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석: “이 투쟁은 비장애인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전 노들장애인야학 교장
“나도 닉네임 있는데, ‘어깨꿈’”
명함을 주고받고 박경석 대표가 건넨 말입니다. 어떤 뜻이냐고, 유쾌한 말투에 가볍게 되물었다가 당황하고 말았습니다. ‘어차피 깨질 꿈’. 비장애인이었던 시절 꾸었던 꿈들은 어차피 깨질 것이었음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였습니다.
박경석 대표는 스물네 살 때 행글라이더 추락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됐습니다. 이후 5년간 집에서만 지내다 죽기 위해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지만, 그러다 보니 살게 됐습니다. 살기 위해 공부하다 보니 야학 교사가 됐고, 가르치다 보니 싸우는 사람이 됐습니다. 어차피 깨진 꿈은 그를 완전히 새로운 삶으로 이끌었습니다.
박 대표의 싸움은 올해로 22년째입니다. 애증의 정치라는 주제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면 박 대표일 것입니다. 수없이 실패하고 실망했을 터지만, 정치를 논하며 그가 가장 많이 말한 단어는 ‘자부심’이었습니다.
10월 25일, 혜화의 전장연 사무실에서 박경석 대표를 만났습니다. 장애인 정치의 현주소와 그가 경험한 정치의 힘에 대해 물었습니다.
낙인과 갈라치기, 정치의 전략
지난해 지하철 시위 이후 언론과 시민들의 태도가 변화했다고 느끼시나요?
언론은 기본적으로 보도 빈도가 높아졌죠. 보도에도 여러 유형이 있을 거 아닙니까. 어떤 언론은 굉장히 시혜적으로 ‘오죽했으면 그랬을까’라고 할 수도 있고, 대놓고 비난하는 언론도 있고, 시민의 불편을 강조하는 곳도 있을 거고, 객관적인 사실 보도나 심층 분석 등 여러 타입이 있는데 모든 유형의 빈도가 늘어났어요.
지난 22년간 비슷한 방식의 투쟁들이 꽤 많았는데 왜 이제야 큰 이슈가 됐을까요. 출근 시간였기 때문이에요. 출근 시간에 타는 건 그동안 저희가 상상도 못 한 일이었거든요. 비장애인들이 출근하는데 감히 거기까지 갈 수 있냐는 거였죠.
올해는 지난해보다 언론 보도는 줄어들었죠. 하지만 보도 빈도보단 언론이 지하철 시위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봐요. 장애운동에 대한 이야기는 표피적인 방식의 이야기가 조회수가 높아요. 이준석 전 대표가 그랬듯 여당이 활용할 수 있는 범주에서 말하면 언론이 관심을 많이 가지죠. 마치 토론의 주제가 될 수 있는 것처럼 합리적이고 전통적인 언어로 말할 때요. (이 대표는) 정치적 언어를 잘 구사하는 사람이죠. 덕분에 나도 많이 떴고요.
죄 없는 시민의 발목을 왜 잡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어요. 그런데 시민은 정말 죄가 없냐고 한다면, 이런 죄는 있다고 생각해요. 세상이 장애인이 이동하지 못하는 문제를 차별적인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냥 불쌍한 장애인 조금 도와주면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준석 대표가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율이 90%인데 아직도 지하철을 외친다고 말한 거죠.
2001년도에 오이도역에서 리프트 사망 사고가 난 뒤, 이명박 당시 서울 시장이 2004년까지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100% 설치하겠다고 약속했어요. 박원순 시장 때 2022년까지 100% 설치하겠다고 또 약속했고요. 지하철 이동권 문제는 90% 좋아졌다는 것 가지고 생색낼 게 아니에요. 서울시장이 두 번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요. 그리고 리프트에서 떨어져 죽은 사람에 대한 어떠한 애도와 사과도 없었어요. 죽어간 사람들에 대해 이 사회가 얼마나 반성했고 일반 시민들은 이 문제를 얼마나 인식하고 있느냐의 측면에선 (시민들이) 공범이라고 생각해요.
