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 (2) 왜 노동조합에 대해선 늘 ‘귀족노조’라고 할까?

‘노조’하면 떠오르는 것들을 나열해보자. 이마에 맨 빨간 띠, ‘단결’, ‘투쟁’ 같은 단어들, 빨간 조끼와 치켜든 주먹… 강하고 부담스러운 이미지다. 뉴스에선 이런 사진 아래 꼭 ‘귀족 노조’, ‘강성 노조’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귀족’과 ‘노조’라니, 어쩌다 붙어있게 된 것인지 짐작하기 어려운 조합이다. 귀족과 노동자는 영 다른 이미지 아닌가? ‘귀족 노조’의 의미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절대 긍정적인 표현은 아니라는 거다. ‘귀족 노조’는 어디서 나와서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게 된 걸까.

‘귀족 노조’는 민주노총이나 민주노총에 소속된 현대·기아차 등 대기업 정규직 노조를 비난하는 표현이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원들은 고용도 안정적이고, 노동 조건도 양호한데도 불구하고 더 많은 이익을 얻고자 이기적인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고, 비정규직 처우개선 등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관련된 문제는 모른 체하면서 말이다.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약 10%밖에 되지 않는데, 이들이 90%의 노동자를 제대로 대변하지도 못하면서 기득권을 휘두른다는 비판이다. 일부 노조가 조합원 자녀를 우선 채용했다는 ‘고용세습’ 논란에 휩싸이면서 ‘귀족 노조’에 대한 비난은 더욱 거세졌다.

노동조합에 대한 편견과 탄압의 역사를 생각해보면, ‘강성 노조’, ‘귀족 노조’에 대한 비판은 노조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것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1편에서 노조의 역사를 설명하며 언급했듯, 한국의 노조는 약 40년간 정부에 의해 탄압받아왔다. ‘노조=빨갱이’라는 공식부터 ‘강성 노조’, ‘귀족 노조’라는 표현에 이르기까지, 노조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오랫동안 한국 정치를 지배해왔다.

그 결과 한국은 여전히 반노동 정서가 만연한 사회로 남았다. 반노동이란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노동자와 노동운동에 적대적인 태도를 말한다. 이를테면 노동자가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노동자가 어떠한 권리를 행사하려 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부적절한 행위로 보는 것이다.

지금도 노조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정치인과 언론의 행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노동과 관련된 문제, 기업이 겪는 어려움은 모두 노조의 탓인 것처럼 말하는 게 대표적이다. 사측과 노조 측의 주장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전후 관계를 따지기 전에 ‘노조의 반항이 문제’라고 단정짓는 경우가 흔하다.

한편 ‘강성 노조’라는 표현이 부정적으로 쓰이는 배경에는 노조가 온건하고 협조적이어야만 한다는 시각이 있다. ‘강성 노조’ 뒤에 흔히 따라붙는 논리는 다음과 같다. ‘노동자 중에서도 소수에 불과한 강성 노조가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있어, 기업의 발목을 잡고 경제를 망친다.’ 하지만 앞서 살펴봤듯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4.2%밖에 되지 않는다. 기업 측에서 노조를 체계적으로 파괴한 경우도 적지 않다. 노조를 탈퇴하면 돈을 주겠다고 하거나,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주고 협박한 사건이 최근까지도 종종 일어났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의 ‘무노조 경영’이다. 삼성은 2020년까지 노조 설립을 사실상 금지해왔다. 노조를 설립하려는 직원들에게 금품 제공을 조건으로 노조 신고를 취하하게 하거나, 서류로만 존재하는 노조를 만들어 다른 노조가 만들어지지 못하게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노조를 만든 업체를 폐업한 뒤 노조 설립을 주도한 직원을 제외한 나머지 직원들만 재고용한 사건도 있었다.

이처럼 기업이 노조를 탄압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성 노조’가 기업의 걸림돌이라고 말하는 것에는 노조가 기업과 대등한 위치에서 협상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노동자와 사용자의 위계를 당연시하면서, 노조가 왜 강경한 방법을 쓸 수밖에 없는지는 지워버리고 노조의 태도가 ‘불편하다’는 인상만을 강조하는 것이다.

