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도시〉 마동석은 왜 총을 쏘지 않을까
《팝콘폴리틱스》는 영화나 드라마에 나타난 정치적 배경을 ‘덕력’ 넘치는 시각으로 파헤쳐보는 콘텐츠입니다.
영화 〈범죄도시〉에서는 괴물 형사 마동석이 칼을 든 범죄자들을 맨손으로 때려잡는 장면이 나온다. 사실 장면이 나오는 수준이 아니라 그게 영화의 줄거리다. 범죄자가 주머니칼을 꺼내 들이밀어도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귀찮아 죽겠다는 말투로 증거보관용 비닐주머니를 들이밀고는 “야, 그거 여기다 넣어”라고 말하며 맨주먹으로 범죄자를 제압한다.
마동석은 맨손으로 흉악한 범죄자들을 제압하지만, 실제로 경찰은 삼단봉이나 테이저건 같은 무기를 많이 사용한다. 또 혼자 범죄자를 제압하기보단 보통 팀을 이뤄서 체포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경찰이 흉악범과 대치할 때 혼자서 맨손으로 격투를 벌일 일은 많지 않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모르겠지만) 하지만 영화에서 마동석이 장첸(윤계상)이나 강해상(손석구)과 싸우면서 시시하게 테이저건으로 끝낼 수는 없지 않으니 매번 흉악범들과 맞짱을 뜨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경찰이 총을 사용하는 것은 보기 힘들다. 일단 한국은 총기 규제가 엄격한 국가라 범죄자가 총기를 휴대하는 경우도 거의 없고, 총기를 사용해 범죄자가 사망할 경우 과잉 진압 논란이 생길 수도 있어서다. 그러다 보니 총기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경찰관이 총기 사용을 주저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한다. 총기 사용을 넘어서 경찰의 공권력 자체가 너무 약하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많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지난 7월 서울 마포의 한 지구대를 찾아 경찰이 1인 1권총을 휴대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한국 경찰의 공권력, 어떻게 해야 좋을까
한국과 딴판, 미국 경찰은 어쩌다 ‘군대’가 됐을까?
한국 경찰의 공권력 집행이 너무 약하다며 ‘강한 공권력’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주로 언급하는 예시가 미국이다. 미국 경찰은 범죄자 체포 시 총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자동화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또 SWAT이라 불리는 특수화기전술조 역시 자주 운용하고, 전반적으로 한국보다 강한 공권력을 집행한다. 물론 그에 따른 부작용도 잘 알려져 있다. 경찰에게 제압당해 목이 눌려 질식사한 조지 플로이드나 제이콥 블레이크 총격 사건 등이 대표적인 예시다.
물론 미국 경찰의 공권력 집행이 문제가 된 사례들은 불법성 여부에서 논쟁적인 경우가 많다. 총기 사용이 가능해 총을 든 범죄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미국의 특수성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미국 경찰이 불필요한 수준으로 ‘군대화’되고 있고, 불필요하게 강력한 공권력 집행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이 평화적 시위 진압을 위해 최루탄과 자동화기, 장갑차 등을 운용하는 경우가 많고, 온건한 방식으로 피의자를 체포하거나 소환하지 않고 무력 진압부터 시도하는 일도 많아졌다. 인디애나 주에서는 경찰서에 협박 문자를 보낸 피의자의 IP를 추적해 SWAT 팀이 출동해서는 피의자의 옆집에 쳐들어가 엉뚱한 미성년자 여성과 할머니에게 뒷수갑을 채워 체포한 사건도 있었다. 피의자가 옆집 Wi-Fi에 무단으로 접속해 협박 문자를 보내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물론 미국도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미국은 1980년대 이후 높아지는 범죄율과 조직화되는 마약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경찰의 무력 사용을 확대해왔고, 1990년에는 군에서 보유한 잉여 무기들을 경찰에 넘기고 마약 관련 법 집행에 사용할 수 있는 법이 만들어졌다. 또 다른 계기가 된 사건은 1997년 LA 노스할리우드에서 일어난 뱅크오브아메리카 은행강도 사건이다. 자동화기로 무장한 강도들을 경찰이 제압하지 못해 민간인과 경찰 여러 명이 부상을 입었다. 당시 중무장한 2인조 강도를 제압할 무기가 없어 현장 경찰관들은 제압에 어려움을 겪었고, 이를 계기로 미국 경찰은 자동화기 등 군용 장비의 활용 범위를 마약범죄 이외 사건으로 확대하게 된다. 특히 강력한 법 집행에서 주로 흑인 등 소수 인종이 대상이 됐고, 이는 결국 ‘BLACK LIVES MATTER(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와 같은 민권 운동이 일어나는 원인이 됐다.