이준석 대표는 지난해 대표님과의 토론에서 해당 사망 사건에 대한 사과는 과하다고 발언했죠. 얼마 뒤면 이태원 참사 1주기인데, 역시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가 없었던 게 비판받았습니다. 정치인의 ‘사과’란 왜 중요한가요?
초상집에 갔을 때 우리가 유감이라고 하지 사과하진 않아요. 사과에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에요. 사과도, 반성도 책임의 문제죠. 윤석열 대통령이 반성한다고 하는데, 반성을 제대로 안 시키면 한 대통령을 사기꾼으로 만드는 거예요. 저는 윤석열을 사기꾼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어요. 그런데 스스로 못 변하니까 시민들이 싸우는 거잖아요. 이게 정치적 개입이죠. 이태원 참사는 윤석열 대통령이 조문은 했지만, 책임은 다 피해버렸잖아요. 그러니 참사 1주년이 되어도 해결하지 못하는 슬픔이 있어요.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아직 우리 사회에 내재해 있다는 게 지하철 시위를 통해 드러난 것 같아요.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는 건 우리도 조직하기 힘들어요. 아침 8시에 나오려면 중증장애인들은 4시, 5시에 일어나서 와야 해요.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했느냐, 첫날 탔을 때 난리가 났어요. 시민들은 욕하고 경찰은 짓밟고. 원래 그게 1년에 한 번 하는 집회였어요. 문제될 수 있다는 건 예상했지만 이렇게까지 혹독하게 짓밟을 줄은 몰랐죠. 그 뒤로는 아예 지하철에 안 태우더라고요. 이런 일이 꼬리를 물면서 계속하게 됐어요. 나중엔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이 우리 보고 폭력조장 단체 2위래요. 1위가 민주노총이죠. 갑자기 민주노총 급까지 큰 거예요.(웃음)
혐오의 대상은 아주 선명해요. 기독교에서는 동성애는 죄악이라는 신념으로 차별하죠. 장애인은 그렇게 대놓고 죄인 취급은 안 해요. 엄마 말 안 들어서, 전생에 잘못해서 장애를 입었다는 부정적 낙인이 있지만 일반적으론 그런 얘기를 꺼내지 않아요. 하지만 이해관계가 부딪히면 그런 방식으로 장애인을 욕하죠.
전장연의 핵심 의제는 이동권, 노동권, 교육권, 그리고 탈시설입니다. 이 4가지는 왜 중요한가요?
핵심이 아니라 출발이라고 생각해요. 이동해야지 교육받고, 교육받아야 노동에 참여할 기회가 생기고, 노동하지 못하면 자본주의 용어로 쓸모없는 사람이에요. 노동 영역에서 쓸모없는 사람은 최저임금 적용에서도 제외돼요. 그리고 중증장애인은 시설로 보내지거나, 집구석에 처박혀 있어요. 투자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죠. 투자의 문제는 결론적으로 예산의 문제에요. 국가가 예산을 써서 공동체에서 소외된 사람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지 못했어요.
이건 헌법에 명시된 거예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고 누구든지 차별받지 아니한다고 한 게 대한민국 공화국이잖아요.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 사회가 아닌데, 비장애인의 기본권만 따로 있냐고 하면 이젠 목을 날리는 대신 철저하게 배제하죠. 이게 다수결의 민주주의가 취하고 있는 최소한의 기준이에요. ‘이 정도 보살펴 주면 됐지’라는 거죠.
장애인 이동권 보장에 반대하는 정권은 없잖아요. 한다고 해놓고 안 해주는 게 문제인 거지. 이번 정권에선 이례적으로 장애인 단체에 ‘폭력단체’라는 낙인까지 찍었는데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건 전장연만의 문제는 아니잖아요. 윤석열 정권에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력을 그렇게 대하는데, 우리도 괜히 낀 거죠. 갈라치는 기준에 의해 표적이 된 거죠. 이 정치 세력 자체가 그렇게 형성이 됐고, 그걸 극우화라고 표현하죠. 이런 정치적 기획에 전장연이 낀 것 같아요. 직접적으로 쳐야 할 대상까지 된 건 우리가 잘 싸웠기 때문이죠.
