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보수] (2) 보수는 왜 그럴까

앞선 글을 통해 진보・보수가 어떤 개념인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런데 한국을 생각하면 머리가 다시 지끈거린다. 앞의 도식처럼 한국의 보수도 분배보다 성장, 사회적 자유보다 권위를 추구한다고 간단히 설명되면 좋을 텐데… ‘한국의 보수’라고 하면 광화문에 모인 태극기 부대의 모습이 먼저 어른거린다.

'한국 보수' 하면 떠오르는 태극기부대 집회의 모습. 2017년 박근혜 탄핵 결정 반대 시위 ⓒAHN YOUNG-JOON, AP
부산・대구・경상도, 60대 이상, 박정희 좋아함, 사회적 약자 권리 싫어함, 뭘 다 시장에 맡기려

한국의 보수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여기에 한국의 대표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이 종종 사용하는 표현도 덧붙여보자.

“종북 좌파 문재인” “민주당은 반미・친중・친북에 빠져” “한미동맹 강화하고 강경 대북 정책하자”

좀 더 머리가 아파진다. 한국 보수의 언어에는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 너무 많다. ‘변화에 소극적이며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입장’이라고 간단히 소개할 수는 없어 보인다.

‘종북 좌파’가 뭐길래 그렇게 욕하는 걸까? 미국을 반대하면 안되는 걸까? 서구의 보수와 다른 한국 보수의 모습은 어떻게 생긴걸까?

이 질문의 답을 얻으려면 한국의 역사, 특히 현대사를 들여다 봐야 한다. 한국 진보·보수의 이념 형성은 자유, 평등과 같은 가치의 추구보다 한국의 역사와 더 깊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 대한 맥락을 알면 답답한 마음도 누그러진다. 카페 알바생에게 화내는 사람을 그냥 보게 되면 “뭐야 왜 저래” 하겠지만, 그 사람의 음료에 머리카락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그랬군”하며 상황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 사람이 화내는 방식을 비판하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한국 정치는 왜 저럴까”하는 막연한 답답함도 역사적 맥락을 파악하면서 조금은 해소해볼 수 있다.

한국 보수의 언어를 이해하려면 한국 보수를 형성한 두 가지 정체성을 살펴봐야 한다. 하나는 공산주의와 북한에 대한 반감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 성장이라는 제1목표다.

당신, 좌파야?

한국의 오래된 보수주의자들은 해방 이후 한국에게 도움을 준 미국과 함께 강경한 대북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전쟁을 일으킨 북한과 그 체제의 뿌리인 공산주의가 남한 사회에 여전히 큰 위협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산주의를 반대하고 이를 배척하는 태도를 반공주의라고 한다.

공산주의
토지, 자본과 같은 재산을 사회가 공동으로 소유하고 빈부 격차가 없도록 계급을 없애려는 사상

따라서 북한을 돕거나 유연하게 대하는 태도(친북), 미국의 개입에 반대하는 태도(반미)는 모두 배척해야 할 ‘종북 좌파’, 즉 북한의 정치사상과 체제를 추종하는 세력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남한의 보수에게 ‘좌파’는 공산주의 북한과 중국을 옹호하는 최대 적이다.

이러한 한국 보수의 세계관은 여전히 유효하다. 냉전도 끝나고 공산주의가 몰락한 지도 30년이 넘어가는데, 어떻게 반공주의가 아직까지도 보수 세력의 정체성으로 남아있을까? 한국전쟁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게 남아있기 때문일까? 이것 역시 일리 있는 해석이지만, 본질적인 원인은 한국 사회에 깊게 박힌 반공주의의 뿌리에 있다.

1. 남한 단독 정부 수립과 반공주의의 시작

1945년, 일제 식민 지배를 벗어난 한국은 새로운 정부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새 정부에 대한 논의는 공산주의 체제를 지지한 좌파, 자본주의 체제를 지지한 우파, 그리고 중도파까지 다양한 정치 세력 사이에서 진행됐다.

우파, 좌파, 중도 세력의 합의를 통해 하나의 정부가 자주적으로 만들어졌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당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냉전이 막 시작하던 때였다. 그 결과로 해방 직후 남한은 미군, 북한은 소련군의 군사 통치 아래에 놓였고 정부 수립 역시 이들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남한을 자본주의 진영으로 유지하고자 행정·정치 업무를 우파 세력에게 맡기고, 좌파 정당을 불법화했다. 좌파 진영에 대한 배제는 ‘공산주의와 북한은 남한의 성장과 민주주의를 방해하는 절대 악’이라는 논리에 의해 뒷받침됐다. 이 논리는 ‘공산주의에 물든 악한 북한은 우리 민족이 아니다’라는 인식으로 이어져 1948년 남한의 단독 정부 수립을 가능하게 했다.