한편 ‘귀족 노조’라는 표현이 과도한 일반화로 노조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측면도 있다. 일부 노조원이 채용 비리에 관련됐던 것은 사실이나 이를 노조 전체의 잘못이라 비난하긴 힘들다. 처우가 양호한 노동자는 노조 활동을 할 자격이 없다고 볼 수도 없다. 어떤 노동자든 간에, 헌법에 명시된 권리를 정당하게 보장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유독 노조에게만 자신의 이익이 아닌 사회에 기여하는 활동을 할 것을 요구하고, ‘가난하고 불행한 노동자’만 처우 개선을 말할 자격을 부여하는 태도는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가 어떤 존재로 생각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귀족 노조’라는 표현으로 지적될만한 노조의 문제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우선 한국 노조의 운영 체계에서 비롯된 문제가 있다. 1편에서 말했듯이 한국 노동조합의 대다수는 기업별 노조다. 기업별 노조는 특정 기업이나 작업장에 소속된 (정규직) 노동자를 조직 대상으로 한다. 기업별 교섭 체제에선 기업 단위로 임금과 노동조건이 결정되므로, 노조 역시 개별 단위 기업의 임금 극대화 전략에 치중하게 된다. 따라서 같은 산업이나 직종 내에서 발생하는 노동조건 격차를 해소하거나 거시적인 노동정책에 개입하기는 어렵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이중화된 구조, 즉 중심과 주변으로 분절돼있는 구조다. 중심과 주변부 노동시장의 노동조건(임금, 고용 안정성 등) 격차가 상당하며, 노동시장을 규율하는 제도도 상이하다. 중심에는 대기업•유노조•정규직 노동자, 주변에는 중소기업•무노조•비정규직 노동자가 해당된다. 한국의 경우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노동시장 유연화가 심화되면서 주변부 노동시장의 규모가 확대되고 노동시장의 분절이 공고해졌다.

문제는 기업별 노조 체계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소하는 데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거다. 정규직 중심의 기업별 노조는 조합원, 즉 자기 회사 노동자들의 경제적 이익 추구-고용 안정과 임금 향상 등의 노동 조건 개선-에 몰두했다. 반면, 노동권 보장이나 노동시장 내 차별 해소 같이 노동자 전반을 아우르는 계급 투쟁이나 사회적 의제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게다가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기업·공기업에 비해 노조 조직률이 매우 낮아 그들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장치도 마땅치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시장 내부의 격차나 차별은 더욱 심화됐다.

IMF 외환위기 이후 노동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여타의 사회적 안전망도 취약한 상황에서 노동조합 역시 회사 내부에 있는 조합원의 이익을 지키는 데 더욱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측면도 있다.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문제를 도외시할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을 자신들의 고용안정을 위한 완충장치로 인식해 비정규직 유지를 오히려 선호하기도 했다. 기업이 비정규직을 광범위하게 활용함으로써 내부노동시장의 고용안정성이나 노동조건 개선이 가능하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요약하자면, 노동시장 내 분절이 심각하고 많은 노동자들의 이익이 대변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노조 투쟁의 혜택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만 돌아가는 문제가 있었다. 이들은 이중노동구조에서도 상위 계층에 속한다. 그중 일부가 하위 계층에 속하는 다수의 노동자들을 배제하면서 독점적인 이익을 추구해온 것이다.

이에 노조의 사회적 고립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노동자들이 노조 내에서 연대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노조의 공적 역할에 대한 고민이 더욱 필요하다는 진단이 노조 안팎에서 지속돼왔다. 노조를 보는 시각이 달라지기 위해선 노조 내부에서의 변화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처럼 노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한국 사회에서 노동이 다뤄져 온 맥락과 실제 노조운동이 전개된 양상 등이 두루 얽혀 형성됐다. 노조에 대한 과도한 낙인 찍기가 지양되는 한편으로, 노조 역시 좀 더 포괄적인 노동자들을 대변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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