여의도 밖의 자부심
오랜 기간 운동에 몸담으면서 느낀 정치와 운동의 차이가 있나요?
운동도 정치죠. 세상 모든 사람은 정치적으로 연결돼 있어요. 보통 정치라고 하면 국회, 여의도 정치를 말하죠. 엄밀하게 말하면 저는 정치가 아닌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여의도 밖 정치를 하는 거예요. 여의도 밖에 있다가 언제든지 여의도 안으로 들어가도 된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들은 여의도 밖에서만 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건 모순적이라고 봐요. 결국은 정치를 바꿔야 세상이 바뀌는 거잖아요. 여의도 안팎이 긴밀하게 영향력을 주고받아야 일상적 관계가 회복된다고 생각하거든요. 투표만 하면 끝나는 게 아니라, 공약한 거 잘하는지 보고, 억울한 거 있으면 가서 얘기하고, 참사가 생기면 빨리 조치하고 이런 것들이 다 여의도의 정치와 여의도 밖의 시민운동이 잘 소통해야 하는 일이에요.
과거 민주노동당에서 출마 제안을 받았을 땐 고사하셨는데.
뜻이 있는 개인은 가서 잘하면 좋겠어요. 여의도 안의 정치를 많은 사람이 원하죠. 밖에서 백날 싸워봤자 그 안에서 한번 논의해서 제도를 바꾸는 게 좋다고 해요. 우리 운동도 여의도의 정책을 바꾸는 영향력을 발휘해야 해요. 그러려고 지하철도 타고 집회도 하는 거죠. 하지만 둘을 비교 평가할 건 아니라고 봐요.
물론 (여의도 안에서)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겠지만, 진짜 세상을 제대로 바꾸는 건 대중적 힘이 어떻게 조직되는가의 문제예요. 저는 그 방식을 선택했을 뿐이에요. 나까지 욕심부리면서 (국회에) 갈 필요 있나 싶어요. 당시엔 대중이 어떻게 목소리 내게 할지 고민하는 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거기 가려고 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여기 남으려는 사람은 없더라고요. ‘나라도 남아야지’ 했어요.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때보다 싸우는 사람은 많아졌어요.
대중운동 조직하는 데 참여하는 동지들이 많아졌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지지하는 일반 시민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둘 다 늘어났죠. 일단 의제가 밝혀지니까 지지해 주는 시민도 많고. 하지만 제가 중요하게 생각한 건 지하철에 나와서 싸우려고 하는 중증장애인이 더 많아졌다는 거예요. 예전엔 오후 2시에 10명도 못 조직했는데 지금은 아침 8시에 50명도 나올 수 있어요. 50명을 매일매일 조직할 수 있는 힘만 있다면 세상은 바뀔 거라고 생각해요. 다들 잡혀가겠다고 싸우는데요.
그렇게 분위기가 뭔가 변화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자부심이요.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목소리가 스스로의 힘이 될 수 있다. 장애인이라고 부끄러워하고,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살다가 이게 나의 권리였구나, 나는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왜 구걸하면서 기다렸을까 자각하는 장애인들이 많아졌어요. 그걸 자각하니까 싸울 힘이 생긴 거고요. 싸울 힘이 있어도 구체적으로 조직하고 행동 계획을 같이하지 않으면 또 흩어지는 거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행동 전술이 대중적으로 넓혀진 것도 있고요. 그러니까 또 자신감이 생기는 거죠.
시민운동, 그중에서도 유독 장애 운동에 대해 왜 이렇게 정치적으로 주장하느냐는 비판이 있는데요.
일반 시민들이 말하는 ‘정치적’이라는 비판은 갈라치기의 결과라고 생각해요. 전장연은 정권에 관계없이 싸워왔어요. 김대중부터 문재인까지 5개의 정권을 거쳤지만, 누구도 이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어요. 다만 다루는 방식이 윤석열 정부와는 달랐죠.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됐어도 약속한 대로 내놓을 때까지 지하철을 탔을 거예요. 정권과 관계없이 어떤 놈이든지 다 싸운다, 얼마나 정치적이에요.