우파 세력은 남한의 단독 정부 수립을 통해 정치 권력을 얻었다. 이들은 ‘공산주의와 북한은 남한 민주주의의 적’이라는 관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기존의 질서, 즉 반공주의를 그대로 유지했다. 당시 우파 세력엔 일제 강점기 시대의 엘리트 관료가 많았는데, 그중 일본의 식민 지배에 동조했던 친일파도 있었다. 반공주의 유지에는 해방 이후 친일파 청산이 화두가 되자 사람들의 관심을 친일에서 반공으로 돌리려는 목적도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반공주의 체제 유지라는 우파 지배 세력의 목표는 빠르게 달성될 수 있었다. 본래 좌파는 독립운동을 주도한 세력을 중심으로 하면서 대중의 큰 지지를 얻었지만, ‘공산주의는 절대악’이라는 프레임에 몰려 정치 공론장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렇듯 남한의 민주 정부는 민주주의의 절차는 갖췄지만 반공주의를 기반으로 하며 특정 정치세력을 배제하면서 시작됐다. 반공주의의 영향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세월이 지나 흐려지던 반공주의가 다시 공고해지는 계기가 생긴다. 바로 박정희 정권의 등장이다.

2. 쿠데타와 독재를 겪으며 공고해진 반공주의

1961년 5월 16일 서울에 진입한 박정희 쿠데타군은 시내 주요 건물을 점령한 후 ‘혁명공약’을 선포했다. 그 중 첫 번째 공약이 이렇다.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국가의 첫째 이념)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체제를 재정비 강화한다."

공산주의의 위협에서 국가를 구출해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명시한 셈이다. 집권 이후 박정희 정권은 반공법을 제정하는 등 적극적인 반공주의를 펼쳤다. 이때의 반공은 단순히 ‘공산주의를 반대하자, 배격하자’는 것에서 나아가 ‘공산주의를 이기자(승공)’로 이어졌다. ‘승공’의 목표는 남한의 경제력을 키워 북한보다 살기 좋은 사회를 실현해 공산주의를 무찌르는 것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승공’을 강력한 국가 주도 경제개발계획의 근거로 사용했다.

박정희 정권이 반공을 강력히 앞세운 까닭은 무엇일까. 쿠데타 이후 박정희 체제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기 위해선 강력한 논리가 필요했고, 반공이 그 역할을 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반공주의에 동조하지 않고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세력은 그들이 실제로 공산주의자인지, 좌파인지와는 무관하게 모두 ‘종북 좌파’로 묶여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집단이라며 배척당했다.

정리하자면 한국의 보수는 갑작스러운 해방과 정부 수립, 한국전쟁 속에서 그들이 지켜야 할 가치와 명분을 찾아야 했다. 그때 찾은 해답이 공산주의와 북한을 민족의 숙적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보수 세력은 반공, 승공을 위해서라도 정권을 유지해야 했고, ‘이를 방해하는 정치 세력은 종북 좌파’라는 반공주의를 강조하며 성장해 온 것이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 대립이 무색해진 현재까지도 한국 보수와 ‘종북 좌파’의 대립 구도는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번 대선 기간 중 윤석열 대통령(당시 후보)도 참여한 ‘멸콩 인증’(보수 정당 정치인들 사이에 멸치와 콩 사진을 SNS 등에 올리던 것. ‘멸콩’은 공산주의를 멸하자는 뜻의 멸공을 암시한다)을 생각해보자.

하지만 반공주의는 정치 이념으로서 예전만큼의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의 보수는 반공주의만으로는 권력을 유지할 수 없다. 그래서 경제 성장이라는 가치가 한국 보수 정체성의 또다른 축을 형성하게 된다.

기업이 살아야 나라도 살고 국민도 산다!

경제 문제에 있어 분배보다 성장을 중시하고, 국가의 시장 개입에 반대하는 것, 즉 시장 자유주의는 일반적으로 보수 진영에서 취하는 입장이다.

한국 보수 정치인들이 자주 하는 주장을 떠올려 보자.

“경제가 성장해야 나라가 살기 좋아진다, 국가 개입은 줄이고 시장 경쟁에 맡겨야 한다, 공기업은 민영화(민간에 의해 경영)해야 한다, 기업 규제는 완화해야 한다…”

현재의 한국 보수도 시장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걸리는 지점들이 있다. 한때 한국 보수는 국가 개입의 최소화가 아닌 국가 주도의 경제 개발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입장이 바뀐 걸까? 여기서 또 박정희 정권이 등장한다.

