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은 왜 폐지를 줍고 있을까
아무튼 정치 때문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뉴스를 분류하는 4가지 카테고리는 사실 크게 보면 다 정치로 통한다.
일상의 현상들, 요즘 뜨는 이야기, 어쩌다 일어난 것 같은 사건 사고들에서 정치와의 연결고리 찾기.
인공지능에게 대통령 신년사를 써 보게 하는 세상에서도 변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 폐지 줍는 노인의 존재가 그렇다. ‘가난한 노인’하면 떠오르는 모습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리어카를 끌며 폐지를 줍는다. 전국 폐지 수집 노인은 최소 14800명에서 최대 15181명으로 추산되고, 이들은 월평균 20만원, 시간당 2200원을 번다. 폐지 수집이 가난한 노인의 일이 된 이유는 간단하다. 학력과 경력을 요구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2017년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폐지 수집 노인의 37%가 무학, 41.3%가 초졸의 학력을 가지고 있다.
가난한 노인은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엔 가난한 노인이 많다. 한국은 OECD 국가들 중 노인 빈곤율과 고용률이 가장 높은 나라다. 그럼에도 가난한 노인이 많은 것은 노인의 노동이 대체로 질 낮은 일자리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일하는 노인의 절반 이상은 비임금노동자고, 임금노동자의 경우 71%가 비정규직이다. 한국은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기도 하다. 현재 고령화 속도가 지속된다면 20년 후 일본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된 나라가 된다. 일자리가 필요한 노인은 갈수록 늘어난다. 정부는 대책을 얘기하고 있다. 정년 연장, 연금 보험료 납부 연령 상한과 같은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 중이다.
문제는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한 채 노령기에 진입한 노인이다. 위와 같은 제도 개편은 이미 질 낮은 일자리에서 가난한 생활을 버티고 있는 노인들을 포용하지 못한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당장의 실질적인 도움이다. 노인일자리 사업은 그러한 해결책 중 하나다. 그러나 지금의 노인일자리 사업은 현상을 비껴가고 있다. 그 이유를 폐지 수집 노인을 통해 살펴봤다.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폐지 수집 노인
폐지 수집이라는 노동은 재활용품 수거 제도의 빈틈에서 등장했다. 기본적으로 재활용품 수거는 관련법에 기반해 이뤄지고, 지자체가 그 과정을 관리한다. 그러나 단독주택 밀집 구역과 같은 복잡한 지역엔 수거 체계가 자리잡기 어렵다. 따라서 비공식적 방식이 끼어들 여지가 생긴다. 개인이 재활용품을 수거해 내다 파는 것이다. 제도 밖의 노동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소득과 안전을 보장하는 체계가 없고,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
이들의 소득을 결정하는 폐지 가격도 제도가 아닌 시장을 통해 결정된다. 폐지 수집 노인은 고물상에게, 고물상은 중간업체를 거쳐 제지업체에게 폐지를 판매한다. 고물상은 이 과정에서 자신의 이윤을 임의로 정하고 남는 금액을 폐지 수집 노인에게 지불한다. 자기 이윤을 덜 남기는 고물상을 찾아가는 것이 노인들이 소득을 높이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이에 고물상의 재활용품 최저매입가격을 정해 노인들의 소득을 보장하자는 논의도 있었다. 그러나 고물상 역시 대부분 허가를 받지 않고 영업하는 제도 밖 노동자이기에 적용하기 쉽지 않은 방법이다.
폐지 수집 노인들은 더 많은 폐지를 줍기 위해 심야나 새벽에 골목을 누빈다. 재활용품 수거차가 오기 전 재활용품을 가져가기 위해서다. 어두운 골목에서 이들은 교통사고와 범죄에 더 쉽게 노출된다. 정신적 위험도 크다. 폐지 수집 노인의 우울증 의심 정도(33.7%)는 전체 노인(21.1%), 일하는 노인(10.9%)보다 높다. 친구 및 지역사회 관계에 대한 만족도도 현저히 떨어진다.