정치로 다루어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요. 정치의 본질적 기능은 공동체 내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거예요. 그런데 당파적 이익만 가지고 싸우니까 붕당정치가 된 거죠. 그러니 장애인의 정치가 통할 리가 있나요? 사회적으로 기본적인 선에 있는 사람에겐 정치가 더 올라가기 위한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싸움이겠죠. 그 선 밑에 있는 사람을 올려주지도 않고 정치적으로 갈라치는 건, 장애인을 정치적 영역의 사람으로 생각하지도 않는 거예요.
전장연이 모두에게 준 선물
곧 내년도 예산안이 결정되는데요. 지난해에도 장애인 예산이 요구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을 비판해 오셨어요. 내년도 예산안에선 무엇을 요구하시나요?
우리나라는 GDP 대비 장애인에 대한 지출이 거의 꼴찌예요. 당장 우리 요구를 다 수용하더라도 GDP 대비 비율 평균도 가지 않아요.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마음이 없고, 지금의 지속적인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게 기획재정부 인식이에요.
올해 최소 1조 3천억원을 요구했어요. 이동권 예산, 교육권 예산, 활동 지원 서비스 예산, 탈시설 예산, 노동권 예산으로 구성됐는데요. 원래 정부안은 한 푼도 안 주는 거였어요. 그걸 예산결산위원회(예결위)에서 여야가 합의해 51%를 반영하겠다고 했는데, 기재부가 0.8%, 500억원만 반영하기로 결정했어요. 야당이 제대로 싸우지 않았기 때문이죠. 우선순위에서 밀리잖아요.
이번 국감에서 발달장애인 동료지원가 예산 24억원을 전액 삭감한 것에 대해 발달장애인 증인이 직접 나선 것이 화제였는데요. 상임위에서 예산 복구를 약속했고요.
복구가 결정된 건 아니에요. 기재부가 최종적으로 승인해야죠. (상임위에서) 겨우 24억원을 왜 폐지하느냐는 동정론이 있었어요. 발달장애인이 나가서 증언하니까 감동적이었던 모양이죠. 언론도 그러니까 막 때린 거예요. 긍정적이죠. 발달장애인을 국감장에 세운 것도 새로운 일이고요. 환노위에서는 그렇게 긍정적인 반응이 있었지만, 기재부는 복지부에 (예산을) 따로 줄 테니까 굳이 노동부에서 하지 말라는 입장이에요.
하지만 중증장애인의 일은 기본적으로 노동으로 풀어야 해요. 장애인 고용 촉진 및 직업재활법이 있고, 거기에서 관련 기금을 만들고 있어요. 그럼 그 돈으로 해야 하는데, 중증 장애인 일자리는 복지에 가까우니 복지부로 가라는 거예요. 왜 중증장애인 노동만 복지 수준으로 다루나요?
이 기금은 문재인 정권 때 저희가 85일 동안 노동부 산하기관인 장애인고용공단 서울 본부에서 농성해 얻은 거예요. 장애인 노동의 문제를 노동부에서 다뤄야 하고 노동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해요. 시장 경쟁의 역할만 하는 게 노동부가 아니잖아요. 결국은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문제를 노동 영역에서도 갈라치고 있는 거예요. 발달장애인 노동 문제에 대해 (정부가) 제대로 된 정치적 입장을 가져야 해요. 그러지 않고 장애인들 떼쓰니까 해주라고만 하는 거죠. 복지부로 넘기면 이 문제를 정치화할 수 있겠습니까? 그냥 시혜와 동정 차원에서의 하나의 사건일 뿐이죠.
많은 사람이 ‘이렇게 해서 뭐가 바뀌냐’며 포기하지만, 전장연은 실제로 변화를 이뤄왔습니다. 그 성과를 자랑해 주신다면요?