경찰의 무장 강화는 과잉 진압이나 민권 탄압의 문제도 있지만, 과도한 경찰력 집행이 치안 유지에 효율적인지에 관해서도 논란이 많다. 2014년 미국의 퍼거슨 소요 이후 미국 법무부는 보고서를 통해 경찰의 군용 전술 장비 이용이 “전반적인 상황을 진정시키기보다는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군복같은 옷을 입고 소총을 든 경찰의 모습이 시민들을 위협하거나 자극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강도 높은 물리력 행사로 시민들이 경찰을 위협으로 느끼게 될 때 경찰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점 역시 치안에 부정적인 요소다.
만약 미국에서 장첸의 ‘흑룡파’ 같은 조직이 연쇄 강력 범죄를 저지르고 칼과 둔기를 휘두르고 다니면 어떻게 될까? 당장 자동화기로 무장한 SWAT 팀이 동원돼 범죄자를 제압했을 것이다. 아마 조직폭력배들 역시 패싸움을 벌이며 칼이 아니라 총을 들고 싸웠을 것이고, 범죄자를 마주쳤을 때 형사들도 권총을 겨누고 “Freeze!”(꼼짝 마)라고 외치지 않을까?
총기 사용이 제한되는 한국의 상황은 오히려 인물들의 싸움 실력을 돋보이게 하는 화려한 액션 장면을 가능하게 만들어줬다. 거기다 마동석은 황소 같은 피지컬로 제아무리 강력하고 흉악한 범죄자라도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까지 두들겨 패는 자극적인 통쾌함을 선사한다. 이 통쾌함은 〈범죄도시〉 시리즈의 잇따른 흥행의 열쇠가 됐고, 벌써 3편과 4편 후속작 개봉을 계획 중이다.
한국 경찰, 총기 사용하게 될까?
하지만 항상 맨주먹으로 범인을 잡을 수는 없다. 마체테를 든 강해상, 도끼를 든 장첸에게 맨손으로 덤비는 마동석 같은 형사는 실제로 없다. 테이저건이나 삼단봉 등을 사용한다고 해도 위험한 상황은 많다. 지난 7월 제주의 한 주점 앞에서 38cm 길이의 칼을 들고 난동을 피운 남성을 경찰이 장봉을 휘두르며 어렵게 제압하는 모습이 뉴스를 탄 적이 있다. 이런 뉴스가 나올 때면 치안 강화를 위해서 경찰의 총기 사용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된다.
한국 경찰도 총기를 사용할까? 한국 경찰이 실탄을 사용하려 한다면, 과잉 금지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아야 하고, 또 생명에 지장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다리 등을 조준해 제압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현장 판단 하에 총기를 사용한다 해도 절차를 따지고 들면 법적 시비가 붙거나 징계를 받을 위험이 크기 때문에, 일선 경찰관들 역시 총기 사용을 피하는 경우가 많다.
여담이지만, 한국 경찰은 총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미드에 나오는 것 같은 글록, 베레타, 발터 PP 같은 자동권총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38구경 리볼버 권총을 사용한다 ‘육혈포’라고도 불리는 리볼버 권총은 한 번에 5발밖에 장전이 안 되고, 재장전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실제로 총기를 이용할 일이 거의 없는 한국 경찰에겐 상관이 없는 문제다. 오히려 오래 보관해도 고장이 적고, 탄피 회수가 쉽다는 장점이 있어 경찰관들이 사용하기 좋다.
하지만 경찰의 총기 사용에 대한 필요성이 경찰 안팎에서 제기되자, 최근에는 물리력을 크게 낮춘 비살상 총기를 시범 도입하기도 했다. 해당 총기는 플라스틱 탄을 사용해 사람이 맞더라도 목숨을 잃을 확률이 거의 없다. 해당 총기의 탄약은 발사된 장소와 시간, 각도까지 기록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공권력 강화 논란은 무기 사용에만 그치지 않는다. 주취자 등에 의한 경찰 폭행, 시위 현장에서의 경찰 폭행이 벌어질 경우 처벌을 강화해야한다는 주장도 거세다. 경찰력 행사에 지나친 제약을 가하는 것은 경찰의 치안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고, 이는 시민 사회에도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찰력이란 국가가 공익을 목적으로 물리력을 동원,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힘이기 때문에 항상 견제를 받아야 하는 것도 맞다. 군대화된 경찰 문제로 몸살을 앓는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민주화 운동 시기 백골단이나 공안 경찰 등에 의한 민권 탄압 문제를 경험해왔다. 경찰권 강화와 견제, 두 논리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은 복잡한 정치적 문제다.
글: 에디터 이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