지자체들은 이미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서울시를 비롯한 55개 지자체는 ‘재활용품 수집인 지원에 대한 조례를 제정해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일시적이고 시혜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안전장비와 노동에 필요한 기타 물품들을 나눠주는 정도다. 한발 더 나아가 폐지 수거를 노인일자리 사업에 포함시키는 안도 있었다. 정부가 폐지를 직접 매입해 일정 이상의 소득을 보장하고, 근무 시 안전 장비와 계절 용품을 지원하는 식이었다. 이 경우 폐지 수집 노동의 처우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지만, 많은 노인들이 몰려 생계를 위해 폐지를 수집하는 노인의 자리가 없어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지원 사업의 방향성을 결정하려면 우선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폐지 수집 노인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무엇인가? 폐지 수집 노동의 질을 높이는 것인가? 아니면 ‘양질의 일자리’로의 전업을 돕는 것인가? 답을 내놓기 위해선 복합적인 요소들을 살펴봐야 한다. 폐지 수집 노인의 특성과 그들의 노동 방식, 재활용 산업의 구조를 함께 고려해야만 실질적인 개선책을 마련할 수 있다. 관련 입법 논의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정부 기관 차원의 폐지 수집 노인 연구는 지난해 처음으로 발간됐다.
노인일자리 사업의 진짜 목표
가장 좋은 해결책은 일하지 않고 노후를 보낼 수 있게 하는 것일 테다. 이는 언젠가 노인이 되는 우리 모두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향적 제도 개선과 재정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안이다. 그렇기에 노동을 통한 소득의 보장이라는 임시방편이 필요하다. 바로 노인일자리 사업이다.
노인일자리 사업은 공공형, 민간형, 사회서비스형으로 나뉜다. 공공형은 환경정비, 교통안전 보조 등 단순 업무로 월 27만원 정도를 받는 반면, 민간형·사회서비스형은 보다 전문성 있는 일을 주고 비교적 높은 임금을 준다. 지난해 정부는 2023년 노인일자리 사업에서 공공형 자리를 6만 개 줄이고 민간, 사회서비스형을 약 4만 개 늘리기로 했다. 상대적으로 학력이 높은 베이비부머 세대가 곧 노년층에 진입하는데, 이들의 일자리 수요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또 노인을 채용하는 기업에 고령자 고용장려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공공형 일자리와 민간·사회서비스형 일자리의 목적을 동일하게 보고 정책을 운영해선 곤란하다. 공공형 일자리의 주요 참여 대상은 저소득층, 저학력 노인이다. 실제로 소득인정액과 세대 구성, 차상위 계층 해당 여부를 선발 기준으로 둔다. 75세 이상의 후기고령노인의 참여 비중이 노인일자리 유형들 가운데 가장 높기도 하다. 75세 이상 노인 중 국민연금 수령자는 38%에 불과하다. 연금을 받지 못하는 노인들은 노인일자리 소득이 더욱 절실하다. 이렇듯 공공형 일자리의 목적은 산업 구조상 취업이 불가능한 노인들에게 소득을 제공하고, 사회 생활을 보장하는 것이다.
노인 단체들과 복지현장은 정부 방침에 크게 반발했다. 이를 인식한 듯 지난 11월 추경호 부총리는 공공형 일자리를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다 올해 경기 둔화 전망까지 더해지자 공공형 일자리 규모 유지로 입장을 완전히 바꿨다. 고용 시장이 위축돼 민간형 일자리 확대가 불확실해졌기 때문이다. 민간형 일자리를 당장 확대하기 위한 인프라가 부족하기도 하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체계적으로 선발하고 노인 인력을 교육·훈련하는 시스템이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현 정부 정책은 실질적 경제활동을 통해 노인들이 시장에 기여하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노인 내 빈부격차와 연령에 따른 수요 차이를 고려하지 못하는 방향이다. 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선 우선 노년층에 대한 구체적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폐지 수집 노인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사각지대의 노인들에 대한 실태조사는 여전히 미약하다.
노후 생활과 노인의 노동에 대한 정부의 입장도 분명하지 못하다. 지금까지 관련해 정부가 낸 메시지는 재정, 생산성, 시장을 키워드로 했다. 논의의 중심에 놓여야 할 노인의 경제적, 신체적, 심리적 특성과 다양성은 빠졌다. 폐지 줍는 노인이 누구인지, 우리는 아직도 모른다. 앞으로 누가 폐지를 줍게 될지도.
글: 애증의 정치클럽 건조🍂
참고문헌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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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소준철(2020), 가난의 문법, 푸른숲.
[연구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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