활동 지원 서비스가 만들어졌고, 지하철에 엘리베이터가 생겼죠. 저상버스 도입이 그래도 서울은 50% 가까이 되고요. 22년 전의 예산과 지금의 예산을 보면 많이 변했어요. 운동으로 변했든 다른 걸로 변했든 간에, 우리는 투쟁을 통해서 의지를 확인하고, 비장애인 사회에 그것을 선전했어요. 그러면서 굉장히 다양한 방식의 접근을 해왔어요. 22년간 지하철로만 내려간 건 아니에요. 토론회 하라 그러면 토론회하고, 친절하게 하라 그러면 친절하게 했죠. 제도도 만들어 달라고 하고, 유튜브 구독, 좋아요도 해달라고 하고요.
그보다 자랑하고 싶은 건 따로 있어요. 노들야학 학생이 왜 투쟁해야 되냐고 저에게 묻더라고요. 자기는 그보단 직장에 가고 싶다고요. 그런데 이 학생은 초등학교 공부도 모르고, 뇌병변 중증 장애라 제품을 만든다거나 하는 생산적인 일이 불가능해요. 밥 먹고 똥 누고 돌아다니는 모든 생활에 활동 지원 서비스가 필요한데, 이 세상의 기준으로 무슨 취업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사장이라도 고용했다가는 골치 아플 거예요. 이런 기준이 있는 사회에서 그 꿈을 꾸길래 제가 이렇게 이야기했죠.
우리가 싸워서 지하철에 엘리베이터도 만들고, 저상버스도 만들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렇게 따지면 번 돈이 3~4조가 넘더라. 우리가 그 돈을 22년을 싸워서 만들었다. 단지 내 주머니에 안 들어왔을 뿐이지. 그럼 우리가 선물로 준 거 아냐! 우리가 싸워서 이 세상에 준 선물이 얼마냐, 이게 더 자랑스럽지 않니?
그랬더니 혹해서 돈 한 푼도 못 받으면서 자랑스럽다고 해요. 저는 (그 학생을) 그렇게 꼬신 게 자랑스러워요. 배우지 못해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어요.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얼마나 이 사회에 선물을 주는 투쟁인지. 이 투쟁은 비장애인에게 주는 선물이었어요. 이 선물을 만드는 게 얼마나 자랑스러워요? 우리가 주는 건 선물입니다. 나중에 늙으면 다 깨달을 거예요.
대표님도 그런 자부심을 기반으로 활동을 계속하고 계신 거죠.
‘어차피 깨진 꿈’인데요. 비장애인으로 살면서 소외된 사람들, 나랑 관계없던 사람들을 몰랐을 때 이 체제가 가르쳐준 꿈을 꿨어요. 그래서 공부도 열심히 하려고 했고, 건강하려고 했고, 군대도 지원해서 대한민국의 건전한 남성으로 여성을 깔보면서 살려고 했어요. 그런 꿈이 빨리 깨진 게 다행이죠. 또 다른 삶의 꿈을 꿀 수 있는 계기가 됐으니 얼마나 좋아요. 보통 사람은 비장애인이 장애인이 돼서 비장애인의 꿈을 못 꾼 거라 생각하지만, 저는 치료받아서 비장애인이 될 꿈도 없고 비장애인이 경쟁하는 방식의 꿈을 가지고 싶지도 않아요.
그래도 난 붙으면 경쟁력은 있어요. PPT를 잘 만들고, 엑셀도 조금 할 줄 알아요. 그러면 최저임금은 받을 수 있겠죠. 근데 그런 세상에 편입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을 교육시켜서 세상의 기준대로 가자고 해야 할까요, 존재 자체로 있으면서 존엄성을 지키게 해야 할까요? 세상의 기준을 잡아당기는 게 제 꿈이에요. 그게 정치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전장연의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갑자기 윤석열 대통령이 반성을 해버렸잖아요. 저는 그 반성을 믿는 사람이에요. 꼭 반성시켜야겠다고 생각해요. 믿든 믿지 않든. 결국은 반성을 시키는 것도 우리의 힘인 거죠. 그게 국민 주권이고 정치잖아요. 구체적으로 반성시킬 수 있는 것들을 제시하고 이것이 반성이라고 이야기하는 투쟁이 필요해요.
