원의 말처럼 여성안심귀갓길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여성가족과에서 도시재생과로 이관된 예산은 당초 여성안전귀갓길 사업에서 계획했던 사용처에 편성됐습니다. 여성안심귀갓길 지정이 해제된 곳도 없습니다.
관악구의회 민주당 관계자는 최 구의원과 합의를 이루기 어렵고, 표결에 붙이기도 곤란하다고 판단해 최 구의원 주장을 받아들이되 같은 사용처에 쓸 수 있도록 절충안을 냈다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논란에서 최 구의원의 책임은 정확히 어디에 있는 걸까요? 그 답을 찾기 위해 우선 여성안심귀갓길 사업을 뜯어봤습니다. 알고보니 여성안심귀갓길의 문제점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어떤 정책이지?
최인호 구의원은 사업의 효용을 지적하며 ‘여성안심귀갓길’이라는 문구를 바닥에 적거나 빔으로 바닥에 쏘는 것은 치안을 실질적으로 강화하지 못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논란 이후 여러 언론사가 여성안심귀갓길이 범죄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놓았습니다.(MBC, 오마이뉴스, 한국일보 등) 종합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여성안심귀갓길은 지자체와 경찰이 함께 진행하는 치안·방범 목적의 사업으로, 치안 우려 지역을 선정해 집중 관리합니다. 반면 안심골목길은 안전을 위한 환경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입니다.
- ‘여성안심귀갓길’ 바닥 문구 표시 외에 CCTV·비상벨·보안등 설치, 순찰강화도 사업에 포함됩니다.
- 여성안심귀갓길은 셉테드(CPTED) 사업의 일종입니다. 셉테드란 도시 환경 설계를 통해 범죄를 예방하는 기법입니다. 조명 개선, 벽화 그리기, 표지판 설치 등이 대표적입니다.
- 여성안심귀갓길 시행 지역의 여성 대상 범죄율은 실제로 감소했습니다. 성범죄율이 70%까지 감소한 사례도 있습니다.
-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는 여성안심귀갓길이 “범죄자의 의지를 위축시키면서 여성의 공포심을 줄이고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옵션을 늘린다는 차원에서 좋은 방향”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한편 여성안심귀갓길에서 남성은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릅니다.
- 여성안심귀갓길의 목표는 여성을 비롯한 모든 지역주민 모두가 안심할 수 있는 환경 조성입니다. 사업을 통해 설치된 시설은 성별과 관계없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 해당 정책은 범죄 예방에 더불어 시민들의 범죄 두려움 해소를 목적으로 합니다. 그리고 한국셉테드학회의 연구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보다 범죄 두려움이 높습니다.
- 성별에 따른 범죄 두려움 격차는 조명, 상점 유무, CCTV 유무 등 환경요소의 변화에 따라 더욱 커집니다. 연구진은 따라서 여성의 기준에 맞춰 환경요소를 개선해야 하며, 여성이 안전하다고 느껴야 남성도 안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범죄 전문가들은 오히려 사업 홍보와 유지·관리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여성안심귀갓길은 2013년 충남경찰청에서 최초로 시작해, 2022년 기준 전국 1942곳이 조성됐습니다. 그러나 인지도는 여전히 낮습니다.
- 사업 홍보가 저조해 접근성이 낮다는 게 원인으로 지목됐습니다. 지도에서 여성안심귀갓길 위치를 확인할 수 있게 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경찰은 도입하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여성안심귀갓길은 경찰의 특별 관리 구역인데, 이를 공표하면 일부 주민들이 반기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 바닥 문구가 보수되지 않아 여성안심귀갓길임을 알아채기 어려운 곳이 많기도 합니다. 비상벨이 적고 눈에 잘 띄지 않아 다급하게 도주하는 상황에서 활용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CCTV에는 한계가 있으니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주변을 살피는 자연 감시 방안을 확충해야 한다는 제안도 있습니다. ‘여성 안심귀가 스카우트’가 대표적인 자연 감시 사례입니다. 평일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1시 사이, 2인 1조의 스카우트가 집까지 동행하는 서비스로, 귀갓길의 두려움을 해소하고 범죄 취약 지역도 자연스럽게 살필 수 있습니다. 서울시에서 2013년부터 적극 운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지켜볼 것은?
셉테드 기법이 범죄 예방의 만능열쇠는 아닙니다. 범죄의 기회를 제공하는 환경을 최소화하는 방법이기에, 환경에 관계없이 발생하는 이상동기 범죄(묻지마 범죄)에는 효과가 적습니다. 애초에 설계를 잘못했거나 관리에 소홀하면 효과를 보지 못하기도 합니다.
정부가 셉테드 사업에만 집중하면 ‘범죄 예방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에 범죄의 사회적 원인을 연구하고 이를 해결하는 것을 간과하거나 회피할 위험성도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여성안심귀갓길 역시 한계가 분명한 사업입니다.
이를 고려할 때 최인호 구의원의 주장은 더 위험합니다.
최 구의원은 “여성이 성범죄를 많이 당할 수 밖에 없는 게 사실이므로 성범죄가 없어지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여성이라서 범죄를 당했다고 치부해선 안 되고, 여성 대상의 범죄 예방 정책을 따로 둘 필요도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범죄를 ‘어쩔 수 없는 일’로 여기며 구조적으로 보길 거부하고 정치의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입니다.
최 구의원은 자신이 범죄에 무감각하다는 비판에 반박했습니다. 안심골목길은 오히려 강화됐고, CCTV 확대의 필요성에는 동의한다고 밝혔습니다. 여성안심귀갓길에도 이러한 내용이 포함된다는 것은 언급하지 않았지만요.
그렇다면 최 구의원의 주장에서 진지하게 논의해볼 만 한 것은 ‘여성’ 안심귀갓길 사업이라는 이름의 필요성에 대한 비판 정도입니다. 이에 대한 판단은 최인호 구의원의 발언을 제시하며 독자들에게 맡기려 합니다.
“범죄 예방은 당연히 해야 되는데 거기에 특정 성별을 끼워넣는 것 자체가 사업의 방향성을 흐트러뜨려요. 관악구민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 예방이 돼야 하는데 왜 하위단위로 굳이 (여성이라고) 표현하냐 이거예요.
여성 피해자 피해 서사를 언급하고 또 피해 없는 것조차도 피해가 있는 것처럼 보여지게 만들고, 그런 사업들이 너무 많아요. 왜 남성과 여성을 자랑스럽게 만들지 못할망정 왜 피해받았다 세뇌하는 듯한 사업들이 지속되는지 모르겠네요? 피해자라고 제도적 장치에 기대하고 보호받아야 하고, 왜 자꾸 사회에 의존하게 만들고 (그러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