1. 보수에 새겨진 경제 성장의 경험

박정희 정부는 1962년부터 경공업 위주의 수출로 시작해 중공업을 키우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당시 국민의 절반 이상은 절대적 빈곤에 놓여 있었고, 외국의 경제 원조도 줄어들고 있었다.

경제개발계획은 이전 정권에도 있었지만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의지는 훨씬 강력했다. 가난 극복과 근대화에 대한 박정희 전 대통령 개인의 집념이 강하기도 했지만, 쿠데타로 얻은 권력의 태생적인 결함을 경제 성장이라는 업적으로 보완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경제개발계획은 국가 주도로 특정 기업을 지원해 경제 성장을 이루려 했다. 이는 새로운 자본가, 즉 현재의 대기업 재벌을 만들었다. 경제개발계획의 성공으로 한국은 경제 규모 세계 10위에 오를 정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의 상황이 개선된 지금도 보수 세력은 여전히 경제 성장을 중시한다. 경제개발계획으로 한국 사회에 형성된 자본가 계층과 기득권 세력 중 다수가 보수 세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2. 국가 주도 경제 개발에서 시장 중심 자유주의로

1987년 민주화 이후 권위주의 독재 정권이 막을 내리면서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고 노동력을 강하게 요구하는 경제 개발을 보수의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기는 어려워졌다. 성장에만 집중한 경제개발계획이 도시 노동자와 농민의 복지를 무시하고 빈부의 격차를 심화시켰다는 비판도 등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 세력은 자신들의 가치를 새롭게 변형할 필요가 있었다. 이때부터 보수 세력이 내세운 이념이 시장 중심 자유주의다. 정부 규제 철폐, 노동조합 활동 제한, 기업 투자환경 개선 등을 통해 시장의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는 것이 소득 격차를 완화하고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논리다.

이명박 정부를 지나며 시장 중심 자유주의는 더욱 강화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 성장을 위해 작은 정부, 큰 시장, 공공부문에서의 경쟁 도입, 감세와 규제 개혁 등을 강조했다. 경쟁력 강화, 효율성 증진을 이유로 기업을 구조 조정하듯 교육부와 과학기술부를 통합하기도 했다. 이후 한국 보수는 경제 영역 밖의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부분을 시장에 맡기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해결할 것을 외치기 시작한다.

보수 세력이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과 국가 개입을 최소화한 시장의 자유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은 모순으로 보일 수 있다. 보수 세력은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이 자유로운 시장 체제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시대적 상황에 맞추어 자신들의 가치를 변형시켰다는 해석도 있다.

이 중 나름 설득력 있는 해석은 한국 보수가 일관되게 말하는 가치가 대기업 중심의 성장제일주의라는 것이다. 박정희 정부에서도, 이명박 정부에서도 경제 성장은 대기업 중심이었다. 박정희 정부는 국가 주도로 대기업을 지원했고, 이명박 정부는 자유로운 시장과 경쟁을 내세우면서도 대기업 규제를 완화해 대기업 중심의 경쟁 질서를 만들었다.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한국 보수의 모습을 이제는 알 것 같다. 한국 보수가 ‘종북 좌파', ‘빨갱이' 등의 단어를 종종 사용한 이유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며 남북관계에도 여러 변화가 생겼고 경제와 양극화 문제도 복잡해졌다. 반공주의와 성장제일주의를 핵심으로 했던 한국 보수에게도 ‘보수의 이념이 없다’, ‘보수로 둔갑한 수구(옛 제도나 풍습을 고집하는 태도)다’라는 비판이 시작됐다.

보수 안에서도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보수의 이념을 제대로 정립하고, 상대 진영을 무작정 공격하려 들지 않는 합리적인 보수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대표적으로 유승민 전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당시 가장 큰 보수정당이었던 새누리당에서 갈라져 나와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바른정당은 ‘개혁보수’, ‘새롭고 따뜻한 보수’를 지향하며 기존 보수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지금 국민의힘 이준석 당대표도 바른정당에서 성장한 ‘새로운 보수'의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이준석 당대표도 반공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기성 보수와 선을 그으며 공정이라는 새로운 지향점을 세우며 합리적 보수의 길을 탐구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는 시대에 따라 가치가 변화하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한국 보수 역시 지금의 사회적 상황에 따라 변화 중이고, 앞으로도 변할 것이다. 보수의 핵심 가치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은근히 주시해보자.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원하는 보수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생각해 보는 걸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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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김용철, 지충남, 유경하(2018). 현대 한국정치의 이해. 도서출판정독.

[제목 이미지]

서울기록원. 반공궐기대회, 1986-06-25