그래서 진짜 반성하면 3374억원의 예산을 내년도에 반영하라고 할 거예요. 1조 3천억이 터무니없다고 하니까, 3374억을 11월 20일까지 기획재정부 장관이 약속해라. 그중 3350억은 이동권과 관련된 예산인데요. 특별교통수단이라는 광역 이동을 지원하는 내용이에요. 지금은 하루 8시간밖에 운영하지 않아 대기 시간도 길고, 지역 이동도 불가능해요. 그래서 차량 당 기사를 2명 배정해서 16시간 운행하라고 요구했어요. 그 돈을 중앙정부가 책임져야 해요. 지방에 떠넘기지 말고요. 지방에 떠넘기면 돈이 없다고 안 해요. 그리고 동료지원가 사업 24억 복원을 합쳐서 3374억이에요.
그래서 25일 김한길 위원장한테 쫓아갔어요. 윤석열 대통령이 김한길의 통합위원회에서 내놓은 정책 제언이 옳았다면서 반성하겠다고 했잖아요. 통합위원회가 지난 1월 내놓은 정책 제언 중 ‘모두를 위한 이동의 자유’ 의제의 첫 번째 과제가 특별교통수단 개선이에요. 그럼 그거라도 해야죠.
그리고 총선을 맞아 12월 3일 세계장애인의 날에 탈시설장애인당과 2024년 총선 장애인 차별철폐연대를 만들 거예요. 사실 가짜 정당인데, 우리는 이게 진짜 정당이라고 할 거예요. 그렇게 선전을 하는 거죠. 실제 당을 만들려면 돈이 드니까(웃음). 만들면 당원이 되어 주세요. 한 번 회비 1만 원에 더 안 걷어요. 아, 등록하지 않아도 후보는 낼 거예요. 이준석 지역구에 내서 탈시설장애인당 이름으로 선전하는 거죠.
어떻게 정치에 대한 희망을 붙들고 계시나요? 일반 시민들은 어떻게 하면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요?
희망은 만들어 가는 사람의 몫이지 주어진 것이 아니잖아요. 조직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기반인데, 열심히 해봤자 별로 한 것 같지도 않고, 세월은 가니 지쳐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죠. 하지만 애증과 환멸을 느낀다는 건 집착이 있고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럼 포기하지 말아야죠. 포기 또한 정치더라고요. 사람은 관계를 만들고, 관계의 흐름에서 변화가 가능한 영역이 정치에요. 비구니가 되고 산에 가서 풀 하나를 얻어먹어도 관계가 영향을 미치잖아요. 근데 관계없이 나는 평온하게 가겠다는 것도 크게 보면 정치죠.
그런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양당은 더 기고만장하게 그들을 팔아먹을 거예요. 팔리느냐 안 팔리느냐의 문제, 자기의 자율성, 인간으로서 가지는 존엄성은 정치적 투쟁의 과정에서 형성되더라고요. 관계의 이동과 형성을 통해 사회적 기준을 변화시키는 게 정치적 기준을 만드는 거예요. 특히 소수자의 영역에선 기존의 사회적 기준, 어떤 사람을 배제하고 사람의 존엄을 취하는 기준에 대한 도전이 정치고요. 그 도전을 포기할 때 그것을 가지고 해 먹으려는 사람에게 우리 삶을 넘기게 돼요. 그러니 애정이 깊을수록 정치적 관심에 응답해야죠. 애정을 포기하면 눈에 불나잖아요.
자기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사람에게 나의 싸움을 이해시켜야 하는 과정이 억울하게 느껴질 때도 있잖아요.
미워한다고 되는 문제도 아니더라고요. 욕은 많이 하죠. 근데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 때문에 정치를 포기하거나 희망을 포기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러니 그들한테 더 큰 선물을 줄 준비를 해야죠. 갑자기 나처럼 쫄딱 망해서 장애인이 될 수도 있고, 늙으면 누구나 다 요양원으로 버려질 거고, 무능력하다고 할 거고 노동 생산력이 없어지잖아요.
억울할 때는 그냥 빨리 저기 오락실 가서 샌드백 치면서 풀고, 그러고 나서 그들한테 어떤 더 좋은 선물을 줄까 생각해야 해요. 애정의 정치를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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